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를 연기한다는 것에 대해
일본군 '위안부'를 연기한다는 것에 대해
일본군 '위안부'를 연기한다는 것에 대해
2016.01.27 11:25 by 이양구

'살아있는' 공연, 공연예술인,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모여드는 극장과 관객… 지금 '살아있는' 예술인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본다.

 내 식대로 내 길을 가는 20대들의 반란! 그 이름하야 '이십할 페스티벌'! 한파도 녹인 청춘 연극인들의 생생한 인터뷰.

일본군 ‘위안부’ 소재 연극 『하나코』 (김민정 작, 한태숙 연출, 아르코 소극장)에서 극중 ‘위안부’로 출연한 두 젊은 여배우를 만났다. 박수진(31)과 민경은(32)이 그들이다. 현재를 사는 젊은 그들은 ‘위안부’를 어떻게 이해했을까. 시대의 아픔을 연기(재현)하기 위해 어떤 방법을 취했을까. 혹시 ‘위안부’ 소재 연극에 참여하는 것이 부담스럽진 않았을까.

연극 <하나코> 포스터(사진: koreapac.kr 제공)
연극 <하나코> 출연 배우들. 왼쪽부터 박수진, 민경은. (사진: 이양구 작가 제공)

 

박수진(이하 박) = 솔직히 말하면  '위안부'라는 소재에 의식적으로 접근한 건 전혀 아니었어요. 오히려 한태숙 연출님의 작품이고, 예수정 선생님의 아역이라는 게 더 와 닿았던 것 같아요.

한태숙(56): 연극연출가, 극단 물리 대표. 민감한 소재를 깊이 있게 풀어내면서도 극적 재미를 잃지 않는다는 평가로, 최근 대학로에서 가장 ‘핫’한 연출가로 꼽힌다. ‘레이디 맥베스’, ‘단테의 신곡’ 등이 대표작. 2012년 제22회 이해랑 연극상, 2010년 제3회 대한민국 연극대상 연출상 등 수상.

예수정(51): 연극‧영화 배우. 1979년 연극 ‘고독이라는 이름의 여인’으로 데뷔, 2005년 제26회 서울 연극제 여자 연기상, 2006년 제1회 한국 여자 연극인상 등 수상. 연극 ‘밤으로의 긴 여로’, ‘허난설헌’, ‘바다와 양산’, ‘늙은 부부 이야기’ 등 주연.

 

민경은(이하 민) = 저도 소재에 대한 두려움 보다는 개인적인 두려움이 더 앞섰던 것 같아요. 2년 만에 연극 무대에 섰거든요.

박 = 하지만 마음에 걸리는 게 아예 없었던 건 아니에요. 극중에 여성학자와 방송국 피디가 공항에서 싸우는 장면이 있어요. 그러다 피디가 “결국 다 다큐멘터리 소재, 논문의 주제 아니야?”라고 말하죠. 무대 뒤에서 대기하고 있을 때 그 대사를 들었는데, 갑자기 한 방 맞는 것 같았어요. 연습할 때 계속 들었던 대사였는데도 말이죠. ‘위안부’를 그저 극중 역할로만 생각했는데… 갑자기 까발려진 느낌이랄까요.

민 = 저는 조금 달랐어요. 그 어느 때보다 좋은 연기를 하고 싶었죠. 결국 연기를 잘 해내는 게 의미를 살리는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사실 마지막 공연 때 퇴장하면서 많이 울었어요. 연극이 끝나고 나면 공허감 같은 건 늘 있지만… 이번에는 '내가 이 얘기를 더 이상 못하는 건가'란 마음에 서러웠죠. 할머니들도 인터뷰나 증언에서 여러 말씀들을 쏟아낸 뒤에 이런 마음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갑자기 복받쳐 오르더라고요.

(사진: 림에이엠시 제공)

공연을 보는 것은 단순히 내용 파악과 감동만 느끼는 것이 아닌, 현장을 목격하고 증언을 청취하는 것과 비슷한 효과가 있다. 두 배우는 배역을 연기하기 위해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에서 발간된 일본군 '위안부' 증언집인 「역사를 만드는 이야기 증언집」을 참고했다.

박 = 증언집에서 몇 마디 발췌해놓은 말씀들이 있어요. 극중 인물을 표현하는데 도움이 될 만한 증언들을 고르게 되더라고요. 그 중 하나가 “일곱 살 넘으면 천주교에서는 다 자기 죄라고 보는데… 일본 정부에게 하고 싶은 말은… 바르게 살아야지.” 라는 말씀이에요. 천주교 믿으시는 '위안부' 할머니께서 하신 말씀이죠.  (그 할머니에게서) 어떤 자책감 같은 것이 느껴졌죠. 제가 느끼는 극중 인물도 그랬고요. 그런 점에서 제가 어떤 점이 힘들었나 하면, 연기를 하면서 강간에 익숙해지는 자신을 자책하는…  ‘위안부’를 연기하면서 위안소 생활에 무감각해져 가는 자신을 표현하는 거였죠. 

