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화

마음 Check 그림책 체험기_ 당신은, 당신만의 장소가 있나요?

 

요즘 어떻게 살아요? 궁금했어요. 제가 사는 매일은 거의 똑같거든요. 물론 더 바쁠 때도 있고 좀 한가할 때도 있어요. 아주 지겨운 날도 있고 살짝 설레는 날도 있죠. 하지만 꼭 해야만 하는 것들은 변하지 않아요. 저는 온 열정을 쏟아 꿈과 목표를 향해 달리는 사람도 아니고, 자유로운 영혼으로 삶을 여행처럼 사는 사람도 아니거든요. 티도 안 나고 끝도 없는 일을 ‘먹고 살려고’ 반복해요. 이런, 당신의 하루도 그런가요?

 

우리는 무엇인가 필요해요. 그런데 그 ‘무엇’이 무엇인지, 알고 있나요? 그림책 하나 보여드릴게요. 당신과 나처럼 사는 작은 당나귀가 나오는데, 여기에 그 답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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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당나귀도 회색이 가득한 도시에 사나 봐요. 서로 밀쳐 대는 사람들 속에서 날마다 똑같은 하루를 보내며 언제나 떠나는 꿈을 꿔요. 하지만 밤이 되면 “오늘도 이렇게 끝나는구나…….” 하고 작은 한숨을 쉴 뿐이죠. 혹시 어젯밤 당신의 모습은 아닌가요. 그렇다면 작은 당나귀와 함께 떠돌이 시인이 부르는 노래에 귀 기울여 보세요. “도시 끝에 울창한 숲이 있다네. 소리 없는 이들만 들어갈 수 있는 신비한 숲. 그곳에 평화로운 성이 있다네!” <작은 당나귀>, 김예인 쓰고 그림, 느림보, 2010.

 

당신은, 당신만의 장소가 있나요? 반복되는 일상 안에서 한없이 초라해질 때, 위로받을 수 있는 곳을 가지고 있나요?

 

서울 성수동 서울숲. 그 옆에 자리 잡은 언더스탠드에비뉴에 도착했을 때, 떠돌이 시인의 노래가 떠올랐죠. “소리 없는 이들만 들어갈 수 있는 신비한 숲”을 찾아낸 기분이었어요. 꼭대기에서 우리를 마구 내려다보는 빌딩들과 다르게 낮은 자세로 조용히 앉아 있는 곳. 이곳에서 사람들은 희망과 소통, 지속을 말해요. 신진 예술가들과 사회적 기업, 청소년과 여성들처럼 소리 없는 이들을 알아보고,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공익문화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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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스탠드에비뉴는 추구하는 가치에 따라 일곱 개의 공간으로 구분해요. 제 마음을 둔 곳은 아트스탠드입니다. 아트스탠드는 전시·공연·강연·파티 등 다양한 형태로 누구나 예술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이에요. 예술이라 하니 괜히 쑥스럽고 어렵나요? 우리는 여기에서 책과 그림을 보거나 편안한 소파에 앉아 음악을 들을 수 있어요.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 대화를 나눌 수도 있겠네요. 평범한 일상의 면면들이 모여 아트스탠드의 예술이 됩니다. 그래서일까요, 늘 열려 있는 문 앞에는 매표소가 없습니다. 돈을 내고 표를 사는 대신 예술을 함께 나눌 여유로운 마음을 받아요.

 

크리스마스, 우리 가족은 아트스탠드로 향합니다. 12월 21일부터 31일까지 ‘우리를 위한 마음 Check 그림책’ 전시를 하거든요. 그림책의 품이 얼마나 포근한지, 사랑하는 남편과 아이에게 알려주고 싶었어요. 제가 준비한 크리스마스 선물입니다.

 

 

 

한 발 들어서니 좋은 냄새가 가장 먼저 반겨주네요. 후각이 이렇게 예민하고 중요했나 새삼스러워요. 가득 찬 향기 하나로 아트스탠드는 이미 충분한 위로의 공간이 됩니다. 한가운데에 커다란 종이 나무들이 보여요. 종이 나무 아래에서 어른들과 아이들이 그림책을 읽고 있네요. 나무 그늘 아래 모여 잘 익은 열매를 나눠 먹는 풍경처럼 느긋하고 즐겁습니다. 제 아이도 빠르게 그 풍경 속으로 달려 들어가요. 잽싸게 그림책 하나 골라서 읽어 달라고 조르기 시작합니다.

 

‘우리를 위한 마음 Check 그림책’ 에는 노란상상, 봄봄, 사계절, 여유당까지 모두 네 개의 출판사가 참여했어요. 좋은 그림책을 꾸준히 만드는 믿음직스러운 출판사죠. 각 출판사에서 나온 그림책 중에서, 아이부터 어른까지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아홉 작품이 전시 중입니다.

 

그림책 전시는, 제목 하나가 작품 하나를 가리키는 보통의 명화 전시와는 좀 달라요. 한 권의 그림책에서 몇 개의 장면들이 전시되죠. 제목 하나가 작품 여러 개를 가리키는 셈이에요. 그래서 더 쉬워요. 우리는 제목에서 힌트를 얻어, 그림들을 머릿속에서 잇고 붙이며 마음대로 이야기를 만들었어요. 옹기종기 모여 있는 그림들 앞에 서면 과연 어떤 이야기가 될지, 선물 상자를 열어볼 때처럼 설레고 궁금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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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함께 아홉 개의 선물 상자를 열어보기로 했어요. 그중 마음에 쏙 들었던 선물들을 소개할게요. ‘나는 초록’ (류주영 쓰고 그림, 사계절 펴냄)을 봤을 때, 우리의 환호가 동시에 터졌어요. 제 아이의 태명이 초록이거든요. “우와! 얘도 나처럼 엄마가 초록이라고 불렀나봐. 그럼 얘도 나무처럼 사는 거야?”

