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여유와 열정 사이
스페인, 여유와 열정 사이
스페인, 여유와 열정 사이
2016.05.06 09:00 by 이국재

대부분의 부모들이 다르지 않을 겁니다. 내 아이가 꿈을 이룰 수 있도록 있는 힘껏 뒷받침해주고 싶다는 그 마음요. 머나먼 타지에서 새 삶을 꾸린다는 건 인생의 모험과도 같은 일이었지만, 혼자 묵묵히 꿈을 향해 달려 나가는 어린 아들 녀석을 보며 저도 용기를 얻었습니다. 그렇게 지금 우리 네 식구가 이곳에 있습니다. 축구의 나라, 스페인에요.

정준이가 열두 살이던 2009년… 기대가 컸던 포르투갈 유학은 허무하게 끝이 났습니다. 귀국해서도 한참을 풀이 죽어있던 정준이… 저는 하루라도 빨리 아이가 마음 놓고 뛸 수 있도록 새로운 환경을 찾아주고 싶었습니다. 다행히 기회는 곧 찾아왔습니다.

 포루투갈에선 어떤 일이?
 3화  아이들은 꿈을 위해 공을 찼고, 어른들은 그 꿈을 걷어찼다

꿀뜨랄 데포르티보 레오네사(Cultral y Deportiva Leonesa)의 엠블럼. 정준이가 처음으로 선수로서 그라운드를 누빈 클럽입니다.

당시 대한민국의 유소년 대표팀이 스페인의 한 유소년 팀을 초청해 경기를 가졌는데요. 현재 스페인 3부리그 소속인 꿀뜨랄 데포르티보 레오네사(Cultral y Deportiva Leonesa)의 유소년 팀이었지요. 저는 수소문 끝에 이 팀의 관계자와 연락이 닿게 되었습니다. 클럽 측에서는 정준이의 기량과 가능성을 높이 샀고, 마침내 이 팀으로 스카우트되어 입단하게 되었습니다. 선수로서 첫 발을 내딛게 된 것이죠.

FC 바르셀로나의 홈구장 '캄프 누'의 위용. 많은 선수들이 이곳에서 뛰는 것을 목표로 삼습니다. (사진: Natursports / Shutterstock.com)

스페인 축구의 힘, 유소년 축구의 힘 

스페인의 축구 인프라는 정말 어마어마했습니다. 견고한 층위와 방대한 선수층을 가진 성인 리그도 그렇지만, 더욱 인상적인 것은 성인 리그의 시스템을 빼다 박은 유소년 리그였죠. 그들이 어린 선수들의 육성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지 체감한 대목입니다.

성인 팀을 대상으로 하는 스페인의 축구 리그는 1부에서 8부 리그까지 총 8개 그룹의 리그로 편성돼 있습니다.(이는 마드리드 축구협회 기준이며, 각 지역 축구협회마다 조금의 차이는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어떤가요? 2부 리그인 K리그 챌린지가 창설되고, 승강제가 도입된 게 불과 3년 전의 일입니다.

구분리그그룹



SENIOR



PRIMERA DIVISION120
SEGUNDA DIVISION122
SEGUNDA DIVISION B480(20)
TERCERA DIVISION18360(20)
PREFERENTE  
PRIMERA REGIONAL  
SEGUNDA RESIONAL  
TERCERA REGIONAL  

스페인 축구 성인 리그는 8부 리그까지 존재합니다.

스페인 축구 리그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볼까요. 먼저 프리메라 디비시온(Premera Division), 1부 리그를 말합니다. 우리가 흔히 ‘프리메라리가’, ‘라 리가’라고 부르는 스페인 최상위 리그죠. 총 20개 팀이 매 시즌 각축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 유명한 레알 마드리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등이 포진되어 있습니다. 2부 리그는 22팀이 등록돼 있는 세군다 디비시온(Segunda Division), 3부 리그는 세군다 디비시온 B(Segunda Division B)입니다. 세군다 디비시온 B에는 그룹 당 20개 팀씩, 총 4개 그룹 80개 팀이 속해 있습니다. 그 다음이 4부 리그인 떼르세라 디비시온(Tercera Division)으로 역시 1개 그룹에 20개 팀씩, 총 18개 그룹에 무려 360개의 팀의 선수들이 그라운드를 누빕니다. 한 팀에 25명씩만 잡아도, 3부 리그에만 약 9000명의 선수가 등록돼 있는 셈입니다.

