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아주 특별한 곳으로의 초대

파피루스 기록물을 통해 고대 이집트인들의 생활상을 그렸던 ‘고대 이집트 엿보기’. 이제 그 현장으로 직접 가본다. 이집트 연구가 곽민수의 두 번째 연재물 ‘고고학자와 함께하는 이집트 유적 기행’은 고대와 현대가 공존하는 이집트의 매력을 소개하고, 현지 유적을 통해 5000년 전 역사속 세계로 초대한다.

이집트 문명은 인류가 남긴 가장 위대한 고대의 흔적들 가운데에 하나로 평가 받습니다. 또 다른 고대 사회인 고대 그리스나 고대 로마에서조차도 이집트는 경외의 대상이었으며 이집트에 적대적인 감수성을 갖고 있는 구약성서에서조차 이집트 문명에 대한 경외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습니다. 중세시대가 되면 고대 이집트에 관한 지식은 단편적인 것들 밖에 남아있지 않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세 유럽에서 고대 이집트는 일종의 이상향으로 여겨지기도 하였습니다.

고대 이집트에 대한 선망은 근대시대가 되어서도 전혀 줄어들지 않았고, 오히려 점차 욕망으로 변질되어 갔습니다. 그 결과 유럽 각국의 유력자들은 자신의 재력을 뽑내고 허영심을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고대 이집트 유물들을 약탈하기 시작합니다. 이후 고대 이집트 유물을 둘러싼 경쟁은 더욱 치열해져서 얼마나 많은 양의 이집트 유물을 보유하느냐하는 것이 열강 각국의 국가적 위신을 결정하는 잣대가 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영국 런던의 영국 박물관 (British Museum)이나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 (Louvre Museum)과 같은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은 서구의 박물관들이 엄청난 양의 이집트 유물을 소장하게 된 것은 모두 제국주의 열강들 사이에 일어났던 치열한 유물 획득 경쟁의 결과입니다. 물론 이렇게 많은 양의 이집트 유물을 소장하게 된 국가들에서는 자연스럽게 고대 이집트를 연구하는 이집트학 (Egyptology)가 발달하게 되었고, 여전히 오늘날에도 이집트 연구에 가장 권위 있는 연구기관들은 대부분 이 나라들에 있습니다.

고대 이집트는 현대인들에게도 여전히 매력적인 대상입니다.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오벨리스크와 거대한 신전들, 파라오의 저주나 투탕카멘이나 람세스 같은 유명한 파라오의 이름들과 같은 고대 이집트 문명의 주요한 키워드들은 매스 미디어에서 자주 다뤄지고 있으며, 계속해서 고대 이집트에 대한 대중적인 관심을 이끌어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인디아나 존스'1)나 ‘미이라'2)와 같은 헐리우드 모험영화 역시 대중의 고대 이집트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주요한 동인입니다. 물론 이들 미디어 생산물들은 잦은 과장과 윤색으로 인하여 고대 이집트에 대한 연구를 보물찾기 정도로 오해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많은 이들에게 이집트에 대한 관심과 열정을 불어넣는 것은 분명합니다.

비록 한국에는 고대 이집트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기관이나 연구자가 없지만, 고대 이집트에 관한 대중적 관심만큼은 한국에서도 무척이나 뜨겁습니다. 그 실례로 몇년에 한번씩 한국 곳곳에서 열리는 고대 이집트 관련 특별전시는 언제나 큰 성공을 거둡니다. 뿐만 아니라 불과 5년전까지만 하더라도 이집트는 한국인들에게 인기 많은 여행지였습니다. 주요 관광지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한국인 여행자들을 만날 수 있었으며, 실제로 2010년에는 이집트 관광부와 한국의 문화체육관광부는 MOU를 맺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2011년 ‘아랍의 봄’이라고 일컬어지는 민중혁명이 일어난 이후 상황은 급속하게 변화하였습니다. 30여 년간 지속된 무바라크 독재정권 하에서는 매우 안정적이던 이집트 사회는 아이러니하게도 민주주의 혁명 이후에는 곳곳에서 일어나는 소요사태와 산발적인 테러로 몸살을 앓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일반 여행자들의 여행이 쉽지 않은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근래에 와서는 중동 전역에서 IS(Islam State)가 무차별적 테러를 감행함에 따라 이집트의 여행여건은 더 악화되었습니다.

당분간 이집트 여행은 어려울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고대 이집트가 매력적인 여행지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이집트가 매력적인 이유는 여러 가지 있을 수있겠지만, 이집트에서 쉽게 마주칠 수 있는 아주 오래된 것들과 새로운 것들이 함께하는 모습은 분명히 이집트의 가장 큰 매력입니다.

이 세상의 많은 도시들은 전통과 첨단이 그 도시에서 조화를 이루며 공존하고 있다고 자랑을 합니다. 하지만 그 도시들이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공존의 범위는 겨우 몇 백년, 길어야 천 년 정도의 세월에 불과합니다. 이집트가 간직하고 있는 공존의 시간적 깊이는 무려 5000년에 이릅니다. 이집트에는 고대 이집트 문화는 물론이고 고대 그리스와 고대 로마, 비잔틴 제국과 기독교, 이슬람교, 아랍, 오스만 투르크, 근대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현대 미국의 문화까지 인류문명사를 대표하는 문화들이 한 공간에 겹겹이 쌓여 있습니다.

불과 몇 달 전에 출시된 최신형 자동차가 최소한 30-40년은 됐음직한 고물 택시와 함께 4500년 전에 세워진 피라미드 옆을 달리고, 과거에는 기독교의 교회로도 사용되었던 수백년된 모스크를 배경으로 최신형 스마트폰으로 페이스북을 들여다보며 분주히 걷는 말쑥한 양복의 비즈니스맨을, 꼬질꼬질한 이집트 전통 의상 갈라비야를 입은 노새를 탄 소년이 양떼를 이끌며 뒤따르는 장면은 신기함을 넘어서, 뭐랄까 ‘인류 역사의 장대한 파노라마’를 바로 눈 앞에서 보고 있는 듯한 진한 감동을 맛보게 합니다.

이제 여러분들을 인류 역사의 장대한 파노라마가 살아 숨쉬고 있는 아주 특별한 장소로 초대하려고 합니다. 비록 지면에서 이집트를 만나는 것이지만, 이곳이 주는 특별한 감동을 충분히 느끼실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그리고 곧 다시 평화가 찾아온 이집트를 직접 여행하실 수 있게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