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나도 장애인으로 태어났으면 좋았을 걸

 

“나도 장애인으로 태어났으면 좋았을 텐데…”

 

딸의 입에서 느닷없이 이런 말이 나올 때가 있다. 어떤 심정에서 한 말인지 다 알고 있으면서도 내 말문은 콱 막힌다. 그리고 오히려 야단을 친다. “왜 그런 소리를 해! 너까지 그러면 엄마는 못 살아! 안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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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장애 형재자매들만 느끼는 아픔이 있다. 고충이 있다. 부모는 낳은 죄라도 있는데 이 아이들의 죄는 무엇일까? 그저 태어났을 뿐인데 형제자매가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부모의 눈은 언제나 다른 곳을 향하고 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을 할 시간이 왔다. 엄마 입장에서 처음 맞는 초등학교 생활을 뒷바라지 하려면 같은 학교에 보내는 게 편했지만 그러면 딸의 부담이 커질 것 같았다.

 

“그래. 너는 너만의 인생을 살거라~”라는 마음으로 딸은 A초등학교에, 아들은 B초등학교에 입학을 시켰다.

 

학기 초, 내 정신은 툭하면 안드로메다로 날아가곤 했다. 서로 다른 등하교 시간, 서로 다른 준비물. 딸의 알림장을 준비하지 않아 담임이 주택공사에서 나눠준 알림장을 보낸 적도 있고, 아들을 교실에 들여보내고 나서야 책가방을 안 가져 온 걸 깨닫기도 했다.

 

그래도 시간은 흘러 전쟁 같은 3월이 지났고 4월 학부모 상담 주간이 왔다. 딸의 담임을 만나는 날.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아 내가 꺼낸 첫 마디는 “수인이는요. 태어나면서 지금까지 항상 2인자로 살아왔어요”였다. 그리고 이내 울컥, 청승맞게 눈물이 그렁그렁. 아~ 창피해라. 담임 앞에서 이게 뭐하는 짓일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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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인자…. 그 말이 비장애 형제자매들의 현실을 가장 잘 나타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비장애인들이 보기에, 부모의 관심은 언제나 장애를 가진 형제자매의 몫이다. 반면 양보는 언제나 자신들의 몫이다. 이 얼마나 부당한 관계란 말인가. 부모의 관심을 빼앗기는 것도 모자라 매사에 모든 것을 이해하고 양보하며 살아야 하는 존재라니.

 

딸의 입에서 “나도 차라리 장애인으로 태어났으면 좋았을 걸”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생각해보면 쌍둥이인 둘의 인생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그리 되도록 정해져 있었던 것 같다. 28주 5일에 조산을 해서 두 달간 인큐베이터에 있었던 쌍둥이 아이들. 이상하게도 그 때부터 아들에게 더 눈이 갔다. 혹시 아들 지상주의냐고? 오~ 노노. 우리 부부는 언제나 딸을 원했다. “공주 같은 딸이 예쁘지, 시꺼먼 사내새끼를 어디다 써먹어”라는 게 우리 부부의 공통 의견이었다.

 

퇴원을 하고 육아가 시작되면서도 마찬가지. 왜 자꾸 시꺼먼 사내새끼인 아들한테 더 눈이 가는 걸까? 그에 대해 누군가는 말했다. 그건 동환이가 자기도 살려고 그런 거라고. 맞는 말인 것 같다. 자신의 인생이 장애인으로 살 팔자인 걸 알았는지 ‘버림받지 않기 위해’ 샤방샤방 부모의 눈길을 사로잡는 아우라를 무기로 장착하고 세상에 나온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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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 될 때쯤부턴 자연스럽게 아들한테 더 관심이 기울어질 수밖에 없었다. 딸은 말을 하기 시작하고 뒤뚱뒤뚱 걷는데 아들은 혼자서 뒤집기도 못했기 때문에 손이 많이 갈 수 밖에 없었다. 이후로는 알다시피 ‘필요’에 의해 아들은 엄마의 손길을 독차지했다.

 

그러는 동안 딸은 혼자 커가다시피 했다. 동생이 엄마와 치료실에 가 있는 동안 자기는 할머니 집에 맡겨졌다. 동생은 아직까지도 엄마가 밥을 먹여주는데 자기는 숟가락질을 시작하면서부터 혼자 밥을 먹었다. 양치질도, 옷 입기도 마찬가지. 언제나 엄마는 동생만 다 해주고 자기는 혼자서 하라고.

 

그 뿐만 아니다. 엄마아빠는 동생 편만 든다. 자기가 먼저 갖고 놀던 장난감이었는데 동생이 와서 뺏어가면 엄마는 동생한테 잠깐 주라고 한다. “동환이한테는 장난감을 갖고 노는 것도 공부라서 그래”라는 변명도 지겹다. 맨날 양보하라고만 하고, 도와주라고만 하고.

 

그러다 보니 참지 못할 어느 날은 폭발을 한다. “왜 나도 똑같이 어린아이인데 맨날 동환이만 어리다고 그래!”

 

울면서 외치는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가슴 속이 송곳으로 콕콕콕. 미안함과 죄책감에 쓰라린 염산의 쓰나미가 가슴 속에 쏴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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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장애 아이를 키운 선배맘들이 가끔 그런 조언을 할 때가 있다. 장애인 자식은 기를 쓰고 키워봐야 어차피 거기서 거기라고. 장애인 자식에 대해선 그냥 마음을 내려놓고 오히려 비장애 형재자매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가지라고. 장애인 자식을 조금 더 사람 되게 만들려고 애쓰다가 정작 정상인인 비장애 자식을 망칠 수 있다고.

