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매생이 국을 먹는 건 나의 일이었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매생이 국을 먹는 건 나의 일이었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매생이 국을 먹는 건 나의 일이었다
2016.05.03 15:33 by 송나현

매생이 국을 처음 봤을 때 그 당혹감이란.

미역도 파래도 아닌 걸쭉한 초록색 물체가 그릇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외할머니는 '몸에 좋은 음식'이라며 강권하셨고, 옆에 앉은 아빠는 ‘역시 장모님 음씩 솜씨 알아줘야 한다’는 아부 섞인 찬탄을 내뱉으며 순식간에 그릇을 비워냈다. 나는 ‘이걸 먹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며 한참을 미간을 찌푸린 채 앉아 있었다. 내 표정을 본 아빠는 안 먹을 거면 당신이 먹는다며 내 그릇을 가져가려 했다. 난 괜스레 그릇을 빼앗기는 게 싫어서 숟가락을 들었다. 매생이는 미끄덩거리며 수저에 잘 올라가지 않았고 나 역시 그릇째 들고 그 국을 마셔야 했다.

(사진: 아영의 블로그/blog.naver.com/ayeong527/220613571704)

어찌나 심장이 떨리던지… 해조류 맛이 거기서 거기겠지만, 처음 보는 음식에 대한 거부감은 생각보다 깊었다. 개불조차 처음 보자마자 먹었던 나인데 말이다.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매생이의 식감은 미끈하면서도 약간 까쓸까슬한 것이 과히 좋진 않았다. 하지만 아빠의 말처럼 음식에 조예가 깊은 외할머니의 손맛은 매생이에도 스며들었다. 국물은 깔끔하고 시원했으며 참기름과 생굴이 어우러진 겨울 매생이는 난생처음 겪는 신세계였다.

전라남도 겨울 별미, 매생이

매생이는 남도 지방의 겨울 별미다. 지금도 겨울, 외할머니 집에 내려가면 항상 상에 매생이국이 올라와 있다. 이젠 적응되다 못해 외할머니가 상을 차리시기도 전에 매생이 국은 없냐며 물어본다.

매생이는  파래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파래와는 엄연히 다른 해초류의 일종이다. 매생이가 전라도 별미로 자리 잡은 데는 그 특유의 예민함이 한몫한다. 매생이는 11월 말 ~ 2월까지 약 3개월 동안, 차가운 청정지역 겨울 바다에서 자라며 갯벌이 있고 조류가 잔잔한 내해에서 성장한다. 또한, 매생이는 환경 오염에 민감해 조금이라도 오염된 바다에서는 바로 녹아버리는 탓에 생육 자체가 불가능하다.

자산어보로 유명한 정약전은 매생이를 보고 ‘누에 실보다 가늘고 쇠털보다 촘촘하며 길이가 수 척에 이른다. 빛깔은 검푸르다. 국을 끓이면 연하고, 부드럽고, 서로 엉키면 풀어지지 않고 맛은 매우 달고 향기롭다’는 말을 남겼다.

매생이는 계절식품으로 남도 사람들이 별미 중의 별미로 꼽는다. 효과는 다른 건강식품과 마찬가지로 만병통치다. 요새는 냉동기술이 발달해 내륙지방에서도 쉽게 먹을 수 있다.

(사진: eun비령의 블로그/blog.naver.com/ryung0212/220599877468)

매생이 국뿐만 아니라 매생이 죽, 매생이 칼국수, 매생이 전 등 무궁무진한 변화를 겪는 매생이. 그런 매생이에 관련된 속담이 있다. ‘미운 사위 매생이국’. 이 속담에 대한 설명은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의 서 교수에게 맡기도록 하자.

“저 식당은 매생이국으로 유명합니다… 진남에는 ‘미운 사위 매생이국’이라는 속담이 있어요… 센 불에 펄펄 끓여도 김이 나지 않으니 언뜻 봐서는 미적지근한 국물처럼 보이죠. 장모가 미운 사위에게 먹이려고 매생이국을 끓이는 건 정월의 일입니다. 그때가 제철이니까. 그 사위는 진남 북쪽 두륜산 너머 내륙 출신으로 평생 매생이 같은 건 한 번도 본 일이 없는 사람일 것이고요…

내가 물어본다고 해도(도대체 사위의 잘못이 무엇이기에 뜨거운 매생이국을 주의도 없이 먹이는지) 속담 속의 장모는 자기 사위에게 무슨 험담이냐며 시치미를 뗄 겁니다. 그게 바로 진남 사람들이죠.”

