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부모 할 것 없이 모두 ‘책 마법’에 홀렸어요! (후편)
아이, 부모 할 것 없이 모두 ‘책 마법’에 홀렸어요! (후편)
아이, 부모 할 것 없이 모두 ‘책 마법’에 홀렸어요! (후편)
2016.01.20 14:04 by 강연우

“동네서점은 오래 사귄 친구의 집과 같다.” (작가 피코 아이어)
친구의 집이 하나둘 사라지고 있다. 전국에 남은 서점 1624곳(2013년 기준), 10년마다 4곳 중 1곳이 문을 닫는다. 이런 ‘종이책 멸종 시대’에 살아남은 동네서점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눈물 나는 분투기와 훈훈한 사람 냄새가 함께하는 그곳. 동네서점의 문을 열어본다.

아이들이 졸라서 가는 서점에는 무슨 비밀이 숨어있을까? ‘즐거운 서점 견학’, ‘즐거운 토요 책방나들이’ 행사 등을 통해 지역 사랑방으로 거듭난 계룡문고를 만나보자.

이동선 계룡문고 대표는 벌서 30년 째 서점 밥을 먹고 있다. 서울에서 형이 운영하던 서점 일을 돕던 그가 대전에 새 책방을 연 건 지난 1996년 1월. 처음엔 여타 서점과 다를 게 없었다. 하지만 설립 4년이 지났을 무렵부터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우연한 기회로 친척 누나인 현민원(57·현 계룡문고 이사)씨의 동화구현을 본 이 대표는 서점 견학 프로그램과 책 읽어주기가 서점의 교육적 가치와 잘 맞는다고 생각해 동업을 제안했다.

그로부터 20년, 오랜 세월 서점을 유지하면서 힘든 점은 없냐는 질문에 이 대표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

“우여곡절이야 많죠. 지금도 그 곡절 속에 있고. 남들은 나보고 다 재벌이라고 하는데, 아마 ‘빚 재벌’일거야.(웃음)”

책을 팔아야 하는 서점은 상업성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계룡문고는 상업성보다 서점의 교육적이고 문화적인 역할에 중점을 뒀다. 그러다 보니 상업성은 늘 뒷전이었다. 마진이 많이 남는 베스트셀러를 서가에 놓기보다, 아이들에게 유익할 만한 책을 베스트셀러 목록에 꽂았다. 나무 바닥에서 책을 읽으면 아이들 엉덩이가 시리다는 말에 바닥 난방시설을 까는 데만 400만원이 넘게 들었다. 현 이사는 “어떤 게 더 좋다는 걸 알고 있는 한 포기할 순 없다”면서도 “수익보다 교육적이고 문화적인 걸 계속 추구하다 보니까 빚은 좀 많다”고 멋쩍은 듯 덧붙였다.

수익보다 교육을 택한 계룡문고, 운영이 고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빚이 한계점에 다다라도 서점을 유지하는 이유는 지역 서점에 애정이 있는 시민들이 있어서다. 시민들 얘기가 나오자 현 이사가 눈시울을 붉혔다. “저희 입장에서 고객 분들이 눈물 나도록 고마워요” 매일 적게는 8~900명, 많게는 1200명의 사람들이 꾸준히 책을 사간다고 한다. 지난해 말 계룡문고는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라는 플랜카드를 내걸고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송년의 밤 행사를 열었다. 일종의 보은 행사였다. 서점 진열대 두 개를 치우고 그 위를 무대 삼아 지역 동아리 기타, 아코디언 연주자들을 초청해 연주를 들었다. 이 대표의 감사 인사와 책 상품을 건 퀴즈 순서도 있었다. 끈끈한 관계가 지속됐으면 한다는 의미로 인절미도 돌렸다.

“우리는 생존의 벼랑 끝에서 교육 문화운동을 하고 있어요. 그러니 직접 발걸음 해주시는 분들이 얼마나 고마워요. ‘너는 고객, 나는 서점’이라는 관계를 떠나서 서로가 윈-윈(win-win)하는 공동체가 돼야 하는 거거든.”

이동선 대표의 말에 서점과 지역에 대한 애착이 듬뿍 담겨 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대전 시민들을 위해 지난 연말 열었던 계룡문고 행사 모습

계룡문고 임직원들은 “서점이라는 공간에 대한 재정립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서점은 단지 책을 사고파는 공간이 아니라 문화공간이며, 우리 지역에 건전한 문화공간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는 믿음에서다. 현 이사는 “그런 환경이 건전한 지역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동선 대표는 독서문화 장려는 서점뿐만이 아니라 지자체나 학교도 해야 하는 일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서점 가는 것을 견학, 소풍, 나들이라는 형태로 받아들여야 해요. 독일 정부가 일찌감치 버스에서 한 두 정거장 전에 내려서 서점까지 걸어가는 캠페인을 시행해온 것처럼, 우리나라도 한 달에 한 번 정도 학교에서 서점까지 걸어가는 구체적인 캠페인이 필요합니다.”

계룡문고 현민원 이사(왼쪽)와 이동선 대표.

