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피루스 기록물을 통해 고대 이집트인들의 생활상을 그렸던 ‘고대 이집트 엿보기’. 이제 그 현장으로 직접 가본다. 이집트 연구가 곽민수의 두 번째 연재물 ‘고고학자와 함께하는 이집트 유적 기행’은 고대와 현대가 공존하는 이집트의 매력을 소개하고, 현지 유적을 통해 5000년 전 역사속 세계로 초대한다.
260만개의 돌덩이를 차곡차곡 쌓아 만든 쿠푸의 피라미드, 사상 최대 규모의 피라미드 속을 파헤쳐본다.
대피라미드 내부를 벗어나면 타는 듯한 사막의 공기조차도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신선한(!) 사막의 공기를 마음껏 즐기다가 문뜩 주위를 둘러보게 되면, 이곳 기자에는 이 대피라미드 말고도 몇 개의 피라미드가 더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실제로 기자 지구에는 대피라미드를 제외하고도 9기나 되는 피라미드가 더 있습니다.
기자지구에서 대피라미드 다음으로 규모가 큰 카프레의 피라미드는 대피라미드보다 조금 더 높은 곳에 건설되었습니다. 그래서 육안으로는 오히려 대피라미드보다 더 높아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카프레 피라미드의 높이는 136미터 정도로 훼손되기 이전의 대피라미드보다는 10미터 가량, 훼손된 상태의 대피라미드도다도 1미터 정도가 더 낮습니다.
이 카프레의 피라미드가 주목을 끄는 것은 그 거대한 규모 때문이기도 하지만 피라미드 상단부에 남아 있는 석회암 외장석 때문이기도 합니다. 애초에는 모든 피라미드들에 이 외장석은 다 설치되어 있었지만 지금은 카프레 피라미드의 상단부에서만 그 흔적을 엿볼 수 있을 뿐입니다. 기자에서 남쪽으로 10여 킬로미터 떨어진 투라(Tura)의 채석장에서 가져온 최고급 석회암으로 만들어진 외장석은 건설 직후에는 햇빛을 반사하여 피라미드를 찬란하게 빛나게 하였습니다. 피라미드의 완성 후 2000여년이 지난 시대에도 외장석은 여전히 거의 온전하게 남아있었는데, 그것 때문에 당시 피라미드를 보았던 고대 그리스인들은 피라미드를 하나의 거대한 돌덩어리로 여기기도 하였습니다. 대피라미드보다는 단순하다고는 하지만 카프레의 피라미드 역시도 꽤 복잡한 내부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카프레의 피라미드도 그 내부에 남아 있는 것은 광택이 나는 화강암 석관 뿐입니다.
카프레 피라미드 주변에는 피라미드의 부속 시설들이 비교적 잘 남아 있습니다. 피라미드의 동쪽에서는 피라미드 부속 신전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 부속 신전은 훨씬 더 동쪽에 위치한 스핑크스 신전-계곡 신전과 포장도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포장도로는 현재에는 옅은 흔적만이 남겨져 있습니다.
기자 피라미드군의 제 3의 피라미드라고도 일컬어지는 멘카우레의 피라미드는 기자지구의 3 피라미드들 가운데 가장 작은 규모입니다. 쿠프와 카프레의 피라미드가 워낙 큰 규모를 자랑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초라해보이지만, 이 세 번째 피라미드의 높이도 62m에 이릅니다. 하지만 다른 두 기의 피라미드 옆에 있으니 왜소해 보이는 것만은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유난히 작은(?) 크기 때문에 예로부터 사람들은 이 특별하게 작은 규모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왜소한 규모에 대한 가장 고전적인 설명은 정치경제적인 이론에 따르는 것입니다. “멘카우레의 아버지인 카프레와 할아버지인 쿠프의 거대한 피라미드 건설 프로젝트로 인하여 국가의 인력과 기타 자원들이 모두 고갈되었고, 결국 멘카우레는 이 정도 규모의 피라미드 밖에는 짓지 못했을 것이다”라는 설명이 그것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이 있습니다. 멘카우레의 석상들은 쿠푸나 카프레의 석상들에 비하여 훨씬 더 많이, 훨씬 더 온전히 남아있다는 사실입니다. 