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화

“쓰레기는 두고, 신선함만 가져가세요”

 

포장쓰레기. 생산자와 소비자의 경계가 굳어지고 택배, 배달, 테이크아웃 등 우리의 소비 패턴이 변화하면서 크게 증가한 부산물이다. 유동인구가 많은 길가나 지하철역의 쓰레기통은 일회용 컵으로 넘쳐나고 재활용 쓰레기를 내놓는 날이면 집집마다 종이박스며 비닐, 플라스틱 포장재를 내 놓느라 진땀을 흘린다. 환경부가 지난 2009년 내놓은 통계에선 생활폐기물 중 포장쓰레기가 32%(중량 기준, 부피 기준으로는 50%)나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여름,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쓰레기 제로 스토어’ 창업에 나선 이들이 있다. ‘더 피커(the picker)’의 송경호(29)‧홍지선(31) 대표다. 더 피커는 곡류 및 각종 채소를 파는 식료품점이면서 간편한 식음료도 함께 판매하는 ‘그로서란트(grocerant, grocery와 restaurant를 합성한 신조어)’로, 7월 초 서울 성수동 골목(서울숲2길)에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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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장 전체가 ‘쓰레기 제로’

 

매장에 들어서니 빈티지한 느낌의 인테리어, 테이블 몇 개와 샐러드‧음료명이 적힌 메뉴판이 반겼다. 성수동 골목의 여느 카페와 다르지 않다고 느끼던 찰나, 송경호 대표가 “이쪽이 메인이에요”라며 매장 우측으로 안내했다.

 

시선을 옮기자 각종 유리병과 함께 벽에 매달린 원통형 디스펜서가 눈에 띄었다. 20여 가지 곡류가 나란히 담겨 있었다. 그 밖에도 채소와 과일이 실온에 진열돼 있었고, 한쪽에는 견과류를 담은 컨테이너들이 줄지어 있었다.

 

더 피커 송경호·홍지선 대표
더 피커의 송경호·홍지선 대표

 

더 피커라는 이름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소비자가 필요한 만큼 ‘픽(pick)’ 해서 가져간다는 뜻과 함께, 말 그대로 ‘수확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도 차용한 것. 송경호 대표는 “마트에서는 모두 꽁꽁 포장돼 있어서 무엇을 사도 공산품을 사는 기분”이라면서 “포장을 하지 않은 살아있는 채소나 과일, 곡류를 매장에서 수확해가는 느낌으로 가져가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름을 지었다”고 말했다.

 

매장에서 판매하는 모든 식재료는 소분 및 포장 단계를 거치지 않은 상태로 진열돼 있다. 소비자가 직접 가져온 용기에 필요한 만큼 담아 무게 단위로 계산해 구매하는 방식. 백미, 현미, 찰흑미, 서리태 등 국산 곡류나 과채류는  국내 영농조합이나 사회적기업 등을 통해 들여온다. 그 밖의 렌틸콩, 치아씨드, 퀴노아 등 해외작물은 국내 수입사를 통하고 있다. 모두 친환경‧유기농 농법으로 재배된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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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피커 매장의 식료품 코너. 20여 종의 곡류 및 견과류가 전용 용기에 담겨 진열돼 있고, 10여종의 과채류가 선반 위 실온에 놓여져 있다.

 

“보시다시피 굉장히 거창한 건 없어요. 일반 마트에서 포장만 쏙 빼 놓은 거죠. 포장재 최소화를 추구하다보니, 저희가 구매할 때도 최대한 큰 단위로 들여와요. 작은 건 20kg에서 큰 건 80kg까지요.”(송경호 대표)

 

한꺼번에 많은 양의 식자재를 구매하는데서 오는 재고 문제는 함께 운영하는 레스토랑을 통해 해결했다. 판매 중인 과채류 및 견과류를 활용한 샐러드‧음료류 위주로 메뉴를 개발한 것도 이 때문이다. 매장에서는 스테인리스 빨대를 사용하고 테이크아웃 시에는 옥수수 추출물, 대나무 펄프로 만든 친환경 생분해성 용기에 담아낸다. 화장실 휴지는 재생용지로 만들어진 것을 사용하고, 세제 또한 대용량으로 구매해 필요한 만큼 덜어 사용하는 등 매장 전체적으로 쓰레기 발생을 최소화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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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피커는 신선한 과채류와 견과류를 곁들인 샐러드, 음료 등도 선보인다. 송경호 대표는 “떠 먹는 스무디볼(사진)이 가장 인기 있는 메뉴 중 하나”라고 추천했다.