이 대표의 책 사랑은 유별나다. 계룡문고 입구 왼쪽에는 어른 팔 넓이만한 책장에 책 읽기에 관한 자료들이 빽빽하게 꽂혀 있다. ‘서점 견학, 전교생을 책 속으로~’, ‘실컷 놀면서도 책 좋아하는 아이가 되게 하기’ 등 아동 대상 자료들이 특히 많다. 모두 이 씨가 15년간 모은 자료들이다. 관심 있는 사람은 누구나 들고 갈 수 있도록 자료들을 복사해 뒀다.

직원들은 쉴 틈 없이 움직이면서도 밝은 표정을 잃지 않는다. 4년 전부터 일했다는 박장호(46·부장) 씨는 “직원들이 책으로 묶여있다”고 했다. 20명의 직원들은 3년째 지역아동센터와 노인요양원, 어린이집에 찾아가 책 읽어주기 봉사를 하고 있다. 매월 첫 째 주 월례회 시간 중 세 시간을 봉사활동에 쓴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싫었다는 박 씨, “이제는 책 읽어주러 가서 오히려 따뜻함을 얻고 간다”며 웃는다.

지난해 송년의 밤 행사에는 서점 문을 7시에 닫고 직원들끼리 책 읽어주기 대회도 열었다. 4명으로 구성된 5개 팀이 각 2권씩 아동분야 책을 추천하고, 이렇게 모인 10권 중 두 권을 골라 서로 나눠 읽었다. 이 대표를 비롯한 3명의 운영진이 채점을 맡고 시상도 했다. 이처럼 직원들이 책 읽기에 여념 없는 이유는 책 읽는 직원에 대한 운영진 생각이 확고하기 때문이다. 박 씨는 “이 대표님을 비롯해서 직원 모두가 고객들을 위해서라도 책과 가까운 직원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라고 말했다.

계룡문고 입구 왼편 중고 서적을 파는 '책빵'코너에서 박장호 부장이 미소를 짓고 있다.

운영진과 직원들의 노력 덕에 지역 주민도 이제 지역 서점의 필요성을 안다.

“몇 년 전에 제가 살던 부산의 지역서점인 동보서적이 없어졌다고 해서 많이 안타까웠어요. 지역 서점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데, 계룡문고는 살아나는 게 돋보여요. 계룡문고가 20년 동안 명맥을 이어오는 건 책 파는 공간만이 아니라 지역 시민과 관계를 맺는 다리 역할을 하기 때문 아닐까요.” (최혜은, 대전 관평동)

왜요 아저씨 이동선 대표에게 동화책 를 선물받는 지역민 최혜은 씨. 최 씨는 "오늘 생일을 맞은 딸이 좋아할 것 같다"며 웃었다.

현민원 이사는 서점을 ‘책의 시작점’이라고 했다. 책이 어떤 방법으로 어떻게 고객과 만나느냐에 따라 고객이 달라진다는 것. 그래서 인지, 계룡문고는 책 선정이 까다롭다. 안쪽 벽면의 아동 추천도서 공간을 학년별, 나이별, 계절별로 묶어 분류했다. 다른 서점에는 들이지 않는 다양한 작가들의 동화도 받았다. 지나치게 폭력적이거나 조악한 책은 미리 제외시켰다.

지역민 강공자(대전 신성동)씨는 “추천도서 분류가 세세하게 되어 있어서 보기 편하다”고 평했다. 느리울 초등학교, 월평 초등학교 등을 포함해 10여개 단체와 협약을 맺고 있는 등 지역과의 연계도 활발하다. 지난해 10월에는 대전문화재단과 독서문화 활성화 업무협약을 맺고, ‘대전의 대표 문인 5人’의 책을 비치했다. 오른쪽의 중고책방 코너 ‘책빵’ 벽면에는 문화재단의 후원을 받은 문화 전시도 진행 중이다.

이날 서점을 방문했을 때 입구 왼편에 있던 카페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노란 천막 사이로 ‘쿵쿵’하는 공사소리가 새어나왔지만, 삼삼오오 모여 책을 보던 학생들은 전혀 아랑곳 하지 않는다는 듯 독서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겨울외투 탓에 자리가 비좁은지 어깨를 다닥다닥 붙이고 앉은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 모습을 바라보던 김용기 계룡문고 차장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마 계룡문고가 사라진다면, 저 녀석들이 가장 아쉬워할 거예요.”

계룡문고 내부 모습. 서점을 방문한 지역민들이 편안한 차림으로 책을 고르고 있다.

안 읽고는 못 배길 걸, 계룡문고의 추천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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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아날로그 책 공간>

우리나라가 나아가야 할 독서 문화의 방향을 경험할 수 있는 책입니다. 제가 꿈꾸는 책 마을의 모습이기도 한 유럽의 동화마을을 두루 다닌 작가가 그 풍경을 글로 풀어냈어요. 우리나라에 이런 책 마을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이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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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꿈의 지도>

“왜 빵이 아니라 지도를 사오셨어요?” 전쟁 중에 빵을 사오지 않고 지도를 사온 아빠를 원망하는 아이의 말입니다. 먹고 사는 문제도 중요하지만 생각의 힘을 길러주는 게 얼마나 중요한 지 알 수 있는 동화입니다. (현민원)

다음이야기 도심 한 복판 20년 만에 생긴 동네 서점 '북티크', 금요일 밤만 되면 서점 불이 꺼지지 않는다고 하는데... 심야식당, 심야버스, 심야통닭에 이은 심야서점에서 밤을 잊은 이들의 주독야독(晝讀夜讀) 현장을 만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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