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천 년의 역사가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 기자의 피라미드군과 로제타 스톤
수 천 년의 역사가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 기자의 피라미드군과 로제타 스톤
2016.03.16 17:28 by 곽민수

파피루스 기록물을 통해 고대 이집트인들의 생활상을 그렸던 ‘고대 이집트 엿보기’. 이제 그 현장으로 직접 가본다. 이집트 연구가 곽민수의 두 번째 연재물 ‘고고학자와 함께하는 이집트 유적 기행’은 고대와 현대가 공존하는 이집트의 매력을 소개하고, 현지 유적을 통해 5000년 전 역사속 세계로 초대한다.

굴절 피라미드가 나타나다! 다슈르에서 보낸 행운의 날들.

이집트에 있는 모든 피라미드들 가운데 가장 거대하고 가장 완벽한, 그래서 ‘완전체 피라미드’라고 할 수 있는 파라오 쿠프(Khufu)의 대피라미드(Great Pyramid)는 카이로 근교 기자(Giza)의 야트막한 고원지대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 고원지대를 방문하는 것은 제게는 소년시절부터 항상 가슴 뛰는 일이었습니다. 이번에 기자를 다시 찾는 것이 몇 번째인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마음이 들뜨는 것은 여전합니다. 여느 때처럼 들뜬 기분으로 걸음을 재촉하다 보니, 어느새 저 멀리서 4500년의 역사가 눈에 보이기 시작합니다. 약 200여년전 이집트를 침공한 나폴레옹은 저 장엄한 경관 앞에서 맘루쿠군과의 전투를 앞둔 자신의 병사들에게 이렇게 연설하였다고 합니다. 

“수 천 년의 역사가 제군들을 내려다 보고 있다!”

[기자 피라미드군, 좌측부터 멘카우레, 카프레, 쿠프의 피라미드

몇 천 년의 역사가 바로 자기를 바라보고 있다는데 힘이 나지 않을 사람이 있을 리 없습니다. 나폴레옹의 짧은 말 한마디로 병사들의 사기는 충만해졌고, 이어 벌어진 전투에서 프랑스군은 맘루쿠군에게 가볍게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그 수 천년의 역사 앞에서는 아마도 여러분들도 평소보다는 조금 더 힘을 내실 수 있을 것입니다.

피라미드 전투. 루이스-프랑스와 르죈 남작의 1808년 작품. 저 멀리 기자의 세 피라미드가 보입니다.

나폴레옹은 1798년에서 1801년 사이에 프랑스 혁명전쟁의 일환으로 이집트를 침공하였습니다. 그리고 위에서 말씀드린 것과 같이 오스만 투르크 제국 치하에서 반쯤은 독립된 상태로 있던 이집트의 맘루크 왕조 군대와 전투를 벌여 큰 승리를 거둡니다. 그런데 이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은 이집트학 역사에서 큰 의미를 가집니다. 나폴레옹은 이집트에 오면서 160여 명의 민간인 학자들이 군대와 동행하는 것을 허락하였습니다. 당시에는 세계 최강이었던 나폴레옹의 군대와 함께 이집트를 찾은 이 학자들은 군대를 따라다니며 아무런 신변의 위협도 느끼지 않은 채 이집트 곳곳을 조사할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 전쟁이 끝난 이후 1809년에서 1829년에 걸쳐 총 5권으로 이루어진 이집트에 관한 일종의 백과사전인 <이집트지(誌)) (Description de l'Égypte)>가 출간되었습니다. 아름다운 삽화로 가득 차 있는 이 문헌은 이집트학 초창기에 유럽 각국의 학자들에게 아주 유용한 문헌으로 활용됩니다. 그리고 훗날 샹폴리옹이 이집트 문자를 해독하는 기반이 되었던 로제타 스톤도 바로 이 프랑스 원정대와 이와 동행한 학자들이 발견한 것입니다.

