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다니던 시절, 월요일보다 회식이 싫었다. 세상의 이상한 점은 다 모아놓은 것 같은 상사가 세상 모든 선심을 쓰듯 회식을 제안하면, 우리는 고기를 굽고, 술도 주는 대로 마셔야 하고, 비위도 맞춰야 하며, 가끔은 노래도 불러야 했다.
내가 거쳤던 수 많은 상사 중 한 분은 흥을 돋우는 직원에게 선행을 베풀듯 금일봉(이라고 해봐야 십 만원 정도)을 하사하곤 하셨는데, 그러면 우리는 그 은혜를 바로 내가 받고 싶다는 느낌을 내뿜으며 트로트 배틀, 걸그룹 댄스 배틀, 각종 개인기 배틀을 벌여야 했다. 게다가 선곡은 또 어떠한가. 내가 부르고 싶은 발라드나 잘 모르는 노래라도 불렀다간 1절이 끝나기도 전에 강제 하차를 경험하게 된다. 유흥이라기 보다는 사회 생활의 연장선상이었던 그 노래방의 기억들.
그래서인지 직장인이 되고 부터는 친구들과도 노래방 갈 일이 점점 적어졌다. 게다가 회사에 적을 두지 않은 생활을 하니 갈 일은 점점 요원해졌다.
그런데, 사람이란 동물이 참으로 청개구리 심보다. 노래 한 곡 하랄 때는 그리도 하기 싫더니 요즘 TV를 점령한 그 많고 많은 음악 예능을 보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다. 그러다 보면 음원사이트에서 그 노래를 검색하고, 그러다보면 노래방이 그리워지는 대한민국의 흥의 순환고리. 건너편으로 새로 이사 온 중국인 가왕께오서 저녁마다 창문을 열고 어찌나 세레나데를 부르시는지. 그분에게 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연마가 필요했다.
그래서 간다. 노래방에. 혼자.
노래방은 촌스러운 바닥에 야광별 붙은 천장이 제 맛인데.
혼자 노래방 가기로 결정한 후 기억을 더듬어 보니, 노래방을 다녀온게 벌써 2년이 넘는다. 그땐 노래방에서 진탕 놀 수 있는 체력이 있었지요… 괜히 씁쓸해져, 어느 노래방을 갈지 기억속을 더듬는데 번뜩 생각이 나고야 말았다. 1인 전용 노래방. 12시 이전에 가면 2천원에 이용할 수 있다던 그 노래방이.
유명 노래방 프랜차이즈의 1~2인 전용 버전인 이 노래방은 특유의 깔끔한 외관과 분위기를 갖추고 있다. 노래방은 바야흐로 촌스럽고 어두워야 하지만, 적어도 혼자 가기엔 나쁘지 않은 분위기다. 그 와중에 싼 가격을 이용해 보겠다고 아침 여덟시 반에 혼자 노래방을 찾아온 나란 사람. 무료 음료바까지 선택해도 단돈 3천원이라니. 너무 혜자로우신 노래방.
1~2인 전용 노래방은 헤드폰과 스피커방을 고를 수 있다고 한다. 자고로 노래방은 에코가 빵빵히 울려야 하는 법이지요. 당당히 스피커 방을 골랐더니 특별히 2인용 방을 주신다. 알바생도 쉬러 갔는지 여러 번 벨을 울려야 나오는 그 시간에, 노래방 오는 사람이 있으려나 싶은데. 방에 들어가자 이미 옆방에서 홀로 ‘쇼미더머니’를 찍고 있는 가왕님이 계시다. 불끈!! 지지 않겠다는 의욕이 솟아오른다.
커피 한 잔을 뽑아 들어간 방에는 간이 의자가 두개 놓여있다. 넓지 않은 방 책상처럼 놓인 테이블에 마이크, 리모컨들이 간략히 놓여있다. 약간 독서실 분위기라 노래를 하기엔 흠칫 놀라지만, 찬찬히 적응을 하며 심호흡을 했다. 1인 전용 노래방이라 그런지 책은 없다. 오늘의 콘셉트는 어린 시절 '클럽 H.O.T.'였던 이력을 살려 아이돌 컬렉션으로 도전!… 해보려 했으나 나만큼 끼가 충만한 친구들의 응원과 호응이 없으니 생각보다 흥은 나지 않는다. 다시 발라드로 회귀하여 이곡저곡 부르는데, 혼자 노래하고 예약까지 하는 일이 만만치는 않다. 게다가 혼자 왔으니 친구들과 함께 노래방에 올 때 가장 싫었던 간주점프와 1절 부르기는 안 해도 되는데, 나도 모르게 1절만 부르고 있었다.
