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저한 진상 규명만이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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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저한 진상 규명만이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할 일입니다"
2014.09.20 08:30 by 김형준
‘희망나비’는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청년들의 모임이다. 이들은 ‘나비의 꿈’이라는 평화기행단을 결성해 지난 6월 23일부터 16박 17일 동안 유럽 프랑스, 독일, 벨기에, 체코 등 4개국에 다녀왔다. 이들은 세계1, 2차대전의 상처를 지닌 곳을 찾아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알리고 전쟁의 아픔을 공유하는 캠페인을 벌였다. 이 글에서는 유럽평화기행의 단장을 맡았던 희망나비 활동가 김형준 씨가 프랑스의 오하두흐 마을에서의 경험을 전한다.

 

지난 6월 26일 유럽평화기행 ‘나비의 꿈’은 나치에 의한 양민학살지, 프랑스의 오하두흐 쉬드 글란(Oradour-sur-Glane) 이라는 마을을 방문했다.

이곳은 2차대전말 1944년 6월 10일 나치친위대에 의해 일방적으로 민간인들의 학살이 이루어진 곳이다. 지금은 마을 전체가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승승장구하던 나치독일은 소련과의 스탈린그라드전투로 국면이 불리하게 전환되고, 곧이은 미국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으로 인해 패색이 짙어졌다. 그런 가운데 나치군대가 이곳 오하두흐에 화풀이 하듯 대규모 학살을 자행됐다.

크기변환_마을 (6)


당시 700여명의 사람들이 평화롭게 살고 있었던 오하두흐 마을은 나치군대의 학살로 주민들이 몰살당했다. 살아남은 사람은 채 열 명이 되지 않는다.

2차 대전이 끝난 후 프랑스 드골대통령의 결의로 마을은 문화재로 지정돼 학살 당시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이곳을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 박물관도 건립했다. 그리고 사람들이 살 수 있도록 학살이 일어났던 마을 옆에 새로운 마을을 만들었다. 지금 오하두흐에는 2,400여명의 사람들이 삶의 터전을 꾸려서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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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당시 몇 안 되는 생존자 중 한명인 까미유쓰농(Camille Senon)할머니와 오하두흐를 둘러보며 생생한 증언을 들었다. 오하두흐의 시장, 리모주 지역 도의원, 현지 언론사, 지역의 노동조합(CGD) 간부, 프랑스코리아친선협회, 인종 차별 반대 단체 활동가 등과 현지인들이 우리와 쓰농할머니를 맞이해 줬다.

할머니의 생생한 증언은 실로 끔찍했다.

“나치 친위대가 남자들을 벽으로, 카센터로, 와인가게로 몰아 넣었습니다. 카센터의 차를 밖으로 내놓고 사람들을 들여 보냈죠. 몇 평 되지 않는 공간에 사람들이 머리만 내놓고 꾸역꾸역 들어갔고, 총살이 시작됐습니다. 총살로 죽은 시체 밑에 깔려 살아남은 사람들 역시 죽였지요. 증거를 남기지 않으려 집에는 불을 질렀습니다.”

오하두흐 마을에는 지붕이 있는 건물이 없다. 지붕이 다 불타버렸기 때문이다.

“여성과 아이들은 모두 교회에서 학살당했습니다. 작은 교회에는 400여명이 넘는 여성과 아이들로 가득 찼습니다. 먼저 수류탄을 터트려 사람들을 죽인 후, 다시 들어와 연기와 수류탄 파편으로 힘겨워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무차별 총살을 가했습니다. 그러고 난 다음 불을 질렀습니다. 폭탄이 터지고 한 여자 아이가 어머니의 도움으로 창문을 뛰어 넘어 밖으로 나갔습니다. 이 여성이 유일한 생존자 입니다. 덕분에 교회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총격으로 아무도 창을 넘지 못했습니다.”

ohdh-church


60명이었던 우리 일행이 들어가도 가득 차는 이 장소에 400여명이 넘는 사람들이 끼어 있었다니 정말 끔찍했다. 회색이었다던 교회는 그 역사를 잊지 않으려는 듯 분홍색 빛을 띠고 천장에 달려 있던 종도 녹아 떨어져 있었다. 천장은 역시 뚫려 있었고, 벽 곳곳엔 총탄자국이 있었다.

교회 앞에는 큰 나무가 있었는데 무척 오래 된 것이라고 했다. 당시 마을이 폐허가 되면서 나무도 말라서 죽어 갔고 사람들도 나무가 죽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그 나무는 다시 살아났고 지금 울창하게 가지를 피우고 있다. 우리는 그 나무를 보면서 힘든 상황을 이겨내면서 살아계시고, 그 상황들을 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해 후대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알려주려는 쓰농 할머니의 모습과 닮아 있다고 느꼈다.