이 밖에도 5부, 6부, 7부, 8부 리그까지, 훨씬 더 많은 팀들이 존재합니다. 많아도 너무 많죠? 이 가운데서 살아남으려면 보통 일이 아닐 것입니다. 먹고 먹히는 정글의 한 가운데서 타잔이 되지 않는 이상요.

스페인 축구의 힘 = 유소년 축구의 힘. (자료사진, 사진: Fotokostic/shutterstock.com)

이러한 성인 리그를 지탱하는 힘을 유소년 선수 육성 시스템에서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유소년 선수를 위한 훈련 프로그램이나 지도진, 부대 환경이 매우 잘 갖춰져 있지요. 나이별, 그 안에서 또 실력(레벨)별로 편제된 여러 리그는 성인 리그와 동일한 방식으로 운영됩니다. 상위 리그와 하위 리그간의 승강제가 유소년 팀에도 고스란히 도입돼 있거든요. 세계 유수의 성인 선수들뿐만 아니라, 유소년 선수들까지 스페인 팀들의 문을 두드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구분연령카테고리
ALEVINA11AUTONOMICA
PREFERENTE
PRIMERA REGIONAL
SEGUNDA REGIONAL
B10
INFANTILA13DIVISION DE HONOR
AUTONOMICA
PREFERENTE
PRIMERA REGIONAL
SEGUNDA REGIONAL
B12
CADETEA15AUTONOMICA
PREFERENTE
PRIMERA REGIONAL
SEGUNDA REGIONAL
B14
JUVENILA18DIVISION DE HONOR
LIGA NACIONAL
AUTONOMICA
PREFERENTE
PRIMERA REGIONAL
SEGUNDA REGIONAL
B17
C16

스페인의 유소년 리그는 10세 부터 18세까지 체계적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71만1596명. 스페인의 각 지역 협회에 등록된 유소년 선수의 수입니다(2014년 기준, 스페인축구협회). 비슷한 시기 국내 유소년 선수는 총 3만6626명으로(대한축구협회), 스페인의 5% 규모에 불과합니다. 총 인구는 스페인이 4700만명으로, 5100만명인 대한민국보다 오히려 조금 적은데도 말이죠.

스페인에서 축구는 ‘국기’라는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전 국민의 각별한 애정 속에서 지금도 자라나고 있습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많은 사람들이 생활 속에서 즐기고 있지요. 7인제 축구나 5인제 풋살도 매우 활성화 돼 있습니다.

스페인의 휴일 아침 풍경입니다. 너도 나도 주변 운동장으로 달려가 공을 찹니다. (사진: 이국재)

'빨리빨리'보다 더 힘든 '느릿느릿'

7년 전, 정준이가 처음 입단한 팀인 꿀뜨랄 데포르티보 레오네사는 스페인의 북부지역에 자리한 ‘교육의 도시’ 레온(Leon)에 연고를 두고 있습니다. 레온은 한때 스페인의 수도이기도 했고, 지금의 수도인 마드리드에서는 자동차로 3시간가량 거리에 있습니다.

레온 시에서 운영하는 이 클럽은, 현재 3부리그인 세군다 디비시온 B에 속해있는데요. 당시 정준이는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입단해 지역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곳에서 15살 때까지 3년을 보낸 정준이에게 레온은 제2의 고향과도 같습니다.

어린 나이에 홀로 된 정준이… 첫 유학생활은 혼자 오롯이 감내해야 했습니다. 1년에 한 번 정도 얼굴을 보러 며칠 다녀가는 게 전부. 아이를 머나먼 타국에 떼어놓고 올 때마다 얼마나 안타까웠던지요. 결국 유학 3년째가 되던 해 가족들 모두를 이끌고 스페인 행을 택했습니다.

 스페인은 ‘이민’이라는 제도가 없더라고요. 학생 혹은 거주 비자를 취득해 일정 기간 이상 체류하면 시민권이나 영주권이 주어지는 방식입니다.

레온 성당 앞에서, 아내와 둘째 (사진: 이국재)

언어도 생소하고 환경도, 관습도 다른 이곳에서 적응하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기댈 곳이라곤 말이라도 통하는 한국인들이었을 테지만, 레온에는 교민들도 거의 없었습니다.

