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문을 열기 시작한 피라미드와 세라피움, 그리고 오귀스트 마리에트
말문을 열기 시작한 피라미드와 세라피움, 그리고 오귀스트 마리에트
2016.02.24 10:32 by 곽민수

파피루스 기록물을 통해 고대 이집트인들의 생활상을 그렸던 ‘고대 이집트 엿보기’. 이제 그 현장으로 직접 가본다. 이집트 연구가 곽민수의 두 번째 연재물 ‘고고학자와 함께하는 이집트 유적 기행’은 고대와 현대가 공존하는 이집트의 매력을 소개하고, 현지 유적을 통해 5000년 전 역사속 세계로 초대한다.

‘최고(最高)이자 최고(最古)’ 조세르(Djoser)의 계단식 피라미드부터, 이를 설계한 고왕국 시대의 위대한 현자 ‘임호텝(Imhotep)’까지. 4600년 전의 전설을 만나본다. 여기 사카라에서.

세계 최초의 피라미드가 주는 깊은 인상에 서서히 익숙해질 무렵, 우리에게는 점차 묘역 바깥에도 눈길을 줄 수 있는 여유가 생기게 됩니다. 설령 여유가 없어도, 우린 억지로라도 묘역 밖으로 눈을 돌려봐야 합니다. 계단식 피라미드에 너무 심취하다 보면 주변의 다른 유적지들을 완전히 잊게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러기엔 이곳 사카라에서 느낄 수 있는 역사의 정취가 너무 풍부합니다.

피라미드, 드디어 말문을 열다 – 파라오 우나스의 피라미드

사카라는 실로 광대한 유적지입니다. 모든 유적지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선 아마도 수천 페이지에 달하는 두꺼운 책이 필요할 겁니다. 하는 수 없이 이제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할 때입니다. 자, 우선 남쪽으로 고개를 돌려봅시다. 거진 다 허물어져서 모래언덕처럼 보이는 피라미드가 하나 처량하게 서 있습니다. 이것은 한때는 ‘우나스의 아름다운 땅’이라고 불리던 5왕조 시대의 파라오, 우나스(Unas, 재위 2375-2345년 경)의 피라미드입니다. 우나스의 피라미드는 우리들에게 가장 먼저 말을 건넨 피라미드이기도 합니다.

우나스의 피라미드 (사진: 곽민수)
우나스의 피라미드에서 바라본 조세르의 계단식 피라미드 (사진: 곽민수)

“지난 수천 년의 세월 동안 온전하게 보존된 피라미드 내부의 벽화는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이집트를 다루고 있는 여러 종류의 글에서 종종 눈에 띄는 위와 같은 문장에는 약간의 오류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피라미드 내부의 벽화'라는 부분입니다. 일반적인 생각과는 다르게 피라미드 내부엔 벽화는 물론이고 어떠한 기록도 남겨져 있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생고생해서 피라미드 내부에 도착한 많은 분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합니다. 피라미드와 같은 시대의 귀족묘는 대부분 화려하고 다양한 벽화로 장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왕묘로 여겨지는 피라미드 내부에는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고, 아무것도 쓰여지지 않았다는 사실은 분명 실망스럽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진지한 흥미가 생겨나기도 합니다. 어쩌면 아무것도 없는 것을 통해서 파라오들은 다른 계층의 사람들과의 구별짓기를 시도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너희들은 무덤에 무언가를 열심히 그려 넣고 열심히 써넣지만 나는 그 조차도 필요하지 않다”는 식으로 말이죠. 피라미드가 주로 지어진 고왕국 시대의 파라오들은 후대의 파라오들보다도 더 신에 가까운 존재로 인식되었기 때문에 굳이 애써서 인간사를 묘사할 필요가 없었을 지도 모릅니다.

