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이메일 한 통으로부터 시작 됐다
모든 것은 이메일 한 통으로부터 시작 됐다
모든 것은 이메일 한 통으로부터 시작 됐다
2016.05.11 16:43 by 김상욱

 

스프링캠프에서 프로야구 시즌 준비가 한창이던 2013년 초, 당시 SK 와이번스 이만수 감독은 낯선 남자에게서 한 통의 이메일을 받게 됩니다. 일면식도 없던 그 남자는 무턱대고 “라오스에 야구를 보급 해 달라”고 부탁을 해 왔습니다. 반평생 야구를 하면서도 미국, 일본으로만 전지훈련을 다니느라, 라오스는커녕 동남아시아 국가에는 전혀 가 본 적 없던 이만수 감독. 더구나 시즌 준비로 정신없던 그는 누군지도 모르는 낯선 남자에게 무슨 도움을 어떻게 줘야 할 지 막막했습니다.

 

시즌 개막으로 더 정신없던 4월, 라오스에 있던 그 낯선 남자는 이만수 감독의 전화를 받게 됩니다. 라오 브라더스와 이만수 감독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무엇이 이만수 감독을 움직인 걸까요? 궁금했습니다.

 

01

“자네들, 야구 좀 할 줄 아는가?”

 

“시즌 초반이라 정말 정신 없으셨을 텐데 어떻게 전화 할 생각을 하셨어요?”

 

“그러게 말입니다. 시즌은 개막했고 바쁜데도 자꾸 머릿속에 맴돌더라고요. 라오스에 대한 정보도 전혀 없고 메일을 준 사람이 누군지도 잘 모르겠지만, 이상하게 계속 마음에 걸렸어요.”

 

“그 바쁘고 정신없는 와중에 정말 대단하시네요. 그래서 무슨 도움을 주셨어요?”

 

03

SK감독 시절 이만수 감독이 사재를 털어 마련한 야구 용품

 

“뭐 일단 제 사비로 1000만원어치 야구 용품을 사서 보냈습니다. 시즌 중이라 직접 가 볼 수는 없으니까요. 미약하나마 제가 보내 준 야구 용품을 가지고 아이들은 캐치볼을 시작했대요. 저에게 메일을 보냈던 건 라오스 교민 제인내씨였죠. 그가 2013년 11월쯤 현지 대학교 주차장에서 아이들을 모아놓고 야구 연습을 시작한 게 ‘라오 브라더스 야구단’의 출발입니다.”

 

“캐치볼은 주차장에서 해야 제 맛이지”

 

 

라오 브라더스 야구단의 탄생

 

라오스는 동남아시아 국가 중에서도 가난한 나라인데다 사회주의 국가입니다. 스포츠도, 건전한 놀이 문화도 제대로 없습니다. 청소년들은 어린 나이에 쉽게 술, 담배, 마약, 성문화에 빠집니다. 라오스 현지에서 개인 사업을 하는 한국 교민 제인내씨는 청소년들이 이러한 유혹에 쉽게 노출되는 것이 너무 안타까웠다고 합니다.

 

그런데 제인내씨와 라오스에 거주하는 교민들이 여가시간에 빈 공터에서 캐치볼을 하고 있노라면 라오스 아이들이 몰려와 흥미 있게 구경을 하곤 했다고 합니다.

 

라오스의 아이들과 청소년들을 바라보며 늘 안타까운 마음을 갖고 있었던 제인내씨. ‘이 아이들에게 야구를 가르쳐 볼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습니다.

 

특히 집안 형편이 어려워 학교를 다닐 수 없는 아이들, 학교는 나왔지만 마땅한 일자리가 없어 빈둥대는 청년들에게 비록 야구가 당장 먹고 살 길을 마련해 주진 못하더라도 삶에 산소 같은 희망을 불어넣어 줄 수 있지는 않을까 생각했던 것이죠.

