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화

사라지는 것이 목표인 브랜드, 제리백

 

아침이다. 이불 속에서 나와 가장 먼저 찾는 것은? 에디터는 냉장고 앞으로 간다. 시원한 물로 목을 축이고 씻기 위해 욕실로 향한다. 잠들기 전에도 마찬가지. 따뜻한 물로 하루의 피로를 씻겨내고 머리맡엔 컵을 둔다. 물을 얻는 방법은 간단하다. 냉장고를 열거나 수도꼭지를 열면 끝.

 

저 멀리 아프리카 우간다로 가보자. 우간다의 어린이 벤저민(13)은 매일 아침이면 물통을 들고 우물로 향한다. 우물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30분. 물통에 물을 꽉 채운 뒤 집으로 돌아간다. 20kg에 달하는 무게다. 우물과 집을 오갈 때는 차도 가장자리를 따라 걷는다. 차가 멀리서 달려오면 길 밖으로 피해 있어야 한다. 차의 속도가 워낙 빠르고, 도로 상태가 좋지 않기 때문에 아스팔트 조각이 튀면 크게 다친다. 그렇게 다시 집으로 돌아오면 빈 물통이 네 개나 더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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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간다에서는 아이들이 물을 나르다가 도로에서 사고를 당하는 경우가 빈번해요. 디자인을 통해 그들의 불편함을 해소해 주고 싶었습니다.”

 

박중열(37) 제리백 대표가 말했다. 우간다의 별명은 ‘아프리카의 진주’.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호수인 빅토리아호가 있어서 생긴 별명이다. 하지만 벤저민처럼 많은 우간다의 아이들이 직접 물을 뜨러 다닌다. 물 자원은 풍부하지만 물을 공급하는 상수도 시설이 빈약하기 때문. 박 대표는 “그나마 우물이 있는 마을은 다행”이라며 “우물이 오염되거나 없으면 자연적으로 물이 고인 곳을 찾아 다녀야 한다”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자연적으로’는 야생 동물들도 함께 물을 마시는 곳을 뜻한다.

 

우간다의 물은 풍부하다, 집에서 사용할 수 없을 뿐 (사진: Travelstock / shutterstock.com
우간다의 물은 풍부하다, 집에서 사용할 수 없을 뿐 (사진: Travelstock / shutterstock.com

 

 

가방이 물통을 만났을 때

 

우간다의 어린이들이 물을 담을 때 사용하는 통은 약수터의 그것과 비슷한 제리캔(Jerrycan)이라 불리는 플라스틱 물통. 10살 아래의 어린이들은 절반을 채운 10kg, 이들보다 큰 어린이와 여성들은 20kg의 물을 나른다. 물통은 손에 들거나 머리에 인다. 무거운 물통을 머리에 이는 것이 한창 자랄 시기인 어린이에게 좋을 리 없다. 힘 좋은 남성들이 들면 되지 않을까? 우간다는 농경 국가다. 남성들은 농사를 짓고, 그 외의 허드렛일들은 여성과 아이들의 몫이다.

 

박 대표가 이들의 상황을 마주한 것은 4년 전. ‘지속가능한 디자인’에 대한 석사 논문을 쓰던 중 2주간 우간다에 방문했을 때다.

 

“커다란 물통을 이고, 휘청거리며 물을 나르는 아이들의 모습을 자주 접할 수 있었어요. 어떻게든 그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죠.”

 

그는 “디자인을 통해 사회에 좋은 영향을 주고 싶었다”고 했다. 그런 고민 끝에 나온 결과물이 바로 ‘제리백’ 프로젝트다.

 

맨 오른쪽이 박중열 대표
맨 오른쪽이 박중열 대표
물통을 머리에 인 아이들, 물통의 무게는 20kg다
물통을 머리에 인 아이들, 물통의 무게는 20kg다

 

자, 한번 상상해보자. 한쪽 손으로 들거나, 머리에 이던 것을 양쪽 어깨로 짊어질 수 있다면?
그렇게 편할 수 없다. 제리백은 무거운 제리캔을 머리에 이는 대신, 양 어깨에 멜 수 있도록 만들어진 백팩 형태의 가방이다.

