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내부자들> 보고 권력 리터러시 높이기
영화 <내부자들> 보고 권력 리터러시 높이기
영화 <내부자들> 보고 권력 리터러시 높이기
2016.02.04 00:35 by 돔돔

세상이라는 복잡한 퍼즐을 영화로 푼다. 비약과 억측이 난무하는 다분히 개인적인 영화 독법. 지금 여기 한 편에 영화가 도마 위에 오른다.

“정의? 대한민국에 그런 달달한 것이 남아 있긴 한가?” (정치깡패 안상구)

“어차피 대중들은 개‧돼지입니다” (논설주간 이강희)

지난해 하반기 극장가를 달군 영화. <내부자들>의 명대사다. 정치인, 재벌, 그리고 언론인 사이의 은밀한 유착관계를 후벼 파는 영화에 많은 사람들은 환호했다. 최근엔 감독판까지 상영되며, ‘19금’ 영화 관객기록을 연일 새로 쓰고 있다.

분명 이 영화는 말초감각을 자극하는 판타지다. 많은 사람들이 영화에서 묘사하는 권력자들의 추악함에서 현실 정치의 그것을 느꼈다. 기업 회장이 검찰의 수사 압박으로 생을 마감하기 직전에 총리의 뇌물 수수를 폭로하고, 여성 비하에 불륜 스캔들까지 났던 정치인이 당당하게 선거 출마를 선언하는 요즘의 정치 상황에서 이 영화는 한 잔의 시원한 청량음료였으리라.

영화 ‘내부자들’은 사이다 무비다.

그런데 필자는 이 영화의 진정한 가치가 '사이다'를 넘어, ‘권력 리터러시(Literacy: 읽고 쓰는 능력)’에 있다고 본다. 기원 전 그리스의 철학자들부터 현대의 정치학자들까지 분석해왔던 ‘(정치)권력’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는 계기를 준다는 것이다. 여기서 권력 리터러시는 ‘권력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축적하고 비판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영화 <내부자들>이 보여주는 권력 세계는 무엇이고 우리는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들만의 리그, 권력은 결국 엘리트에게 

영화 <내부자들>의 주인공들은 우리 사회를 이끄는 세력을 대표한다. 검사, 재벌, 정치인, 언론인, 그리고 조직 보스까지…

뉴스를 볼 때면 항상 이들의 이야기가 전면에 등장한다. 내 이름을 검색하면 수많은 동명이인이 나오지만, 이들의 이름은 대게 선명한 프로필사진과 함께 소속‧생년월일·학력사항 등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다. 내가 페북이나 블로그에 쓰는 얘긴 많아봤자 20~30명의 ‘좋아요’를 받지만, 이들의 말 한마디는 그날 저녁 TV 뉴스에 실린다.

이른바 엘리트(élite)다. 모든 주인 된 권리가 국민에게서 나오고 인간이기에 평등하다고 규정한 민주공화국에서 살고 있지만 이들에게 주어지는 특별함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통치 엘리트론’, ‘권력엘리트론’ 등을 내놓은 현대 정치학자들은 “민주주의 사회에서도 권력은 불균등하게 분배되어 있고 엘리트가 실질적으로 권력을 독점한다”고 주장했다. ‘국민들을 개와 돼지’라 정의하는 논설주간의 당당함, 수많은 비리에도 여유롭게 회식을 할 수 있는 내부자들의 여유는 바로 여기서 나오는 것이다.

정말 민주주의 사회에서 엘리트에게 권력이 독점되는가? 여기 재밌는 연구들이 있다.

애틀란타 시의 권력엘리트를 분석한 헌터의 저서 <지역사회권력구조>

1950년대 헌터라는 미국 정치학자는 조지아 주 애틀란타 시에서 175명을 우선 선발했다. 모두 정치·경제·사회·교육를 대표하는 인물들이었다. 여기에 지역 저명인사들 27명의 추천을 받아 정책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40명도 추려냈다. 18명의 기업 임원, 5명의 공무원, 2명의 노동단체 지도자 등이 여기에 포함됐다. 흥미로운 건, 뽑힌 이들이 모두 인근지역에서 모여 살며 자주 왕래하고, 만나는 곳도 일정했다는 점이다. 50만의 인구를 가진 미국의 한 도시의 정책이 서로 친밀한 소수의 엘리트들에 의해 결정되고 있다는 방증이다.

