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이 없었다면 레미제라블은 쓰이지도 않았다.
빵이 없었다면 레미제라블은 쓰이지도 않았다.
빵이 없었다면 레미제라블은 쓰이지도 않았다.
2016.01.26 00:39 by 송나현

동화 ‘시골 쥐, 도시 쥐’ 속에 나왔던 지하실. 그곳에 한 가득 쌓인 음식은 봉인됐던 나의 ‘식탐’을 깨웠다. 이후 대하소설 ‘토지’를 보고선 콩나물 국밥을 사먹었고,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곤 마들렌을 처음 접했다. 쿡·먹방 시대를 맞아 음식과 문학의 이유 있는 만남을 주선해본다.

원구식 시인의 시, '삼겹살을 뒤집는다는 것은'과 함께 돌아본 우리네 음식 삼겹살. 고된 개인사로, 번잡한 뉴스로 너 나 할 것 없이 지쳐버린 지금, 돼지마저 위로해주지 않으면 누가 우리를 위로해주리.

집 근처 골목에 새로운 빵집이 생겼다. 아침도 못 먹고 허둥지둥 나오는 날엔 그냥 지나치질 못한다. 시간은 어찌 그리 정확한지. 빵집 앞을 지나갈 쯤엔 여지없이 부산스럽다. 첫 빵이 나오는 소리다. 문 열고 들어가 고민 시작. 종류가 다양하진 않지만 모두 취향 저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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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집어야 잘 골랐다고 소문날까. 이 빵집은 단팥 크림빵이 최고다. 고소하고 찐득한 단 냄새가 코끝을 스친다. 입 안엔 군침이 고인다. 포도당이 들어온 기미가 보이자 뇌는 흥분한다. 따끈한 빵을 사들고 싸늘한 길거리로 나온다. 그냥 먹으면 입천장 까질 확률 100%. 후우우, 후우우 불고 나서, 한 입 베어 문다.

2016-01-22 19.03.28

와스르 쓰러지는 크림. 손에 흐르면서 내려온다. 팥엔 견과류가 잔뜩 들어있다. 씹어서 고소한 맛을 느끼기도 전에 다급한 목구멍이 먼저 넘겨버린다. 크림은 달지 않고 팥이 달다. 완벽한 하모니. 손에 쥔 빵이 조금씩 사라져 갈 때 약간의 아쉬움.

“아, 한 개 더 살 걸…”

빵의 유혹. 정말 뿌리치기 어렵다. 장발장이 19년의 형무소 생활을 치룬 계기가 ‘빵’아닌가. 사람을 파괴할 정도의 힘이라니. 빅토르 위고가 빵의 위력을 몰랐더라면 ‘레미제라블’은 전혀 다른 얘기가 됐을 것이다.

그 빵 훔치면 19년 형살이......

장발장과 빵

‘장발장’ 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레미제라블(Les Miserables)’. 책장의 한 구석을 버젓이 ‘차지하기만’ 하는 책 TOP10 안에 든다. 총 5부작에 원고지가 8000장을 넘는 대작. 역사‧철학‧종교‧사회가 모두 한 책에 담겨있다. 프랑스의 평론가 랑송은 이 작품을 일컬어 “이 소설은 하나의 세계요. 하나의 혼돈이다”라고 말했다.

역사적 의의도 대단하다. 빅토르 위고의 생일은 프랑스 국경일이 아니던가. 방탕한 생활을 하다 딸이 사망한 후 자기 잘못을 청산하고 불후의 명작으로 만들어 낸 게 바로 이 작품이다. 집필할 때 하인들에게 모든 옷을 가져가게 한 뒤 밖에 나오지도 않고 써내려간 걸작. 작가의 (집필)의지 만큼 읽는 이도 상당한 의지가 필요하다. 읽어야 하는 책인 걸 알겠지만 쉽게 읽히지 않는 책. 전 권을 읽고 나면 자기 자신에게 경외감을 느낄 것이다. ‘아, 내 인내심이 이 정도 였다니…’

사진 : 민음사

엄청난 양도 양이지만 방대한 역사관, 평면적인 주인공들의 성격, 잘 읽히지 않는 번역체(이는 사실 모든 번역본들의 고질적 문제다.) 등도 넘어야 할 장벽이다.

심지어 읽으면서 화가 나는 부분들이 꽤 많다. 예를 들면 장발장이 19년 동안 감옥에서 살면서 키우던 증오심을 미리엘 주교의 선행 한 방에 털어버리는 장면. 19세기, 전쟁과 혁명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던 서민들이 한 줄기의 빛에 쉽게 감화될 수 있겠다고 애써 치부해 봐도, 21세기의 나로선 정말 당황스럽다.

