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진화하는 검은돈, 중국 뇌물의 천태만상

 

재작년 흥했던 드라마 ‘미생’을 보면

중국의 ‘꽌시’를 소재로 한 에피소드가 비중있게 등장합니다.

드라마 상에선 인맥을 기반으로 한 뒷돈 정도로 표현됐죠.

대륙 성패의 결정적 요인이 ‘그것’이란 설명은

중국 사회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가늠케 합니다.

제도와 규칙 위에 있다는 ‘연줄’, 그리고 이를 잇기 위한 ‘돈’

지금까지도 유효한 걸까요?

 

(사진:William Potter/shutterstock.com)
(사진:William Potter/shutterstock.com)

 

  

china101-their

그들의 시선 

 

‘회사로 배달된 뇌물 보따리를 집으로 가져오는 동안 자가용 트렁크 문이 닫히는지 여부가 바로 내 남편이 현재 권력자인지 여부를 가늠할 기준이다’

 

중국에 실제로 있는 말입니다. 추석, 설날, 국경절 등 중국을 대표하는 명절을 앞두고, 중국인 남편을 둔 여성들이 우스갯소리로 나누는 이야기이지만, 단순히 웃어넘길 수만은 없는 뼈 있는 농담이죠.

  

비록 시진핑(習近平) 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 주고받는 뇌물의 규모가 크게 축소되었다고는 하지만, 이는 기존의 드러낸 채 주고받던 문화에서, 조용히 숨겨 주고받는 문화로 그 행태만 변화되었을 뿐, ‘뇌물’ 문화는 여전한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대부분의 중국인들이 “뇌물 및 자금 유용 등은 사업 규모 확장에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한 설문조사에선 뇌물이 사업에 필수불가결한 요소라고 답한 사람이 94%에 이르기도 했습니다. 대부분의 중국인들이 뇌물을 주고받지 않으면 사업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는 것이죠.

 

‘호랑이(부정부패를 일삼는 권력자를 지칭) 잡는다’는 시진핑 정부가 집권한 지 약 4년이 흐른 지금, 뇌물을 주고받는 이들에게는 ‘대목’으로 여겨지는 9월 15일 추석을 앞둔 중국의 모습이 여전히 암울해 보이기만 하는 이유입니다.

 

(사진:luxorphoto/shutterstock.com)
(사진:luxorphoto/shutterstock.com)

 

 

china101-her

그녀의 시선

 

중국에서 ‘뇌물’은 중국 사회에 ‘내부인’으로 진입하기에 가장 좋은 방법이자, 가장 빠른 지름길로 여겨집니다.

 

‘뇌물’은 부정하고 부패한 것이 아닌, 외부인에서 내부인으로 한 단계 발전하기 위해 필요한 당연하면서도 필수적인 것이라 여겨지는 분위기죠.

 

중국의 추석인 ‘중추절’과 설날인 ‘춘지에’를 앞두고 뇌물 수수가 관행처럼 여겨지는 분위기다. (사진: 시나닷컴(sina.com))

중국의 추석인 ‘중추절’과 설날인 ‘춘지에’를 앞두고 뇌물 수수가 관행처럼 여겨지는 분위기다. (사진: 시나닷컴(sina.com))

 

이런 분위기를 의식해서인지, 최근 중국 현지 유력 언론에서는 ‘공직자 천국, 중국이 변화하고 있다’는 우회적인 의미의 제목의 칼럼을 다뤘습니다.

 

기사에 따르면 한 번 중국의 공무원이 된 사람이라면 누구나 죽을 때까지 철밥통을 쥐고 흔들 수 있고, 이른바 ‘3공소비(三公消费)’(공금으로 먹고 마시고, 공금으로 국내외 호화판 여행을 즐기며, 공무용 차량을 개인용으로 무단 사용하는 것)가 허락된 국가였으나, 시 주석 취임 이후 뇌물을 주고받는 행위가 크게 축소되는 등 국가 운영 형태가 크게 투명해졌다는 내용을 담고 있죠.

 

시진핑 주석이 취임한 이후 실제로 공직자의 투명성 여부가 크게 개선됐는지 여부는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하지만 해당 기사를 보면 적어도 지금껏 중국 내 상당수 공직자들이 어떤 행태를 취해왔는지 가늠해볼 수 있죠. 자신이 가진 권력을 남용해, 사업 관계자에게 뇌물을 수수하고, 재산을 축적한 뒤, 퇴직 이후에는 또 다른 공직사회(중국식 관피아)로 진출하는 것이 일반적인 공무원들의 승진 경로였다는 겁니다. 가히 ‘공무원의 천국’이었던 것이죠.

