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최초의 도전, 조세르의 계단식 피라미드
인류 최초의 도전, 조세르의 계단식 피라미드
2016.02.17 11:16 by 곽민수

파피루스 기록물을 통해 고대 이집트인들의 생활상을 그렸던 ‘고대 이집트 엿보기’. 이제 그 현장으로 직접 가본다. 이집트 연구가 곽민수의 두 번째 연재물 ‘고고학자와 함께하는 이집트 유적 기행’은 고대와 현대가 공존하는 이집트의 매력을 소개하고, 현지 유적을 통해 5000년 전 역사속 세계로 초대한다.

피라미드는 절대군주의 왕묘인가?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것이 많아 더욱 매력적인 피라미드. 사카라(Saqqara)에서 직접 만나보자. 고고학자와 함께.

사카라에는 총 12기의 피라미드가 있습니다. 그 피라미드들 가운데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역시나 조세르(Djoser)의 계단식 피라미드입니다. 이 피라미드는 약 4600년 전에 세워진 역사상 최초의 피라미드입니다. 이 독보적인 명작이 사카라에 세워진 이후, 많은 후대 파라오들이 인근에 자신의 피라미드를 건설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피라미드는 조세르의 피라미드보다 후대에 지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에는 모래언덕과 비슷한 모습으로만 남아있어 그것이 원래는 피라미드였다는 사실을 겨우 짐작하게만 할 뿐입니다. 최초의 피라미드는 여전히 당당한 모습으로 서 있는데, 후대의 것들은 거의 다 무너져내려 초라한 모습으로 남겨져있다…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최신의 것들이 오래된 것들보다 더 훌륭하다거나 정교하다는 상식은 적어도 이집트에서 만큼은 수정될 필요가 있습니다.

 

조세르의 계단식 피라미드(좌)와 우세르카프(Userkaf)의 피라미드(우) (사진: 곽민수)
우세르카프의 피라미드. 조세르의 피라미드보다 약 200년후에 지어진 피라미드임에도 불구하고 현재는 모래언덕과 비슷한 모습으로 남아 있습니다. (사진: 곽민수)
조세르의 계단식 피라미드 (사진: 곽민수)
조세르의 계단식 피라미드 내부 구조 (도면: 곽민수)

이 최초의 피라미드에는 ‘최초’가 붙는 타이틀’이 또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세계 최초의 석조 건축물’이라는 타이틀입니다. 물론 이 피라미드가 만들어지기 이전에도 돌은 건축재료로 사용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때에 지어진 건축물들은 건물 바닥을 돌로 만들거나, 석조 문을 세우는 것과 같이 건축물의 일부분에만 돌이 사용되었습니다. 건축물 전체가, 그것도 높이가 60미터가 넘을 정도로 거대한 규모의 건축물이 순전히 돌로만 만들어진 것은 이 조세르의 계단식 피라미드가 분명 인류 역사상 첫 번째입니다. 돌이라는 소재는 그 특성상 반영구적으로 보존이 되는데, 그런 점에서 돌로 건축물을 짓기 시작했다는 것은 파라오들이 영원에 대한 도전을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피라미드가 지어진 이후 450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 여전히 당당한 모습으로 서 있는 모습을 볼 때에 그 도전은 일단은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카라 중심부 지도 (그래픽: Mark Lehner, 2008. The Complete Pyramids)
조세르 피라미드의 묘역

높이가 60미터에 이르는 이 거대한 건축물은 유적지의 매표소를 통과하기만 하면 쉽게 눈에 들어 옵니다. 하지만 피라미드의 온전한 맛을 느끼기 위해서는 조금 더 걸어 묘역 안쪽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특히나 이곳에서는 기자를 비롯한 다른 지역의 파리미드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특별한 형식의 묘역이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일부는 무너져버렸지만 높이가 7-8 m에 이르는 높은 벽이 묘역을 둘러싸고 있는데, 이 벽은 묘역을 외부세계와 완전히 단절시켜 사후세계의 일부로 만드는 상징적 기능과 그와 동시에 피라미드를 외부로부터 보호하는 실질적인 기능을 합니다. 이렇게 피라미드와 다양한 부속 건축물들이 담으로 둘러싸여 하나의 복합체(complex)를 구성하고 있는 형식은 3왕조 시대 초기에만 사용되었고, 이후 4왕조 시대의 피라미드들은 이 형식을 따르지 않습니다. 묘역의 남동쪽에 있는 입구를 지나 보존상태가 상당히 좋은 회랑을 지나게 되면 드디어 묘역의 경내에 다다를 수 있습니다.

묘역 입구와 피라미드 (사진: 곽민수)
묘역으로 향하는 회랑 (사진: 곽민수)

외부세계와는 단절된 죽음의 공간인 이곳에서는 어쩐지 경건해져서 이마에 흐르는 한 방울의 땀조차 조심스럽게 닦아내게 됩니다. 만약 단체 관광객들이 찾지 않는 이른 오전이나 늦은 오후에 이곳을 찾는다면, 한없는 고요 속에서 지난 수 십 세기 동안 쌓여온 엄숙한 시간의 무게를 생생하게 느껴볼 수 있습니다.

