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화

‘소소문구’가 말하는 건강한 디자인이란

 

한 달 남짓 남은 2016년. 벌써부터 문구점과 서점에는 새로운 다이어리를 고르며 다가올 한 해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새로운 1년을 함께 할 아이템인 만큼 다이어리를 사면서 고려해야 할 것들은 의외로 많다. 가격부터 종이의 질, 내지의 양, 사이즈 등 디자인 요소까지 두루 살핀다. 물건을 통해 개성을 드러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디자인은 제품의 여러 요소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예전엔 미술관 아트숍에서나 볼 수 있었던 디자인 상품들을 지금은 주변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바야흐로 디자인의 세상이다.

 

“건강한, 진정성 있는 디자인을 담은 제품을 만들고 싶어요.”

 

소소문구 유지현·방지민(27) 공동대표의 말이다. 2013년 론칭한 ‘소소문구’는 이름 그대로 ‘소소한 디자인’을 추구하는 문구 브랜드다. 무분별하게 예쁜 그림을 찍어내기보다는, 그 물건이 가진 특성과 사용자의 편의를 고려한 제품을 만든다. 서울 마포구 망원동의 소소한 골목길에 위치한 소소문구 쇼룸을 찾았다. 두 대표는 어떻게 ‘건강한’ 디자인을 생각하기 시작했을까.

 

서울 마포구 망원동에 위치한 소소문구 쇼룸
서울 마포구 망원동에 위치한 소소문구 쇼룸

 

 

사용자가 편한 디자인

 

건강한 디자인이란 무엇인가?
유지현(이하 유): 최근에 디자인 상품들이 많이 출시되고 있는데, 사람들이 놓치는 부분이 있다. 예쁜 그림들을 무분별하게 프린트하는 경향이 있다고 본다. 우리는 예쁜 그림을 무조건 찍어내기보다는 사람들이 보기 편하게, 자극적이지 않게 만든다. 노트나 다이어리는 한두 번 보는 것도 아니고 매일 보는 물건 아닌가.

 

제품들이 어떻게 디자인되는지 궁금하다.
: 함께 이야기하며 제품을 기획한다. 평소에도 제품에 대해 ‘사람들에게 어떤 제품이 필요할까’ 항상 고민한다. 수많은 회의를 통해 뚜렷하게 제품의 콘셉트를 정한다.

 

디자인은 두 대표가 함께하나?
방지민(이하 방): 초기에는 함께 하려고 했다. 그런데 쉽지 않더라. 일단 콘셉트가 정해지면 한 디자이너가 해당 제품을 전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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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Y GIRL>, 표지에 그려진 소녀는 유 대표의 졸업작품이다. 그림은 열을 이용한 기법(hot stamping)으로 프린트해 음각적 입체감을 살렸다. 

 

지난 9월 망원동으로 쇼룸을 옮겼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
: 일단 원래 있었던 홍대 앞은 너무 시끄러웠다.
: 그리고 좁았다. 매우 좁은 공간은 아니었지만, 손님들에게 물건을 소개하며 판매하기에는 이곳과 비교해 좁았다.

 

그래도 그곳에선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었을 텐데.
: 찾는 사람들이 많아진 만큼 월세도 올랐다. 매상도 올랐으니 월세를 더 내면 되지 않느냐 하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우린 그러기 싫었다.
: 판매만 하는 공간이었으면 가능했을 수도. 하지만 우리의 작업이 이루어지는 공간이기도 했다. 작업하기엔 보다 조용한 환경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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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LENT CONVERSATION>, 방 대표는 “글씨가 새겨진 부분에 자석을 넣기 위해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쳤다”고 말했다. 표지의 색과 문구는 일기에 대한 방 대표의 생각을 드러냈다.

 

장소를 옮긴 보람은 느끼나.
: 그렇다. 손님들과 이야기도 편하게 나눌 수 있고, 작업에도 집중할 수 있어서 좋다.

