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 브라더스, 첫 승을 향해
라오 브라더스, 첫 승을 향해
라오 브라더스, 첫 승을 향해
2016.06.22 15:41 by 김상욱

2016년 1월 29일,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안에 위치한 아노봉 국립경기장. 드디어 한국-라오스 친선 야구 경기가 열리는 날입니다. 3일간 한국, 라오스, 일본 등 총 3개국 6개 팀이 풀타임 리그전을 펼치게 되는데요.

대회가 열리는 장소는 국립 경기장이라고는 하지만 시설이 열악합니다. 지어진지 오래되고 잔디도 여기저기 패인 곳이 많았지요. 무엇보다도 축구경기를 위한 필드라는 점. 여기에 선을 긋고 이번 야구대회를 치르는데요. 하루 빨리 정식 야구장이 지어져서 매년 한국-라오스 친선대회가 개최되길 소망합니다.

대망의 그날이 왔다

한국-라오스 친선 야구대회 (2016.01.29-01.31)

라오스 유일의 야구단 ‘라오 브라더스’는 창단 3년이 되도록 그 어떤 외부 팀과의 경기에서 단 한 번의 승리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더욱 목마른 1승…. 특히 이번 경기를 앞두고는 2주 동안 한국 프로야구 출신의 권영진 감독으로부터 특훈까지 받았기에 각오가 대단했습니다.

저 역시 이들이 첫 승을 했으면 좋겠다는 소망은 가득했지요. 하지만 전용 야구장이 없는 탓에, 선수들이 넓은 공간에서 제대로 실전 훈련을 하는 모습을 보진 못했고, 솔직히 전력을 가늠하기 어려웠습니다. 왜소한 체격에 서툰 야구실력. 이들에게 첫 승이 쉽진 않아 보였습니다. 한 가지 라오 브라더스팀에게 유리한 점이 있다면 전날까지 쌀쌀했던 날씨가 대회 당일이 되자 따사롭다 못해 너무나 뜨겁다는 겁니다. 라오 브라더스 선수들이 홈그라운드의 이점을 충분히 살릴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월드 시리즈 7차전의 긴장감이 감도는 대회 첫날입니다

이 대회를 위해 2주 전부터 라오스에 입국한 이만수 감독. 손수 경기장에 현수막을 달고, 바닥에 흰 선을 긋고, 선수들이 먹을 생수를 나르는 등 하나부터 열까지 챙기며 경기 준비를 해 왔는데요. 대회 현수막을 바라보는 그의 얼굴에서 남다른 감회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음... 오타없이 제대로 잘 나왔군

“감독님. 라오 브라더스, 첫 승 가능하겠습니까?” 

기대 반, 우려 반의 마음이 담긴 질문. 이만수 감독이 사못 진지하게 대답했다. 

“프로야구단에 비하면 라오 브라더스는 동네 야구팀 수준이잖아요. 그래서 승리에 대한 제 간절함이 덜 할 것 같죠? 아니에요. 거짓말이 아니라, 프로 야구팀 감독할 때 승리가 간절했던 순간과 지금은 똑같은 마음입니다. 이번에 꼭 첫 승을 해서 선수들에게 동기 부여가 됐으면 해요.”

꽃을 든 헐크

이만수 감독의 바람과 달리, 한국과 일본에서 참여하는 팀들의 면면을 보면 라오 브라더스의 첫 승이 쉬워 보이진 않습니다.

대회 참가자들은 사회인 야구단원으로, 대부분 이만수 감독의 열혈 팬들입니다. 이만수 감독이 구단주로 있는 라오 브라더스와 경기를 하기 위해 따로 시간을 내고, 항공료‧숙식비 등 비용을 모두 스스로 부담해서 참가한 것입니다. 이들의 열정이 너무 고마워 이만수 감독은 대회 전날 밤 라오스로 입국하는 참가자들을 맞이하기 위해 공항으로 직접 나갔습니다. 장미꽃을 들고 말이죠.

“정말 감사하죠. 다들 사는 게 바쁘실 텐데 일부러 시간을 내서 이렇게 먼 라오스까지, 그것도 자비를 들여서 온다는 게 사실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정말 감동했어요. 대회 공고를 인터넷에 올렸는데 참가신청이 쇄도하는 것을 보고 이분들을 위해서라도 라오 브라더스가 정말 최고의 경기력을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아... 꽃 들고 서 있으니까 조금 부끄럽다.
비엔티안 공항에 이 꽃을 모두 뿌리고 가리다
태어나서 처음이야. 남자에게 꽃 준 게...
저도 처음이에요. 남자한테 꽃 받은 게...

경기에 참가하는 팀은 한국의 4팀(란쌍, 외인구단, 영동 스마트캡틴, 그레이스 램즈)과 일본 1팀, 라오 브라더스로 총 6개 팀입니다.

