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우리 여행을 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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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24 11:17 by 지혜

여행을 기다리는 아이에게 <고고와 하얀 아이>, <바다에 간 곰 인형>

“난 스무 살이 되면 똥을 아주 크게 쌀 거야, 지금보다 더 크게”

초록이가 기다리는 것은 스무 살의 똥이다. 아이들에게 똥은 더러운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 바깥으로 밀어 낸 자신만의 창조물이라고 하더니, 아이는 벌써 엄마의 품을 떠나는 상상을 하는 걸까. 스무 살이 되면 아주 큰 똥을 싸겠다는 초록이의 선언은, 어서 어른이 되어 자신만의 삶을 오롯이 만들어 내겠다는 다짐처럼 들렸다.

“그리고 운전면허도 따서 혼자 운전해서 여행을 갈 거야”

내 품 안에 아기인 줄 알았는데 나도 모르게 이렇게 커버렸다. 아이를 향한 서운한 마음에 익숙해져야 할 때가 곧 오려나보다. 쉽지는 않겠지만 기꺼이 응원해야지. 어린 너의 다짐대로 혼자 하는 여행처럼 삶을 살아내기를, 단단하지만 유연한 자유를 마음껏 느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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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이의 다섯 살 인생은 여행으로 가득 차 있다. 소심하고 겁 많은 아이에게 부모로서 우리가 해줄 수 있는 선물이었다. 안전한 일상을 나와 낯선 풍경 안으로 들어갈 때의 즐거움을 알려주고 싶었다.

여행이 낯섦으로 출발하는 것이라면 아이는 거의 매일 여행 중이다. 가장 즐거운 여행지는 단연 놀이터이다. 아이의 낮은 시선으로 보는 놀이터는 늘 새롭다. 코끝에 느껴지는 바람, 땅 위를 기는 벌레, 피고 지는 꽃잎, 친구들의 표정까지, 늘 변하는 것들을 살피며 놀아야 하니 지겨울 틈이 없는 곳이다. 아이는 놀이터에서 자란다.

가까운 산을 오르는 것은 모험의 짜릿함이 가미된 여행이다. 산은 보편성이 없는 길이기 때문이다. 길은 아주 좁다가도 곧 넓어지고 가파르게 오르다가 또 내리막으로 치닫는다. 편편한 흙길이 있는가 하면 바위 위를 잔뜩 긴장한 채 걷거나 빽빽한 나무 사이를 웅크리고 건너야 할 때가 있다. 초록이는 낯설어 두려워하기도 하고 넘어질까 무서워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어느 때보다 엄마아빠의 응원을 잔뜩 받아낼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산꼭대기에 올라 바람에 땀을 식히며 발아래 세상을 향해 시원하게 소리를 내지를 때, 그 성취감을 아이는 마음에 새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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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핑은 일상을 벗어나기 위해 일상을 짓는, 일상과 일탈의 뒤죽박죽이 재미있는 여행이다.

집을 떠나 또 집을 짓는다. 집처럼 의자와 탁자를 놓고 집에서 사용하던 도구와 재료들로 집에서 먹던 음식을 만들어 먹는다. 초록이는 우리가 뭘 하고 있는지 다 알고 있으면서도 여기가 이제부터 우리 집이냐고 매번 묻는다. 일탈의 기쁨을 느끼려면 일상을 전제해야 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일까. 이곳에서는 모든 것이 허용된다. 흙에서 뒹굴거리다가 밥을 먹어도, 완전히 깜깜해질 때까지 밖을 뛰어다녀도 엄마는 손을 씻으라고 잔소리하거나 집에 들어갈 시간이라고 재촉하지 않는다. 엄마가 쓰던 그릇, 돌멩이와 흙, 물감 같은 꽃잎, 땅만 파면 나오는 온갖 벌레들, 처음 보는 새와 새소리 등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놀잇감이 되니 쉴 틈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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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여행의 즐거움이 담긴 곳이 바다이다. 땅의 질감과 풍경에 익숙하던 아이에게 바다는 온통 새로움으로 다가온다. 땅이 끝나야 비로소 시작되는 바다에서는 모든 것이 달라진다. 바다 안에서 우리는 숨을 쉴 수도 걸을 수도 말을 할 수도 없다. 일상의 세계를 완전히 벗어난 바다는 예상으로는 알 수가 없다. 오직 상상으로만 채워진다. 여행을 소재로 한 그림책의 배경이 대부분 바다인 것은 아마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초록이가 결심한 스무 살의 여행도 아마 바다를 향하고 있지 않을까.

운전면허를 따고 직접 운전을 해서 떠나는 혼자만의 여행은 십년 하고도 반이나 남았으니, 긴 기다림에 지치지 않도록 준비한 그림책을 소개한다. 초록이 대신 혼자 하는 여행을 시작한 친구들의 이야기이다.