 

제리백은 천막에 쓰이는 폴리에스테르 천으로 만들어진다. 우간다 현지에서 쉽게 구할 수 있고, 방수 기능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어깨 부분에는 반사판이 붙어있다. 달리는 차들이 아이들을 인지할 수 있게끔 하기 위해서다. 안전까지 생각한 세심한 배려인 셈. 우간다에는 상수도 시설은 물론, 교통 시스템도 거의 없다. 박 대표는 “우간다의 도로엔 차들이 굉음을 울리며 달린다”며 “차도 주변으로 튀는 먼지와 자갈 역시 아이들에겐 큰 위협”이라고 했다.

 

도로 위는 위험해! (사진: 네이버 영화 /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
도로 위는 위험해! (사진: 네이버 영화 /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

 

 

멋진 가방이면서 착한 가방

 

제리백의 취지와 그에 맞는 디자인이 완성됐지만, 문제는 ‘지속가능성’이었다.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라도 일회적인 기부에서 그치지 않으려면 사업성이 필요했기 때문. 박 대표는 소비자들이 제품을 구매하면서 자연스럽게 기부할 수 있는 모델에 주목했다. 신발 브랜드 탐스(TOMS)가 소비에 기부를 엮어 성공을 거둔 대표적인 사례. 소비자들에게 좋은 제품과 동시에 좋은 의미를 제공하는 것이다.

 

소비자들이 제리백의 캔버스백, 파우치 등을 구매하면, 우간다 아이들에겐 ‘제리백’이 함께 전해진다. 보다 투명한 진행을 위해 현지 사정을 잘 아는 국제구호개발기구 ‘굿네이버스’의 협업 체제도 갖춰놓았다. 그런 방식으로 전달된 제품이 지난 2년 간 650개. 올해는 그 두 배인 1200개를 목표로 하고 있다. 2014년 브랜드를 론칭한 이후 올해까지 총 1850개의 기부가 이뤄지는 셈이다.

 

기부를 받은 아이들은 수혜자인 동시에 제리백의 훌륭한 조언자다. 직접 사용해보고, 불편한 점이나 개선됐으면 하는 사항을 전달해주는 것. 제리백이 매년 새롭게 ‘진화’할 수 있는 이유다.

 

제리백은 매년 아이들의 의견을 받아 ‘진화’한다
제리백은 매년 아이들의 의견을 받아 ‘진화’한다

 

국내에서 판매되는 제품에도 아프리카 아이들이 쓰는 오리지날 제리백의 디테일은 고스란히 살아있다. 어깨에는 반사판이 붙어 있고, 어깨끈을 조절하는 부분은 버클 대신 손으로 매듭지을 수 있게 되어 있다. 아프리카에선 플라스틱 버클을 구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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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모든 제품이 아프리카 현지에서 디자인된다는 반증이다. 이를 통해 현지 여성들의 경제적 자립도 돕는다. 현재 정직원으로 채용돼 일하고 있는 글로리아(Gloria)와 마르티나(Martina)가 대표적이다. 올해는 세 명의 현지 여성을 추가로 고용할 계획이다.

 

박 대표는 “지속가능한 소비와 생산의 궁극적인 목표는 고용의 창출”이라며 “제리백의 수혜자가 사업의 파트너이자 함께 하는 직원이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글로리아의 모습, 그녀는 패션 디자이너다.
글로리아의 모습, 그녀는 패션 디자이너다.

 

 

제리백이 사라질 때까지

 

현재 제리백의 모든 제품은 언더스탠드에비뉴(서울 성동구), DDP갤러리샵, 서울역 디트랙스 등 오프라인 매장과 W컨셉 등 온라인 매장에서 만나볼 수 있다. 제품 종류나 고객 군이 점차 확대되고 있지만, 정작 박 대표는 “제리백이 가야하는 가장 가치있는 길은 사라지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가장 바라는 건 아이들이 물을 나르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오는 거죠. 그때까지는 디자인을 통해 그들에게 최대한의 편리성을 제공하는 것이 제가 이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입니다. 저는 디자이너이니까요.(웃음)”

 

제리캔을 안은 박중열 대표
제리캔을 안은 박중열 대표

 

/사진: 제리백 제공·최현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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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지기 한 시간 전 풍경을 좋아합니다. 작지만 소중한 것들을 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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