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정적 간섭주의’, 시저는 과연 훌륭한 리더인가? <혹성탈출:반격의서막>
‘온정적 간섭주의’, 시저는 과연 훌륭한 리더인가? <혹성탈출:반격의서막>
‘온정적 간섭주의’, 시저는 과연 훌륭한 리더인가? <혹성탈출:반격의서막>
2016.02.16 10:46 by 돔돔

세상이라는 복잡한 퍼즐을 영화로 푼다. 비약과 억측이 난무하는 다분히 개인적인 영화 독법. 지금 여기 한 편에 영화가 도마 위에 오른다.

영화 ‘내부자들’을 통해, 권력과 권력자들의 ‘내부’를 파헤쳐본다.

“Apes shall not kill Apes.”

(주인공 시저가 세운 유인원 공동체의 원칙)

“You are not Apes!”
(주인공 시저가 배신자 코바를 응징하기 직전 외치는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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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7월, 인간과 유인원의 갈등을 그린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을 본 사람들은 주인공 시저를 보고 감탄했다. 시저는 유인원들만의 강력한 공동체를 건설했다. 그리고 전염병으로 멸종 직전인 인간들을 경계해 조직의 힘을 보여주면서도 아량을 베풀었다. 그리고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배신자를 확실히 처벌하며 공동체를 지켰다. 이런 그의 리더십은 몇 마디 안 되는 대사에 그대로 실렸다. 탁월한 지도력과 초인적인 자질을 갖춘, 막스 베버가 말했던 ‘카리스마적 권위’를 시저는 그대로 갖췄다. 관람객에겐 두려움과 무지로 일관하던 찌질한 인간들보다 훨씬 멋진 리더로 기억될 수밖에 없었다.

온정적 간섭주의로 설명되는 시저의 리더십

온정적 간섭주의를 이미지로 표현한다면.. (출처: 구글 이미지)

필자는 시저의 리더십을 보며 ‘온정적 간섭주의(paternalism)’라는 개념이 생각났다. 온정적 간섭주의란 경험이나 지식 부족으로 잘못된 결정을 할 수 있는 타인의 의사에 상관없이 그의 선(善)을 위해 결정을 강제(혹은 유도)하는 것을 말한다. 부모가 미성년 자녀에게, 스승이 제자에게, 의사가 환자에게 흔히 보일 수 있는 태도가 그것이다. 정부가 국민들에게 공교육과 건강보험, 국민연금을 강제하는 것도 이 온정적 간섭주의에 기원을 두고 있다.

모리스가 어린 유인원들에게 Ape not kill Ape 원칙을 가르치고 있다.

영화 속에서 시저는 시종일관 이런 온정적 간섭주의적 리더의 면모를 보인다. 그는 공동체의 제1규칙을 ‘Apes shall not kill Apes’이란 당위적 명제로 정립한다. 오랑우탄 모리스로 하여금 자라나는 꿈나무 유인원 세대들에게 알파벳과 함께 처음 가르치게 하는 것이 이 질서다. 그리고 시저는 사춘기적 반항심을 가진 자신의 아들 푸른눈과 인간에 대해 깊은 증오심을 가진 코바를 타이르거나 혼내면서 (자신이 생각하는) 바른 길로 이끌려 한다. 마지막으로 모두가 보는 앞에서 배신자 코바를 처단하며 앞으로 공동체를 지킬 사람이 자신뿐임을 입증한다. 인간과의 결전을 준비해야 한다는 운명 역시도 다른 누군가가 아닌 시저의 머리와 입에서 나온다.

온정적 간섭주의의 한계: You are not Apes!