당시 할머니는 주말을 맞아 오하두흐에 사는 부모님을 뵙기 위해 전철을 타고 향하던 도중 마을에서 올라오는 검은 연기를 보았다고 증언하셨다. 전철은 갑자기 앞을 막은 군인들에 의해 멈춰졌고 오하두흐가 목적지인 사람들은 거기서 내리게 되었다. 20여명이 내렸고 그 자리에서 나치군인들이 히죽대며 마을사람들을 모두 죽였다는 충격적인 말을 해 주었다고 했다. 다행히 자신은 근처 다른 마을에서 잠을 잘 수 있었고 나머지 사람들의 생사는 알 길이 없었다고 했다. 자신이 머물렀던 집도 아이들이 집에 돌아오지 않아 부모들이 굉장히 걱정하고 있었다고 한다. 오하두흐에 있는 초등학교에 다니던 아이들이다. 이 아이들도 모조리 학살당했다. 토요일, 학살이 끝난 후 두려웠지만 꼭 가야한다는 생각에 마음을 단단히 먹고 혼자 오하두흐로 간 할머니는 며칠간 악몽에 시달렸다고 했다. 온 마을이 미처 수습하지 못한 시체의 썩는 냄새와 불에 탄 연기로 가득했다고 한다. 살아남은 몇 명의 사람들은 왜 이러한 악몽이 평화로운 작은 마을에 갑자기 일어났는지 알 수도, 이해할 수도 없었다고 한다. 온 마을사람들을 속여 한 곳에 몰아넣은 뒤 불을 질러 죽이고 거기서 운 좋게 살아난 사람들을 다시 조준해서 총으로 쏴 죽이는 등 ‘인간이 어찌 이렇게 잔인할 수 있는가’라는 참담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다고 한다. 물론 이유는 아직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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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에 있었던 오하두흐 학살자들을 불러 세운 재판은 무죄 판결이 나왔다. 전범들에 대한 처벌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나치 친위대의 사람들은 마치 꼬리자르기와 같이 아래에 있는 사람들만 재판에 나왔다. 그들은 건들건들한 태도를 보이며 증언자들을 무시하고 ‘자신들은 위에서 시켜서 어쩔 수 없이 했다’는 식의 말뿐이었다고 한다.

드골대통령은 오하두흐를 문화재로 지정하고 박물관을 만들자는 사람들의 제안을 처음에는 무시했다. 이 일을 기억하고 교육하는 것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던 많은 사람들의 힘으로, 결국 프랑스가 보존해야 할 곳으로 지정될 수 있었다고 한다.

할머니 자신도 부모님을 포함해 친척들 25명이 이곳에서 목숨을 잃었다고 했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이 일은 할머니의 인생을 바꾸어놓았다. 지금 할머니께서는 프랑스 공산당 당원이다. 함께 한 외국인들 중에도 공산당 당원이 꽤 됐다. 도의원도 공산당 출신이다. 오하두흐 시장은 보수정당이지만 할머니를 지지하기 때문에 이 자리에 함께 한다고 했다. 심지어 시장이 어렸을 때부터 많이 찾아뵈면서 자랐다고 한다. 한눈에도 아주 친한 사이처럼 보였다. 인상적인 장면이다. 우리는 뿔 달린 사람으로만 알고 있었던, 사회의 암묵적 금기였던 공산당원을 이렇게 눈앞에서 볼 수 있다니, 그리고 저렇게 거리낌 없이 보수정당의 정치인이 공산당원인 할머니를 모시고 있다니…….

크기변환_공동묘지 (1)


마을을 다 둘러본 후에는 마을 한쪽에 있는 공동묘지에 갔다. 당시 학살 피해자들의 뼈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었다. 공동묘지에는 할아버지부터 손자손녀들까지 모조리 1944년 6월 10일에 세상을 떠났다는 표시가 많았다. 뼈가 보존되고 있는 곳에서 우리는 억울하게 희생당한 분들을 생각하며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게 하겠다는 결의와 함께 묵념의 시간을 가졌다.

휠체어를 끌고 우리를 만나러 오신 할머니께서는 우리에게 기록의 중요성에 대해서 거듭 강조를 하셨다. 그리고 자신의 몸을 움직이기 힘든 상황에서도 우리를 만나러 직접 나와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는 행동으로 그 말을 실천하셨다.

할머니와 함께한 오하두흐에서의 시간들은 우리에게 정말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공산주의자로 살아가고 있는 할머니의 말은 우리에게 정말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힘든 몸에도 이렇게 제가 나오는 이유가 있습니다. 증언을 하면서,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란 희망을 주고받으며 나는 이것을 극복해나갈 수 있었습니다. 증언은 과제이자 돌아가신 분들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합니다. 나의 가족은 25명이 학살당했습니다.”

나비_할머니


“독일인에 대한 개인적은 분노는 없습니다. 증언하며 이것이 감정적인 방향으로 가선 안 되고, 전범재판을 위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나치즘에 가장 먼저 희생된 것은 독일 민족입니다. 독일에 있던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 노동조합 활동가 등이 가장 먼저 학살하거나 강제 수용하지 않았습니까?”

우리나라의 세월호 참사에 대해서도 질문을 드렸다. 할머니의 냉철한 답이다.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철저한 진상 규명만이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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