 

그림 앞에 서서 색깔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면 어떨까요? 초록색이 좋아서 초록의 삶을 꿈꾸는 그림책 주인공처럼, 좋아하는 색처럼 사는 상상을 하는 거죠. 노란색 봄꽃처럼 따뜻한 삶이나 하얀색 눈처럼 소복한 삶도 괜찮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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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음 선물은 초록이와 나누지 않고 저 혼자 갖고 싶어요. 아이는 잠시 아빠에게 맡겨두고 다섯 번째 그림 앞에서 한참을 서성거립니다. ‘한밤의 선물’ (홍순미 쓰고 그림, 봄봄 펴냄)은 각각의 시간들이 만드는 고유한 분위기와 색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여줍니다. 계절마다 달라지는 풍경은 많이 봤지만 새벽, 아침, 한낮, 저녁, 한밤마다 달라지는 풍경에 대해서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어요. 분명 다른 것인데 왜 비슷하다고 생각했을까요. 삶의 여정 그렇겠죠. 과거를 후회하거나 미래가 불안하기만 할 때 이 그림책으로 위로받을 수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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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선물은 ‘나무집’(마리예 톨만/로날트 톨만 그림, 여유당 펴냄)입니다. 이 그림책은 글이 없어요. 오직 그림으로 말합니다. 어쩌면 그림책 전시에 가장 잘 어울리는 작품이겠네요.

 

작가는 자연과 생명이 주는 감동을 말하고 싶었다고 하는데, 저는 결혼에 대해 생각했어요.

 

두 마리의 곰이 나무를 향해 물을 건너요. 하얀색 곰은 헤엄을 쳐서 오고 갈색 곰은 배를 타고 옵니다. 다른 곳에서 다른 방법으로 살다가 같은 곳에서 만났네요. 나무에는 수많은 동물 친구들이 머물다가 떠나고 계절과 배경은 끊임없이 변해요. 하지만 ‘둘’이라는 사실은 여전합니다. 그림에서 찾은 결혼의 의미, 꽤 멋지지 않나요. 앞으로 더 잘하라는 의미로 제 남편에게 한 권 선물 해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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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제 옆에서 아이는 동물 찾기 놀이를 하고 있네요. 분홍색 플라밍고가 제일 예쁘다고 합니다. 이것 보세요. 그림책은 참 자유롭습니다. 무엇을 보든 보는 사람 마음이죠.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는 이유입니다. 궁금해지네요. 내년 크리스마스에는 이 그림책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할까요.

 

이제 그림책 작가를 만날 시간입니다. ‘파란분수’ (최경식 쓰고 그림, 사계절 펴냄) 작가님과 어린이들이 모여 그림을 그리는 ‘따로 또 같이, 고래 그림 그리기’ 프로그램을 신청해두었거든요. 함께 ‘파란분수’를 읽은 다음 어떻게 그림책을 만들게 되었는지, 그림책 안에 숨어있는 그림들은 무엇인지 서로 묻고 답을 합니다. 머뭇거리지 않는 아이들의 에너지가 부러웠어요. 뒤로 잠시 물러나 아이들의 표정과 소리를 살피고 있으니 마냥 귀여워서 웃음이 납니다. 작가님도 즐거워 보여요. 편안한 분위기가 한몫했겠죠. 공간의 힘이 발휘되는 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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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다 같이 그림을 그려볼까요. 커다란 고래 밑그림이 조각조각 나뉘었네요. 각자 한 장씩 맡아서 마음 가는 대로 색칠을 해요. 이 조각들을 다시 합치면 아이들이 만든 고래가 나타나는 거죠. 이게 과연 될까, 조금 걱정스럽기도 했는데 생각보다 고래에게 알록달록한 색이 잘 어울려 놀랐어요. 저 안에는 아이들 마음이 골고루 담겨 있겠죠. 이들이 살아갈 세상도 공평하게 마음을 담아줄 곳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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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간이 훌쩍 넘어가는데도, 아이들의 두 눈은 끝까지 반짝거립니다. 이제 그만 가야 할 시간인데 발이 잘 안 떨어지네요. 선물 같은 시간이었어요. 작지만 단단한 공간, 아트스탠드에서 우리의 조금 특별한 하루가 이렇게 지나갑니다.

 

오늘, 당신의 하루는 어땠나요? 날마다 똑같은 하루에 지쳐 떠나기를 꿈꾼다면, 도시 끝에 소리 없는 이들만 들어갈 수 있다는 숲으로 가요. 그곳에는 따뜻하고 푹신한 의자가 있죠. 잠시 머물러 예쁜 그림책 마음껏 읽다 가세요.

 

/사진: 지혜·최현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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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문학과 문화콘텐츠를 공부했지만 아이를 키우는 일 또한 문학이라고 믿고 매진하고 있는 전업 엄마. 여전히 서투른 엄마이기에 엄마들을 향한 충고나 조언은 할 수 없지만, 그저 개인적인 경험에서 보편적인 위로를 할 수 있길 기대하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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