람세스 2세는 투탕카멘과 더불어 이집트에서 가장 유명한 파라오입니다. 하지만 그의 무덤인 KV7은 아직까지 일반에 공개되고 있지 않습니다. 무덤의 훼손상태가 심각하기 때문인데, 그의 장례신전인 라메세움의 보존상태가 썩 훌륭하지 못했던 것을 생각하면 영원에 도전하던 그의 노력을 좌절시킨 시간의 무게가 참 얄궂게 느껴집니다.
람세스2세의 무덤(KV7)과 그의 아들들의 무덤(KV5)
그렇지만 람세스 2세의 무덤은 그의 캐릭터에 잘 어울리게 굉장한 규모를 갖고 있습니다.(비록 발견 당시 이미 도굴되어 있긴 했지만) 자그마한 규모를 갖고 있는 투탕카멘의 무덤의 부장품이 실로 엄청난 양이었던 것을 고려한다면 그보다 몇 배는 더 큰 람세스 2세의 무덤은 분명 상상도 못할 정도의 대단한 물건들이 부장품으로 사용되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현재 남아 있는 유물은 그리 많지 않아서 영국 박물관 소장의 목상과 루브르 박물관의 카노푸스 단지, 그리고 미국의 브루클린 박물관과 영국 박물관에 각각 하나씩 소장되어 있는 샤브티(Shabti⋅사후세계에서 부릴 용도로 무덤에 함께 넣어주는 시종인형) 두 개가 전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 람세스 2세의 무덤에 대해서는 할 이야기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의 미이라에 관해서라면 조금 다릅니다.(지난 회에서 여러분은 이미 람세스 2세의 미이라를 사진으로 만나보셨습니다.)
람세스 2세의 미이라는 데이르 엘-바흐리의 왕실 미이라 보관소에서 발견되었습니다. 그곳은 후대의 신관들이 무덤 도굴을 통해서 미이라가 손상되는 것을 우려해서 미이라를 한 곳에 모아놓은 장소입니다. 미이라가 발견된 후에는 카이로 박물관으로 옮겨졌습니다. 그런데 미이라의 상태가 시간이 흐를 수록 점차 악화되었습니다. 결국 람세스의 미이라는 최고의 보존 처리를 받기 위하여 1976년 프랑스 파리로 잠시 옮겨졌었습니다. 파리의 드골 공항에 도착한 (죽은지 3000년이 넘은) 이 파라오의 시신은 한 나라의 왕 자격으로 프랑스 정부의 영접을 받았습니다. 살짝 허풍이 심하고 허영심이 넘치는 이 인물의 성격을 감안해볼 때에, 람세스 2세는 자신의 시신에 대한 그런 예우를 보며 저 세상에서 껄껄 웃으며 참으로 만족해 했을 것 같습니다.
람세스 2세의 이름이 들어가는 무덤에는 람세스 2세 자신의 무덤 이외에 ‘람세스 2세의 아들들의 무덤(KV5)’도 있습니다. 이곳은 이름 그대로 유난히 자식이 많았던 람세스 2세의 아들들을 위한 무덤입니다. 람세스 2세는 수십 명의 아들을 두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무덤에는 최소한 6명의 왕자가 매장되었습니다. 무덤은 무려 130여개나 되는 방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것은 왕들의 계곡에서는 가장 큰 무덤일뿐더러, 이집트 전역에서도 이보다 규모가 큰 무덤을 찾기는 쉽지 않습니다. ‘람세스 2세 아들들의 무덤’은 아마도 일반에게 공개되기 위해선 앞으로도 오랫동안 더 조사되고 정리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발굴자들에 의하면 아직도 여전히 조사되지 않은 공간들이 무덤 내부에는 많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투트모스 3세의 무덤 (KV 34)
투탕카멘보다 약 100년 전에 살았던 투트모스 3세의 무덤은 현재 공개되고 있는 무덤들 가운데 가장 오래된 무덤입니다. 투트모스 3세보다 시대적으로 앞서는 투트모스 2세나 하트셉수트의 무덤들은 현재는 비공개 상태로 남아 있습니다. 투트모스 3세의 무덤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높이가 30미터나 되는 가파른 계단을 조심조심 올라가야하는 수고를 해야만합니다. 대부분의 무덤들은 입구가 지면에 있는데 반해서 이 무덤은 바위산 중턱에 입구를 만들어 안쪽으로 파고들어간 형태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투트모스 3세의 무덤은 왕들의 계곡에 있는 무덤들 중에서 비교적 이른 시기에 속하는 것인데, 이 이른 시기의 무덤들은 시간 반대방향으로 꺾여 들어가는 형태의 복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시대의 무덤형식은 복도가 직각 혹은 직선 형태로 만들어 지는 후대의 무덤들과 차이를 보입니다.
화려하게 장식된 화강암 석관이 놓여있는 널찍한 현실에 이르기 위해서는 사후세계에서의 기나긴 시련을 이겨내야 합니다. 물론 우리는 여전히 살아 있기 때문에 그것을 직접 경험할 수는 없고요, 무덤의 벽면에 그려진 벽화를 보는 것으로 그 경험을 대신합니다. 투트모스 3세의 무덤 내부는 저승에 대한 묘사로 가득합니다. 무척이나 흥미롭기는 하지만 벽화는 만화 같이 그려져 있어서 예술적 수준이 높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어쩐지 급조되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훗날 알렉산드로스 대왕도 존경을 표한 이 무덤의 주인공 투트모스 3세는 ‘이집트의 나폴레옹’이라고도 불립니다. 그것은 투트모스 3세가 키가 작지만 단단한 체구를 하고 있었고 전장에서 화려한 업적을 세웠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실 투트모스 3세는 나폴레옹보다는 무려 3천 년 전에 살았던 사람입니다. 3천년이나 먼저 살았던 사람을 3천년 후의 사람의 이름을 따서 부르는 것이 어색하게 느껴집니다. 개인적으로는 ‘이집트의 나폴레옹’ 같은 별명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자,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쉬운 해결책이 있습니다. 나폴레옹을 ‘프랑스의 투트모스 3세’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아멘호테프 2세의 무덤
다양한 이견들이 존재할 것이 분명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왕들의 계곡에 있는 모든 무덤들 가운데에 아멘호테프 2세의 무덤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이곳에는 투트모스 3세의 무덤과 같이 암두아트(Amduat), 즉 저승에 관한 벽화가 무덤 내부를 가득 메우고 있는데요, 그림의 솜씨가 투트모스 3세의 것보다 훨씬 더 뛰어납니다. 무덤의 입구부터 시작되는 긴 복도는 결국에는 여섯 개의 기둥이 있는 널따란 공간에 이르게 됩니다. 바로 이곳의 벽면에 사후세계를 묘사한 화려한 벽화가 그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천장에서 화려하게 채색된 별들이 빛나고 있습니다. 무덤의 현실은 이 공간에서 조금 내려간 곳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곳에 놓여있는 황색의 화강암 석관은 보존상태가 무척이나 훌륭해서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아멘호테프 2세의 무덤은 고고학자들이 이곳을 발견하기 이미 오래전에 도굴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라오의 미이라는 학자들이 이곳에 이를때까지 무덤에서 안식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파라오의 목에는 그때까지도 그의 죽음을 무척이나 애도했을 것이 분명한 누군가가 살포시 걸어놓은 꽃목걸이가 걸려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