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

에필로그: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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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UNV(유엔 봉사단)로 전 세계 각국에 파견된 청년들이 더퍼스트미디어 편집부로 연락을 걸어 왔습니다. 당시 이미 두 달 전에 네팔, 우즈베키스탄, 몽골, 피지, 가나, 스리랑카 총 6개국에서 활동을 개시한 이들. 그곳에서 보고, 듣고, 느끼며 발견한 의미 있는 무언가들을 더욱 의미 있게 남겨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5월 중순, 조은총 필자의 프롤로그(카톡방을 ‘봉인해제’합니다)를 시작으로 여섯 명의 필자가 매주 돌아가면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때로는 업무가 몰려 바쁜 와중에도, 지난 8월 귀국해서부터는 과제며 시험공부를 하면서도 각자의 이야기를 쌓고 또 쌓았습니다. 그렇게 반년에 걸쳐 탄생한 하나의 이야기. 에필로그에서 그 속에 미처 다 담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들려드리는 것으로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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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V 카톡방, 6명의 주인공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 같아요. 주어진 업무도 있었고, 여러 가지 사전 교육을 받았겠지만 그래도 막상 현지에서 준비되지 않은 무언가 때문에 당황하거나 곤혹스러웠던 경우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각자가 다녀온 네팔, 우즈벡, 몽골, 피지, 가나, 스리랑카에 방문할 사람들에게 가기 전에 ‘이것만은 꼭 준비해라’, 또는 ‘의외로 이것이 큰 도움이 됐다’고 조언해주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요?

 

홍승영(이하 홍): 다행히도 현지에서 준비되지 않은 것 때문에 당황한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다만 네팔 카트만두에서 지내면서 유용했던 것들을 이야기하자면 단연 마스크와 주전자형 정수기에요. 네팔에 가면 맑은 공기를 실컷 마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시겠지만 수도 카트만두는 대기오염이 정말 심해요. 물 또한 마찬가지였는데요. 수질이 좋지 않아서 물 마실 때는 항상 조심해야 됩니다. 특히 외국인들은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몸이 더 쉽게 반응할 수 있어요. 오래 체류하는 경우 정수된 물을 배달 받아 마시는 경우가 많은데요. 저는 주전자형 정수기를 가져가서 한 번 더 정수해서 마셨습니다.

 

김하늘(이하 김): 짐이 너무 많아서 꼭 필수품만 챙겨야 한다면 스킨이나 로션은 현지에서 구하더라도 선크림은 한국에서 가져가시길 추천합니다. 우즈베키스탄은 해가 굉장히 강렬해서 한여름 아스팔트 열기에 종아리가 따가워 뛰어다녀야 할 정도인데요. 물론 현지에서도 구할 수 있지만 민감성 피부인 경우엔 꼭 한국에서 챙겨가세요. 그리고 물질적인 것도 중요하지만 가족, 친구들과 찍었던 사진과 동영상을 충분히 챙겨간 건 정말 잘한 일 같아요. 외로움도 달래고 에너지 충전도 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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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의 초원, 겨울엔 설원 (사진: 조은총)

 

 

조은총(이하 조): 겨울 몽골은 진짜 추웠어요. 첫 출근 때 약속이 엇갈려서 사무실 앞에서 20분 정도 기다렸는데 그날이 영하 20도였어요. 옷을 여러 겹 입고 두꺼운 건 다 걸치고 갔는데도 태어나서 그런 추위는 처음이었어요. 그러니 겨울에 몽골을 방문한다면 방한용품을 잘 준비하셔야 할 거에요. 하지만 또 다 사람 사는 곳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너무 겁먹으실 필요는 없어요! 오히려 준비하지 말라고 하고 싶은 것은 한국음식이에요. 집 앞에 있는 구멍가게에서도 된장, 고추장을 팔고 수도 울란바토르에선 한국과자, 식재료, 젓갈, 김치 다 구할 수 있어요. 또, 환전장소도 많고 원화 환율도 좋아서 몽골로 바로 한국 돈을 가지고 와서 환전을 할 수도 있답니다.

