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마저 위로해주지 않으면 누가 우리를 위로해주리
돼지마저 위로해주지 않으면 누가 우리를 위로해주리
돼지마저 위로해주지 않으면 누가 우리를 위로해주리
2016.01.12 14:16 by 송나현

동화 ‘시골 쥐, 도시 쥐’ 속에 나왔던 지하실. 그곳에 한 가득 쌓인 음식은 봉인됐던 나의 ‘식탐’을 깨웠다. 이후 대하소설 ‘토지’를 보고선 콩나물 국밥을 사먹었고,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곤 마들렌을 처음 접했다. 쿡·먹방 시대를 맞아 음식과 문학의 이유 있는 만남을 주선해본다.

여러 가지 뉴스로 마음이 번잡한 요즘.
뉴스를 보지 않느니만 못하다. 인터넷에는 연초임에도 불구, 희망보다 절망이라는 단어가 판을 친다.

(사진:shutterstock)

작디작은 소녀상 앞에서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

우짖지 못한 그 울음을 속으로 삭히는 사람들,

생을 이어가는 것이 힘들어 길거리로 나온 사람들,

아직도 잊히지 않는 어린 생명들의 발화.

모두가 가만히 있지 못하고 고함을 내지른다.

목이 갈라지고 내딛는 발걸음에는 힘이 점점 빠진다. 위로가 필요한 시기다.

평소에 시를 즐겨 읽진 않는다. 하지만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 700페이지를 훌쩍 넘는 ‘모비딕’이나 ‘제 2의 성’ 같은 책을 꺼내 읽기엔 남들 시선을 신경쓴다. 게다가 그런 책을 가방에 넣어 다니면 어깨가 빠듯하다. 이런 이유로 나는 이동하면선 시집을 즐긴다.그 한 장의 페이지에는 인생이 들어있고, 그 짧은 한 문장에 철학이 담겨있다.

딱 이 시기에 우리에게 위안을 주는 시 한 편.

 

 

pork_pt
  

삼겹살이 시의 주제로 등장하다니...

지방 가득한 이 부위가 직장인의 회식 메뉴 1순위로 등극하고, 황사 시즌에 너도 나도 먹겠다고 달려든 인기품목이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은 일이다.

삼겹살 구이에 대해서 여러가지 설이 있다. 그 중 가장 유력한 설은 1970년대에 태백과 영월의 광부들이 매달 고기 교환권을 받았고 그 교환권으로 저렴하고도 양이 많았던 삼겹살을 교환해서 먹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근처에서 귀하기 쉬운 돌판에 구워 먹었다고 한다. 이 후 1980년대에는 여기저기 삼겹살집이 생겨났고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국민고기'로 자리를 잡았다.

'육식성애자'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로 고기 섭취량이 많은 우리나라다. 하지만 우리나라에 육식이 자리를 잡게 된 건 몽골의 지배 때부터이다. 그 전에는 채소로 차린 밥상 , 즉 채식이 주(主 )였다. 그래서일까. 다른 나라와 달리 우리나라에선 채소 쌈이 구운 고기의 필요충분조건이다.

ssam-1098555_1920

파릇한 상추 위에 향이 물씬 풍기는 깻잎 한 장을 올린다.
그 위에는 살짝 바삭하게 구워진 고기 한 점,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한 맛을 내는 마늘 한 쪽,
고기의 느끼한 맛을 잡아줄 장과 매콤한 고추 한 조각.
준비가 모두 끝나면 떡 벌어진 입으로 쌈을 밀어 넣는다.
우적우적 씹어 먹을수록 고기에서 나오는 육즙이 혀끝을 맴돈다. 목구멍으로 사라진다.

“크으흐”

감탄사를 절로 나오게 하는 소주 한 잔을 곁들이면 금상첨화이다.

우연하게도 소주 또한 몽골지배시기에 들어왔다.

지금이야 값이 많이 올랐다지만 여전히 '서민의 음식'의 대표격인 삼겹살. 모든 사람이 즐기게 된 데는 값도 값이겠지만 맛이 한 몫을 하는 것이다.

맛뿐이랴. 구워질 때 소리는 어떻고..

지글지글. 탁 탁. 타다닥. 치이익.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마냥 감성적이다.

