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화

국부(國父)는 바람둥이

 

얼마 전, 각국의 출연자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교양프로그램에서 ‘유명인의 바람기, 여성편력과 이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에 대해 토론한 적이 있었습니다. 프랑스 출연자는 불륜이나 재혼을 ‘사생활의 영역’이라고 선 긋는 반면, 미국·일본·중국·한국 출연자는 유명인의 스캔들에 국민들은 크게 실망하며 입방아에 오르내릴 수 있다고 답하는 분위기였죠. 특히, 중국 출연자는 “중국에선 바람피우는 사람을 ‘기차가 선로를 벗어난다’는 뜻에서 ‘출궤’라고 부른다”고 설명한 점이 눈에 띄었는데요. 중국 제 1의 정치가였던 ‘쑨원’에 대해 구설수가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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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Lightspring / shutterstoc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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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시선

 

한 해를 시작하는 1월 1일, 중국인들은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새해를 맞이합니다. 누군가는 자신들의 고향을 찾아 가족과 함께 편안한 연휴를 보내고, 또 다른 이들은 거주하고 있는 도시 어딘가에 마련된 공자 선생, 노자 선생 또는 불교 사원, 도교 사원 등 자신들이 믿고 의지하는 누군가의 사당이나 사원을 찾아 한 해의 평안을 기원하는 것이 일반적인 형태죠.

 

때문에 이 시기에는 공자, 노자 선생에 대한 전기를 다룬 다큐멘터리가 제작, 방영되곤 합니다. 최근 들어서는 중국 철학사와 역사의 양대 산맥인 공자와 노자 외에도 근대화 시기 중국의 ‘국부(國父)’로 불려온 ‘쑨원(孫文)’을 기리기 위한 프로그램도 잦습니다. 

 

더욱이 중국 대륙과 타이완이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체제로 분할된 지 수십여 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양쪽 지역 14억 명 사람들의 가슴 속에 영원한 아버지로 불리고 있다는 점이 인상깊습니다. 지난해에는 쑨윈이 탄생한지 150년이 되었다는 점에서, 각 언론사와 출판사들이 그의 삶과 우리가 알지 못했던 인간적인 고뇌 등에 주목하기도 했습니다.

 

이번 회에선 14억 인민의 아버지로서의 ‘쑨원’보다는, 보통 사람과 같이 사랑과 이별을 반복했던 그의 인간적인 삶, 그 한 조각을 엿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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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시선

 

유명하고, 저명하며, 양 손에는 부귀영화를 쥔, 그래서 한 시대를 호령한 남자라면 누구나 복잡한 연애담이 뒤를 잇기 마련이지요. 

 

중국의 국부로 불리며 14억 인민의 가슴을 뜨겁게 하는 인물, 민족·민주·민생이라는 삼민주의를 바탕으로 중화민국을 공포한 근대화의 주역. 다양한 업적으로 평가받는 ‘쑨원’의 삶에도 지울 수 없는 낙인 하나가 붙어있습니다. 바로 ‘여성편력자’라는 것이죠.

 

멀쩡히 살아있는 조강지처를 20년 동안 방치하며 홍콩의 신여성으로 알려진 묘령의 여인과 수십여 년을 함께했고, 혁명에 성공한 이후에는 27세 연하의 여성과 재혼을 하려고 했던 탓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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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15년 쑨원과 송경령의 결혼 사진 (출처 : 바이두 이미지 DB)

 

성공한 혁명가이자 완벽한 정치가이지만, 한편으로 평범한 바람둥일 뿐이라는 일각의 지탄 속에 있는 ‘쑨원’은 어떤 ‘男子’였을까 궁금해집니다.

 

이와 같은 물음에 가장 속 시원하게 답해줄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그를 곁에서 오랫동안 지켜본 지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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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쑨원의 4번의 결혼(孙中山的四次婚姻)’ 작품 중 캡쳐

 

실제로 과거 쑨원의 정치 고문을 맡았던 호주 출신의 윌리엄 헨리 도날드는 쑨원이 작고한 이후 그의 회고록을 통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임시대총통에 취임한 위안스카이는 총통직에서 물러난 쑨원의 요구를 들어줬다. 전국의 철도를 총괄하는 철도독판에 임명하고, 매달 3만원을 봉급으로 책정했다. 엄청난 액수였다. 쑨원은 전에 서태후가 이용하던 전용열차를 타고 전국을 돌아다녔다. 모두 열여섯 량의 열차 안에는 참모, 경호원을 비롯해 온갖 사람들이 타고 있었다”

 

그 중에는 여성에 대한 것도 있었습니다. 이를 테면 “열차 안에는 야릇한 차림의 정체불명 미녀들이 많았다. 밤마다 복도 다니기가 민망했다”라고 것이었죠. 

