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피루스 기록물을 통해 고대 이집트인들의 생활상을 그렸던 ‘고대 이집트 엿보기’. 이제 그 현장으로 직접 가본다. 이집트 연구가 곽민수의 두 번째 연재물 ‘고고학자와 함께하는 이집트 유적 기행’은 고대와 현대가 공존하는 이집트의 매력을 소개하고, 현지 유적을 통해 5000년 전 역사속 세계로 초대한다.
기자 지구 대피라미드에 가려진 9곳의 피라미드들. 그들의 소박하지만 찬란한 매력을 만나본다.
대피라미드 남쪽에는 독특한 모양의 건물이 하나 서 있습니다. 배모양으로 지었다고는 하는데, 아주 배처럼 보이지도 않을뿐더러 어쩐지 좀 급조한 조립식 건물 같기도 합니다. 더욱이 피라미드가 세워져 있는 주변의 경관과는 전혀 조화가 되지 않아 조금 뜬금없어 보이기까지 하지요. 이 건물이 배 모양으로 지어진 건 이유가 있습니다. 애초에 중요한 배 한 척을 전시하기 위해서 세워졌기 때문이죠. 그게 바로 오늘 소개할 ‘태양의 배’입니다.
이 박물관 안으로 입장하기 위해서는 결코 싸지 않은 추가비용을 내야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여행자들이 문 앞에서 발걸음을 돌리곤 합니다. 그렇지만 이 흉물스러운 건물 안에서 전시되고 있는 배는 아주 중요한 고고학적 유물입니다. ‘태양의 배’라고 불리는 유물은 무려 4500년 전에 만들어진, 길이가 40미터가 넘는 거대한 목재 선박이죠.
건물 내부에 들어서면 신발에 뒤집어씌우는 자그마한 포대 같은 것을 주는데, 그 포대를 신발에 씌워야지 박물관으로 입장할 수 있습니다. 신발에 묻어있는 흙먼지가 건물 안에서 날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인 것 같지만, 그 포대도 이미 먼지로 뒤덮여있는 것을 보면 이게 무슨 소용일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잊지 마셔야 합니다. 이곳은 이집트라는 사실을. 이런 어쩐지 엉성한 시스템이 바로 이집트가 갖고 있는 특유의 매력입니다. 이런 엉성함을 경멸하는 분이 계시다면, 그 분에게 이집트는 적당한 여행지가 아닙니다.
건물 내부에 이르러 태양의 배를 직접 대면하게 되면 먼저 선박의 엄청난 규모에 감탄하게 됩니다. 그리곤 도저히 4500년 전에 만들어진 배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무척이나 훌륭한 보존 상태에 다시 한 번 놀라게 됩니다. 최고급 레바논 삼나무로 제작된 이 거대한 배는 일종의 상징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 일반적인 학자들의 주장입니다. 수심이 그다지 깊지 않은 나일강에서는 굳이 이렇게 거대한 선박을 사용할 필요가 없었을뿐더러, 운용하기도 힘들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일각에서는 이 선박이 원양항해에 실제로 사용되었을 것이라는 조금은 대담한 주장을 하기도 합니다. 단순히 상징으로 배를 만들었다면 굳이 이렇게 거대한 규모로 건조하지 않았을 거라는 게 그들의 주장입니다. 실제로 이 주장을 뒷받침해주는 증거로 활용될 수 있는 고왕국 시대의 선착장 유적이 홍해변에서 비교적 최근에 발견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왕의 지시로 탐험대가 머나먼 이국까지 갔다가 귀환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고왕국 시대의 기록들도 있습니다. 이런 자료들은 태양의 배가 실제로 원양항해에 사용되었거나, 적어도 실제로 사용되던 선박을 모델로 해서 만든 것일 가능성에 한층 더 무게를 실어줍니다.
논쟁의 한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는 이 태양의 배는 1954년 대피라미드 남쪽면의 모래를 제거하는 작업을 하는 도중에 발견되었습니다. 대피라미드의 남쪽 편에서 석회암으로 뚜껑을 덮은 길이 31 m, 깊이 3.5 m의 구덩이가 발견되었는데 그 속에는 각 부분으로 분해되어 있던 배의 각 부분이 들어 있었습니다. 이 각 부분들은 10년 이상의 세월이 걸려 재조립, 복원되었습니다. 선박에는 쿠푸 왕의 후계자 제데프라(Djedefra)의 이름이 있다는 점에서 이 목조선은 제드프라 왕이 선왕 쿠푸를 위해 매장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집트에서는 파라오가 죽으면 태양신 라에게 융합이 되고, 파라오의 혼은 배를 타고 천공을 항행하는 것으로 믿어 졌습니다. 신화적으로 태양의 배에는 주간용 배 ‘마아네제트’와 야간용 배 ‘메세케테트’의 두 종류가 있었는데, 그렇기 때문에 이 목재선박이 그런 의미로 매장된 것이라면 한 척의 배가 더 매장되었을 것으로 학자들은 추정하였습니다.
그런데 약 30년이 지난 1987년 학자들의 가설이 정확하다는 것이 고고학 발굴에 의해서 증명되었습니다. 1987년 2월 일본의 와세다 대학 조사팀은 기존의 구덩이 서쪽에서 또 하나의 구덩이를 확인을 하게 됩니다. 바로 제 2의 태양의 배가 보관되어 있던 구덩이였습니다. 같은 해 10월 미국 조사대는 내시경 카메라를 구덩이 안쪽으로 삽입해 배의 존재를 확인하였습니다. 이후 1992년에는 처음 구덩이를 발견해낸 와세다 대학 조사팀이 구덩이 내부의 촬영과 선박 조각의 샘플링에 성공하였습니다. 이 조사를 통해서 제 2 태양의 배가 제 1 태양의 배와 같은 레바논 삼나무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구덩이 안에 들어간 수분으로 인해 보존 상태가 상당히 좋지 않았던 제 2태양의 배는 오래도록 실제로 발굴되지 않았었지만, 첨단 기술로 무장한 학자들은 2012년 이 배를 발굴하여 현재는 보존작업이 진행 중에 있습니다. 이 발굴과 복원작업을 주도하고 있는 것은 일본 와세다대학교의 연구진입니다.
제 2의 태양의 배를 발견하고 발굴하는데에 일본팀이 큰 역할을 해냈다는 사실은 어쩐지 셈나게 합니다. 왜 이런 이야기가 있죠.
‘일본에게는 가위바위보조차도 지고 싶지 않다!’
여전히 이집트학의 저변이 전무한 한국의 고고학 조사팀이 무엇이 되었건 이집트에서 작업을 한다는 것은 현재로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언제쯤 한국인 이집트학자가 한국팀을 이끌고 이집트에서 고고학 조사를 하게 될까요? 물론 그런 프로젝트를 해내는 것이 제 인생의 몇몇 목표들 가운데에 하나입니다. 한 10여년 후쯤이면 가능할 지도 모른다고 생각되는데, 한번 기대해보세요. 제가 이끄는 한국 조사팀이 이집트에서 작업 중이라는 신문기사를 보게 되는 그 날을~
/사진:곽민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