 

실제로 주변에 한 엄마는 자폐 아들을 위해 모든 것을 쏟아 부었다가 누나인 딸이 엇나가는 바람에 크게 맘고생을 하기도 했다. 부모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느낀 애정결핍이 사춘기가 지나며 분노와 공격성으로 변해 또래의 아이들에게 울분을 표출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 모습을 지켜봐왔던 난 장난감을 뺏어가는 동생에게 “평생 동안 너를 용서하지 않을 거야”라고 외치는 딸의 모습을 보며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아들처럼 생존을 위해서가 아니라, 마음의 평화를 위해 딸에게도 놀이치료나 심리치료를 받게 해야 할까? 사설 치료실에는 어린 나이에도 마음의 병이 있는 아이들이 종종 치료를 받기위해 엄마 손을 붙잡고 들어오곤 했다.

 

우리 딸도 그래야 할까. 이런저런 고민을 하고 있는데 마침 복지관에 ‘비장애 형제자매 심리운동 참여자 모집’ 공고가 붙었다. 복지관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장애인 가족을 위한 심리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잘 활용하면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사전 상담을 하는데 사회복지사의 말이 의외다. 우리 딸의 상태를 매우 건강하게 보고 있는 것이다. 자기도 장애인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건 “엄마, 나한테도 관심을 가져줘”라는 마음의 표현이고, 동생을 향해 “평생 용서하지 않겠다”고 하는 건 아무리 미워도 내가 평생을 함께 해야 할 가족이라는 인식이 잘 되어 있는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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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비장애 형제자매 중에서 이렇게 자신의 마음을 잘 표현하는 아이가 건강한 거라고 한다. 많은 아이들이 힘든 부모와 불쌍한 장애인 형제자매를 보며 스스로 참는 방법을 택하곤 한다고. 참고 참고 또 참고. 그러다보면 정작 자신은 마음을 표현하지도 못하고 자존감이 낮아지면서 무기력한 어른으로 성장해 간다고.

 

위로가 된다. 그리고 듣다보니 지금 잘 커가고 있는 딸에게 고맙다는 생각도 든다.

 

모든 것에는 양가성이 있다! 이 말이 진리다! 우리 딸은 일찍부터 혼자 밥 먹고, 혼자 옷 입고, 혼자 놀아야 했던 대신 주체성이 있는 어린이로 자랐다. 받아쓰기도, 일기도, 독서록도 혼자서 쓰고 공부도 혼자서 할 줄 아는 어린이가 되었다.

 

내 손발이 아들에게 묶여 함께 놀아주지 못한 대신 귀만 열어놓고 딸의 쫑알거림을 들어주었더니 딸은 자기 표현력이 좋은 아이로 성장하게 되었다. 그리고 자신의 말을 경청해주는 부모를 경험했던 아이는 밖에 나가서도 손을 번쩍번쩍 들며 적극적으로 의사를 밝히는 똑순이가 되었다.

 

마찬가지로 엄마가 바빠 평생 동안 책을 읽어준 게 20번도 안 되는 아이는 한글을 깨우치기 시작한 유치원 이후부터 스스로 책을 집어 들기 시작했다. 아침에 눈 떠서 밤에 잠들기 전까지 언제나 손에서 떠나지 않는 책.

 

내가 가장 많이 하는 잔소리가 “책 좀 그만 봐~”라고 하면 동네 엄마들은 부러움에 부르르 떤다. 그리고 집에 돌아가 자식들을 잡는다. “아이고 이 화상아! 수인이는 책을 너무 많이 봐서 엄마한테 혼난다더라”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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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 지금까지 항상 2인자로 살아야만 했던 우리 딸. 아마 앞으로도 어쩔 수 없이 많은 순간에 그래야 할 우리 딸.

 

하지만 모든 것에는 양가성이 있다. 장애인 형제자매 때문에 남들과는 다른 경험을 하며 살아가는 대신 이 아이들은 보통의 가정에서 자란 다른 아이들보다 더 이타적이고 주변을 돌볼 줄 아는 어른으로 자라게 될 것이다.

 

대인관계에서 ‘틀림’이 아닌 ‘다름’을 인정할 줄 알고, 보다 넓은 마음으로 주변을 포용할 줄 아는 그런 성인이 될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 커야 했던 아픔을 이겨낸 만큼 주체성 있게 자신의 인생을 설계해 나갈 줄 아는 어른이 될 것이다.

 

거기에 가정 내에서는 언제나 2인자라 해도 자신의 인생에선 1인자이자 주인공이라는 인식만 갖춰지면 더 바랄 게 없겠다. 물론 그렇게 되기 위해선 부모의 역할이 중요하겠지만.

 

부모는 낳은 죄가 있다. 하지만 너희들은 태어난 죄밖에 없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죄가 없다. 그러니 더더더 행복하고 더더더 당당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이 세상의 모든 비장애 형제자매들이. 그것이 모든 장애아 부모들의 똑같은 소원일 것이다.

 

/사진:류승연

 

 

동네 바보 형 장애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장애인 월드’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를 에피소드별로 전합니다. 모르면 오해지만, 알면 이해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그런 비장애인들이 많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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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전직 정치부 기자. 쌍둥이 조산 이후 180도 인생 역전. 엄마 생활도 처음이지만 장애인 아이의 엄마는 더더욱 처음. 갑작스레 속하게 된 장애인 월드. ‘장애’에 대한 세상의 편견에 깜놀! 워워. 물지 않아요. 놀라지 마세요. 그들에 대해 잘 몰라서 그래요. 몰라서 생긴 오해는 알면 이해할 수 있다고 믿는, 믿고 싶어 하는, 한창 순수할 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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