 

그러던 중 제인내씨는 더욱 전문적인 도움을 받고자 했고, 수소문 끝에 한국의 프로야구 레전드 이만수 감독의 이메일 주소를 알아냈습니다. 그는 ‘이런 식의 연락이 통하겠느냐’ 하면서도 무작정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설마’했던 이만수 감독으로부터 진짜 연락이 온 겁니다. 이제는 라오 브라더스가 제인내씨와 이만수 감독의 ‘꿈’을 넘어 ‘모두의 꿈’으로 거듭났습니다. 마치 원래부터 예정 돼 있었던 것처럼….

 

 

미지의 땅, 라오스로

 

이따금씩 예능프로그램에서 다뤄지면서 조금 알려지긴 했지만, 라오스라는 나라는 한국인들에게 여전히 낯선 미지의 땅이었습니다. 반대로 라오스 사람들에겐 ‘야구’가 그랬습니다. 라오 브라더스가 라오스 최초의 야구단이었거든요.

 

저 역시 사회주의 국가 라오스가 낯설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생겨난 야구단이 무척이나 궁금했지요. 마침 지난 1월, 한국-라오스 친선 야구대회가 열린다는 소식에 라오스로 날아갔습니다. 군 복무 시절 이후로 처음 접한 영하 18도의 올겨울 한파를 피해 여름으로 간다고 주변 사람들은 부러워했지만, 현지 소식통에 의하면 라오스도 영상 10도 안팎의 유례없는 강추위(?)였습니다.

 

06

‘한 여름의 크리스마스’스러운 라오스 날씨

 

계절을 거슬러 도착한 라오스는 비를 머금은 구름이 잔뜩 낀 쌀쌀한 날씨였습니다. 한국인들에게는 익숙한 가을 날씨였지만 라오스인들은 쉽게 접하지 못하는 강추위였다고 합니다. 심지어 소가 얼어 죽었다고도 하네요. 매번 동남아시아 나라에 출장을 갔을 때 아침부터 느껴졌던 ‘후덥지근함’이 일단 라오스에서는 느껴지지 않아서 마음에 들었지만, 과연 이런 날씨에 제대로 된 야구 대회가 열릴 수 있을지 조금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물론 이 걱정이 ‘기우’였다는 것은 나중에 알게 됩니다.

 

수도 비엔티안에서 외곽으로 한 10여 분 차로 달렸을까요. 이내 시골 마을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말로만 듣던 얼어 죽은 소는 보이지 않았지만 반팔을 입고 있기엔 다소 쌀쌀한 날씨였습니다. 시골스러운 주변과는 어울리지 않는 작지만 깔끔한 훈련장이 이런 곳에 있다니 신기했습니다. 그곳에선 몇몇 라오 브라더스 선수들이 훈련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매우 진지한 표정과 눈빛으로 저를 맞았습니다.

 

 

기적을 싹틔울 작은 밀알

 

먼저 도착해 있던 이만수 감독이 선수들을 소개했습니다. 그들은 처음 본 저에게도 모자를 벗어 인사하고, 저와 하이파이브를 할 때도 고개를 숙이며 왼손으로 오른쪽 팔꿈치를 받쳤습니다. 그 모습에서 ‘아 벌써 야구를 통해 예의를 배웠구나’ 느꼈습니다. 하지만 낯선 사람이 찾아와서인지, 수줍음을 감추진 못하더라고요.

 

08

“가르쳐 주는 모든 것을 다 흡수해 버리겠다!!”

 

“감독님, 그런데 선수들이 많이 수줍어하네요?”

 

“그렇죠? 허허. 저랑 처음 봤을 때도 그랬어요. 그런데 아직도 저를 보면 부끄러워하는 선수들이 많아요. 그만큼 순수하다는 거죠.”

 

“이 선수들을 처음 만나셨을 때 이야기가 궁금한데요?”