밀즈의 <권력엘리트>

미국의 사회학자 밀즈의 연구는 이런 엘리트가 세습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미국의 저명인사록’에서 세대(1900·1925·1950)별로 엘리트 275명을 뽑아내 이들의 특성을 분석했는데, 각 세대별로 아버지가 상류계층인 비율이 39%, 56%, 68%로 나타났다. 젊은 세대일수록 아버지가 상류계층인 비율이 높단 얘기는 부와 권력의 세습을 의미한다. 서로 간에 관계를 맺고 있는 비율,  아이비리그 출신 비율도 비슷한 수치를 나타낸다. 최근 유행하고 있는 ‘금수저’ 논란을 감안할 때, 한국 역시 이에 못지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가능하다.

결국 이들의 주장은, 권력 엘리트들은 ‘내부자들’이 되어 사회의 의사결정을 ‘요리하고’ 있다는 것을 뒷받침한다. 이 영화는 철저하게 이런 관점을 보여주고 있다. 일차적으로만 보면 우장훈 검사(조승우 역)와 깡패 안상구(이병헌 역)가 함께 타락한 엘리트들을 처벌하며 시원한 복수극을 완성하는 것 같다. 하지만 그들 역시 본격적인 지도자의 위치에 서길 희망하는 엘리트 지망생일 뿐이다. (*스포주의) 한강 넘어 국회를 바라보며 미소 짓는 그들의 마지막 모습에서 ‘진정한 정의’를 느끼기엔 무리가 있다. 어떻게 보면 어차피 엘리트가 요리하는 사회에서 국민을 위한다는 위선이 아니라 권력에 대한 욕구를 ‘순수하게’ 드러내는 그들이 멋진 걸까?

은폐된 권력: 무의사결정론(non-decision making)와 제3차원의 힘

무의사결정론을 주장한 바크라크, 바라츠의 <권력의 두 얼굴>

지금까지 노출된 권력 엘리트에 대해 다뤘다면, 이번에는 쉽게 보이지 않는 권력에 대해 알아보자. 영화에서 이강희 논설주간(백윤식 역)은 자신이 ‘킹메이커’임을 자처한다. 그의 필봉(筆鋒:붓끝) 덕에 기업은 비리 사실을 은폐했고 검찰은 과잉수사라고 물을 먹었으며, 정치인은 대선후보로 성장했다. 기업의 비리를 폭로하며 자신을 위협하는 조폭에 대해선, 사적인 의혹을 제기하며 묻어버린다. 사실 이강희에게 이 계책은 최선이 아니었다. 안상구가 건넨 비리자료를 통째로 덮으려는 게 애초 계획이었으니깐. 바크라크와 배러츠는 권력자의 이런 행동을 ‘무의사결정론’이라 명명했다.

무의사결정론은 권력자에게 불리한 이슈가 제기되는 것 자체를 봉쇄함으로써 자신들의 이익을 단단히 하는 것이다. 인디애나 주의 게리 지역에서는 환경 문제가 있음에도 지역민들의 의제 상정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바크라크와 배러츠는 이런 현상의 원인에는 ‘U.S. Steel’이라는 거대 철강회사가 있었음을 확인했다. 철강 회사가 지역 경제를 틀어쥔 상태가, 환경 문제에 대해선 입도 뻥긋 못하는 상황을 만든 것이다. 언론은 사회의 감시견(Watchdog)으로서 이러한 무의사결정론에 저항해야 한다. 하지만 영화에서 논설주간으로 대표되는 언론이 역시 엘리트가 되어 권력을 공유하는 바람에, 사회적 관심은 엉뚱한 곳(조폭의 범죄)을 향할 수밖에 없었다.

