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꾸는 향기를 꿈꾸다, '카페 프루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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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향기를 꿈꾸다, '카페 프루스트'
세상을 바꾸는 향기를 꿈꾸다, '카페 프루스트'
2016.02.03 14:16 by 정영균

입구에 들어서자, 부드러우면서도 따뜻한 향이 진동한다. 너풀거리는 갈대 내음 같기도, 포근한 바람의 향 같기도 하다.

“처음 맡아 보셨죠. 그게 바로 독도의 향이에요. 어때요?”

한유미 ‘프루스트’ 대표의 설명. ‘프루스트’는 서울 인사동 골목길에 위치한 카페 이름이다. 예스러운 한옥을 개조해 만든 이 곳은, 외관만큼이나 독특한 특징이 있다. 바로 향(香) 전문 카페라는 점. 매장 테이블마다 향초가 하나씩 놓여있는데, 손님이 자리를 잡으면 향초에 불을 붙여준다. 연보랏빛을 띠는 향초에는 ‘DOKDO’라는 라벨이 붙어있다. 공간을 가득 채운 독도향의 정체다. 그런데 왜 독도의 향일까?

카페 프루스트의 테이블에 놓여져 있는 '독도향'

사회적기업가, 독도에 꽂히다

“어릴 때부터 독도문제에 유독 관심이 많았어요. 분쟁의 땅으로만 여겨지는 것도 안타까웠고요. 스토리나 자연 같은 게 정말 매력적인 곳인데… 독도를 지키기 위해선 많은 사람들이 독도를 알고, 좋아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유년 시절부터 이어져 온 한 대표의 독도사랑은 2014년 사회적기업 육성사업(4기,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과정에 참여하며 구체화됐다. 가구 회사에서 일했던 경험을 살려 ‘독도테이블’을 만들고, 크라우드 펀딩으로 ‘독도보틀’ 프로젝트를 기획해 한 달 동안 2300만원을 모금하기도 했다. 당시 독도보틀 프로젝트에 참여한 인원은 모두 1700여명. “독도를 알리자”는 목표가 이뤄진 셈이다. 독도향을 담은 카페 ‘프루스트’의 론칭도 이런 활동의 연장선이다.

“마르셸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보면, 홍차와 마들렌 향을 통해 주인공이 어린 시절을 떠올리잖아요. 후각은 기억과 밀접한 관련이 있거든요. 독도향을 맡았을 때 우리가 언젠가 보고 들었던, 독도를 떠올리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900_사진2 독도향

상상 통해 재현된 독도의 향, 독도살리기에도 기여

‘산 넘고, 물 건너 뱃길 따라 200리’라는 독도. 멀기도 하거니와, 섬에 들어가는 시기나 인원까지 제한돼 있을 정도로 접근이 쉽지 않다. 독도의 향을 재현하기 위해 상상력이 필요한 이유다.

“독도향을 만들기 위한 최초의 작업은 상상이에요. 독도의 자연을 담은 사진들을 보면서 향에 대한 느낌을 그리죠. 최초 출시가 ‘독도의 날’(10월 25일)이었기 때문에 독도의 가을을 많이 연구했어요. 사진에서 본 갈대, 들꽃, 바다, 흙으로 나눠 향들을 선택했죠.”(문인성 프루스트 조향사)

이후에는 상상한 향을 원료들과 매칭하는 작업이 이어진다. 흩날리는 들꽃은 ‘헬리오트로프(Heliotrope‧향료의 원료로 쓰이는 보라색 꽃)’를, 갈대와 흙은 ‘제라늄(Geranium‧화려한 색을 자랑하는 관상용 꽃) 천연오일’을 사용하는 식이다. 그 외에 ‘시더우드 오일’, ‘베티버 오일’, ‘바닐라’향 등도 활용됐다.

향을 만들 때의 고민이 담긴 포뮬러(제조법)

처음 이뤄지는 시도이니 만큼 우여곡절도 많았다. 원료가 섞이는 정도에 따라 결과는 천차만별로 나타났다. 문인성 조향사는 “의도했던 것과 다른 향이 나와 원료의 양을 조금씩 빼고 더하는 과정이 지루하게 이어졌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전혀 새로운 향료를 추가해보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10월 첫 선을 보인 독도향(제품명:Brown Weed)은 이런 시행착오 끝에 탄생했다. 출시와 동시에 크라우드 펀딩 ‘와디즈’를 통해 제품을 소개하기도 했는데, 펀딩 목표금액(300만원)을 훌쩍 넘기며 시민들의 반응을 확인했다. 펀딩을 통해 모인 금액은 향후 독도의 4계절을 표현한 향 제작과 ‘독도 해양생태계 복원 프로젝트’ 등에 쓰일 예정이다.

'와디즈' 크라우드펀딩 당시의 화면

한편, 올해 초 완공되는 서울 성동구 ‘언더 스탠드 에비뉴’의 오픈스탠드에서는 프루스트의 ‘신상’도 공개될 예정이다. 노인 소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마법의 향이다. 한 대표는 “젊은 세대가 노인을 멀리하고, 꺼리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냄새”라며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천연 섬유 향을 통해 세대 간 화합을 도모해볼 생각”이라고 밝혔다. 프루스트는 이 활동을 통한 수익금을 노숙인‧독거노인 등에게 기부할 예정이다.

문인성 조향사(사진 왼쪽)와 한유미 대표(사진 오른쪽)

한유미 프루스트 대표 인터뷰 영상

직접 체험해 본 나만의 향 만들기

① 8가지의 향 중 마음에 드는 향 하나를 선택한다. 이 향이 베이스가 된다. 기자는 포근하고 따뜻한 ‘머스크 향을 선택했다.

베이스향

② 베이스 향 선택 후 만들고 싶은 향의 느낌과 이미지를 상상한다. 기자는 일요일 오전 11시, 햇살이 들어오는 소파에 앉아 독서하는 장면을 상상했다.

③ 이미지에 대한 내용을 들은 조향사가 추천 향을 제시한다. 그 중에서 ‘헬리오트로피’와 장미향, 올리브향, 난초향을 선택했다.

이미지에 따라 조향사가 향을 추천한다.

④베이스 향을 중심으로 포뮬러를 만든다. 총 40g의 향수를 만드는데 베이스 향은 보통 30g정도를 차지하고, 나머진 추천 향을 골고루 섞는다. 이 과정은 스포이트와 전자저울을 통해 이뤄진다. 

포뮬러(제조법)를 기록해 두면 다음에도 같은 향을 제조할 수 있다.

900_사진8 향수제작

⑤ 향이 만들어지면 이름을 짓는다. 기자가 정한 이름은 ‘the first perfume’.

⑥ 이름을 적은 라벨을 향수병에 붙이고 포장을 하면 마무리.

900_사진10 완성향수

포장까지 완성된 향수의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