 

돌아갈 곳이 있으니 우리는 늘 여행 중 <고고와 하얀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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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레는 아빠와 함께 바다로 떠난다. 초록이가 운전을 하려면 스무 살이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펠레는 벌써 커다란 배를 마음대로 운전할 수 있으니, 펠레는 초록이가 늘 부러워하는 아이다. 운전뿐만이 아니다. 펠레는 초록이의 상상을 직접 경험한다. 특히 배만큼이나 커다란 고래를 만나 아슬아슬하게 피하는 장면을 볼 때마다 초록이는 환호를 터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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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람이 세차게 불어 배가 뒤집혔다. 펠레는 수영을 못하지만 문제없다. 허우적허우적 헤엄을 쳐서 뭍으로 올라온다. 바다에서 다시 땅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펠레에게 혹은 우리에게 익숙한 땅이 아니다. 고릴라 고고가 펠레를 보살피는, 호두와 오렌지가 맛 좋은 곳이다. 숲 속 동물들도 도통 알아볼 수가 없다. 물론 고고와 펠레 그리고 초록이는 알고 있다. 아이는 매번 자신 있는 목소리로 동물들을 소개한다. 소개할 때마다 달라지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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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레와 고고가 신나고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펠레의 아빠는 애타는 목소리로 펠레를 찾아다닌다. 그러고 보니 펠레가 아빠나 집을 그리워하는 장면이 없다. 요즘 초록이와 나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초록이는 친구들과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노는 것에 푹 빠져있고 나는 초록이 이름을 부르며 찾는 것으로 하루를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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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레와 아빠는 배를 타고 집으로 가지만 곧 다시 돌아온다. 여기가 훨씬 더 재미있으니까.

언제든지 집에 돌아갈 수 있도록 배는 바나나 나무에 묶어두었다. 돌아갈 집이 있으니 펠레는 오늘도 여행 중이다.

펠레가 아빠와 헤어져 낯선 땅에서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즐겁게 놀 수 있었던 것은 돌아갈 곳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랑하는 ‘나의 사람’과 편안하고 안전한 ‘나의 장소’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믿음은 낯선 곳을 향한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물론 돌아갈 곳에 대한 믿음으로 발걸음이 가벼워졌다고 해서 여행의 모든 길이 쉬울 수는 없다. 여행은 여행을 대하는 태도에 따라 다른 길을 걷게 된다.

 

행운을 선택하면 행운이 따르는 법 <바다에 간 곰 인형>

예측 가능한 일상의 굴레를 벗어났기 때문에 여행길 곳곳에는 변수가 숨어있다. 아무 일 없이 조용하게 살 것 같던 곰 인형의 여행마저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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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리와 릴리의 곰 인형 테디는 바다로 여행을 왔다. 릴리가 테디를 모래성에 두고 아이스크림을 사러 간 사이 조그만 강아지가 테디가 깔고 앉아있던 수건을 입에 물고 장난을 친다. 테디는 이리 쿵, 저리 쿵 모래밭을 구르다가 릴리의 모래성에서 멀리 떨어지게 되었다.

이것은 불행일까 행운일까.

테디는 행운을 선택했다. 바위 위로 기어올라 웅덩이가 패여 고인 바닷물로 물장난을 하고 놀기로 한다. 덕분에 테디는 바닷물로 물장난을 하는 재미를 얻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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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놀았는데 엉덩이가 축축해졌다. 바닷물이 들어오고 있던 것이다. 모래성 집으로 가려면 바닷물을 건너야 하는데 옴짝달싹할 수 없다.

이것은 불행일까 행운일까.

테디는 행운을 선택했다. 하늘을 날던 갈매기를 향해 스카프를 흔들자 갈매기 아저씨가 내려와 붙잡아 주었다. 덕분에 테디는 하얗고 푹신푹신한 구름들 사이를 훨훨 날아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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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매기가 그만 테디를 놓치고 말았다. 테디가 아래로 떨어진다.

이것은 불행일까 행운일까.

테디는 행운을 선택했다. 스카프 끝을 잡아 낙하산처럼 펼쳐 나무판자에 내려앉았다. 바다 위를 떠다니다 보니 금방 추워지기 시작했지만 마음을 다잡고 모래성이 있는 쪽을 향해 물장구를 치기 시작한다. 무시무시한 파도가 다가오지만 덕분에 너무너무 재미있게 파도를 탈 수 있었다. 그림책을 보는 우리 마음까지도 시원해진다.

파도를 타는 테디의 표정은 여행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말해주는 듯하다. 여행에서 위기는 늘 찾아온다. 그러나 불행의 길을 걸을지 행운의 길을 걸을지는 자신이 선택하는 것이다. 행운을 선택하면 행운이 따르는 법이다.

 

햇빛을 담은 아이들 목소리에 눈이 부신 계절이 왔다. 돌아갈 곳을 두고, 행운을 선택하기만 한다면 그곳이 어디든 즐거운 여행이 될 것이다.

아이와 나란히 발 맞춰 출발하기를, 그림책은 잠시 덮어두고서.

Information

<고고와 하얀 아이> 저자: 바르브루 린드그렌 / 역자: 최선경 |  출판사: 보림 | 발행연도: 2009.05.12 | 가격: 9,200원

<바다에 간 곰 인형> 저자: 이안 벡 / 역자: 이경혜 | 출판사: 웅진닷컴 | 발행연도: 2002.08.16 | 가격: 8,500원

/사진: 지혜

그림 같은 육아 아이들이 좋아하는 그림책을 통해 아이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고민과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보는 신 개념 육아일기. 이를 통해 ‘엄마의 일’과 ‘아이의 하루’가 함께 빛나는 순간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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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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