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화

연탄 10톤, 그 이상의 사랑을 나르다

 

“다들 잠시 쉬면서 커피 한 잔씩 마셔요”

 

이주옥(가명‧65) 할머니가 사람들에게 따뜻한 커피를 건넵니다. 시커먼 색깔과는 다르게 달콤한 맛이 입 안을 가득 채웁니다.

 

“젊은 친구들이 연탄 날라준다고 땀을 뻘뻘 흘리잖아. 그래서 커피에 설탕을 조금 넣었어. 어때,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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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달콤한 커피 때문일까요? 얼굴에 연탄가루가 묻어 새까매진 사람들 사이에서 웃음이 피어나기 시작합니다. 영하 4도의 날씨 속에서 서로의 마음을 주고받았던 따뜻한 나눔의 온도, 희망브리지 봉사단 사회인팀의 연탄봉사 현장에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높은 만큼 추운 상계동 언덕 마을

 

지난 12월 9일, 서울시 노원구 상계 3·4동 35통. 수락산 자락에 위치해 아래가 아득히 내려다보이는 조용한 동네에 아침부터 젊은이들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합니다. 이곳의 노인 가구 15세대에 3000장의 연탄을 배달하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찾아온 봉사자들입니다.

 

희망브리지 봉사단 사회인팀은 20~30대 젊은이들로 구성된 자발적인 모임입니다. 지난 2012년부터 희망브리지와 함께 전국을 돌며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찾아가고 있지요. 올 겨울 들어 첫 만남인지라 다들 반갑게 인사를 하며 서로의 안부를 묻는 모습입니다.

 

오전 8시 30분. 집결지였던 4호선 당고개역에 15명의 봉사자들이 모두 모이자, 발걸음을 재촉해 상계동 언덕길로 향합니다. 좁은 골목길을 따라 걸어 올라가니, 낡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인 산동네의 풍경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상계 3·4동 35통 지역은 주변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상계 3·4동 35통 지역은 주변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날 찾아갈 집들에 사는 분들은 모두 어르신들로, 아직까지 연탄보일러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연탄을 구하려면 산 아래까지 내려가야만 하는데, 겨우내 쓸 무거운 연탄을 집으로 가져오는 것은 너무나 힘든 일이지요. 자동차가 들어오지 못할 만큼 길은 좁습니다. 배달 서비스를 이용하려 해도 높은 언덕에 위치한 집들에는 훨씬 높은 가격이 책정됩니다. 희망브리지 봉사단 사회인팀이 수년 째 이곳에서 연탄봉사를 실시하는 이유입니다.

 

빽빽이 쌓인 연탄 앞으로 연탄지게를 짊어 멘 봉사자들이 나란히 섭니다. 하나둘씩 연탄을 지게에 싣는 봉사자들. 지게에 꽉 차게 여섯 장씩 실어달라는 이들도 있습니다. 연탄 한 장의 무게는 3.6kg. 여섯 개를 실으면 20kg가 넘습니다.

 

연탄을 싣고 나르는 봉사자들의 모습
연탄을 싣고 나르는 봉사자들의 모습

 

지게에 연탄을 하나씩 얹을 때마다 저절로 숙여지는 허리. 하지만 연탄의 무게보다 부담스런 것은 급격한 경사를 뽐내는 언덕길입니다. 무거운 연탄을 싣고 이곳을 오르내리는 것은 건장한 남성들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었죠. 금세 땀범벅이 된 봉사자들은 두꺼운 외투도 벗어던진 채 연탄을 날랐습니다.

 

 

연탄으로 따뜻한 온기를 전합니다

 

“이젠 연탄 파는 가게도 별로 없어서 저 멀리까지 내려가야 돼…. 연탄 한 번 장만하려면 하루가 꼬박 지나가는데 이렇게 배달까지 해주니 얼마나 고마워.”

 

최재형(가명‧69) 할아버지가 연신 연탄을 함께 내리며 고마움을 표시합니다. 봉사자들이 “괜찮으니 쉬고 계시라”했지만 할아버지의 고집을 꺾을 순 없었습니다.

 

연탄을 함께 내리는 최재형 할아버지
연탄을 함께 내리는 최재형 할아버지

 

최 할아버지가 하루에 사용하는 연탄은 약 두 장 반. 이날 받은 200장의 연탄이면 80일은 보낼 수 있는 양입니다. 할아버지는 “매년 날씨가 추워지면 연탄이 걱정인데, 도와주는 분들이 많아서 한시름 덜었다”고 말합니다.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이주옥 할머니 댁에 연탄을 나를 순서가 되자, 봉사자들의 걸음이 무거워지기 시작합니다. 서로 나르고 싣는 역할까지 바꿔가며 힘을 내봅니다. 

 

최유림씨가 다른 봉사자들의 연탄지게에 연탄을 싣고 있습니다.
최유림씨가 에디터의 연탄지게에 연탄을 싣고 있습니다.

 

“어려운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지게에 연탄을 실어주던 최유림(36)씨가 말했습니다. 5년 전부터 희망브리지 봉사단 사회인팀에서 활동해온 그녀의 본업은 사진작가입니다. 평소 봉사 현장에선 자신의 재능을 살릴 수 있는 일을 주로 해왔었지만, 올해는 연탄을 나르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습니다. 최씨는 “날씨도 춥고 연탄도 가볍진 않지만, 그만큼 어르신들이 편해질 거라 생각하니 절로 힘이 난다”고 말했습니다.

 

이 할머니 댁 주변에선 곳곳에 놓인 보온병과 종이컵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봉사자들이 중간 중간 쉴 수 있도록 직접 끓인 따뜻한 커피를 넣어 둔 것인데요. 이 할머니는 추운 날씨에 고생하는 봉사자들을 보며 고맙고 미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고 합니다.

 

“젊은 사람들이 우리 때문에 고생하는 모습을 보니까 마음이 먹먹해요. 행여나 어디 다치거나 몸살이라도 나면 어떡해요. 내가 빨리 여기서 내려가든가 해야지….”

 

언덕길을 내려오는 봉사자들. 사진 왼쪽이 희망브리지 봉사단 사회인팀의 김윤식 팀장입니다.
언덕길을 내려오는 봉사자들. 사진 왼쪽이 희망브리지 봉사단 사회인팀의 김윤식 팀장입니다.

 

희망브리지 봉사단 사회인팀은 2013년 겨울부터 자체적으로 연탄봉사를 기획해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번 상계동 연탄봉사는 팀장을 맡은 김윤식(32)씨가 이 마을 통장(35통과 함께 연탄이 필요한 가구와 수량을 파악했지요. 이날 전달된 3000장의 연탄은 모두 봉사자들의 자발적인 모금을 통해 구매했습니다. 상계3‧4동 15세대의 어르신들을 위해 모인 금액은 약 191만원. 김 팀장은 “바빠서 시간을 내지 못해도 모금으로 도우려는 단원들도 많았다”고 말했습니다.

 

오후가 되자 한 집의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합니다. ‘연탄’이라고 하면 오래되고 낡은 느낌이 들지만, 아직도 이곳 주민들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온기입니다. 이날 봉사자들이 전달한 연탄의 무게는 10톤이 넘는데요. 그보다 더 묵직했던 봉사자들의 마음이 상계3‧4동 35통 주민분들께 잘 전달됐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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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민동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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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해 지기 한 시간 전 풍경을 좋아합니다. 작지만 소중한 것들을 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