“속마음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는 뜻인가요?” 내가 물었다.

“블랙박스랄까. 의뭉스러워서 속이 안 보여요… 사위한테 받은 미운 짓을 고스란히 돌려준다는 얘기잖아요, 해서 그 사위는 멋도 모르고 뜨거운 매생이를 날름 삼켰다가 입천장이 홀라당 까지는 수모를 겪게 되겠죠. 하지만 장모는 태연하게 그런 사위를 위로할 테고, 그는 자신의 불운을 한탄하며 괴로워한다는 데까지가 이 속담의 본뜻이에요. 그러니깐 진남에서는 뭘 먹을 때는 충분히 식혀야만 합니다. 겉보기에는 괜찮을 것 같아도 그대로 삼켰다가 크게 혼나는 수가 있어요.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나요, 카밀라양?”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그는 음식에 대해서만 말한 게 아니었다. 그건 내가 받아들여야만 할 진실에 대한 말이기도 했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의 주인공 카밀라는 20여 년 전 미국으로 입양된 입양아다. 동백꽃이라는 뜻을 가진 이름, 카밀라. 그녀는 자신을 사랑해주던 양모가 죽고 양부가 새로운 사람과 만나게 되면서 예상치 못한 6개의 상자를 건네받게 된다. 양부가 새 가정을 이루기 위해 집 정리를 하면서 카밀라의 물건들을 보낸 것이다. 자신의 어린 시절이 담긴 6개의 상자를 열어보며 잊고 있던 추억을 기록하기 시작한 카밀라.  그 기록을 책으로 출판하게 되고 작가의 길을 걷게 된다.

그녀는 상자에서 동백나무 아래서 친모가 자신을 안고 있는 사진을 발견했고, 에이전트의 제안으로 자신의 뿌리를 찾아간다. 남자친구인 유이치와 함께 고향 진남에 도착한 카밀라는 ‘미운 사위 매생이국’이라는 속담처럼 의뭉스럽고 블랙박스 같은 진남 사람들을 마주한다. 모두들 무언가를 숨기는 것 같았던 그때, 그녀를 찾아온 김미옥은 카밀라의 엄마 ‘정지은’이 그녀를 낳고 1년 후 자살했다는 진실을 알려준다. 그 사실을 듣고 좌절하던 그녀. 또다른 출생의 비밀을 맞닥뜨리게 되고 그 과정에서 얽히고 섥힌 오해들 때문에 자살 할 수밖에 없었던 엄마를 이해하게 된다.  

우리는 수많은 오해를 뛰어넘는 '날개'를 가질 수 있을까?

이 책은 '불편하다는 편견으로 진실을 외면한 사람들'. '그들로 인해 죽은 정지은(엄마)'과 '그녀의 딸 카밀라'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진행한다. 하나의 시점일 때 가질 수밖에 없던 오해는 여러 시점을 통해 다시 재발견된다. 이야기의 핵심은 그 오해를 뛰어넘은 진실이다.

“심연을 뛰어넘지 않고서는 타인의 본심에 가닿을 수 없어요. 그래서 우리에게는 날개가 필요한 것이죠. 중요한 건 우리가 결코 이 날개를 가질 수 없다는 점입니다.……결국 우리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알 방법은 없습니다.”

사람의 인연은 말 한 끗 차이의 오해로도 깨질 수 있다.  깨지지 않더라도 우리는 상대방의 많은 것을 오해하며 살아간다. 카밀라는 정지은(엄마)을 오해했었고, 진남여고 학생들도 정지은을 오해했다. 그들 사이의 심연은 깊어질 대로 깊어져 날개를 달아 그 사이를 날아갈 수 없다.

하지만 카밀라는 오해를 뛰어넘어 엄마를 이해하게 됐고, 자신이 '정지은(엄마)의 날개'이고 엄마는 '자신(카밀라)의 날개'임을 깨닫는다. 정체성 없이 살아가던, 다른 누구보다 낯설었던, 자기 자신의 심연에 가닿는 날개.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너를 생각하는 건 나의 일이었다. 너와 헤어진 뒤로 나는 단 하루도 너를 잊은 적이 없었다.” 