 

이자영(이하 이): 피지 역시 만약 짐이 많다 싶으시면 한국 음식은 가져오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그리고 피지 관련 온라인 카페에 필요한 내용이 잘 정리되어 있기 때문에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김미진(이하 진): 제가 드리고픈 조언은 “일단 아무 고민 말고 가시라”는 거예요. 심적으로, 그리고 물질적으로 준비해간다고 해도 막상 체류할 때 필요한 모든 것을 미리 해결하고 갈 수는 없는 것이거든요. 가나도 그랬고, 어떤 나라라도 결국엔 사람이 사는 곳이기 때문에 현지에서 겪는 문제들은 어떻게 해서든 잘 해결될 것입니다. 그리고 막상 현지에 갔더니 이런 저런 점이 두렵고, 불편하고, 무섭고, 걱정되는 본인의 마음을 외면하지 말고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저는 이런 부분을 친구나 가족, 동료나 상사, 이웃 등과 공유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됐습니다. 본인의 마음이 ‘걱정과 불안’에서 ‘안정과 즐거움’으로 바뀌는 과정을 즐기시길 바라요!

 

황연재(이하 황): 이번에 다녀온 스리랑카까지 더하면 저는 지금까지 5개국(이전에는 캐나다, 미국, 일본, 프랑스에서 체류한 경험이 있습니다)에서 8년 가까이 생활을 했는데요. 그 과정에서 느낀 것은 ‘어느 곳이나 사람 사는 곳은 비숫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라마다 한국에선 구하기 쉬운데 현지에선 그렇지 못한 물품들이 있는데, 대체품은 있기 마련이에요. 현지에서의 필수품도 물론 그곳에 다 있는 것 같고요. 저는 오히려 적은 물건으로 생활하면서 과소비를 하지 않게 돼 좋았는데요. 제일 중요한 준비물은 열린 마음이 아닐까 싶어요.

 

 

다른 나라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벗겨내고 한 발 더 이해해보자는 것이 이번 시리즈의 취지 중 하나이기도 했는데요. ‘우리보다 못 사는 나라’라는 인식 때문에 미처 보지 못하는 그 나라의 소중한 가치, 자랑거리, 한국보다도 더 나았던 점 등을 소개해준다면요?

 

홍: 네팔 사람들의 가족중심적인 부분이 부러웠습니다. 가족이 다 함께 밥 먹는 건 당연한 일이고, 대가족 행사 또한 잦은 일이죠. 당연하다고 생각하기에, 삶이 치열하고 바빠서 가끔은 소홀히 하게 되는 가족인데요. 네팔 사람들을 보며 배우고 왔습니다. 아무리 바빠도 가족 모두 저녁 한 끼 같이 먹을 시간은 있다는 걸, 아무리 바빠도 친척에게 안부 인사 전할 시간은 있다는 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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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에서 인생의 쉼표를 찍다 (사진: 홍승영)

 

김: 저도 비슷한 이야기인데요. 현지에 계신 한인들 중엔 우즈벡을 70~80년대 한국으로 느끼신다는 분들이 많았어요. 인정 넘치는 사람들 때문인데요. 같은 동네에 살면 단순히 옆집 사람이 아니라 우리의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끈끈한 관계를 맺게 되더라고요. 가끔은 저를 집에 초대해 주셔서 점심, 저녁까지 먹고 놀다가 온 경우도 있었어요.

 

조: 우선 우리도 어떤 나라를 단순히 못사는 나라, 잘 사는 나라로 구분하는 것에서 이제 벗어날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먹고 사는 문제가 모든 것이 아니잖아요. 사실 몽골은 다른 개도국과 비교해서 경제가 많이 발전했어요. 수도 울란바토르에선 흔히들 상상하는 초원에서 유목하는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어요. 대신, 조금만 도시를 벗어나면 초원이 펼쳐지는데 세상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아름다운 광경이었어요. 몽골 사람들 역시 정말 정이 넘치고, 손님이라고 대접도 잘 해주셨어요!