 

하지만, 이런 분위기는 여전히 가시지 않고 있습니다. 공직자의 뇌물 수수에 대한 관용적인 분위기가 뿌리 깊게 조성돼 있어, 부정부패가 일어나기 쉬운 환경을 자아내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해 12월, 중국 시나닷컴(sina.com)에 따르면, 같은 해 뇌물 수수로 실형을 선고받은 후난성 전 부시장 a씨의 유죄 여부를 묻는 여론 조사 결과, 응답자의 4만4215명 중 66%가 “뇌물 수수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시진핑 주석 취임 4년이 흐른 현재, 중국에서는 권력을 가진 자들로 지칭되는 ‘호랑이’ 잡는 시진핑 정부의 활약이 과연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 제기되는 시점이다. (사진:시나닷컴(sina.com))

시진핑 주석 취임 4년이 흐른 현재, 중국에서는 권력을 가진 자들로 지칭되는 ‘호랑이’ 잡는 시진핑 정부의 활약이 과연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 제기되는 시점이다. (사진:시나닷컴(sina.com))

 

후난성 웨양시 중국 인민법원은 부시장 a씨를 뇌물 수수죄로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과 재산 6만 위안 몰수를 선고했는데, a씨는 뇌물을 수수할 당시 받은 금품의 상당 부분을 빈곤구제와 공무 활동비로 썼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시민들의 동정 여론이 일기 시작했던 것이죠.

 

중국인 세 명 중 두 명이 “빈민 구제 등 공공 이익을 위해 사용했다면, 비록 그게 뇌물이라고 해도 죄가 되지 않는다”라고 생각한다는 얘깁니다.

 

문제는 이 같은 ‘뇌물 수수’에 대한 유연한 사고방식이 중국의 공직사회는 물론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를 ‘뇌물’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로 몰아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중국에서는 오히려 뇌물 청탁을 받은 자가 이 같은 행위 일체를 단호히 거절할 경우, 이를 두고 “저 공직자는 청렴한 사람이구나”라고 여기는 것이 아니라, “이번에 제공한 뇌물의 금액이 너무 적기 때문이구나”라고 여긴다고 합니다.

 

때문에, 추석을 앞둔 중국에선 그 동안 청탁의 마땅한 기회를 엿보던 일부 시민들이 ‘절호의 기회’를 잡으려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습니다. 

 

이들이 가장 손쉽게 거래할 수 있는 뇌물 수단은 ‘현금’이 꼽힙니다. 하지만 정부의 관리 감독에 적발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측면에서 중국에서는 생각지도 못할 다양한 방식으로 뇌물을 제공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더욱이 추석을 앞둔 9월 중에는 ‘월병’이라 불리는 중국식 과자 속에 금품을 넣어 전달하는 방식이 크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금으로 만들어진 월병 모양의 ‘금병’ 모습. 해당 제품은 추석을 앞둔 시기 가장 많이 팔려나가는 항목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사진: 시나닷컴(sina.com))

금으로 만들어진 월병 모양의 ‘금병’ 모습. 해당 제품은 추석을 앞둔 시기 가장 많이 팔려나가는 항목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사진: 시나닷컴(sina.com))

 

‘월병(月餠)’은 추석 등 명절 기간 동안 중국인들이 즐겨 먹는 음식 중 하나입니다. 한 번에 수 백여 개 씩 만들어 놓고 지인들에게 선물하거나, 선물 상자에 포장돼 판매되는 제품을 구입해서 가까운 지인, 가족들이 나누어 먹는 것을 좋은 풍습이라 여기는 것이죠.

 

그런데, 중국에서의 월병은 명절을 앞둔 시기 곧잘 뇌물을 포장, 감추는 용도로 크게 활용되고 있습니다.

 

마치, 한국에서 크게 흥행을 했던 영화 ‘신세계’에서 화교 출신 조폭 겸 사업가로 분한 배우 황정민씨가 월병 속에 지폐를 가득 담아 뇌물 수수를 시도했던 장면과 매우 유사한 형태이죠.

 

영화 ‘신세계’의 뇌물 수수 시도 장면(사진:http://blog.naver.com/irena10/220108877479)
영화 ‘신세계’의 뇌물 수수 시도 장면(사진:http://blog.naver.com/irena10/220108877479)

 

행운의 편지를 담았던 월병 속에 쪽지 대신 금을 넣어 뇌물 수수에 활용하는 탓에 월병은 중국에서 ‘금병(金餠)‘으로 불리기까지 합니다.

 

이와 함께 최근에는 모바일 결제 시스템의 발전으로, 전자 결제를 이용한 뇌물 행태가 족족 발견되고 있습니다.

 

최근 중국에서 모바일 결제 시스템을 이용하는 가입자의 수가 8억 명을 넘어서며, 스마트폰을 활용해 전자 월병 상품권을 전달하는 새로운 방식의 뇌물 수수행위가 다수 진행되고 있는 것이죠.

 

정부의 실시간 검열이 어렵고, 간편하게 현금화 할 수 있는 점에서 위챗 페이, 즈푸바오 등 모바일 결제 시스템을 활용한 방식이 큰 인기를 얻고 있다.(사진:scyther5/shutterstock.com)

정부의 실시간 검열이 어렵고, 간편하게 현금화 할 수 있는 점에서 위챗 페이, 즈푸바오 등 모바일 결제 시스템을 활용한 방식이 큰 인기를 얻고 있다.(사진:scyther5/shutterstock.com)

 

고작 월병 따위에 넣어 전달하는 금액이 뭐 얼마나 된다고 큰 대수냐는 시선이 있지만, 실상은 우리가 상상하는 수치를 크게 넘어섭니다.