사실 큰 효과는 없지만 세간의 말처럼 삼겹살이 침과 섞여 목을 쓸고 지나갈 때면 먼지까지 내려가는 것 같다. 먼지 뿐 이겠는가. 울분, 절망, 체념, 분노 등 우리의 가슴을 비집고 나와 얼굴까지 일그러뜨리는 이 감정들도 잠시 숨겨주는 비계 덩어리의 농간. 

삼겹살 찬양이다.

(사진:shutterstock)

건강에 대한 염려는 잠시 뒤로 밀어놓자. 현실을 도피할 화로를 만들자.

모두 잔을 들어라. 축배의 노래를 부르자.
모두 고기를 집어라. 배를 살찌우자.
순간을 즐겨라. 축복을 음미하라.
안식을 찾지 못하는 우리를 위로하라
돼지마저 우리를 위로하지 않으면 누가 우리를 위로하리.

삼겹살집에서 들리는 사람들의 한숨, 욕설, 푸념. 모두 다 삼겹살을 먹으며 잊고 싶은 것이다.
모두가 절망하더라도, 모두가 초라하게 실패할지라도 삼겹살 한 점에 소주 한 잔을 기울이는 순간은 찬란히 빛나는 순간이다. 지글지글 기름의 박자 소리에 넋을 놓는 순간 찾아오는 황홀.

그것이 우리네의 기쁨이요, 위로이다.

다음이야기'빵이 없었으면 레미제라블은 쓰이지도 않았다.'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미제라블(Les Miserables'의 빵빵한 이야기  


The First 추천 콘텐츠 더보기
  • “24주 연속 1위 브랜드의 저력으로”…‘나르카’ 운영사 ‘언커먼홈’, 매쉬업벤처스 등으로부터 후속 투자 유치
    “24주 연속 1위 브랜드의 저력으로”…‘나르카’ 운영사 ‘언커먼홈’, 매쉬업벤처스 등으로부터 후속 투자 유치

    이제 헤어 케어도 브랜딩이다!

  • “최근 가장 눈에 띄는 창업팀은?”…유망 초기 스타트업 뽑는 ‘혁신의 숲 어워즈’ 막 올랐다
    “최근 가장 눈에 띄는 창업팀은?”…유망 초기 스타트업 뽑는 ‘혁신의 숲 어워즈’ 막 올랐다

    최근 1년 사이 가장 주목할만한 초기 스타트업을 꼽는 '혁신의숲 어워즈'가 17일 대장정을 시작했다. 어워즈의 1차 후보 스타트업 30개 사를 전격 공개한 것. ‘혁신의숲 어워즈’...

  • “Only for you”…대세는 초개인화 서비스
    “Only for you”…대세는 초개인화 서비스

    초개인화의 기치를 내건 스타트업들이 존재감이 점점 커지고 있다.

  • 타 산업과 연계, 핵심 기술 접목…“관광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라”
    타 산업과 연계, 핵심 기술 접목…“관광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라”

    '관광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 틈새에 대한 혁신적인 시도 돋보였다!

  • “생산성, 효율성 쑥쑥 올리는 솔루션”…매쉬업벤처스, 스타트업 ‘마일 코퍼레이션’에 초기 투자
    “생산성, 효율성 쑥쑥 올리는 솔루션”…매쉬업벤처스, 스타트업 ‘마일 코퍼레이션’에 초기 투자

    기업의 공간, 자산 관리를 디지털 전환시킬 창업팀!

  • “당신에겐 더 큰 무대가 필요하다”…스타트업의 해외진출을 지원하는 스타트업
    “당신에겐 더 큰 무대가 필요하다”…스타트업의 해외진출을 지원하는 스타트업

    스타트업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는 스타트업의 등장!

  • “국내 기업의 글로벌 성장 발판 마련”…한국액셀러레이터협회, 뉴저지 진출 전략 웨비나 개최
    “국내 기업의 글로벌 성장 발판 마련”…한국액셀러레이터협회, 뉴저지 진출 전략 웨비나 개최

    국내 유망 스타트업의 미국 진출, 맞춤형으로 지원한다!

  • 초록은 동색…“함께 할 때 혁신은 더욱 빨라진다.”
    초록은 동색…“함께 할 때 혁신은 더욱 빨라진다.”

    서로 경쟁하지 않을 때 더욱 경쟁력이 높아지는 아이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