 

이: 물론 제가 만난 사람들에 한한 이야기기 때문에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개성과 다양성에 대해 열린 시각을 가진 이들이 많다고 생각했어요. 뚱뚱하건 말랐건 간에, 그러니까 외적 모습이 어떻든 간에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했던 동료들의 말이 그러했습니다. 장애인이나 성 소수자를 옹호하는 시민 단체가 국가나 국제기구의 다양한 행사에 참여해 목소리를 내는 모습도 그러했고요. 그들의 발언에 박수 치고 호응하는 사람들의 마음가짐과 태도도 인상 깊었습니다.

 

진: 사회와 문화권마다 모두 다른 특성을 지니는 것이고 그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 옳기에, 나라 사이에 비교우위를 정하는 것은 상당히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제가 개인적으로 한국에서 살 때 보다 가나에 살면서 좋았던 점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한국에서는 정말 숨 쉴 여유도 없게 살아왔는데요, 이러다보니 업무 효율성도 떨어지고 언젠가는 스트레스가 폭발하기 마련이었습니다. 가나에서도 마찬가지로 일이 많고 고되었습니다. 하지만 가나에서 제가 만난 동료들과 상사들, 친구들은 항상 저에게 “Relax!”라고 이야기해주었습니다. 일이 많고 버거울 때 오히려 침착하고 즐겁게, 웃는 얼굴로 임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일을 하다 보니 밥 먹을 시간조차 없이 바쁘게 일을 하더라도 그 과정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황: “한 나라의 위대함과 도덕적 진보는 그 나라에서 동물이 받는 대우로 가늠할 수 있다.” 마하트마 간디가 남긴 이 말을 스리랑카에서 지내면서 몸소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생명에 대한 존중은 스리랑카 사람들의 삶에서 배어나오고 있었는데요. 곳곳에 까마귀, 박쥐, 개, 고양이, 다람쥐, 도마뱀이 많이 사는데 스리랑카인들은 가까이 오더라도 피하거나 괴롭히지 않고 어울려 산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골목골목에 놓여진 남은 음식물들은 주변의 동물들을 위한 것이었고, 살생을 피하기 위해 채식을 하거나 육식을 최소화하는 스리랑카인도 정말 많이 만날 수 있었지요.

 

 

반대로 여러분이 다녀온 세계 각국의 사람들은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궁금해지네요. 본인이 한국인이어서, 또는 문화의 차이로 현지에서 경험했던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었다면 소개해주세요.

 

홍: 네팔에서도 한류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대사관 주최로 케이팝, 케이푸드 등 한국 문화를 알릴 수 있는 페스티벌이 열렸었는데, 인기 폭발이었답니다. 우연히 케이팝 대회 예선에 참가했는데 장난 아니었습니다…. 빅뱅, 에일리, 미쓰에이, 방탄소년단 등 유명한 아이돌은 다 알고 있더라고요. 떼창은 기본! 제가 모르는 노래들도 춤부터 노래 가사까지 다 따라 부르더군요. 본선 때는 열기가 훨씬 더 고조됐고요. 듣기만 했던 해외 케이팝 열풍, 네팔에서도 인기가 장난 아니더라고요!