 

 

10%라도 절감하는 게 경영논리라지만…

 

환경문제에 대한 인식이 제고되면서 ‘친환경’을 이야기하는 아이템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포장 없는 식료품점’은 전 세계적으로도 이제 막 생겨나기 시작한 새로운 흐름이다.

 

2014년 독일 베를린에서 포장지 없는 수퍼마켓 ‘오리기날 운페어팍트(Original Unverpackt)’가 최초로 문을 연 이후 유럽 내에서 확산되기 시작했고, 얼마 전 미국 뉴욕에서는 같은 콘셉트의 ‘필러리(the Fillery)’가 등장해 주목받았다. 지난해 11월엔 프랑스 파리에 무포장 식료품점 ‘비오콥21(Biocoop 21)’이 두 달 간의 실험 운영 형태로 개점했는데, 소비자들의 호응이 좋아 2개월 더 운영 기간을 연장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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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없는 슈퍼마켓계의 성지, 독일의 오리기날 운페어팍트의 모습 (사진: 오리기날 운페어팍트 홈페이지, http://original-unverpackt.de)

 

“‘저들만의 이야기다’, ‘포장 없이 진열해 놓으면 훔쳐가는 일도 비일비재 할 거다’ 처럼 이러한 사례가 보도될 때마다 부정적인 댓글들이 많이 달렸어요. 해외 사례에만 의존하다보니 창업 과정에서 어려움도 적지 않았고요.”

 

송경호 대표는 매장에서 사용할 디스펜서 및 친환경 용기류를 수급하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고 이야기했다. 곡류를 진열할 디스펜서는 국내 여러 업체들에 제작을 의뢰했지만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모두 거절당한 것. 어렵게 찾은 해외 제조사도 500개 이상 대량으로 판매하는 탓에 불가능했다. 결국 그보다 용량이 작은 시리얼 전용 디스펜서를 구해 활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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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얼 디스펜서를 활용해 진열한 곡류. 아래 이미지처럼 고객은 자신이 필요한 만큼 담아 구매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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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크아웃용 친환경 용기도 마찬가지였다. 옥수수 추출물로 만들어 생분해되는 PLA(Poly Lactic Acid) 컵은 국내 수급이 여의치 않아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송 대표는 “수입해서 쓰는데도 값은 일반적인 플라스틱 컵에 비해 10% 정도 밖에 비싸지 않다”면서, “국내에서 수요가 없으니 시장이 형성되지 않는 것 아니겠느냐”며 아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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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 펄프와 옥수수 추출물로 만든 친환경 일회용 용기. 모양이나 촉감은 플라스틱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땅에 묻으면 3개월 내 썩어 없어진다고 한다.

 

 

“천천히, 마을밀착형으로 다가가야죠”

 

더 피커는 곡류 및 견과류를 담을 수 있는 유리 병, 과채류를 소분해 담을 수 있는 더스트백 등 다양한 용기류 또한 판매하고 있다. 야자수 잎을 압착해 만든 용기나 생분해성 대나무 칫솔 등 타사 제품들도 함께 진열하고 있다. 친환경 제품의 구매 경험이 생활 패턴의 변화로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포장해 가져가실 때 캐리어도 내 드리지 않고, 비닐봉투에 싸 드리지도 않으니 불편함을 호소하는 분들도 물론 계세요. 하지만 저희가 하나 둘씩 양보하기 시작하면 그 다음 포기는 더 쉬워지지 않을까요?”(송경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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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두 달여 지나면서 더 피커의 철학에 공감하는 고객들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올 때마다 장바구니를 챙겨오는 신혼부부부터 집에서 챙겨 온 용기에 샐러드를 포장해가는 20대 여성 고객까지… 더 피커를 이용하는 고객들이 생겨나는 것 자체가 변화의 시작인 셈. 송경호 대표에게 앞으로의 목표를 물었다.

 

“골목에서 매장을 운영하다 보니 마을에서 발생하는 폐기물들을 한 눈에 볼 수 있어서 좋아요. 천천히 이 동네(성수동)에서 뿌리내리면서 주민들과 저희가 추구하는 가치를 공유하고 싶어요. 그 과정에서 집집마다 점점 쓰레기가 줄어드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면 보람되겠죠. 1차적인 목표는 서울 25구에 더 피커 매장을 하나씩 내는 거예요. 우리의 작은 시작이 가져올 변화를 기대하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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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피커 1호점은 서울시 성동구 서울숲2길 13에 위치해 있다.(매주 일요일 휴무) Facebook 등 SNS를 통해서도 만나볼 수 있다.

 

/사진: 더 피커 제공·조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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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순간 '내 첫 번째 크리에이티브'라는 마음으로 여기에 이름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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