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장인들의 마을, 데이르 엘-메디나
고대 장인들의 마을, 데이르 엘-메디나
2016.06.10 10:17 by 곽민수

이집트에는 수많은 유적지들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유적지들은 대부분 신전 혹은 피라미드나 암굴묘(Rock-cut tomb) 같은 무덤들입니다. 왕과 관련된 것들이죠.  옛사람들의 삶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유적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집트 곳곳을 돌아다니다 보면 자연스럽게 한 가지 의문이 생겨나게 됩니다.

‘이 거대하고 화려한 흔적을 남긴 이들은 과연 어떤 모습으로 살았을까?’

이 질문에 답하는 게 쉽지는 않습니다. 자료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그들이 실제로 살아가던 주거공간에 그렇게 공을 들이지 않았고, 주로 나일강이 범람할 때에 침수의 위험이 높은 강의 범람원 근처에 집을 지었기 때문에 수천 년의 세월이 지나오면서 이들이 살았던 흔적들은 거진 다 완전히 사라져버렸습니다.

그렇지만 운이 좋게도 우리는 아주 일부분이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고대 이집트인들의 일상에 대해서 말해줄 수 있는 유적을 이곳 룩소르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그곳은 ‘데이르 엘-메디나(Deir el-Medina)’라고 불리는 고대 이집트의 마을 유적입니다. 전혀 화려하지 않은 곳이기 때문에 여행자들에게는 자주 외면되는 곳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특별히 운이 나쁘지 않다면 여러분들은 이곳을 방문 할 때 유적 전체를 홀로 독점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이곳에서 나온 자료들은 이집트학자들에게는 고대 이집트인의 일상을 복원하는데 매우 중요하게 사용되는 ‘황금보다 더 귀한 보물’입니다. 학자들이야 이곳에서 이것저것 생각하고 조사하고 해야할 일들이 많이 있겠지만 여러분들은 별 다른 지식과 심각한 고민 없이 충분합니다. 옛사람들이 이곳에서 정말로 숨쉬며 살아갔었다는 딱 한 가지 사실만 기억하신 뒤 약간의 상상력만 발휘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데이르 엘-메디나로 들어가는 입구
데이르 엘-메디나 전경

고대의 데이르 엘-메디나는 '마을'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 ‘파 데미(pa demi)’ 혹은 ‘진리의 장소’라는 의미의 ‘타 세트 마아트(ta set Maat)’라고 불렸습니다. 이 ‘진리의 장소’는 신왕국시대에 약 500년 동안 파라오의 무덤을 만드는데 종사하던 건축가, 석공, 목수, 금속 세공사 등 전문 장인들이 대를 이어서 모여살던 마을이었습니다. 신왕국 시대가 끝나갈 무렵 마을은 더 이상 주거 용도로는 사용되지 않았지만 이후에도 건물들은 여전히 남아 있었고, 그 건물들은 창고 따위로 계속해서 사용되었던 것 같습니다.

특히 프톨레마이오스 시대에는 마을 북쪽 끝에 하토르 여신의 신전이 세워졌는데, 이 신전에는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순례자들은 이미 폐허가 되어버렸지만 여전히 잘 남아 있었던 마을의 집터를 임시숙소로 이용하기도 하였습니다. 시간이 더 흐르고 고대 이집트 문명이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이집트가 기독교의 중심지가 되었을 때에, 이곳에 있던 하토르 신전은 기독교 수도원으로 용도가 변경됩니다. ‘마을 수도원’이라는 뜻을 지닌 ‘데이르 엘-메디나’라는 이름은 이런 연유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물론 그 시절에도 여전히 남아있었던 건물 터들은 순례자들을 위한 숙소로 사용되었습니다. 기독교 시대가 끝나고 마을은 모래 속에 파묻혀 버렸고, 결국에는 완전히 잊혀져 1000년이 훨씬 넘는 시간이 흐르게 되었습니다. 유럽인들이 고대 이집트에 대한 환상을 쫓아 이집트 곳곳을 샅샅이 뒤지던 19세기, 드디어 이 마을의 존재가 세상에 다시금 알려집니다. 역시나 그것은 이곳에서 다양한 고대의 유물들이 출토된다는 소문 때문이었지요.