반면 카프레의 경우에는 등신대 상이 딱 하나, 그리고 가장 거대한 피라미드를 지은 쿠프의 조상은 높이가 10cm도 안되는 자그마한 것 딱 한 개만이 여지껏 발견되었을 뿐입니다. 그들의 조상들의 숫자와 크기는 그들이 지은 피라미드의 크기에 반비례하는 셈입니다. 멘카우레는 고왕국의 전형적인 스타일로 묘사되어 지상의 존재가 아닌 신과 같은 분위기를 지니고 있기는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들창코와 약간 튀어나온 눈은 무척이나 현실적인 인간의 얼굴입니다. 카이로의 이집트 박물관에서는 별 어려움 없이 그것도 여러번 이 들창코의 파라오를 만나실 수 있습니다. 물론 이 박물관에서는 쿠프와 카프레도 직접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기자에 세워진 3기의 피라미드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이집트 물가를 감안할 때에 결코 싸지 않은 입장료를 내야 합니다. 여기까지 오셔서 입장료를 아끼겠다고 피라미드 내부에 들어가는 것을 포기하시는 어리석은 분들은 그리 많지는 않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비용을 극단적으로 아끼려고 하는 분들이 있다면 한 가지 팁을 드리겠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기자 지구의 주요한 3기의 파리미드는 아니지만 기자에는 입장료 없이 입장할 수 있는 피라미드가 하나 있습니다. 거대한 피라미드 삼총사 때문에, 자그마한 부속 피라미드들은 종종 관심의 대상이 되지 않고 관광코스에서 생략되지만 쿠프의 대피라미드 바로 옆에 세워져있는 헤테프헤레스의 피라미드는 입장료 없이 내부에 들어가볼 수 있는 피라미드입니다.
한 가지 더, 이 피라미드가 중요한 이유는 피라미드 근처에서 상당히 중요한 고고학적 성과가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1925년, 미국 이집트 고고학의 선구자 조지 라이즈너(George Reisner)의 고고학조사 팀에서 사진사로 일하던 이브라힘(Mohamadien Ibrahim)은 사진촬영을 위하여 삼각대를 세우다 우연히 헤테프헤레스의 피라미드 옆에서 한 갱도의 입구를 발견하였습니다. 그 갱도는 지하의 한 공간으로 이어지는 통로였습니다. 이 발견은 당시 현장을 떠나 미국으로 휴가를 가 있던, 라이즈너를 신속하게 다시 이집트로 돌아오게 만들었습니다. 갱도가 닿아있는 자그마한 공간에서는 하나의 설화석고 석관과 화려하게 세공된 침대, 의자 등 침실세트 일체가 발견되었습니다. 카이로의 이집트 박물관에 훌륭하게 복원 되어있는 이 가구들은 4500년전의 이집트 왕족들이 생활상을 추정할 수 있게 해주었다는 측면에서 무척이나 값진 것입니다. 아, 이 헤테프헤레스는 대피라미드의 주인공 쿠프의 어머니로 생각됩니다. 다시 말해서, 다슈르의 주인공 파라오 스네페루의 왕비입니다.
자, 또 다시 피라미드의 내부로 들어가봅시다. 여러분들은 이미 몇 번이나 피라미드에 들어갔다 오셨으니 이제는 꽤나 능숙해지셨으리라 생각됩니다. 분명히 입장료는 공짜이지만, 종종 관리인이 박시시를 요구하기도 합니다. 팁을 주는데 익숙하시다면 1파운드 정도를 손에 쥐어 주시고, 그렇지 않으시다면 외면하셔도 됩니다. 하지만 이집트가 박시시의 나라라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기분 좋게 10파운드 정도를 건네는 것도 신나는 일이겠지요. 원화로는 천원이 조금 넘는 그 돈에 관리인은 분명 밝은 미소를 보여줄 것입니다. 갱도에는 간이계단이 설치되어 있어서 큰 어려움 없이 걸어 내려갈 수 있지만, 이곳의 천장은 유난히 낮아 키가 큰 분들에게는 조금 고된 길이 될 수도 있습니다. 땀 흘려서 도착한 현실 내부에는 역시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다시금 실망하셨을 수도 있겠지만, 언젠가 말씀드린 것처럼 우나스 이전의 피라미드들은 모두 이렇습니다. 피라미드 내부에서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더 이상 실망하지 않게 되었을 때에 여러분들은 드디어 피라미드를 이해하게 된 것입니다.
/사진:곽민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