55화

붉은 제복의 영웅들도 힐링이 필요해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들며 화마와 맞서고,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인명을 구조해내며 우리의 안전과 생명을 지켜주는 존재. 바로 소방관이지요. 언제든 부르면 달려와 주지만, 위급한 상황에 처하지 않는다면 좀처럼 만나보기 어렵습니다.

 

직접 만난 소방관들의 얼굴은 우리네 평범한 시민의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사는 삶은 평범하지 못했습니다. 매일을 긴장감 속에 수면장애에 시달리며, 사고 현장에서의 끔찍한 기억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지난 8월 5일 서울 길동119안전센터와 뚝섬수난구조대를 찾아 소방관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었습니다.

 

 각종 사건사고, 재난재해 현장에는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지키는 소방관이 있습니다. (사진: 서울소방재난본부)

각종 사건사고, 재난재해 현장에는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지키는 소방관이 있습니다. (사진: 서울소방재난본부)

 

 

떨칠 수 없는 그날의 기억

 

“벌써 수십 년도 더 됐죠. 제기동 한옥집에 난 불을 다 껐는데, 세 들어 사는 집 남매가 보이지 않는 거예요. 온 동네를 아무리 찾아도 없었습니다. ‘어디로 도망 갔겠거니’ 하고 현장을 정리하는데 주인집 안방에 쏟아져 내린 기왓장들을 치우다 발견한 거죠. 대여섯 살 된 애 둘이서 꼭 끌어안은 채 주검이 돼있는데, 그 때 우리 애들이 딱 고만했다고요.”

 

서울 강동소방서 길동119안전센터의 배영우(58) 센터장은 오랜 이야기를 꺼내며 “그 모습이 꼭 어제 일처럼 마음에 남아있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많은 소방관들이 그랬습니다. 길동119안전센터의 6년차 소방관 이주원(34) 대원은 “그래서 웬만하면 기억하지 않으려 한다”고 말을 아꼈습니다. 계속 기억을 안고 있으면 업무를 이어가기도, 일상을 영위하기도 힘들기 때문이지요.

 

“그런 마음을 풀자고 저 자신에게만 집중할 순 없어요. 집에 돌아가선 또 4살 난 아들 녀석이며 가정도 돌봐야죠. 그냥 스트레스가 삶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하며 사는 거예요.”

 

길동119안전센터 이주원 대원
길동119안전센터 이주원 대원

 

 

긴장 속에 선잠으로 지새는 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위급상황. 24시간을 셋으로 쪼개 교대로 근무하는 소방관들은 낮과 밤이 바뀌기 일쑤입니다. 불규칙한 생활패턴과 출동에 대한 긴장감으로 많은 소방관들이 수면장애에 시달리고 있지요.

 

뚝섬수난구조대 3팀장 김병수 대원
뚝섬수난구조대 3팀장 김병수 대원

 

올해 19년차인 김병수(46) 대원은 “잠잘 때 소리에 굉장히 예민한 편이고 수면을 취하더라도 가수면 상태인 경우가 많다”며 “새벽에 출동이라도 다녀오면 30분에서 1시간은 침대에서 뜬 눈으로 뒤척이기 일쑤”라고 합니다. 그는 서울시119특수구조단 소속 뚝섬수난구조대에서 근무하고 있는데요. 수난구조대는 한강에 3개소(뚝섬, 반포, 여의도)가 있으며 수상 인명구조, 수상구조물 화재진압 등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지난 1월, 한강 영동대교 인근에서 발생한 한강 유람선 침수사고 당시 모습입니다. 긴급 출동한 수난구조대에 의해 타고있던 승객 및 승무원 11명 전원이 안전하게 구조됐습니다. (사진: 서울소방재난본부)
지난 1월, 한강 영동대교 인근에서 발생한 한강 유람선 침수사고 당시 모습입니다. 긴급 출동한 수난구조대에 의해 타고있던 승객 및 승무원 11명 전원이 안전하게 구조됐습니다. (사진: 서울소방재난본부)

 

모든 사고가 그렇지만, 특히 수상에서 발생하는 인명사고의 경우 촌각을 다투기 마련입니다. 때문에 대기 중 긴장 상태가 오랜 시간 지속되는 경우가 많지요.