이집트지 (Description de l'Égypte) 표지

여기서 잠깐 기자로 향하는 발걸음을 멈추고 로제타 스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로제타 스톤은 1799년 나폴레옹 원정대의 일원이었던 한 프랑스 병사에 의해서 나일강 서쪽 지류 하구에 위치한 로제타(Rosetta)에서 발견된 비석입니다. 원정대에는 많은 학자들이 동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비석의 중요성은 금세 인지되었습니다. 하지만 프랑스군은 1801년 영국군에게 패배하게 되었고, 이 로제타 스톤을 영국군에게 빼앗기게 됩니다. 역시 로제타 스톤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있던 영국군은 이 유물을 곧바로 본국으로 보내었습니다. 영국으로 보내진 로제타 스톤은 1802년부터 바로  영국 박물관 (British Museum,  ‘대영 박물관’으로 불리지만 사실은 ‘영국 박물관’이 올바른 이름입니다)에서 전시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 유물은 여전히 영국 박물관에서 가장 인기 많은 전시물 가운데 하나인데, 그에 걸맞게 아주 멋들어지는 모습으로 전시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실제로 로제타 스톤이 발견되었던 로제타에는 썩 훌륭하지는 않은 모조품이 초라한 모습으로 놓여 있어서 어쩐지 서글픈 마음이 들게 합니다.

영국 박물관의 로제타 스톤 전시
로제타에 전시되어 있는 로제타 스톤 모조품

로제타 스톤은 기원전 196년 프톨로마이오스 5세의 칙령이 새겨져 있는 비석입니다. 비석에 쓰인 내용 자체는 평범한 것이지만, 이 비석이 이집트학 역사상 가장 중요한 유물로 여겨지는 까닭은 같은 내용의 글귀가 3개의 서로 다른 언어로 쓰여 있었기 때문에 오랫동안 잊혔었던 고대 이집트어를 해독해내는 단초를 제공했기 때문입니다. 비석에는 위에서부터 히에로글리프 (Hieroglyph, 일반적으로 ‘상형문자’라고 불리지만, ‘신성문자’나 ‘성각문자’라는 번역이 더 정확합니다), 데모틱 (Demotic, ‘민중문자’라고 번역되기도 하지만 여전히 엘리트 계층들만 사용했었던 변형된 이집트어), 그리고 고대 그리스어가 새겨져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어는 18-19세기 유럽 지식인들에게는 필수 교양이었던 만큼, 프랑스의 이집트학자 장 프랑스와 샹폴리옹은 로제타 스톤에 기록된 내용을 토대로 1822년 최초로 고대 이집트어의 해독에 성공합니다. 그가 탁월했던 점은, 그동안의 학자들은 주로 표의문자로 여겼던 히에로글리프를 그는 표음문자로 전제하고 해독을 시작하는 발상의 전환을 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로제타 스톤. 자세히 보시면 서로 다른 3가지 언어로 쓰여져 있는 것을 아실 수 있습니다. (사진: Wikimedia)

샹폴리옹의 해독 덕분에 ‘로제타 스톤’이라는 표현은 서구에서는 ‘문제 해결의 단초를 제공하는 열쇠나 실마리’라는 의미로 사용됩니다. 그렇지만 사실 이 비석은 아주 대표적인 ‘약탈 문화재’입니다. 그것도 침략해온 군대가 자신들이 침략한 곳에서 마음대로 파내고, 그것이 점령지를 둘러싸고 대결한 또 다른 침략자들에 의해 다시 획득된, 식민주의의 역사가 그대로 있는 문화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구인들은 이 ‘로제타’라는 이름을 끊임없이 미화시켜 재생산 시키는데, 그 대표적인 사례가 유럽항공우주국(ESA, European Space Agency)가 ‘진취적인 탐험 정신’이라는 의미를 담아 2014년 발사한 혜성 탐사선에 로제타라는 이름을 붙인 것입니다.

ESA의 혜성 탐사선 로제타 (사진: http://pics-about-space.com)

다시 기자로 발걸음을 옮깁시다. 기자 고원에는 대피라미드뿐만이 아니라 대피라미드 못지않은 규모를 자랑하는 카프레의 피라미드와 그보다 좀 작기는 하지만 여전히 상당한 규모인 멘카우레의 피라미드가 대피라미드와 함께 일련의 피라미드군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 피라미드군의 배치는 특이하게도 완전한 일직선은 아닌데, 이를 보고 어떤 어떤 이들은 이 배치가 겨울철 하늘에서 쉽게 눈에 띄는 오리온자리의 삼태성의 배치를 염두에 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실제로 고대 이집트에서는 오리온자리를 오시리스로 여겼습니다만, 기자 피라미드군의 배치와 오리온자리의 삼태성과의 관계는 아직까지는 학계에서 결론이 나지 않은 논란거리입니다.