시간의 무게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은 현재에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사진: 곽민수)

피라미드의 주인공 조세르는 3 왕조 시대의 두 번째 파라오입니다. 하지만 널리 알려진 조세르라는 이름은 후대의 기록에서만 발견될 뿐이고, 실제로 사카라의 계단식 피라미드 주변을 비롯하여 그의 기념물들에 새겨진 파라오의 이름은 ‘성스러운 몸’이라는 의미를 지닌 네체르케트(Netjer-khet)입니다. 4600 년 전에 실제로 살아 숨 쉬었던 이 인물을 우리는 카이로의 이집트 박물관에서 직접 만나볼 수 있습니다. 저 깊은 시간 속에서 살아가던 고대의 인물을 직접 대면하는 것은 분명 특별한 경험입니다. 우리가 직접 만나볼 수 있는 파라오 조세르의 석상은 네메스라고 불리는 머리 장식을 하고 몸에 꼭 맞는 망토를 두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마도 원래는 값진 보석이 박혀 있었을 석상의 두 눈은 지금은 텅 비어 있는데, 이 깊게 패인 눈이 그를 무척이나 강인한 남자로 보이게 합니다. 아닌 게 아니라 그는 틀림없이 의지가 강한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보통 수준의 의지를 가진 남자였다면 이 대단한 도전을 감히 시작할 수 조차 없었을 것입니다. 실제로 계단식 피라미드는 여러 번의 증축 과정을 거쳐서 완성되었습니다. 이처럼 영원을 향한 조세르의 도전은 단번에 완성된 것이 아닌, 오랜 과정을 걸쳐서 만들어진 의지의 산물입니다.

조세르 석상. 카이로 이집트 박물관 소장

조세르의 석상은 계단식 피라미드 북쪽의 세르답(Serdab)이라고 불리는 부속 건축물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세르답이란 곳은 죽음 이후에도 여전히 무덤 주위에 머물러 있는, 이집트 인들이 카(ka)라고 부른 영혼을 위한 공간인데, 그 카를 위하여 이곳에는 무덤 주인의 모습을 꼭 닮은 석상이 모셔졌습니다. 특별히 조세르의 석상은 여태껏 이집트에서 발견된 비슷한 크기의 것들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입니다. 방금 말씀 드린 것처럼 세르답에서 발견된 원래의 석상은 현재에는 카이로의 이집트 박물관에서 만나실 수 있지만, 실제의 세르답에도 잘 만들어진 복제품이 놓여져 있습니다.

세르답 내부의 조세르 석상 (사진: 곽민수)
피라미드의 북면에 위치한 세르답 (사진: 곽민수)
세르답이 있는 피라미드의 북면 (사진: 곽민수)

조세르의 계단식 피라미드을 이야기할 때에 임호텝(Imhotep)이라는 인물은 반드시 언급되어야 합니다. 임호텝은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피라미드의 주인인 파라오 조세르보다 계단식 피라미드를 논할 때에는 더 중요한 인물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임호텝은 이 피라미드의 설계자이자 건축 감독관이었습니다. 헐리우드 영화 ‘미이라’에서는 왜인지 모르게 집착이 강한 탐욕적인 신왕국 시대의 인물로 그려졌지만, 사실 이 임호텝이라는 인물은 고왕국 시대 최고의 현자이자, 대신관, 의사, 박학다식한 대학자이며, 위대한 행정가였던 인물이었습니다. 후대에는 신격화되어 많은 이들의 신앙의 대상이 되기도 했던 이 인물을 복수심에 가득한 괴물로, 그것도 시대까지 마음대로 바꾸어서 그려낸 헐리우드 식 상상력은 조금은 실망스럽습니다.

임호텝상. 덴마크 코펜하겐 칼스버그 박물관 소장. 말기시대. 고왕국 시대 인물의 상이 그가 살던 시대로부터 1500년도 훨씬 더 지난 말기시대에도 만들어진 것은 임호텝이 신격화되어 꾸준히 신앙의 대상으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사진: 곽민수)

아쉽게도 사카라에서는 피라미드의 내부로 들어가 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묘역을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건축물들은 그 아쉬움을 충분히 달래줍니다. 동서 277m, 남북 545m 의 규모를 자랑하는 거대한 묘역은 앞에서도 말씀 드렸던 것처럼 상당히 높은 외벽으로 둘러싸여있습니다. 외부와는 확실히 구분된 이 죽음의 공간은 일반적으로 ‘피라미드 복합체 (pyramid complex)’라고 불립니다. 이 복합체는 장제전, 세드신전, 세르답, 남북신전 등 여전히 그 목적과 기능이 불분명한 다양한 구조물들로 이루어져있습니다.

피라미드 묘역의 외벽 (사진: 곽민수)
묘역 내의 세드신전 (사진: 곽민수)
묘역 내의 북신전 (사진: 곽민수)
북서쪽에서 바라본 조세르의 계단식 피라미드 전경 (사진: 곽민수)
남쪽에서 바라본 조세르의 계단식 피라미드와 사카라의 마스타바 분묘군 전경 (사진: 곽민수)

필자소개
곽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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