 

“SK감독 지휘봉을 내려놓고 바로 라오스로 갔어요. 처음 선수들을 만났을 땐 정말 막막했습니다. 생각보다 체격은 너무 왜소했고, 낯선 사람에 대한 두려움인지 쑥스러움인지 잘 다가 오지 않더라고요. 게다가 야구는 단 한 번도 본 적도 없대요. ‘내가 이 청소년들을 데리고 뭘 할 수 있을까’ 답답했습니다. 그리고 ‘왜 이 아이들이 야구를 하겠다고 모였을까’ 정말 의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들에게 야구가 단순한 스포츠가 아닌 삶의 끈을 잡을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라는 걸 알게 됐죠.”

 

10

“한국 프로야구여~ 나를 기다려라!”

 

“야구를 할 운동장이 있나요?”

“지금 라오 브라더스 선수들은 제대로 된 야구를 할 공간이 없어요. 유니폼이랑 장비는 한국에서 후원한 것으로, 급한 대로 구색은 갖췄습니다. 그런데 방망이랑 글러브, 공이 있으면 뭐합니까? 그 방망이로 공을 강하게 치고 그 글러브로 멋지게 다이빙해서 공을 잡아야 진짜 야구를 하는 거죠. 현실은 마을 운동장을 가끔 돈 내고 빌려서 바닥에 선 긋고 경기하는 정도였죠.”

 

12

“야구장 라인은 내가 직접 그리겠소.”

 

“그럼 평소 훈련은 아예 못하나요?”

 

“한 독지가 부부의 도움으로 지붕이 있는 작은 훈련 공간을 최근에 만들었습니다. 전속력으로 한 바퀴 돌면 30초도 안 걸리는 작은 공간이에요. 간단히 몸만 풀 수 있는 곳이죠. 그 분들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꿈도 못 꿨을 겁니다. 이 소중한 곳이 라오 브라더스가, 더 나아가 라오스 청소년들이 꿈을 꾸는 공간이 될 거라 확신합니다. 그분들이 밀알 같은 역할을 하신 거죠.”

 

“그 분들은 누구시죠?”

 

“사실……”

 

잠시 망설이는 이만수 감독의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도움을 주신 분들은 이은수, 정흥선 부부이신데요. 사연이 남다릅니다. 부인되시는 정흥선씨가 대장암 말기였습니다. 그런데 본인들이 거주하시는 집을 팔아서 비용을 마련한 것을 나중에야 알았어요. 그 얘기를 듣고 너무나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옆에서 얘기를 듣고 있던 제인내씨가 거들었습니다.

 

“한 아이는 집이 멀어 왕복 3시간을 걸어 다니면서도 매일같이 훈련하러 와요. 시키지도 않았는데 다들 밤늦게 남아서 캐치볼 연습도 하고요. 비록 작은 공간이지만, 이곳마저 없었다면 우리는 여전히 주차장에서 눈치 보며 훈련했을 겁니다.”

 

야구 불모지에 누군가의 헌신으로 심겨진 작은 밀알… 비록 협소한 곳이지만 이만수 감독은 확신합니다. 먼 훗날 되돌아 봤을 때, 이 공간이 라오스 청소년들에게 기적이 시작되었던 공간으로 기억될 것이라고요.

 

 

'헐크' 이만수의 꿈 “야구로 받은 사랑, 야구로 갚겠다!” 대한민국 프로야구의 역사와 함께 했던 이만수 前감독(SK 와이번스)이 야구 불모지 라오스에서 펼치는 유소년 육성기. 라오스 판 ‘엘 시스테마’의 기적을 만들어가는 현장을 만나본다.

이 콘텐츠는 헐크 파운데이션(Hulk Foundation)의 스토리펀딩 프로젝트 내용을 재가공한 것입니다. 라오 브라더스와 헐크 파운데이션 후원에 관심이 있는 독자분들께서는 재단 페이스북(facebook.com/leemansoo22)으로 문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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