 

일각에서 여성 편력이 심한 정치가라는 비난의 목소리를 들었던 것도, 그런 그의 성향과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더욱이 과거 그의 두 번째 아내이자, 일생의 세 번째 여자로 기록된 ‘송경령(宋慶齡)’과의 결혼 스토리는 쑨원의 여성 편력이 ‘대단한 경지’에 이르렀음을 예측해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실제로 송경령은 그의 두 번째 아내임에도 불구하고 쑨원의 아내로 가장 큰 명성을 얻은 인물이기도 합니다. 송씨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그의 아버지인 송가수를 먼저 소개해야 합니다. 그의 아버지는 중국이 근대화를 겪던 시기에 대륙에서 가장 큰 부를 얻은 사업 수완이 좋은 인물로 알려져 있죠. 일찍이 서구의 문화와 경제에 관심을 가졌던 송가수는 중국 대륙 내에서 선교사 활동을 하며 인쇄소, 밀가루 공제 공장 등의 사업을 통해 거부로 성장했습니다. 당시 혁명가로 이름을 알렸던 ‘쑨원’에게는 혁명 자금을 지원하는 둘도 없는 동지였다고 전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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쑨원의 아내로 가장 큰 명성을 얻은 송경령의 모습 (출처 : 송경령기념사업회 홈페이지)

 

실제로 쑨원의 혁명 자금의 주된 지원자는 송가수였고, 송가수와 쑨원은 정치적 동지이자 혁명사상을 실현하는 막역한 사이였던 것이죠.

 

하지만, 이후 송가수는 자신의 둘째 딸인 송경령과 혁명 동지였던 쑨원의 러브스토리를 소문으로 전해 듣게 되었고,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면서 크게 곡을 했다는 설이 전해집니다.

 

더욱이 앞서 쑨원이 자신의 비서로 있었던 송가수 첫째 딸 송애령에게 이성적인 관심을 자주 표현하고 있었다는 것은 만인이 알고 있는 공공연한 사실이었죠. 송가수에게는 자신이 아끼던 둘째 딸 송경령과 혁명동지 쑨원의 연애 사실이 소문으로 파다하게 퍼지는 일은 곧 추악한 불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판단했을 것입니다. 27살이라는 나이 차가 있고, 쑨원이 이미 결혼한 유부남이었다는 것도 결코 좌시할 수 없는 문제였고요. 

 

당시 마카오에 거주하고 있는 쑨원의 조강지처 ‘루무전’이 생존해 있는 상태였고, 지난 20년 동안 그의 수족처럼 함께 혁명 운동을 해왔던 그의 두 번째 여인 ‘천추이펀’ 또한 버젓이 살아있었습니다. 전족(纏足)을 한 뒤뚱거리는 여인 ‘루무전’은 마치 쑨원에게 없는 사람인양 마카오에 평생을 숨어 지냈고, 비록 결혼한 사이는 아니지만 첩으로 여겨졌던 쑨원의 두 번째 여인 천추이펀은 홍콩에 거주하며 그가 가는 곳이라면 어디든 함께 동행하는 레이디 퍼스트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던 것이죠.

 

실제로 천추이펀은 혁명 기간 동안 쑨원의 일이라면 어떠한 어려운 일도 마다하지 않고 온갖 고생을 맡아 한 위인으로 유명합니다. 이를 테면 빨래와 식사 준비 등을 담당하며 혁명동지들에게는 어머니와 같은 분으로 여겨졌다고 전해지죠.

 

때문에 쑨원이 중국 제1의 정치가로 부상한 뒤, 불과 22세의 아가씨 송경령을 아내로 취하려 한다는 소문이 돌자, 일각에서는 혁명 동지이기도 했던 천추이펀이 버림을 받는 것이라며 비난의 목소리가 커지는 지경까지 치달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쑨원은 이와 같은 비난에 대해 ‘쿨’하게 인정을 합니다. 자신을 향한 쓴소리에 대해 “나는 신이 아니다. 너희와 같은 사람일 뿐이다”라며, “송경령과 결혼 할 수만 있다면 다음날 죽어도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고 자신의 과오와 성향을 인정했다는 후문입니다. 

 

그의 사후에 알려진 속설에 따르면, 쑨원은 송경령과의 결혼 이후, 일본에 거주할 당시 15세에 불과한 일본인 여중생과도 사랑에 빠졌다고 합니다. 한 마디로 본능에 충실한 남성이었던 거죠.

 

쑨원의 이와 같은 삶에 대해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한 남성의 모습으로 이해해야 할지, 그것이 아니라면 여성 편력이 심한 단순한 바람둥이로 치부해야 할지 망설여지는 대목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중국의 국부로서의 ‘쑨원’이기 이전에, 누구보다 평범했기에 너무나 인간적이었던 그의 삶의 이면을 엿보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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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소개

중국에 대한 101가지 오해

언론에 의해 비춰지는 중국은 여전히 낡고, 누추하며, 일면 더럽다. 하지만 낡고 더러운 이면에 존재하고 있는 중국은 그 역사만큼 깊고, 땅 덩어리만큼 넓으며, 사람 수 만큼 다양하다. 꿈을 찾아 베이징의 정착한 전직 기자가 전하는 3년여의 기록을 통해, 진짜 중국을 조명해본다.

필자 소개

서울에서 중앙일간지 정치부 국회출입기자로 4년 여간 활동, 서른을 한 해 앞둔 무렵, 아무 연고도 없는 베이징으로 무작정 건너와 현재는 프리랜서 통·번역, 여행 칼럼을 쓰며 자유로운 삶을 만끽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