기자 피라미드군의 위성 사진. ‘바둑두는 인공지능 컴퓨터’ 알파고를 세상에 내놓아 근래에 자주 이야기꺼리에 오르는 구글이 제공하는 위성 사진 서비스 덕분에 우리는 200년 전, 나폴레옹 시대에는 ‘우리를 내려다 보기만 했던’ 4500여년 전의 역사를 ‘내려다 볼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사진: 구글 어스)
오리온 자리 (2016년 2월 28일, 영국에서 촬영)

카이로에서부터 확장되어온 메트로폴리스가 점차 그 영역을 넓혀 옴에 따라 기자 고원의 경건함은 조금 감소되기는 하였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이곳에 당당하게 서 있는 엄숙한 세 개의 거대한 돌산은 나폴레옹과 우리 사이에 존재하는 200년이라는 긴 시간조차도 참으로 보잘것없는 것으로 만들며 계속해서 위대한 면모를 마음껏 뽐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4500년의 역사를 이제 곧 직접 대면하게 됩니다. 나폴레옹의 병사들이 전투에 대한 부담을 느끼면서도 자신의 잠재 능력을 끌어낸 것처럼, 우리도 무슨 일이든지 기분 좋은 성취를 이루어 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4500년의 역사가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기 때문에. 

기자 고원에서 내려다본 기자 도심. 스핑크스의 뒷 모습도 보입니다.

 

/사진: 곽민수

필자소개
곽민수

The First 추천 콘텐츠 더보기
  • “24주 연속 1위 브랜드의 저력으로”…‘나르카’ 운영사 ‘언커먼홈’, 매쉬업벤처스 등으로부터 후속 투자 유치
    “24주 연속 1위 브랜드의 저력으로”…‘나르카’ 운영사 ‘언커먼홈’, 매쉬업벤처스 등으로부터 후속 투자 유치

    이제 헤어 케어도 브랜딩이다!

  • “최근 가장 눈에 띄는 창업팀은?”…유망 초기 스타트업 뽑는 ‘혁신의 숲 어워즈’ 막 올랐다
    “최근 가장 눈에 띄는 창업팀은?”…유망 초기 스타트업 뽑는 ‘혁신의 숲 어워즈’ 막 올랐다

    최근 1년 사이 가장 주목할만한 초기 스타트업을 꼽는 '혁신의숲 어워즈'가 17일 대장정을 시작했다. 어워즈의 1차 후보 스타트업 30개 사를 전격 공개한 것. ‘혁신의숲 어워즈’...

  • “Only for you”…대세는 초개인화 서비스
    “Only for you”…대세는 초개인화 서비스

    초개인화의 기치를 내건 스타트업들이 존재감이 점점 커지고 있다.

  • 타 산업과 연계, 핵심 기술 접목…“관광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라”
    타 산업과 연계, 핵심 기술 접목…“관광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라”

    '관광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 틈새에 대한 혁신적인 시도 돋보였다!

  • “생산성, 효율성 쑥쑥 올리는 솔루션”…매쉬업벤처스, 스타트업 ‘마일 코퍼레이션’에 초기 투자
    “생산성, 효율성 쑥쑥 올리는 솔루션”…매쉬업벤처스, 스타트업 ‘마일 코퍼레이션’에 초기 투자

    기업의 공간, 자산 관리를 디지털 전환시킬 창업팀!

  • “당신에겐 더 큰 무대가 필요하다”…스타트업의 해외진출을 지원하는 스타트업
    “당신에겐 더 큰 무대가 필요하다”…스타트업의 해외진출을 지원하는 스타트업

    스타트업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는 스타트업의 등장!

  • “국내 기업의 글로벌 성장 발판 마련”…한국액셀러레이터협회, 뉴저지 진출 전략 웨비나 개최
    “국내 기업의 글로벌 성장 발판 마련”…한국액셀러레이터협회, 뉴저지 진출 전략 웨비나 개최

    국내 유망 스타트업의 미국 진출, 맞춤형으로 지원한다!

  • 초록은 동색…“함께 할 때 혁신은 더욱 빨라진다.”
    초록은 동색…“함께 할 때 혁신은 더욱 빨라진다.”

    서로 경쟁하지 않을 때 더욱 경쟁력이 높아지는 아이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