피라미드 내부와는 다르게 화려한 부조로 장식되어 있는 티의 무덤 벽화. 티(Ty)는 조세르보다 약 100 년 후의 인물입니다. 그의 무덤은 조세르의 계단식 피라미드 인근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사진: 곽민수)

5 왕조 말기가 되면 벽화는 아니지만, 이 우나스 피라미드와 같이 피라미드 내부에 여러 문자 기록이 새겨지게 됩니다. 학자들은 이 기록들을 피라미드 문서(Pyramid Text)라고 부릅니다. 이 문서는 파라오가 사후세계에서 부활하는 과정을 돕는 주문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오, 우나스여. 당신은 죽은 것이 아니요. 당신은 오시리스의 왕좌에서 다시 살 것이요. 당신 손의 지팡이는 살아 있는 것들에게 질서를 부여할 것이며, 당신의 연꽃 모양의 지팡이는 미지 세계, 즉 죽은 자들에게 질서를 부여할 것입니다.”

(피라미드 문서, 주문 213)

‘아무것도 없는 것’으로 구별짓기를 하던 피라미드 내부에 갑작스레 이런 문헌이 새겨진 이유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어느 시점부턴가 파라오들의 지니고 있는 신성성이 이전 시대에 비해 줄어들었다고 생각되기 시작하였고 그렇기 때문에 사후세계에서의 부활을 위해서는 파라오들조차도 마법주문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꽤 그럴싸합니다. 파라오들에게만 독점적으로 사용되던 이 마법의 주문은 훗날 중왕국 시대가 되면 보통 사람들의 관에도 쓰여지게 됩니다. 물론 여기서 보통 사람들은 왕족은 아니지만 여전히 상류계층에 속하는 사람들을 뜻합니다. 이 관에 쓰여진 글귀들을 이집트학 연구자들은 관 문서(Coffin Text)라고 부릅니다. 관 문서는 신왕국 시대가 되면 다시 파피루스에 쓰여져 무덤에 시신과 함께 매장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사자의 서 (Book of the Dead)입니다.

우나스의 피라미드 내부 (사진: Pyramid Texts Online)

그저 모래언덕처럼 보이는 피라미드의 처량한 외형과는 다르게 우나스 피라미드 내부는 상당히 잘 보존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나스 피라미드의 내부 입장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피라미드 내부에 청색 안료로 쓰여진 최초의 피라미드 문서를 직접 볼 수 없다는 사실은 참으로 아쉽지만, 입장을 통제하는 이유가 소중한 문화유산의 보존을 위해서라고 하니 쉽게 납득이 됩니다. 고대 유적과 유물은 관광자원으로만 활용될 수 있을 때에, 다시 말해서 돈벌이가 가능해질 때에만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연구자들만 독점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끔 학술용으로만 활용되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고대의 유산들은 과거 실제로 살아가던 어떤 인간 혹은 인간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이후 세월의 풍파를 견디어내고 오늘날까지 잘 보존되었다는 그 사실 자체만으로도 큰 가치가 있는 인류 전체의 자산입니다.

세라피움과 오귀스트 마리에트의 성공기

조세르의 피라미드 북서쪽에는 ‘세라피움(Serapeum)’이라는 유적이 있는데, 학술적으로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 곳입니다. 이곳은 아피스(Apis) 신의 화신(化身)으로 여겨졌던 성스러운 황소들의 무덤입니다. 아피스 신앙은 오늘날 티베트의 달리아 라마처럼 한 마리의 소를 특정하여 그 소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그 소를 아피스로 숭배하다가, 소가 죽은 이후에는 다른 소를 선택하여 다시 아피스로 섬기는 방식으로 이어져 내려왔습니다. 세라피움에서 발견된 많은 비문에는 아멘호테프 3 세 시대(재위 기원전 1391-1353년 경)부터 아피스로 숭배되던 각각의 소들이 사망한 시기가 왕의 재위년과 함께 적혀 있었기 때문에 이 비문들은 신왕국 시대의 편년체계를 만드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자료로 사용되었습니다. 원래는 관광객의 입장이 불가능했던 곳이지만 이집트의 관계 당국은 이곳을 정비하여 지난 2012 년부터는 관광객들의 입장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유적의 학술적 중요성을 더 자세히 이야기하는 것은 길면서도 지루한 이야기가 될 수 있을 것 같으니 여기선 생략하겠습니다. 대신에 이곳 세라피움에서는 이 유적을 발견해낸 한 이집트학자의 이야기를 해드리려고 합니다.