법의 불합리와 부조리를 고발하기 위한 책인 것을 감안하면 그런 부분은 넘어 갈 수도 있다. 감옥에서 면회 한 번도 받지 못한 사람이 미리엘 주교를 만나면 개과천선 할 수도 있지. 은식기를 훔친 자에게 은촛대까지 내어 주는 마음이 어디 쉬울쏘냐.

그런데, 자베르 경감이 참회의 눈물을 흘리며 자살하는 장면에 다다르면 허탈하기까지 하다.

공무에 충실했을 뿐인데 자살하는 자베르

빵 하나에 19년 징역살이가 가혹한 형벌로 뵈긴 한다. 장발장이 억울하고 불운해 보이는 만큼, 자베르 경감이 악인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자베르 경감이 그의 뒤를 쫓을 때 장발장은 이미 신고 된 범죄자였고, 후반부에서는 탈옥수였다!

우리 경감님. 자신의 직무에 충실했을 뿐인 황정민 같은 형사다. 그가 자살까지 할 정도로 큰 잘못을 했었나.

민중의 빵

여러 가지 회의적 질문을 던졌지만, 대작이라는 것은 불변이다. 누군가에겐 인생 문학일수도 있다. 뮤지컬과 영화로 여러 번 제작되고 프랑스에서는 성서 다음으로 많이 읽힌 책이라고 하니 그 위력은 어마무시하다.

2012년판 영화가 짱이다. 특히 마리우스.

특히 처참한 민중들의 삶을 그려낸 장면은 마치 내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 처럼 섬세하게 표현됐다. 하루 15시간을 일해도 굶고, 일곱 식구를 위한 빵 한 덩어리도 없는 사회. 소설 속 장발장이 새로운 노동 패러다임을 제시하자 시민들은 열광하고 그를 찬미했다. 사리사욕을 채우지 않고, 불우한 이웃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모든 사람을 위한 사회를 만드는 정치인.

19세기, 혁명과 전쟁으로 지친 민중들은 빵을 제공하는 자를 찬미했다. 프랑스 혁명의 주역은 빵이었고 나폴레옹은 빵에게 패배했다. 소설 속 장발장은 빵을 제공했지만 나폴레옹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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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의 역사

19세기뿐이랴. 만 년 전쯤 밀을 처음 작물화하고 이집트에서 빵이 발명 된 이래로 빵은 세계사를 다시 써왔다.

이집트 벽화 속 빵

인간의 최초 화학적 성취 가운데 하나인 빵. 효모나 다른 발효재로 부풀린 가루 반죽을 오븐에 적절히 구워낸 음식이다. 메소포타미아나 이집트인들은 ‘빵과 와인’을 신의 음식이라 생각했다. 그들은 발효 중 이산화탄소가 솟아오르는 것에서 생명의 숨결을 떠올렸다. 말로 설명되지 않는 발효는 신의 작용이었다. 빵은 그렇게 인간의 삶에서 상층부가 되었다.

빵은 그리스에서 ‘페르세포네’ 신화를 만들고, 로마의 멸망을 불러일으키고, 예수 그리스도의 기적과 몸이 되고, 중세 시대 기아(飢餓) 세기를 만들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유라시아 반도에 태어나는 행운을 얻은 유럽인들. 풍족한 농작물로 빵을 만들고 기술을 발전시켜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했다. 빵으로 발전한 그들은 세기의 살육전을 벌였다. 남북전쟁 중 빵을 제대로 공급 받지 못한 남부군은 패배했고, 1차 세계대전 중 이탈리아는 미국에게 빵을 받고 나서 협상국에 남았다.

전쟁 중 빵 배급받은 군인들

우리나라 역사도 예외는 아니다. 선교사들에 의해 처음 빵이 소개된 구한 말.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로 우리나라의 비극의 서막이 올랐다.

1884년 한‧러 통사조약이 체결된 후 러시아공사의 처제인 손탁 부인이 고급빵을 소개했다. 그 후 그녀는 고종과 명성황후의 측근이 되었다. 광복 후에는 경제발전을 꿈꾸며 빵의 판매구조가 바뀌었지만 큰 성과는 나지 않았고, 1971년 2차 5개년 경제개발계획에 힘입어 빵도 대규모, 대기업의 길을 걸었다. 대량생산과 획일화로 인스턴트 취급을 받던 빵은 요즘 새로운 지식과 어우러져 갈림길을 마주했다. 유기농 빵, 건강 빵. 편의점 빵, 프랜차이즈 빵.

빵은 또 어떤 길을 가게 될까.

혹시 모르는 일이다. 내가 지금 집어든 빵이 새로운 역사를 탄생시키고 색다른 패러다임을 만들어 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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