 

하지만 마땅한 휴식 공간은 부족해보였습니다. 뚝섬수난구조대에는 대기실 외 휴게공간으로 지정된 공간이 없었습니다.

 

김병수 대원은 “일과가 끝난 야간 대기시간에는 소파에서 TV를 보거나 대기실 침대에서 선잠을 자는 게 휴식의 전부”라고 말했습니다. 길동119안전센터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휴식을 취하냐고 묻자 이주원 대원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사실 딱히 휴식을 취할 공간은 없어요. 그래서 대기 중에는 센터 안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데, 그러면서 쉬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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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관에게도 ‘힐링이 필요해’

 

소방관들이 화재 진압 시 착용하는 방화복 무게는 20kg에 이릅니다. 수난구조대도 무거운 스쿠버장비를 착용하고 수중에서 구조 활동을 펼치지요. 체력적‧정신적 소모가 상당하며, 안정적인 업무 수행을 위해선 평상시의 휴식이 그만큼 중요합니다.

 

순찰 중인 김병수 대원의 모습. 김 대원은 “이 배를 타는 일이 별로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수상에서 벌어지는 인명사고의 경우 대부분 사망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순찰 중인 김병수 대원의 모습. 김 대원은 “이 배를 타는 일이 별로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수상에서 벌어지는 인명사고의 경우 대부분 사망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희망브리지와 KB손해보험은 소방관들의 이러한 현실에 주목해 ‘힐링의 기적’ 프로젝트를 전개합니다. 119안전센터에 심신안정실을 설치해 충분한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돕고자 한 것이지요. 현재 서울소방재난본부의 도움으로 길동119안전센터, 뚝섬수난구조대를 비롯 휴게 환경이 상대적으로 열악한 119안전센터 5개소를 확정 했습니다.

 

심신안정실 내부는 희망브리지 재난안전연구소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전문위원들의 자문을 받아 조명, 도벽, 칸막이 설치 등 내부 인테리어 공사를 실시하고, 안마의자, 산소발생기, 오디오장치 등이 채워질 예정입니다.

 

뚝섬수난구조대의 문서보관실. 이 공간이 심신안정실로 새롭게 태어날 예정입니다.
뚝섬수난구조대의 문서보관실. 이 공간이 심신안정실로 새롭게 태어날 예정입니다.

 

“아무래도 현장에 다녀오면 잔상이 남아요. 다음 출동할 때 마음의 부담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는데 심신안정실이 생긴다면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아요. 매번 그날의 첫 출동인 것처럼 임할 수 있도록요.” (이주원 대원)

 

(왼쪽부터) 탱크차량을 점검 중인 이주원 대원과 순찰 출동 준비 중인 김병수 대원의 모습입니다.
(왼쪽부터) 탱크차량을 점검 중인 이주원 대원과 순찰 출동 준비 중인 김병수 대원의 모습입니다.

 

“저도 사람이다 보니 몸이 피곤하면 현장 활동에서도 힘에 부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심신안정실에서 피로를 풀면 좀 더 안정적인 상태에서 현장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김병수 대원)

 

오는 10월이면 심신안정실이 들어설 것이란 말에 대원들은 큰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소방관들의 근무환경 개선이 대시민 서비스 능률 향상으로 이어질 것이란 믿음으로 마련된 ‘힐링의 기적’ 프로젝트. 이러한 선순환이 구조 현장에서 어떤 기적을 낳게 될지 벌써부터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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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매 순간 '내 첫 번째 크리에이티브'라는 마음으로 여기에 이름을 올립니다.

  • cathy yang

    마땅한 휴식공간도 없다니..이분들을 어찌 이리 대접할 수 있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