 

 

시작은 소소하게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
: 처음엔 생계를 목적으로 하지 않았다. 작업실을 함께 쓰던 친구들끼리 졸업 전에 의미 있는 일을 해보고 싶어서 시작했었다. 이익보다는 개인의 만족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 당시 우린 4학년이었다. 그동안의 창작은 학교 과제물을 제출하는 것이 전부였는데, 나만의 작품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수익에 대한 고민은 없었나?
: 전혀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이윤이 남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은 당연히 들었다. 우리는 유통·도매·소매 이런 단어들에 대해 전혀 몰랐다. 천 원에 물건을 팔면 그 이윤이 고스란히 우리에게 오는 줄 알았다. 시작해보니 완전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많은 우여곡절이 상상이 된다.
: 초반에 겪어서 다행인 일들이다.
: 제품이 입점한 매장이 사라진 적이 있었다. 10개월 동안의 매출이 물거품이 되었다. 속상해서 며칠 동안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지금은 낌새가 이상하다 싶으면 처음부터 관계를 맺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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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품의 제작은 원하는 대로 잘 되었나.
: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사고가 일어났다. 파일의 색상 값을 잘못 설정하는 사소한 실수부터 다른 결의 종이에 인쇄한 적도 있었다. 제품을 디자인하며 생각했던 것과 실물이 달랐을 때가 많았다.

 

별다른 걱정은 하지 않았나.
: 물건이 팔리지 않는 것이 가장 걱정됐다. 일단은 우리 제품을 사람들에게 최대한 많이 노출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6개월에서 1년 동안의 반응을 보고 구체적인 방향을 정하기로 했었다. 그래서 초기엔 최대한 많은 가게에 입점을 시키는 것이 목표였다.

 

지금은 총 몇 개의 매장에 입점해 있나.
: 처음엔 카페·책방 등 13곳에서 판매를 시작했다. 지금은 온·오프라인 합쳐서 6~70곳으로 늘었다. 가게도 계속 사라지고 생기기를 반복하기 때문에 수가 많이 늘어나지는 않는다. 지난 6월부터는 서울 성동구 서울숲 앞에 위치한 공익공간 언더스탠드에비뉴에서도 판매를 시작했다. 언더스탠드에비뉴와는 뜻이 맞아 함께하게 되었다. 우리는 창작자들과 함께하는 ‘소작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고, 그곳도 다양한 작가들에게 사람을 알리는 공간이니까.

 

소작프로젝트에 대해 설명한다면.
: 창작자들과 1년 단위로 협업해 제품을 만든다. 유명한 작가보다는 숨겨져 있었거나 새로운 작가들과 함께하고 있다. 첫 프로젝트는 2013년, 이미나 작가와 함께 선보였다. 좋은 취지라는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사람들의 반응이 좋았다. 올해는 ‘노보듀스’리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는 박진희 작가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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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CARD OPERA>, 2014년 이미나 작가와 협업해 만든 카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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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한기쁨 작가와 협업해 만든 노트 <DAY AND NIGHT SKETCHBOOK>. 앞면은 낮을, 뒷면은 밤을 그렷다.

 

 

재능보다 중요한 것은 의지와 간절함

 

처음엔 네 명이 시작하다가 2인 체제로 바뀌었다. 그 후 별다른 변화는 없었나.
: 처음 네 명이 모였을 때는 사업적인 목표를 공유했던 건 아니었다. 각자의 목표는 따로 있었다.
: 우리 둘 또한 처음에는 달랐다. 나는 취업을 준비하고 있었고, 지민이는 회사에 다니는 중이었다. 그런데 취직이 생각처럼 되지 않았고, 지민이도 다니던 회사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 여기에 인생을 걸기로 했다.

 

걸어 보니까 어떤가.
: 최근 들어 많은 보람을 느낀다. 작업실을 옮긴 뒤로 만족감이 올라갔다.

 

그때와 지금의 자신을 비교한다면.
: 처음에는 겁이 없었다. 아는 게 없었으니까. 지금은 무서운 게 많아졌다. 무언가를 시작하려 하면 의문이 많이 생긴다.
: 예전에는 새로운 일이 생기면 재미를 가장 먼저 따졌다. 지금은 내가 잘할 수 있을지의 여부를 따지게 된다.
: 다음엔 득실을 생각하게 된다. 내 노력과 시간을 들인 만큼 나한테 대가가 돌아오는지. 예전에는 이런 계산을 잘 못 했는데 4년이 지나니 조금 하게 되더라.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 사실 자신의 본업을 잘하면 계산을 하지 않아도 대가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계산보다는 자기 분야에서 더 공부하고 견문을 넓혔으면 좋겠다. 각 분야의 권위자들을 보면 자기 분야에 대한 전문성을 확실하게 가지고 있다.
: 가장 부러운 사람은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들. 그런 사람들과 경쟁하려면 끝없는 노력이 필요하다. 많은 고민과 연습을 해야 그들과 경쟁할 수 있는 결과물이 나온다.