이집트학의 역사에는 귀감이 될만한 많은 학자들이 등장합니다. 그 중에는 샹폴리옹과 같이 더할 나위 없이 탁월한 능력을 지닌 천재도 있고, 평생을 발굴현장에서 보낸 플린더스 페트리 같은 진짜 고고학자도 있으며, 끝없는 열정과 투지를 가지고 수많은 실패를 이겨낸 끝에 엄청난 성공을 일구어낸 하워드 카터 같은 불굴의 노력가도 있습니다. 또한 철저하게 준비를 해온 덕에 갑자기 찾아온 행운을 정확히 눈치채어 최고의 명성을 얻게 된 행운아도 있습니다. 제가 지금부터 소개할 오귀스트 마리에트(Auguste Mariette)는 바로 이 마지막 부류에 속하는 인물입니다. 그는 제가 개인적으로도 무척이나 존경하는 이집트학자 일뿐더러, 그의 이야기는 이집트학 전공자가 아닌 여러분들에게도 큰 귀감이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오귀스트 마리에트 Auguste Mariette (1821-1881)(사진 : )

1821년 프랑스의 불롱에서 태어난 오귀스트 마리에트는 어린 시절 불롱 박물관에서 보았던 이집트 미이라에 매료되어 이집트학 공부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놀랍게도 독학으로 고대 이집트어와 콥트어를 공부하였고, 이후 루브르 박물관에 일자리를 구하게 됩니다.

박물관은 1850년, 마리에트에게 콥트어(Coptic) 필사본 파피루스 수집이라는 임무를 주고 카이로로 파견을 합니다. 콥트 장로회에게 필사본을 하나 건네 받을 요량으로 카이로에서 빈둥빈둥 지내고 있던 마리에트는 석회암으로 만든 스핑크스가 카이로의 골동품 시장에 대량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유물은 시장에 나오자마자 카이로와 알렉산드리아의 부자들에게 소장용으로 금세 팔려 나갔습니다. 마리에트는 도굴품이 분명한 이 유물들의 출처를 알아보게 되었고, 결국 그것들이 한 이탈리아 상인을 통해서 시장에 나온 것이라는 사실을 파악하게 되었습니다. 이 상인을 찾아내어 다그친 그는 스핑크스들이 사카라에 있는 고대 멤피스의 공동묘지에서 출토되었다는 정보를 듣게 되었습니다. 이 정보를 얻은 마리에트는 홀연히 카이로를 떠나 사카라로 향했습니다.

세라피움 입구 (복원 공사가 한창이던2010년) (사진: 곽민수)
세라피움 전경(복원 공사가 한창이던 2010년) (사진: 곽민수)

사카라 지역을 미친 사람처럼 돌아다니던 마리에트는 결국 조세르의 계단식 피라미드 북쪽에서 땅 위로 살짝 튀어나와 있는 스핑크스의 머리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마리에트는 순간 그것이 카이로와 알렉산드리아의 암시장에서 그가 보았던 스핑크스와 같은 모양이라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이것은 그가 제대로 공부한 이집트학 연구자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집트학 이외에도 고전시대의 문헌들에 관심을 갖고 많은 지식을 쌓아놓고 있었는데, 그 스핑크스를 발견한 순간 그의 지식이 힘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머릿속에서 언젠가 읽었던 로마 시대의 지리학자 스트라보(Strabo, 기원전 63-24년 경)의 말이 되살아났던 것입니다.

"세라피움은 모래벌판에 자리잡고 있어서, 바람이 높은 모래언덕을 쌓아올린다. 그 모래언덕 밑에서 우리는 스핑크스를 보았다. 모래에 반쯤 묻혀 있는 것도 있고, 머리까지 완전히 묻혀버린 것도 있있다."