 

김: 저도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은 우즈벡 사람들을 많이 접할 수 있었습니다. 카페나 쇼핑몰 등지에서 제가 한국어로 친구들과 대화를 하고 있으면, 조심스레 다가와 혹시 한국어를 가르쳐줄 수 있는지 물어오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현지에서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거절했지만, 한국에 대한 관심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었지요. 반면, UN 직원들은 주로 북한과의 관계에 대해 많이 물어봤습니다. 북핵문제에 남한은 어떻게 반응하는지, 대북 방송 스피커는 무슨 역할을 하는지와 같은 것들이요. 한국이 항상 전쟁의 위협을 느끼는 불안한 국가라고 여겼던 분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공통적으로 가장 많이 받은 질문도 있었어요! “고려인과 한국인을 구분할 수 있느냐”는 것인데요. “열에 아홉은 구분할 수 있다”고 말하니 깜짝 놀라더라고요. 저를 고려인으로 본 사람들도 있었어요. 물론 제가 입을 열기 전까지요. 고려인은 러시아어를 완벽하게 쓰거든요.

 

조: 몽골사람들은 한국에 대해서 굉장히 잘 알고 있어요. 한국음식점도 많고, 한국말 하는 사람들을 종종 만났어요.(간혹 여행오신 한국 분들이 길거리나 택시에서 몽골에 대해 안 좋은 이야기를 하는데, 우리말을 알아듣는 사람이 많으니까 더 각별히 언어사용에 유의하셔야해요.) 재미있는 에피소드는 아닌데, 올해 몽골에선 통일교가 뜨거운 이슈였어요. 마치 우리나라 최순실게이트처럼요. 정치문제와 얽혀서 모 부처 장관이 사퇴하는 일도 있었고요. 언론이 정치적 이유로 문제를 키웠던 것 같기도 한데, 그래서 한국 사람하면 무조건 통일교도라고 여기는 분위기도 있었어요.(특정 종교에 대해 나쁘게 말하려는 의도는 아닙니다.) 마침 제 학부와 석사 전공이 평화학이거든요. 통일교가 평화라는 단어를 많이 써서 오해를 받게 됐죠. UN행사 중에 기자, PD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 사람들이 저에게 통일교 관련 질문을 많이 했어요. 그러고는 한 일간지 1면에 시민단체와 UN이 통일교 연관 행사를 진행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는 기사가 나갔어요. 정치적인 이유로 시민단체들과 UN활동을 전반적으로 비난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는데 마침 제가 참여했던 행사여서 당황스러웠습니다. 그 이후로 몽골에서 평화학 전공이라는 이야기를 못 꺼내겠더라고요. 그런데 참 재밌는 것은 5월 선거이후로 모든 이야기가 싹 들어갔어요. 결국 선거 앞두고 정치권과 언론이 이슈 만들기를 했던 거죠. 당시에는 많이 힘들었었는데 더 신중하게 행동해야한다는 것을 깨달은 좋은 경험이었어요.

 

사무소 빌딩에서 10분만 걸어가면 바닷가를 보면서 걸을 수 있는 산책로가 있었습니다. 맑은 날에는 파란 하늘과 바다를 바로 코앞에 두고 여유를 부렸습니다. 흐릴 때는 또 흐릴 때만의 매력을 누렸었지요. 그 때는 쉬웠던 휴식시간이 지금은 서울에서 10시간이나 떨어진 곳에 남겨져 있네요.
유니세프 남태평양 사무소에서 10분만 걸어오면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경(사진: 이자영)

 

이: 피지에서는 ‘함께 음식을 (나누어) 먹는 것’이 문화의 중요한 일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일했던 유니세프 사무소의 경우, 사람들이 함께 나누고 싶은 음식을 키친 테이블에 올려놓았고 누구나 그 음식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테이블 위의 음식은 공용의 그 무엇이었던 셈입니다. 당연히 처음에는 그러한 사무소의 문화를 알지 못했고, 때문에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던 점심 도시락이 감쪽같이 사라진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하자 동료들이 그네들의 음식을 조금씩 나누어주었고, 덕분에 더 푸짐하고 배부른 점심식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진: 아쉽게도 가나에서 한국이란 나라는 그렇게 유명하지 않습니다. 동양인으로서 아프리카에서 살게 된다면 아무래도 중국인이라는 오해를 받기 쉬울 거예요. 처음에는 “치나! 치나!”라고 불리는 게 불쾌하기도 했었는데요. 우리나라 사람들도 아프리카에 대해 무지하듯이, 이 나라사람들도 한국을 잘 모를 수 있겠다고 생각해보니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더욱 노력해서 한국이 더 잘 알려질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다짐도 하게 되었습니다!