흥이 떨어질 무렵, 점수가 내 승부욕에 불을 붙인다. 태진(노래방 기기)선생님. 제가 왕년에 노래방에 들였던 돈이 얼만데, 80점이라뇨. 나도 모르게 노래방 승부곡들을 연달아 예약하고 그 누가 보지도 않는데 복면가왕 나온 마냥 애드립을 구사한다. 내 노력에 감동했는지 알바생은 서비스까지 알아서 척척 주신다. 그렇게 한 시간, 기어이 99점(미처 사진을 찍지 못하였으나 믿어주십시오)까지 받으며 나오는 오전 9시. 노래방 로비에는 이른 아침부터 대기하고 있는 우리동네 가왕들이 어느 덧 다섯이나 있었다. 한시간여 동안 혼자 그 노래 다 불렀음에도 못 부른 '픽미'와 수 많은 곡들이 생각나는 나, 정상인가요?
노래방은 친구, 가족, 회사 동료들과 함께 가는 곳이라는 생각을 했다면 그것은 시대착오적 생각에 불과하다. 노래 듣기도, 부르기도 좋아하는 한국 사람들. 그들이 술 먹고도 가고, 밥 먹고도 가는 노래방은 생각보다 다양한 선택지로 우릴 반긴다. 그 중에서는 1인 전용 노래방들도 있는데, 저렴한 가격에 얼마든지 즐길 수 있다. 괜히 나 혼자 민망한, 계산의 시간만 견디면 그 이후로는 그 어떤 ‘혼자놀기’보다 더 편하고 안락하게 즐길 수 있다. 혼밥, 혼술보다 단계가 낮은 클래스.
혼자 tip
이미 노래방은 ‘혼자놀기’의 성지다. 괜히 큰 방 줄까 어색해 동네 노래방 가기가 두렵다면 동전 노래방, 1인 노래방들을 찾아 미리 예행연습을 해보자. 다만, 1인 전용 노래방은 방 사이즈가 작아 노래방의 기본 장착템인 가무를 함께 즐기긴 어렵다. 종업원의 눈치 안 보는 무인노래방도 있으니 도전해보자.우리가 노래방을 가는 이유, 흥을 주체하지 못해서다. 그 흥을 높이기 위해 선곡이 중요하다. 단체로 가도 괜히 발라드 부르고 그런 애들 있지 않은가. 그만큼 노래방의 분위기는 세트 리스트가 좌우한다. 추천 테마는 ‘여기가 밤사인가, 90년대 아이돌 댄스 리믹스’나 ‘소찬휘 비켜! 나도 고음 머신’류의 스트레스 해소용 댄스곡들. 다만 아직 혼자 노래방에 익숙하지 않다면 혼자 흥을 돋우기란 쉽지 않으니 발라드로 시작해보자.1인 노래방의 가장 힘든 점은 노래를 부르면서 예약을 해야 한다는 점. 이게 은근히 귀찮다. 친구가 노래할 때 노래에 호응하는 척 책을 뒤지며 우선 예약으로 대 여섯곡씩 예약하던 그 재미는 혼자 노래방에서는 찾을 수 없다. 미리 20곡 정도 예약해두고 노래를 시작하면 끊기지 않고 노래에 집중할 수 있다.노래 선곡이 어렵다면 인기 차트를 참고하자. 가수는 몰라도 노래는 안 다는 izi의 ‘응급실’, 여자라면 한번은 불러봤을 빅마마 ‘체념’, 각종 드라마 OST. 여기 다 있다.혼자옵서예 1인 가구가 늘고 있다. 통계청이 집계한 1인 가구 수는 506만. TV에는 혼자 사는 연예인들의 평범하지만은 않은 일상이 등장하고, 혼밥, 혼술은 흔한 용어가 됐다. 그러나 여전히 혼자가 버거운 사람들이 있다. 혼자보다 여럿이 가능한 일들도 여전히 존재한다. 그래서 한다. 혼자 먹고, 혼자 놀고, 혼자 즐기는 일을. 선뜻 내지 못했던 용기어린 도전이자, 대리만족이며, 불친절하지만 세심한 가이드다. 그리고 혼자서도 꿋꿋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