마리에트는 직감적으로 이곳이 아피스의 현현(顯現)으로 믿어지던 신성한 황소를 매장해온 세라피움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는 오랜 세월동안 쌓여온 흙과 모래를 치우기 위해 당장 수 십 명의 마을 사람들을 고용하여 발굴을 시작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그는 루브르 박물관에서 그에게 지급한 파피루스 구입 비용을 사용하였지만, 워낙 놀라운 성과를 낸 까닭에 훗날 박물관은 아무런 문제도 삼지 않았습니다. 세라피움의 발굴을 통하여 학자들은 고대 이집트에서 아주 대중적이었고 오랫동안 유지되었던 아피스 신앙의 전모를 파악할 수 있었고, 함께 발견된 수 백 개의 비문들을 통하여 고대 이집트의 편년체계를 더 정교하게 만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마리에트가 세라피움에서 발굴한 스핑크스들.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 소장 (사진: 곽민수)
사카라 유적 인근에서 만난 황소. 아피스로 숭배되던 황소는 이 황소와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사진: 곽민수)
목관의 발판에 그려진 아피스 황소. 기원전 745-755년 경. (사진: The Fitzwilliam Museum)

세라피움의 발굴은 마리에트에게 이집트학자로서 최고의 명성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명성을 얻는 것만으로 자신의 학자인생을 마무리하지 않고 자신에게 명성을 가져다 준 이집트를 위해 남은 생애를 바쳤습니다. 마리에트는 이집트에서 발굴된 유물들은 모두 다 이집트에서 보존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자신의 신념을 현실화시키기 위하여 이집트에 박물관을 설립하게 됩니다. 그가 1858년 카이로 교외 부라크(Boulaq)에 설립한 박물관은 오늘날 이집트를 찾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 쯤은 방문하게 되는 카이로 이집트 박물관의 전신입니다. 타흐히르 광장의 새롭게 세워진 현재의 박물관 건물로 모든 유물이 옮겨진 것은 1902년의 일입니다. 박물관은 1902년에 만들어진 상태 거의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에 오늘날에는 아주 낡은 박물관으로 느껴지지만, 여전히 12만점 이상의 이집트 유물을 소장한 세계 최대의 이집트 콜렉션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카이로 이집트 박물관의 안뜰에서는 마리에트의 무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집트학 연구의 심장부인 이곳 이집트 박물관에서 영원한 안식을 취하고 있는 마리에트는 이집트학 역사상 가장 영광스러운 이집트학자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커다란 석관과 함께 청동상이 세워져 있는 그의 무덤은 관광객들에게는 자주 외면 받지만 우리는 이곳을 지나칠 수 없습니다.

카이로 박물관에 있는 마리에트의 무덤 (사진: 곽민수)

모든 고고학자가 역사에 길이 남을 만한 성취를 이루게 되는 건 아닙니다. 그런 영광은 소수의 천재들, 그리고 소수의 행운아들에게만 허락된 몫입니다. 천재가 되는 것이야 어쩔 수 없다지만, 행운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행운이란 것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찾아오게 될 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행운을 얻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예기치 못하게 찾아오는 행운을 금새 눈치 챌 수 있는 안목을 기르는 것뿐입니다. 그리고 안목을 갖추어 갑자기 찾아온 행운을 인지하게 되었을 때에 그 행운은 움켜쥘 수 있는 실천력도 중요합니다. 성공의 기회라는 것은 순식간에 다가오지만 또 금새 쉽사리 날아가 버리기 마련입니다. 이것은 고고학자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여러분들도 항상 준비하는 자세로, 흔치 않게 찾아오는 성공의 기회를 꼭 잡게 되시길 기원합니다. 어쩌면 그 행운이 이집트에서 여러분들을 찾아갈 지도 모르겠습니다.

카이로 이집트 박물관 (사진: 곽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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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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