 

황: 스리랑카에서도 이웃 어른들과 친해지면 ‘이모’, ‘삼촌’이라고 부르는 문화가 있어서 신기했어요. 스리랑카에서도 한류가 매우 인기인데요, ‘대장금’이 엄청난 인기를 자랑했고 다른 드라마들도 방영이 되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스리랑카에서 코리안 드림을 가지고 한국으로 일하러갈 준비를 하거나 일을 하고 오신 분들도 많습니다. 버스나 툭툭을 타면서도 “혹시 한국분이세요?” 라거나 “저 한국에서 일했었어요” 라고 말을 걸어주시는 분들이 계셨어요. 안타깝게도 한번도 “한국에서의 생활은 어떠셨나요?”라는 질문을 할 엄두가 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 외국인 근로자는 여전히 임금 체불, 열악한 노동 환경, 폭행 등 비인격적 대우로 힘겨워하고 있다는 기사를 많이 접하게 되는데요. 이런 부분도 많이 개선돼야 할 문제가 아닌가 싶어요.

 

 

지난 8월, KOICA-UNV 대학생 봉사단 1기로서의 활동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왔어요. 공교롭게도 모두 현지 UN 산하기구에서 홍보‧커뮤니케이션 업무를 담당했었는데요. 실제 UN 기구 안에선 많은 일들이 펼쳐질 것 같아요. 여러분이 그 전까지 경험했던 다른 사회나 조직과 분위기가 조금 다르진 않았는지 궁금해요.

 

홍: “너무 급하게 생각하거나 부담 갖지 말고 천천히 어떤 업무를 할지 이야기를 나눠보자.” 파견된 사무실에서 상사로부터 처음 들은 말이었어요. 이런 문화에 익숙하지 않으니 오히려 부담이 되었죠. 일단 해외에서 일을 하게 될 경우 수직적인 업무 구조는 잊는 게 더 좋을 것 같아요.

 

김: 맞아요. 저도 위계질서가 분명한 한국 대부분의 직장, 조직과는 달랐습니다. 우즈베키스탄 UNDP에서 일하는 동안은 정말 편하게 생활했는데요. 우선 영어를 쓰니 존대어에 대한 부담이 많이 없었습니다. 서로 편하게 이름을 부르니 존중하는 마음은 그대로 남고, 지나친 격식은 사라진 느낌이었죠. 더욱 제가 좋아했던 건, 제가 속한 팀만의 혜택이었지만 출퇴근 시간이 자유로웠던 점, 상사와의 책상 위치가 가까워 언제든지 쉽게 무언가를 물을 수 있었던 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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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즈벡의 역사적인 도시 ‘히바’. 34시간의 기차여행은 필요하지도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답니다. (사진: 김하늘)

 

조: 전 사실 UN이 굉장히 경직됐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옷도 항상 정장을 입어야 하고, 업무환경도 딱딱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죠. 사람들이 정말 자유롭게 일하더라고요. 편하게 티셔츠 입고 출근하는 사람도 많고, 책상에서 먹으면서 일하기도 하고, 점심시간에는 직원들끼리 모여서 수다도 떨고, 같이 음식도 나누고, 출퇴근도 유연하게 하고… 물론 당연히 갖출 때는 갖추고, 잘 보이진 않지만 그 내부에 관료적이고 경직된 문화가 분명히 있긴 하죠. 하지만 상상했던 것 보다는 훨씬 더 유연한 조직이었어요. 전에 한국에서 일할 때는 높으신 분들이 들어오기만 해도 일어나서 인사하기도 했는데, 그런 것과 비교하면 일단 겉보기에는 매우 유연한 것 같습니다.