결국 유인원들은 온정적 간섭주의자 시저가 만든 질서 안에서 교육받고 이끌어지는 수동적 존재들이다. 악당 코바나 아들 푸른눈을 제외하고는 어떤 유인원도 시저의 결정에 토를 달지 않는다. 사실 시저는 1편(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에서 갇힌 유인원들을 해방하던 그 순간부터 이들의 영도적 존재가 되어야 하는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 그의 해방과 건국은 그 앞에 어떤 유인원도 무릎을 꿇고 공손히 손을 내밀어야 하는 권위를 부여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역시 ‘유인원은 인간처럼 영악하지 않다’는 인식이 편협했음을 고백하는 불완전한 존재다. 진정한 리더라면 이런 불완전함이 초래하는 잘못된 의사결정의 가능성을 경계하고 반대자의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 경영학에선 조직은 거부권(Veto)을 행사하는 레드 팀이 있어야 더욱 합리적인 의사결정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존 스튜어트 밀은 시장에서 상품이 경쟁하듯 진리 역시도 자유롭게 경쟁할 수 있을 때 참 진리로 거듭날 수 있다고 하였다. 아무리 결정자가 뛰어나고 그 결정이 정당하다 할지라도 반대자와의 소통이 없다면 그것은 거짓 진리가 되어버리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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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저는 앞서 말했듯이 자신의 불완전함을 인정하기는 했다. 하지만 그 깨달음은 코바의 반역에서 기인한 것이지 누구로부터의 설득이나 논박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패배가 확실한 상황에서 ‘Apes shall not kill Apes’ 원칙으로 자신을 살려달라는 코바에게 시저는 단호히 말한다. ‘You are not Apes!’ 너는 유인원이 아니다... 아무리 다른 유인원을 죽이고 반역을 꾀했던 코바라지만 그를 공동체 일원이 아니라고 정의해 처단하는 시저의 모습은 솔직히 무섭다. 코바는 자신의 충실한 행동대장이자 개국 공신이었고, 결과적으로 유인원은 코바의 증오심대로 인간과 싸우게 되었지 않는가? 어쨌든 시저는 코바를 응징해 질서를 재정립했으며 역시 그런 그의 결정에 어떤 유인원도 의견을 제시하지 않는다. 온정적 간섭주의의 한계는 바로 여기에 있다.

온정적 간섭주의의 위험성: 낮은 지속가능성

배신자 코바 한 놈만 처단하는 시저

시저가 코바에 대한 복수를 위해 힘을 비축했을 때 그는 아들 푸른눈에게 이렇게 말한다. 유인원들은 결국 힘 있는 유인원을 따를 수밖에 없다고. 그리고 시저는 자신의 왕좌를 차지하기 위해 결국 ‘한 놈’만 처치한다. 반역의 우두머리 코바다. 코바가 죽고 시저가 자신의 힘을 입증하자 유인원들은 기존의 온정으로 자신들을 훈육한 시저에게 자신들의 미래를 그대로 맡긴다. 어떻게 보면 해피엔딩 같지만 이는 외려 유인원 공동체의 취약성을 드러낸다. 이에 대해선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에서 잘 정리했다.

도덕과 종교 논리가 아닌 정치 자체를 있는 그대로 풀어낸 마키아벨리의 역작 <군주론>‘정복자가 병합한 지역이 자치에 익숙하지 않으면 다스리기 더욱 수월하다. 이들 지역을 안전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 지역을 통치했던 군주 가문을 제거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군주론>, 니콜로 마키아벨리(신재일 譯))

그러면서 그는 술탄이 전제적으로 다스리는 투르크 왕국(오늘날 터키)을 사례로 들며 특정인에게 권력이 집중된 나라들은 정복하기는 어려우나 점령 이후엔 다스리기 쉽다고 하였다. 여기서 투르크와 같은 나라의 군주들이 바로 온정적 간섭주의의 전형적 리더들이다. 집단의 운명을 모두 ‘뛰어난’ 리더가 결정할 때 그 치세는 훌륭할 수 있으나 외적 변수에 따라 쉽게 무너지게 마련이다. 공동체의 지속가능성이 낮은 것이다. 정도전이 조선의 본을 세울 때 왕권을 제한한 재상정치를 이상으로 뒀던 것도 바로 여기에 있다. 리더의 역량과 자질은 집단의 운명에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시저 역시도 언제까지나 온정적 간섭자로서 군림해서는 그 집단의 지속성을 보장하지 못함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국제 사회에서의 온정적 간섭주의 리더 미국? (출처: 한국경제)

이제까지 <혹성탈출:반격의서막>의 멋진(?) 주인공 시저의 리더십을 온정적 간섭주의로 설명하고 그 한계와 위험성을 논의했다. 상상에 기반한 영화 한 편에 이런 너스레를 떠는 것이냐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시저를 빈 괄호로 두고 거기에 다니는 직장의 오너, 국가원수, 그리고 국제사회의 리더인 미국을 적어보면 문제는 달라질 것이다. (사실 필자의 괄호엔 자유민주주의의 전도자이자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패권국 미국이 적혀 있었다..)

결국 결론은 이것이다. 우리는 유인원들처럼 훌륭한 리더를 좇기보단 개개인이 먼저 훌륭해져서 리더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모든 피폐함을 개인의 노오오오력 부족 탓으로 돌리는 헬조선이라지만 그렇다고 이런 고민조차 안 한다면 우리는, 원숭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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