선수단 규모로 치자면, 인천의 사회인 야구팀 ‘그레이스 램즈’가 14명으로 최대 규모입니다. 모두 바쁜 직장인임에도 불구하고 휴가를 내서 참가했습니다. 그레이스 램즈의 송건희 감독은 “대회가 끝나자마자 새벽 비행기 타고 귀국해서 바로 출근해야 하는 강행군이지만, 의미 있는 대회라서 참가하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그레이스 램즈 야구단 "라오 브라더스에게 한 수 가르쳐 주러 왔습니다"

또 ‘란쌍’팀은 라오스에 거주하는 한국인 야구팀입니다. 라오스 한국 교민, 현지 봉사단원, 한국 기업의 라오스 파견 직원 등이 모여 만든 사회인 야구단인데요.

이들은 라오 브라더스 탄생 초창기부터 시간을 쪼개어 라오 브라더스 선수들에게 야구도 가르쳐 주고 선수들과 이만수 감독, 권영진 감독 사이에서 라오스어 통역도 전담하는 등 자원봉사를 해왔습니다. 라오 브라더스 선수들에게 ‘코치’라고 불리는 이들은 크게 드러나진 않지만 가장 친밀하게 라오 브라더스를 돕는 산소 같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란쌍 "영원히 라오 브라더스와 함께 할게요"

그리고 라오스에서 거주하는 일본인들로 구성된 ‘일본팀’. 기본기가 잘 갖춰진 일본 팀의 에이스 투수 야마모토 씨는 참가 소감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국 프로야구의 전설인 이만수 감독님을 잘 알고 있어요. 일본으로 치면 ‘오사다 하루’ 선수 같은 스타로 알고 있습니다. 가까이에서 함께 야구를 하게 되어 정말 영광입니다.”

라오스에서 만난 일본팀은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들이었다

‘외인구단’ 팀은 한국에서 팀이 아닌 개인 단위로 개별 참가한 이들을 모두 모아 놓은 팀입니다. 그 중에서는 노익장을 과시한 참가자들이 있었는데요. 충남 계룡의 실버 야구단에서 활동 중인 김상경씨는 “나이가 많아도 야구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겠다”면서 “라오스의 어린 선수들이 저를 통해 어떤 장애물도 이겨낼 수 있는 의지를 배웠으면 좋겠다”고 포부를 밝혔습니다.

군 생활을 하다 장군으로 퇴역한 후 실버야구단에서 투수로 활동 중인 정성규 씨는 프로야구 원년 시절부터 이만수 감독의 팬이라 대회에 참가하게 됐다고 하는데요. 그러던 그에게 잊지 못할 일이 벌어졌습니다. 바로 이만수 감독과 배터리를 이룬 것입니다. 비록 짧은 1이닝이었지만 이만수 감독이 포수 마스크를 쓰고 앉아 있는 홈플레이트를 향해 그는 온 몸을 비틀어 힘을 짜내며 힘차게 공을 던졌습니다.

“꿈만 같습니다. 어떻게 이만수 감독님이 제 공을 받는 순간이 올 수가 있죠? 제 인생 경기로 기억 될 것입니다.”

우리 둘이서 충남 계룡에서 왔소이다

서울시청에서 근무하는 사회인 야구단원 임병수씨는 올해 63세입니다. 이번 대회 최고령 참가자지요. 그는 대회 최연소 참가자인 라오 브라더스의 루이(14세)와 뜻 깊은 만남을 가졌습니다. 서로 언어가 통하지 않았지만 뜨거운 악수를 나누고, 야구 장갑을 선물했습니다. 임병수씨의 선물을 받은 루이는 수줍게 웃었는데요. 그런 루이를 보며 임병수 씨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렇게 작고 어린 선수가 뭐라도 해보겠다고 찾은 희망이 야구라고 들었어요. 야구가 루이의 앞날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지 아직 모르지만 훗날 루이의 키가 저보다 커졌을 때 루이가 바라는 것들이 다 이루어졌기를 바랍니다.”

최연소 루이(14세)와 최고령 임병수 씨(63세)
이만수 "감사한 마음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야구’라는 공통어

서로 다른 국적에, 다양한 연령층과 각기 다른 사연의 삶을 가지고 살아가던 사람들이 오로지 ‘야구’라는 공통 언어를 가지고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친선 경기이긴 했지만 나름 국제대회였기 때문에 주라오스 한국 대사인 김수권 대사가 인사말을 했습니다. 서울대 사범대학 전태원 학장도 참석해 자리를 빛내주셨습니다. 선수단의 선서와 이만수 감독의 개회사에 이어 팀별로 한국, 라오스, 일본 세 나라의 국가를 불렀습니다. 가장 키도 작고 덩치도 작은 라오 브라더스 선수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목청을 높여 국가를 부르는 모습에 저는 마음이 뭉클했습니다.