여가와 사치로 자신들을 구분짓는 자본가 계급을 풍자한 베블런의 <유한계급론>

루크츠는 더 나아가 사람들이 자신의 이익과 선호를 이해하는 방식에 권력자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도 하였다. 그는 이를 제3차원적 힘이라 하였다. <내부자들>에서 우장훈 검사는 ‘출신 문제’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검사가 되기 어렵다는 것에 열등감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그는 성과에 과도한 집착을 보인다. 과연 그가 검사가 되기 전에도 중수부에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을까? 왜 조폭 안상구는 기업 비리자료를 논설주간에 넘기며 자신의 자리를 요구했을까? 사회적으로 어떤 것이 선호되고 이익으로 여겨지는지 결정하는 건, 결국 그 자리에 있는 권력자다. “권력자인 유한계급(有閑階級)이 여가와 사치를 누릴 수 있다는 것에서 노동자 계급과 자신들을 구분하고 동경하게 했다”는 베블런의 주장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결국 영화 <내부자들>을 통해 우리는 엘리트들이 뒤에서 어떻게 자신들의 권력을 굳건히 하는지, 즉 권력의 은폐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한 가지 희망? 온라인 시대의 권력 역전

사실 이런 정치권력 이론들만 읽힌다면 현실 정치에 대해서 너무나 비관적일 수밖에 없다. 영화 <내부자들>이 실제 그런 측면을 강조하긴 하나, 그럼에도 한 가지 희망(?)을 찾을 수 있다. 바로 온라인 시대에서의 권력 역전이다. (*스포주의) 영화에서 복수가 거의 실패로 끝나가는 찰나 감옥에 있던 조폭 안상구는 “다 풀어버려”라고 외친다. 그러고 내부자들의 추악함을 담은 동영상은 만천하에 공개된다.

국회의원이 회의 도중 스마트폰으로 딴짓을 하다 망신을 당하고, 문자 내용이 공개돼 정치 모략이 드러나는 건 이제 일상이다. 모두가 모두에게 메시지를 던질 수 있는 모바일, SNS 시대에 높아진 투명성의 결과다. 권력에 대한 비판의 주체가 기존 공공기관이나 제도권 언론이 아닌 일반인이 되는 것이다. 실제 정치에 관심이 없다고 여겨지는 젊은 세대도 온라인에서만큼은 ‘정치효능감’(자신의 행동이 정치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친다고 여기는 신념)이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적어도 이런 온라인상의 권력 역전만큼은 영화 <내부자들>이 일반인에게 주는 위안일 수 있다.

<내부자들>은 온라인 시대의 권력 역전 가능성을 시사했다.

나는 누구, 여기는 어디?

지금까지 영화 <내부자들>을 권력 리터러시 측면에서 살펴보았다. 이 영화는 현재 정치 권력 현상의 특징들을 드러낸 영화였다. 유의할 점은 앞서 제시한 정치학자들의 이론들이 그저 ‘어쩔 수 없다’는 비관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들은 더 높은 차원의 민주주의를 기원하며 현실을 비추었다. 영화를 만든 감독 역시 어느 정도는 권력에 대한 카타르시스를 넘어선 저항과 분노를 생각하지 않았을까?

다시 말하지만 이 영화는 분명히 판타지고 과도한 설정이 많다. 하지만 요즘 돌아가는 상황과 비슷한 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관객들은 이 영화를 보고 생각할 것이다. 엘리트에게 권력이 돌아가는 현상이 정당한 것인지. 그리고 물을 것이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문제제기를 할 기회조차 잃어버리진 않았는지.

참고자료

정치학의 이해, 서울대학교 정치학과 교수 공저, 전영사
국가와 권위, 박효종, 전영사
민주주의와 권위, 박효종, 서울대학교출판부
온라인과 SNS 사용이 정치참여에 미치는 효과, 김은이, 정치커뮤니케이션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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