떨어져 있어도 카밀라를 잊을 수 없었던 엄마의 고백처럼 말이다.

날개는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각자의 시선에 갇혀 상대방의 진실을 알기를 거부하고 오해를 일삼기 때문에 날개는 쉽게 보이지 않는다. 날개는 ‘정지은(엄마)’이 ‘카밀라’를 한순간도 잊지 않은 것처럼 상대방을 ‘알기’를 염원할 때 보이는 것일지 모른다.

의뭉스러운 진남 사람들 사이에서 진실을 발견한 정희재. 그녀가 끝내 진남에서 매생이국을 먹었는지, 먹지 않았는지는 모르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의뭉스러운 매생이국의 첫 모습만으로 오해해서 진실을 피하지 말자. 오해만으로 피해버리기에 매생이 국의 진실은 너무 고소하다.

북앤쿡동화 ‘시골 쥐, 도시 쥐’ 속에 나왔던 지하실. 그곳에 한 가득 쌓인 음식은 봉인됐던 나의 ‘식탐’을 깨웠다. 이후 대하소설 ‘토지’를 보고선 콩나물 국밥을 사먹었고,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곤 마들렌을 처음 접했다. 쿡·먹방 시대를 맞아 음식과 문학의 이유 있는 만남을 주선해본다.


The First 추천 콘텐츠 더보기
  • “24주 연속 1위 브랜드의 저력으로”…‘나르카’ 운영사 ‘언커먼홈’, 매쉬업벤처스 등으로부터 후속 투자 유치
    “24주 연속 1위 브랜드의 저력으로”…‘나르카’ 운영사 ‘언커먼홈’, 매쉬업벤처스 등으로부터 후속 투자 유치

    이제 헤어 케어도 브랜딩이다!

  • “최근 가장 눈에 띄는 창업팀은?”…유망 초기 스타트업 뽑는 ‘혁신의 숲 어워즈’ 막 올랐다
    “최근 가장 눈에 띄는 창업팀은?”…유망 초기 스타트업 뽑는 ‘혁신의 숲 어워즈’ 막 올랐다

    최근 1년 사이 가장 주목할만한 초기 스타트업을 꼽는 '혁신의숲 어워즈'가 17일 대장정을 시작했다. 어워즈의 1차 후보 스타트업 30개 사를 전격 공개한 것. ‘혁신의숲 어워즈’...

  • “Only for you”…대세는 초개인화 서비스
    “Only for you”…대세는 초개인화 서비스

    초개인화의 기치를 내건 스타트업들이 존재감이 점점 커지고 있다.

  • 타 산업과 연계, 핵심 기술 접목…“관광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라”
    타 산업과 연계, 핵심 기술 접목…“관광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라”

    '관광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 틈새에 대한 혁신적인 시도 돋보였다!

  • “생산성, 효율성 쑥쑥 올리는 솔루션”…매쉬업벤처스, 스타트업 ‘마일 코퍼레이션’에 초기 투자
    “생산성, 효율성 쑥쑥 올리는 솔루션”…매쉬업벤처스, 스타트업 ‘마일 코퍼레이션’에 초기 투자

    기업의 공간, 자산 관리를 디지털 전환시킬 창업팀!

  • “당신에겐 더 큰 무대가 필요하다”…스타트업의 해외진출을 지원하는 스타트업
    “당신에겐 더 큰 무대가 필요하다”…스타트업의 해외진출을 지원하는 스타트업

    스타트업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는 스타트업의 등장!

  • “국내 기업의 글로벌 성장 발판 마련”…한국액셀러레이터협회, 뉴저지 진출 전략 웨비나 개최
    “국내 기업의 글로벌 성장 발판 마련”…한국액셀러레이터협회, 뉴저지 진출 전략 웨비나 개최

    국내 유망 스타트업의 미국 진출, 맞춤형으로 지원한다!

  • 초록은 동색…“함께 할 때 혁신은 더욱 빨라진다.”
    초록은 동색…“함께 할 때 혁신은 더욱 빨라진다.”

    서로 경쟁하지 않을 때 더욱 경쟁력이 높아지는 아이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