 

이: 제가 일했던 유니세프 남태평양 사무소는 배움에 무척 열려있던 곳이었습니다. 비록 저는 홍보 부서에 속해있었지만, 다른 부서 사람들은 제가 그 부서의 업무를 궁금해 하는 것을 반가워했어요. 상사도 다른 부서와의 교류를 적극적으로 권장했습니다. 때문에 다른 부서의 일이 무엇이고, 그것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아마 제가 특정 프로젝트에서 일을 하는 것이 아니었고, 업무에 있어 더욱 유연성이 있었다면 다른 부서의 일도 해볼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진: 제 답변에 모든 UN기관 및 국제기구도 그럴 것이라는 일반화가 발생할 까봐 걱정되는데요. 오로지 제가 몸담았던 기관에 대해서만 소개를 해드리자면, 아주 말단 임시직 인턴이었던 저에게 한없이 다정하고 친절했던 곳이었습니다. 저를 직장의 부하직원보다는 동생이자 딸, 조카로서 대해주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상당히 열려있는 기관이었기에, 대단하지 않은 저의 작은 의견에도 귀를 기울여주었습니다. 이런 환경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일에 대한 저의 열정은 높아져만 갔고 업무의 효율성도 좋아졌다고 생각해요!

 

황: 저는 지금 대학생과 사회초년생의 경계선에 있지만, UN에서 배울 점은 많다고 느꼈어요. 합격 전부터 내가 일하게 될 조건, 생활비, 현지 생활 여건 등을 미리 안내를 받을 수 있었고 도착 후에도 체계적으로 안전 문제 등을 확인해 주었어요. 그리고 복사, 인쇄, 사무실 청소 같은 부수적인 일들을 인턴들이 하는 게 아니라 본인이 직접 하거나 다 같이 하는 분위기였던 점도 이전의 경험과는 다르다고 느꼈습니다.

 

 

KOICA-UNV 대학생 봉사단 2기가 내년에 파견될 예정인데요. 해외봉사 등 여러분과 비슷한 경험을 하고 싶어 하는 친구들에게 해줄 수 있는 조언이 있다면요?

 

홍: 저도 이제 막 국제 개발이란 분야에 뛰어 들었기 때문에 조언을 할 입장보다는 조언을 받을 입장입니다. 단지 제가 네팔에서 배운 걸 말하자면 적극적인 태도와 자기 PR이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처음부터 바로 업무를 주지 않아서 스스로 일을 만들어서 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요. 저는 당시 사무소에서 사용하고 있는 SNS를 분석하고, SNS 콘텐츠를 만들어 상사 이메일로 꾸준히 보내기 시작했어요. 이런 아이디어는 어떤지 물어보고, 피드백을 받고, 수정하고, 다시 의견을 물어보면서 무작정 아이디어를 공유했죠.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일이 조금씩 쌓이기 시작했어요. 자신의 아이디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적극적으로 어필하면 더욱 유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겁니다.

 

김: 저도 조언이라기보다는 격려를 해드리고 싶어요. 저는 처음에 정말 걱정이 많았거든요. 낯선 나라인데다가 혼자 파견이 되었으니 막막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내가 과연 이런 일을 할 자격이 될까, 내가 과연 준비가 되었을까 하는 고민들이 항상 있었어요. 그런데 막상 현장에서 보니 제가 가진 열정과 간절함으로 제 부족함을 채워 줄 수 있는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더라고요. 그렇게 인적 자원, 사람 간의 네트워크로 저도, 제 프로젝트도 많이 견고해졌습니다.