 

중국의 추석, 설날 등 중국의 대표적인 명절을 앞두고 공무원들이 수수하게 되는 뇌물의 수는 천문학적인 금액에 달하는데, 지난 2014년 체포된 저우융캉이 명절 한 철 수수한 금액은 약 1000억 위안(약 18조 원)에 달했고, 그가 그동안 은닉한 황금, 서화, 골동품이 트럭 여섯 대 분량이라는 보도도 있었죠.

 

적발 당시, 공안국이 불시에 찾은 그의 저택 비밀 지하창고에서는 뇌물로 추정되는 현금 1톤과 함께 사각 금괴 200㎏이 발견 됐었는데, 그 외에도 건물 벽면을 부수자 수수한 현금 뭉치들이 쏟아져 나온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때문에 추석을 앞둔 이 시기, 중국 중앙 정부에서는 일명 ‘중앙순시반’이라 불리는 감사단을 전국 각 성에 파견해 공직자들의 부정부패를 감시 감독하는데 집중, 감시단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공직자들 가운데 상당수는 부정부패를 통해 축적한 자산을 해외 금융 자산으로 빼돌린 후 도피 직전에 이른 수가 상당했던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일명 ‘루오관(裸官)’이라 불리며, 자신의 가족들을 해외로 먼저 도피시킨 후 본인만 홀로 남아 재직하며 부정한 방식으로 재산을 축적하고 있는 공직자의 수가 한 해 평균 900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된 바 있습니다.

 

때문에 베이징 시정부는 지난해부터 기율위원회를 가동, 이 시기 공무원의 복지부동, 권력남용에 대한 특별 감사를 실시했는데, 시 정부는 부정부패를 저지른 공무원의 내역을 아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12388’ 직통 전화로 신고할 수 있도록 하고, 신고하는 이에게는 포상금을 제공할 것이라는 점을 공고히 한 바 있죠.

 

하지만, 일각에서는 정부의 이 같은 조치를 비웃기라도 하듯, 대형 쇼핑센터에서 고가의 물품을 구입한 후 영수증과 함께 동봉한 뒤, 반품 형식으로 돈을 찾아갈 수 있도록 하는 등 정부의 적발 의지를 무색하게 하는 보다 다양한 방식으로 뇌물 수수 형태가 진화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또, 이카통(一卡通)으로 불리는 중국의 교통 카드에 수 백 위안의 금액을 충전하고, 이를 선물하는 방식도 동원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더욱이 지난해 시작된 해당 신고 제도는 1년이 지난 지금껏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관리 감독 내역 역시 일반에 공개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암행기관’으로의 역할을 해내지 못한다는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한편, 이 같은 중국의 현 상황에 대해 중국의 대표적 온라인 유통업체 ‘타오바오(淘宝网))’ 창업자 마윈(马云) 회장은 “뇌물 수수와 공여 모두 차단해야 하며, 국가 부패는 장수가 팔을 잘라내듯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당시 그의 발언은 뇌물 공여가 필수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중국 기업인으로서는 매우 용기있는 행위로 분석된 바 있죠.

 

뇌물 수수 행위는 뇌물을 주는 자와 받는 자가 양측이 존재하는 명백한 불법행위이자, 상호 관계에 있는 양측을 모두 차단해야만 제거할 수 있는 문제라는 점에서, ‘팔을 잘라내 듯’ 단호히 처단해야 한다는 마윈 회장의 지적이 오래 기억에 남는 시점입니다.

 

 

중국에 대한 101가지 오해 언론에 의해 비춰지는 중국은 여전히 낡고, 누추하며, 일면 더럽다. 하지만 낡고 더러운 이면에 존재하고 있는 중국은 그 역사만큼 깊고, 땅 덩어리만큼 넓으며, 사람 수 만큼 다양하다. 꿈을 찾아 베이징의 정착한 전직 기자가 전하는 3년여의 기록을 통해, 진짜 중국을 조명해본다.

SHARE :

시리즈 소개

중국에 대한 101가지 오해

언론에 의해 비춰지는 중국은 여전히 낡고, 누추하며, 일면 더럽다. 하지만 낡고 더러운 이면에 존재하고 있는 중국은 그 역사만큼 깊고, 땅 덩어리만큼 넓으며, 사람 수 만큼 다양하다. 꿈을 찾아 베이징의 정착한 전직 기자가 전하는 3년여의 기록을 통해, 진짜 중국을 조명해본다.

필자 소개

서울에서 중앙일간지 정치부 국회출입기자로 4년 여간 활동, 서른을 한 해 앞둔 무렵, 아무 연고도 없는 베이징으로 무작정 건너와 현재는 프리랜서 통·번역, 여행 칼럼을 쓰며 자유로운 삶을 만끽 중이다.

  • Reona

    헐. 황금, 골동품 트럭 여섯 대, 38사기동대 보는 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