데이르 엘-메디나의 하토르 신전
하토르 신전과 마을
신전 내의 지성소

고고학적 조사를 통하여 밝혀진 바에 의하면 마을은 약 5,100평방킬로미터의 넓이이며, 석재와 벽돌로 지어진 70여 채의 주택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특이할만한 사항은 마을에 들어갈 수 있는 입구가 단 하나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마을을 통제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곳에서 살아가던 장인들은 국가적으로 무척이나 중요한 시설들을 만들고 단장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던 만큼 생활이 엄격하게 통제될 필요가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보단 장인들이 무덤을 만드는 과정에서 사용하던 다양한 귀중품들을 외부로부터 지키기 위해  철저한 보안을 유지하려고 했을 가능성도 큽니다. 실제로 이곳의 주민들이 생각보단 훨씬 더 자유로운 생활을 한 것으로 여겨지는, 예컨대 “나일강가에 있는 시장에 가서 무슨 물건을 사왔다”와 같은 내용을 담은 자료들도 존재합니다.

각각의 집들은 대부분 유사한 구조를 하고 있고 약 20-21평 정도가 됩니다. 그야말로 전문직에 종사하는 중산계층을 위한 주택이었던 것이지요.

데이르 엘-메디나의 주택들
데이르 엘-메디나의 주택들

이 마을에 생활하던 장인들은 왕들의 계곡에서 파라오의 무덤을 만들고 단장하는 중요한 임무를 맡고 있었습니다. 파라오들은 즉위를 하자마자 자신의 무덤을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준비는 파라오의 재위기간 내내 계속 되는 만큼 마을의 일감도 끊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마을에서 거주하던 장인들은 산 너머에 있는 왕들의 계곡으로 출퇴근을 하였습니다. 마을 입구 근처에서 고대 장인들의 출근길은 시작됩니다. 데이르 엘 메디나에서 1시간 반정도의 산행이면 너끈히 왕들의 계곡 경내에 들어설 수 있지만 도시에서의 삶이 익숙한 우리들에게는 2시간도 채 되지 않는 이 산행길이 무척이나 고되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자주 이곳을 오갔던 옛 사람들에게는 이 출퇴근길이 그렇게 어렵지만은 않았을 것 같습니다.

고대 장인들의 출근길

자, 옛사람들의 숨결을 더 생생하게 느껴보기 위하여 직접 이 고대의 출근길을 따라 왕들의 계곡을 가봅시다.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이러한 루트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당연히 이 길을 통해서 왕들의 계곡으로 향하기 보다는 투어버스나 택시를 이용하여 쉽고 빠르게 왕들의 계곡에 도착합니다. 하지만 약간 고생스럽기는 하지만 우리는 이 산행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앞서서 말씀드린 것과 같이 고대인들의 감각을 직접 체험해보는 즐거움도 있을 뿐더러, 우리가 넘게되는 저 바위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룩소르 서안의 경관은 기가막힐 정도로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정상에 서면 우리는 이미 다녀온 메디넷 하부와 라메세움의 전경을 감상할 수 있게 됩니다.

출근길은 이렇게 계속 되지만, 곧 포장된 구간은 끝이 납니다. 사진의 좌측하단에서 데이르 엘-메디나 마을을 보실 수 있습니다.
황량한 사막의 바위산과 초록빛 대지의 조화

하지만 산행길이 그저 평온하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이곳에도 여행자가 있는 곳이라면 이집트 어디에서든 만나게되는 ‘탁월한 비지니스맨’들이 이미 자리를 잡고있습니다. 그들에 팔려고 드는 물건은 여행 책자에서부터 조악한 파피루스, 돌로 만든 스카렙까지 무척이나 다양합니다. 또 그들은 아름다운 경관을 볼 수 있는 곳을 소개해주겠다고 우리를 꼬시기도 합니다. 하지만 당연히 공짜는 아닙니다. 이들은 못본 척 스쳐지나가더라도 그들의 비지니스는 필사적입니다. 하루에 몇 안되는 손님을 결코 놓쳐서는 안되겠다는 그들의 의지가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아니지만 우리는 아주 단호한 어조로 필요없다고 이야기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분명히 여정이 끝나는 순간까지 우리를 계속해서 따라다닐 것입니다.

열혈 비지니스맨들이 물러간 이후에도 황량한 바위산의 고독한 풍경은 한참동안 계속됩니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이 고독한 풍경은 결국 우리를 진정한 망자들의 땅, ‘왕들의 계곡’으로 인도합니다.

메디넷 하부의 람세스 3세 장례신전이 보입니다.
얼마전 다녀온 람세스 2세의 라메세움도 보입니다. 반쯤 무너져버린 신전의 탑문과 완전히 쓰러져버린 파라오의 거상이 어쩐지 친숙하게 느껴집니다.
저 멀리 강건너 서안의 룩소르 신전이 보입니다.
역시 서안에 위치하고 있는 카르낙 신전도 희미하게나마 눈에 들어옵니다.

 

/사진:곽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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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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