 

조: 제가 누구에게 조언을 할 위치는 아니지만 하나 꼭 강조하자면 저도 적극성을 들고 싶습니다. UN에서 오래 일한 분이 해주신 이야기인데 “UN은 바다에 빠졌을 때 아무도 먼저 건져내주지 않는다”고 했어요. “내가 허우적대며 살려달라고 있는 힘껏 외쳐서 나를 주목하게 해야한다”는 것이었죠. 그리고 언어실력을 꾸준히 키우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추천하는 공부법은 쉬운 글을 제대로 공부하는 것. 저도 잘 못하는 것인데요…. 화려한 문장과 표현을 쓰려고 하기보다 쉬운 문장, 가장 기초적인 구조로 정확한 영어를 쓰는 것이 좋은 것 같아요. 그래야 의미전달이 정확히 되더라고요.

 

이: 제가 감히 어떤 조언을 드릴 수 있는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6개월의 시간을 미리 경험해본 사람으로서, 그 짧고도 긴 시간을 잘 활용하여 더 많은 것을 누리시라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가나의 해변에는 다양한 기념품을 파려는 상인들과 아크로바틱를 선보이며 돈을 버는 묘기꾼, 돈을 내고 말을 타게 해주는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살 의사가 없음을 전했음에도 계속 구입을 요구할 수 있는데, 그럴 땐 단호하게 거절하거나 구입하고 싶을 때 내가 직접 부르겠다고 말하는 것이 좋습니다.
가나의 아크라에서 가장 가까운 해변인 라바다 비치. 물은 그다지 깨끗하지 않지만 기분 전환에는 최고래요! (사진: 김미진)

 

진: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담 갖지 말라고 업무와 생활 모두 진심으로 즐기길 바랍니다. 그리고 일과 삶의 적당한 균형을 두는 동시에, 일에 임할 때는 최선을 다하시길 바라요!

 

황: 저도 응원의 말씀을! 막상 하게 되는 일이 생각했던 일과 다른 경우도 많고 상황에 맞춰서 또 새로운 일이 생기는 경우도 많은데요. 배우는 자세로 하나하나 하다보면 금방 인정받고 잘 해내실수 있을 거예요!

 

 

6개월간의 활동이 분명 평범하지만은 않은 경험이고, 여러분의 미래에 큰 힘이 되어줄 것도 같은데요. 이제 평범한 대학(원)생으로 돌아온 지금, 여러분의 향후 계획이나 목표가 궁금합니다.

 

홍: 사실 많은 준비도 못하고 국제 개발에 대한 관심만으로 UNV란 봉사단에 지원했었어요. 그러다 보니 현장에서 스스로 부족한 점이 많이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앞으로는 계속적으로 공부도 하고 경험도 쌓을 예정인데요. 일단 정해둔 바는 아이들과 청소년들에게 교육을 받을 기회를 제공하는 데 힘을 쓰고 싶다는 것입니다. 교육은 빈곤한 삶을 떨쳐내고 더 나은 미래를 꿈꾸게 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특히 종교 또는 문화적인 이유로 차별 받는 아이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부족한 점들을 차차 채워가야 될 것 같아요. 어떻게 채워가야 될지 한국에 돌아와 고민을 하다가 이달 중순부터 어느 국제개발NGO에서 인턴 생활을 시작했고, 목표에 다가가기 위해 앞으로도 최대한 많이 경험해보고 싶어요.

 

김: 자꾸만 해야 할 일들이 늘어나 듯, 하고 싶은 일들도 늘어나고 있어요. 하지만 분명한 한 가지는 제가 어디서 어떤 일을 하든지, 그 무대가 국내든 국제든 저는 저만이 아닌 다른 누군가와 동행하는 삶을 살고자 한다는 것이에요. 그리고 그 기록들을 책으로 남겨 저와 뜻이 같은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드리고 싶어요.

