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할랄 푸드 제대로 구하기
한국에서 할랄 푸드 제대로 구하기
2016.02.24 10:14 by 이민희

음식 좀 하는 외국인들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런 외국인들과 각국의 거창한 음식 얘기는 좀처럼 안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보다는 파키스탄 사람들이 칼을 손에 쥐는 방법, 몽골 사람들이 양배추를 다듬어 쓰는 요령에 더 눈길이 갑니다. 그런 차이를 발견할 때면 늘 이유를 묻고 답을 얻어내려 하는데요, 음식에 대한 가벼운 질문이 때때로 문화와 역사 이야기로 확장되기도 하지만, 반대로 답이 돌아오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별별음식’은 그렇게 사소하지만 달라서 재미있는 세계의 음식 문화를 다루고자 합니다.

몽골 뱜바 언니가 만두를 빚는다. 속도가 장난이 아니다. 이맘 때쯤 식구들과 둘러앉아 2,000개씩 빚어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중국 린샤 언니도 그에 못지 않다. 그들의 새해는 만두로 시작한다. 

며칠 전 함께 일하는 파키스탄 호스트 사미나 지브란 씨 집에 갔다가 감동의 밥상을 받았다. 그날의 메인 메뉴는 치킨 카라이였는데, 닭을 매콤한 양념과 향신료에 버무려 끓인 음식이다. 양념에 쓰이는 재료가 다르니 맛도 차이가 있지만 닭볶음탕 혹은 닭갈비와 느낌이 비슷하다. 일단 맛있다고 전한 뒤 닭을 어디서 구했는지를 물었다. 그녀는 아무 닭이나 먹을 수 없다. 사미나 씨는 매일매일 알라의 이름으로 기도를 올리는 무슬림이다.

사미나 지브란 씨가 만든 치킨 카라이. 닭을 볶은 뒤 고수를 뿌려 먹는다.

무슬림의 셀프 도축법

사미나 씨가 말해주기를, 파키스탄 음식은 인도 음식과 대체로 비슷하지만 선호하는 식재료가 좀 다르다. 채식 위주로 식단을 꾸리는 인도와 달리 파키스탄 사람들은 고기를 즐긴다. 머튼 카라이, 머튼 풀라우, 머튼 비르야니 등 그녀의 음식에는 양고기가 많이 쓰이는데, 그 양고기를 이태원의 외국 식료품점에서 주로 구해온다. 닭도 당연히 그럴 줄 알았으나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남편이 전날 한 농장에서 가져왔다고 했다. 갑자기 질문할 게 많아졌다.

그녀의 설명에 따르면 남편이 이따금씩 닭을 잡아오는 곳은 서울 근교의 평범한 양계 농장이다. 남편이 어찌어찌 농장주와 인연을 맺게 된 뒤부터 지하철을 타고 농장을 찾아가 닭을 가져온다 했다. 도축은 무슬림이 직접 실행한다는 할랄(무슬림이 먹고 쓸 수 있는 제품의 총칭)의 원칙에 따라 그가 직접 칼을 들고 알라의 이름으로 단칼에 닭의 목을 걷어낸다. 그런 즉시 피를 다 뽑아내고, 이 모든 과정이 다 끝나면 농장의 직원이 피가 털린 닭을 부위별로 잘라 포장해준다. 신기했던 경험이다. 30년 넘게 한국에 살면서 시골 씨암탉 한 번 못 먹어본 내가 무슬림 동료 덕에 갓 잡아온 닭을 맛보게 될 줄은 몰랐다.

그렇게 잡아오는 닭의 가격은 16,000원이다. 참고로 현재 온라인으로 살 수 있는 할랄 생닭이 2kg에 11,000원이다. 이태원에서도 구할 수는 있지만 가격에 비해 질기고 맛이 없어 별로 권하고 싶지 않다고 사미나 씨는 말한다. 어쨌든 그녀의 가족은 믿을 수 있는 식재료를 구하기 위해 먼 길로 가서 더 많은 돈을 쓴다. 문득 사미나의 아들 오베드가 생각난다. 언젠가 과자 한 봉을 건넸지만 그는 사양했다. 젤라틴이 들어있어 못 먹는다고 했다. 그의 정중한 거절을 통해 나는 또 한 번 실수하지 않는 법을 배웠다.

사미나씨와 함께 밖에서 밥을 먹을 땐 생선과 채식 위주의 식당을 물색한다. 국내에선 할랄 전문점을 찾기 어렵기 때문. (사진: ChameleonsEye/Shutterstock.com)

내 친구 무슬림

이번 원고를 시작하기 전에 허락부터 구하는 게 우선이다 싶어 그녀에 관한 이야기를 써도 되는지를 물었다. 한국에는 무슬림이 많지 않고 따라서 그들과 할랄로 대표되는 그들의 식문화를 이해할 기회가 많지 않을 테니 어쩌면 유의미한 정보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 덧붙였다. 그녀는 흔쾌하게 수락하면서 먼저 자료 하나를 보여줄 테니 이것부터 숙지하라 전했다. 천천히 뜯어보니 할랄에 관한 기본 정보로, 무슬림의 식사 철학을 이해하는 중요한 내용이다. 영어로 읽느라 시간이 좀 걸렸는데 굳이 애쓸 필요 없다. 한국에는 무슬림 유입과 할랄의 확대를 걱정하는 집단이 많아 한글 자료도 지천이다.