사실, 포르투갈에서 한 차례 일을 겪은 후여서 의식적으로 한국인들을 피하기도 했습니다. 특히나 축구에 관련된 한국인이라면 더더욱이요. 축구 에이전트라며 더 좋은 팀을 소개시켜주겠다고, 입단 테스트를 받게 해주겠다고 금전을 요구하며 접근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응해보아도 ‘역시나’였죠. 그저 제가 운이 나빴던 걸까요? 이런 일들을 생각하면 착잡하기만 합니다.

2011년, 레온에서 (사진: 이국재)

40여년 이상을 ‘빨리빨리’를 외치는 세상 속에서 살아온 저에게, 스페인 사람들 특유의 여유 있는 태도는 그야말로 문화충격이었습니다. 집에 TV며 인터넷을 신청했는데, 한 달이 다 되어서야 설치 기사가 방문하더라고요. 이건 예삿일이었죠. 오후 2시면 업무가 끝나는 은행. 낮잠들을 주무시느라 대낮에 문 연 가게들이 없어 곤란했던 적도 여러 번이었습니다. 이곳 사람들의 삶의 방식에 익숙해지는 데는 꽤나 시간이 걸렸더랬지요.

2시다, 문 닫자

처음에 가장 낯설었던 것은 ‘시에스타(siesta)’라 불리는 낮잠을 자는 풍습이었습니다. 음식점을 제외한 모든 가게들은 무려 오후 2시부터 5시까지가 점심시간으로, 이 시간 동안엔 일을 하지 않았는데요.(지역마다 다소 상이합니다.) 사실 스페인에 와 5년이 흐른 지금도 적응이 잘 되지 않는 부분입니다. 한낮이면 너무 덥기 때문에 생긴 전통으로, 능률도 안 오르는 데 무리하게 일하는 것 보다 차라리 한 숨 자고 저녁에 움직이자는 취지라고 하네요. 스페인뿐만 아니라 지중해 연안의 포르투갈, 그리스에서도 이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스페인 사람들에게 춘곤증이란? (사진: 나무위키)

 허허, 뭘 그런 것 가지고

스페인 사람들의 느긋함은 자동차를 다루는 데에서도 나타납니다. 이곳 사람들을 자동차를 단순히 이동수단의 하나로 여겨요. 우리처럼 애지중지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가벼운 접촉사고나 잔 흠집(기스)은 대수롭지 않게 여깁니다. 골목 골목이 이어진 도로, 좁은 주차공간도 한 몫 하는 것 같습니다. 이미 주차되어 있는 앞뒤 차를 콩콩 박아가며 주차를 하는가 하면, ‘문콕’도 늘상 있는 일 마냥 넘겨버리죠. 제 차의 문짝에도 자국이 수십 개도 넘게 있어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도어가드(문콕 방지 스폰지)까지 붙이고 다니는데 말이죠. 저도 처음에는 황당했죠. 그런데 여기선 내 차에 흠집을 냈다고 따지면 오히려 성을 내더라고요. 뭘 그런 것 가지고 그러냐고요.

경기 전, 정준이가 선수들과 함께 있는 모습 (사진: 이국재)
그라운드를 누비는 정준이 (사진: 이국재)

가족들보다 두 발, 세 발 먼저 스페인에 정착한 정준이의 경우는 달랐습니다. 언어도 많이 늘었고(지금은 현지인 수준의 스페인어를 구사합니다), 무엇보다 축구 선수로서도 나날이 성장했지요. 정준이가 레온에서 활동한 마지막 시즌인 15세 때에는 리그에서 43골과 15어시스트를 기록했는데요. 이 클럽에서 개인이 기록한 역대 최고의 공격 포인트였죠. 이 활약을 바탕으로 정준이는 마드리드에 연고를 둔 구단, ‘헤타페(Getafe C.F.)’로 이적하게 됩니다. 드디어 꿈에 그리던 프리메라리가에 입성하는 순간이지요.

좌충우돌 스페인 정착기 세계적인 축구선수를 꿈꾸며 스페인을 찾은 이정준(19)군과 자식의 꿈을 위해 뒤늦게 이민 짐을 쌌던 열혈아빠 이국재 대표(월드스포츠매니지먼트‧WSM)의 스페인 정착기. 스페인 현지에서 전해주는 그들의 꿈, 이민, 축구, 그리고 가족 이야기를 만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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