 

조: 일단 지금은 대학원에 복학해서 열심히 공부중입니다. 다음 학기에 수료하고 논문 쓰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고요. 20대 청년들 누구나 그러겠지만 저도 고민이 많아요. 국제기구는 꼭 다시 한 번 일해보고 싶은 곳이에요. 다시 일하기 전에 더 전문성을 키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박사까지 꾸준히 공부하고 국제기구에서 일하고 싶었는데, 지금은 현장 경험을 더 해보고 싶어요. 공부하다보면 제 의지와는 달리 현실과 동떨어져 버릴 때가 있더라고요. 예를 들어 얼마 전에 어렵게 생활하고 있는 친구를 만났는데 그 친구가 지금 뭐하는지 묻더라고요. 대학원에서 불평등을 공부한다고 이야기했는데 꺼내고 보니 머쓱했어요. 이 친구가 겪고 있는 삶이 불평등인데 피케티가 어쩌고, 스티글리츠가 어쩌고 하는 이론 속에 갇혀있는 내가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현장에 더 가까이 가고 싶어요. 그래서 지금은 언론 기관에서 일하고 싶어요. 계속 글 쓰면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쉽게 알리는 것도 해보고 싶어요. UN희망원정대를 기획한 것도 사실 그런 것이 있었어요. UN이라는 곳이 청년들에게 환상이잖아요. 그런데 사람들은 UN이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지 잘 몰라요. UN을 봉사단체로 아는 사람들도 많고요. 그래서 직접 일할 기회도 생겼으니 어떤 곳인지, 무슨 일을 하는지 쉽게 써보고 싶었어요. UN소개하는 두꺼운 책자 말고, 내가 경험한 일을 사람들이 이해하는 언어로 쓰는 일이요. 제가 조금 더 경험이 많았다면 더 좋았겠지만 그래도 부족한대로 이렇게 전하고 연재가 잘 마무리돼서 너무 감사합니다.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참 많아요. 다음에 좋은 기회에 다른 콘텐츠들을 계속 만들어 보고 싶네요! 기대해주세요.

 

이: 앞으로 어떤 길로 나아가게 될지는 저 스스로도 무척 궁금한 부분입니다. 나중에 더 공부를 하고 더 경험을 쌓은 후에 다시 한 번 국제기구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싶습니다.

 

진: 참 어려운 질문인 것 같습니다. 가나를 다녀오기 전, 저의 진로와 미래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가지고 있었어요. 가나를 다녀와서 이러한 고민들 중에 명쾌하게 해결된 고민들도 있고, 반면 더욱 미궁에 빠진 고민들도 있습니다. 앞으로 저는 다양한 기관에서 더 다양한 업무를 수행하는 경험을 계속해서 쌓고 싶습니다. 앞으로 하게 될 수많은 직무 경험들 속에서 단연 최고로 기억될 경험은 가나에서의 추억일이지 않을까 조심스레 생각해봅니다.

 

흰옷을 갖춰 입고 스리마하보디(절)에 가는 길. 여기에선 절에 갈 때는 흰옷을 입는 것이 문화인데요. 전통복인 흰 사롱을 둘러보았습니다.
언제나 이모, 삼촌, 친구들과 함께였던 (사진: 황연재)

 

황: 저는 사실 지금 서아프리카의 세네갈에 와 있습니다. 학부 마지막 학기를 마치고 지난 26일 한국을 다시 떠나왔어요. 앞으로 1년 동안 세네갈의 KOICA 사무실에서 ODA 영프로페셔널로서 일하면서 현지에서 진행되는 프로젝트 업무, 그리고 프랑스어 등을 배우고자 합니다. UNV에서 얻은 경험이 지원과정, 결정에도 많은 도움이 되었고 앞으로 일하는데도 큰 용기를 줄 것 같아요!

 

 

UN 희망원정대 네팔, 우즈베키스탄, 몽골, 가나, 피지, 스리랑카. 이 여섯 나라에서 활동하는 UN 봉사단 청년들이 현지에서의 활동과 생활을 고스란히 글과 사진에 담았습니다. 각자가 속한 UN 기구에서의 이야기와 함께 그곳의 사회와 문화, 여행정보 등 6개월 동안 보고 겪은 생생한 이야기를 전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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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순간 '내 첫 번째 크리에이티브'라는 마음으로 여기에 이름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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