할랄의 주요 내용은 돼지고기 금지 이전에 알라의 이름으로 거행하는 도축이고, 그 방식이 인도적인가 아닌가에 관한 오래된 논쟁이 따른다. 굳이 사미나가 전해준 자료의 내용을 다시 정리하는 것으로 그런 논란을 재생산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보다는 내가 만나고 관찰한 무슬림 동료와 할랄에 관한 이야기가 좀 더 가치 있다고 믿는다. 특정한 종교 문화에 대한 입장은 해당 종교인을 경험한 뒤에 갖는 편이 좀 더 공정하고 올바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위키피디아가 전하는 2015년 정보에 따르면 전 세계 무슬림 인구는 17억으로, 전 세계 인구의 22% 가량이다. 한편 국내 거주 무슬림은 공식적으로 약 13만 5천 명, 즉 한국 전체 인구의 0.2%다(문화체육부 2013년 자료 기준). 세상엔 무슬림이 그토록 많지만 한국에선 소수자라 그들의 식습관을 존중받긴 어렵고, 사미나 씨의 가족 역시 대체로 집에서 음식을 만들어 먹는다. 그녀와 함께 일하면서 나를 비롯한 회사의 식구들도 헤아리는 것이 생겼다. 그녀와 함께 있는 한 술을 언급하지 않는다. 고기도 피한다. 밖에서 만나 같이 밥 먹을 일이 생기면 할랄 전문점 찾기도 어려우니 일단 생선과 채식 위주로 식당을 물색한다.

사미나 씨의 한국 생활

사미나 지브란 씨

사미나 씨는 파키스탄 카라치 출신으로, 결혼 전까진 교편을 잡았고 아이 셋이 어느 정도 성장한 뒤에는 의상실을 운영했다. 학교에서 테러가 일어나는 걸 더는 견딜 수 없어 몇 해 전 미련 없이 모든 것을 정리하고 떠났다. 재산도 경력도 다 부질 없고 가족과 함께 안전하고 평화롭게 살고 싶어 내린 인생의 결정이다. 태권도 사범이자 국제 심판으로 일하는 남편과 함께 한국에 정착했는데, 막상 와서는 생각지 못한 불편을 겪었다. 할랄 구하기가 예사가 아닌 건 그다지 심각한 문제가 아니었다. 한때는 지하철을 타는 게 힘들었다고 말한다. 아무도 그녀 옆에 앉지 않았기 때문이다.

몇 차례 유쾌하지 않은 경험이 쌓이면서 한국 사회에 대한 선입견이 굳어질 무렵 사미나 씨는 한국 사람들과 음식을 나눌 기회가 생겼다. 식사로 혹은 쿠킹 클래스로 파키스탄 음식을 소개하게 됐는데, 학교 및 기업과 연이 닿아 음식과 수업을 준비하는 동안 할랄을 먹는다고 테이블을 나누거나 그녀를 밀어내는 사람은 없었다. 무슬림 친구가 있으니 다 같이 할랄을 먹자고 말하는 따뜻한 사람들을 만났다는 것이다.

“알라는 피부색과 인종과 종교를 떠나 각각의 개성과 아름다움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어요. 오래 가슴에 새겨왔지만 음식을 계기로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서 새삼스럽게 떠오르는 가르침이예요. 저는 지금 단순히 음식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요리를 통해 자연스럽게 문화와 종교까지 함께 나누고 있는 것 같아요.”

일을 통해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을 종종 만나고 있는데, 그러다보면 막연하게나마 나의 외국 생활을 상상하게 된다. 짜기만 하고 맛없는 김치, 6천원 짜리 소주, 느려 터진 와이파이, 결정적으로 소통이 불가능한 상황을 내가 견딜 수 있을까. 한국 사람에게 깊게 뿌리 박힌 못난 생각과 별난 행동을 이해해줄 수 있는 너그러운 친구를 만나는 행운이 과연 내게도 찾아올까. 어쩌면 스스로 닭을 잡아오는 사미나 씨로부터 답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무슬림이 0.2%밖에  되지 않는 한국 사회에 걸어들어온 그녀의 가족. 그들은 오래 유지해온 고유의 문화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더 많은 돈을 쓰고 더 많이 움직인다. 그리고 한국 사람과 소통할 일이 생길 때마다 더 정성을 기울여 요리하고 설명한다. 그녀가 자연스럽게 한국 친구들로부터 존중을 얻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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