극중 박수진 배우가 맡은 ‘꽃분이’는 위안소에서 일본군에게 당했던 폭력 못지않게, 동생 또한 자신이 위안소로 데리고 갔다는 죄책감도 컸다. 극중 동생을 바라보는 꽃분이에 대한 배우의 마음은 어땠을까.

(사진: 림에이엠시 제공)

박 = 초반에는 보기 싫었어요. 너무 미안하니까 보기 싫고 듣기도 싫고… 잠깐 사이의 장면에서 자매간의 관계를 보여줘야 했는데 그런 지점들이 더 어렵더라고요. 동생을 보면서 속으로 많이 생각한 건… ‘미친년.’ 왜냐면 (일본군 병사가 데리러 온다는 약속이) 아닐 것 같으니까.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으니까요.

극중 꽃분이의 동생 금아는 언니에게 일본군 군의관을 정인이라고 소개하며, 자신을 일본에 데려가노라 약속했다고 자랑한다. 하지만 결국 그 약속은 지켜지지 못하고, 쓸쓸히 죽음을 맞는다.

박 = 연기하는 내내 어떤 분노가 있었어요. 모든 것들에게 향하는. 뭔지 모를. 사람들이 농담처럼 "너 왜 유관순처럼 연기하니?"라는 얘기들을 하셨어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무슨 투쟁하는 사람처럼 꽃분이를 연기하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실제로 언니랑 위안소에 함께 갔던 동생의 증언집을 보면 “언니가 되게 괄괄했다”고 묘사돼 있어요. 맨날 싸우기도 하고요. 근데 나중에 언니도 지쳐서 포기했다는 얘기도 나와요.

민 = 저는 사실 연기하는데 도움을 얻으려다보니 자극적이고 힘든 것들이 더 들어왔던 것 같아요. 붙잡혀 갈 때 엄마가 나뒹굴어지는 모습이라든가. 일본군에게 고문당하고, 맞고, 임신을 했다든지… 일부러 '위안부'의 아픔을 더 상상하면서 극에 몰입하려고 했어요. 꽃분이의 동생으로서 좀 천진한 모습이 더 보였으면 좋겠는데, 연기는 점점 무거워지더라고요. 까르르 웃고 싶은데 왠지 그것도 죄가 되는 거 같고. 위안소이긴 하지만 그들도 거기서 자신의 삶을 살았을텐데, 웃기도 했을 텐데 말이죠. 

극 중 자매인 꽃분이와 동생 금아는 인천 소래 출신으로 가난한 집에서 자랐다. 옆집에 이사 온 일본인이 여유롭게 사는 것을 보고 동경심을 품는다. 하지만 그 일본인 집에 놀러 갔다가 꼬임에 넘어가 ‘위안부’가 된다는 설정이다. 위안소로 연행되는 과정이나 캄보디아 위안소에 도착하기까지의 여정 등은 연습 도중 수시로 바뀌었다고 한다. 우리가 흔히 들어본 어떤 전형성을 회피하고 싶었고, 그래서 일부러 확정하지 않고 비워둔 것이 많은 것 같다고 했다.

배우들은 극중 위안소에서 자신을 찾아오는 일본인 병사를 어떻게 느꼈을까. 가령 다카하시는 꽃분이의 등에 칼로 상처(문신)까지 내는 잔인한 인물로 표현되어 있다.

(사진: 림에이엠시 제공)

박 = 다카하시가 제게 “기미와 와따시노.(넌 내 거야.)” 라고 말하죠. 일본에서 자기가 만난 여자 이름도 하나코였다면서. 제 입장에서는 지긋지긋한 놈이었죠. (일본에 있는) 그 여자가 내가 갈 때 울어줬는데 너도 날 위해서 울어달라고 요구하고. 위로가 필요했겠죠. 자기도 무서우니까. 제게는 가장 싫은 사람이었어요. 너무 요구하는 게 많다고 생각했어요. 그 짧은 장면 안에서 뭐 해줘, 뭐 해줘, 이러면서. 근데 정말 소통을 원하는 요구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그 사람도 이미 정상이 아니었으니까.

연기할 때 거의 모든 것들이 조심스러웠어요. 오해의 여지가 많아서. 일본군을 혹시라도 미화시키는 건 아닐까 싶기도 했고요. 연출님도 냉철하신 분인데 이번에는 더 조심스러웠던 부분이 있었을 것 같아요. 어떤 오해를 불러 일으켜서는 안 된다는.

극 중 캄보디아 위안소가 등장한다. 실제로 배우들이 캄보디아어를 사용했다. 함께 공연을 관람한 ‘위안부’ 연구자는 “캄보디아에서 할머니와 주변 인물들이 캄보디아 언어를 사용한 것이 정말 좋았다”며 “그 상황은 '이곳이 완전 낯선 곳이다'라는 것을 관객이 느낄 수 있도록 해준 것 같다”고 말했다.

(사진: 림에이엠시 제공)

“한국인에게는 친숙하지 않은 언어가 나오니, 정말 여기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여기서 산다는 게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해준 것 같아요. 말이 안 통하는 점은 사실상 갇혀 있는 것과도 같죠. 굉장히 공포스런 것이기도 하고요.”

(사진: 림에이엠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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