 

소소문구에 대해 평가한다면
: 위태롭다(웃음). 사업가의 입장에서 보면 우리 프로젝트가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을 수 있다. 망원동 구석에서 소소하게 문구를 만들고 있으니까. 하지만 이런 우리의 이미지를 좋아해 주는 사람들도 있다. 덕분에 이렇게 이야기도 하고 있지 않나? 가장 어려운 건 앞으로도 이런 이미지를 계속 유지하는 것. 매년 새로운 것을 보여주고 만들어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선 끊임없이 안목을 길러야 한다. 그게 제일 어렵다. ‘재능’이란 단어를 자꾸 사용하게 되는데 재능의 유무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계속 노력하는 의지와 간절함의 정도다.

 

둘이서 함께 작업하면서 별다른 갈등은 없었나
: 꼭 얘기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바로 말한다. 그 외에 서로가 달라서 생기는 차이들은 인정한다.
: 지민이가 많이 받아주는 편이다. 나는 의문이 생기면 바로 물어보는데 항상 잘 들어준다. 갈등의 원인은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것인데 우리는 서로 인정하는 편이다. 그래서 다툴 일이 없다.

 

앞으로도 함께 한 배를 탈 수 있을 것 같나
: (웃음)
: 갈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나이가 들면 잘 모르겠다. 체력적으로 가능할지 의문이 든다. 그래도 비슷한 종류의 다른 일을 하고 있을 것 같다.

 

상대방에게 한마디를 전한다면
: 지민이는 사소한 일을 할 때도 너무 진지하게 생각한다. 길게 바라봐야 하는 일과 짧게 바라봐야 하는 일을 구분했으면 좋겠다. 그렇지 않으면 스트레스를 감당할 수가 없다.
: 지현이는 너무 긴장하고 있는 것 같다. 때로는 긴장을 풀고 편하게 있어도 되는데 항상 긴장하고 있어서 아슬아슬해 보인다. 그런 것들을 잠시 내려놓았으면 좋겠다.

 

말은 다르지만 비슷한 얘기인 것 같다.
: (웃음) 이건 마지막으로, 이번 달 25일부터 27일까지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일민미술관에서 <언리미티드 에디션-서울아트북페어>가 열린다. 사람들에게 알리기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서 참여했는데 많은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

 

소소문구 유지현·방지민 공동대표
소소문구 유지현·방지민 공동대표

 

 

/사진: 소소문구 제공·최현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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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소개

변화를 만나다

치열한 세상이다. 부대끼며 살다 보면 한 번씩 이런 물음을 던지게 된다. ‘이게 진정 내가 원하는 삶일까…’ 지금부터 들려드릴 이야기는 이 물음에 응답한 사람들의 스토리다. 누군가는 창업을 했고, 어떤 이는 공방을 열었다. 무작정 거리로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하고 갈 길은 멀다. 제대로 구조를 갖추지 못해 고군분투하기 일쑤다. 그래도 고무적인 건, 이들 모두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꿈꾼다는 점이다. ‘언더 스탠드 에비뉴(Under Stand Avenue)’는 이들의 꿈을 응원하는 공간이다. 롯데면세점이 문화예술사회공헌네트워크‧성동구청과 함께 꾸려가는 사회공헌 창조공간으로, 우리사회에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려는 혁신기업가‧예술가‧비영리기획자 등이 함께한다. 더퍼스트는 이들의 도전이 활짝 꽃피우는 그날을 기대하며 ‘변화를 만나다’ 시리즈를 연재한다

필자 소개

해 지기 한 시간 전 풍경을 좋아합니다. 작지만 소중한 것들을 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