선서! 나는 오늘 다치지 않겠습니다
역시 유니폼의 완성은 모자를 썼을 때
축구장에서 개최 된 야구 대회

대회 참가자들은 최선을 다해서 경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다들 마음 한 편에서는 라오 브라더스가 창단 3년 만에 첫 승을 거두길 소망하고 있었습니다. 첫 경기는 라오 브라더스와 그레이스 램즈의 경기인데요. 오늘 심판은 지난 6화에서 소개한 ‘피칭머신 기증자’ 류승철 사장이 함께 했습니다. 암투병 중임에도 라오스까지 날아와서 대회에 참가한 류승철 사장은 우렁찬 목소리로 심판의 역할에 최선을 다해 많은 이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었습니다.

제가 오늘 두 경기 심판 보겠습니다

그레이스 램즈의 선공으로 시작된 경기. 라오 브라더스의 에이스 투수 포브가 마운드에 오릅니다. 몹시 긴장한 듯 포브는 초반부터 제구력 난조를 보입니다. 그레이스 램즈팀은 가볍게 1점을 선취하는데요.

첫 승의 순간은 언제쯤…

아무래도 라오 브라더스에게 첫 승은 아직 무리일까요? 공식 대회이고, 수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는 앞이어서 그런지 선수들의 표정은 긴장감과 불안으로 가득해 보였습니다. 아직 상대팀을 이기기에는 경험이나 실력을 더 쌓아야 할 것 같아 보였습니다.

바로 이어진 라오 브라더스의 공격. 선수들은 잔뜩 굳어 있었습니다. 그 순간 라오 브라더스의 첫 안타가 터집니다. 관중석에서 다음 경기를 준비하던 다른 팀들도 마치 우승이라도 한 듯이 일제히 환호성을 지릅니다. 라오 브라더스의 안타는 모든 사람들에게 기쁨이었습니다.

곧이어 연이어 터지는 연속 안타. 그레이스 램즈의 선발 투수도 초반 난타를 당했는데요. 그레이스 램즈가 대회 전날 입국 했던 피로감 때문인지 아니면 라오 브라더스의 숨겨진 발톱이 드러나는 것인지 정확하게 판단이 서질 않았습니다.

첫 안타가 터지는 순간 포착
라오 브라더스의 첫 득점 순간 포착

‘이게 정말 라오 브라더스의 모습이란 말인가’

저는 믿기지 않았습니다. 곁에서 목이 쉬게 응원을 하던 임재원 라오 브라더스 단장에게 물었습니다.

“단장님. 선수들의 공격력이 원래 이렇게 좋았나요?”

“글쎄요. 저도 이런 모습은 처음 봅니다. 얘들이 왜 이러지…하하”

늘 작은 연습장에서 훈련만 하던 라오 브라더스 선수들이 넓은 경기장에 나오니 마치 물 만난 고기처럼 야구를 제대로 하고 있는 겁니다. 라오 브라더스는 1회에 4점, 2회에 2점, 3회에 4점을 득점하고 무려 10대 2로 앞서 갑니다. 이런 분위기만 이어간다면 사상 첫 승이 눈앞에 보이는 듯 싶었습니다.

하지만 곧 위기는 찾아왔습니다. 뜨거운 태양 아래 역투를 펼치던 라오 브라더스의 에이스 투수 포브의 어깨는 점점 힘이 빠져 갔습니다. 정식 야구장에 있는 제대로 된 마운드에서 던져 본 경험이 없는 투수 포브는 결국 제구력이 극심한 난조를 보이며 실점을 하고 마는데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넓은 야구장에서 수비 연습을 해 본 경험이 없는 선수들은 연이은 실책을 합니다. 그리고 바뀐 투수마저 볼넷과 안타를 허용하며 그레이스 램즈는 10대 8까지 추격해 옵니다.

이닝이 거듭 될수록 라오 브라더스 선수들의 체력은 점점 소진되고 있습니다. 떨어진 체력 때문에 선수들의 부상이 속출합니다.

내 부상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
여기가 아프다고요

저 역시 옆에서 지켜보는 내내 속이 점점 타들어갔습니다. 분위기는 이미 상대팀으로 넘어갔습니다. 이만수 감독과 라오 브라더스 선수들이 간절히 바라고 소망했던 창단 역사상 첫 승. 그 기회가 예고 없이 찾아왔지만 이렇게 놓쳐버리고 마는 것일까요?

  

'헐크' 이만수의 꿈 “야구로 받은 사랑, 야구로 갚겠다!” 대한민국 프로야구의 역사와 함께 했던 이만수 前감독(SK 와이번스)이 야구 불모지 라오스에서 펼치는 유소년 육성기. 라오스 판 ‘엘 시스테마’의 기적을 만들어가는 현장을 만나본다.

* 이 콘텐츠는 헐크 파운데이션(Hulk Foundation)의 스토리펀딩 프로젝트 내용을 재가공한 것입니다. 라오 브라더스와 헐크 파운데이션 후원에 관심이 있는 독자분들께서는 재단 페이스북(facebook.com/leemansoo22)으로 문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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