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즈베키스탄의 황폐화를 막는 적정기술들
우즈베키스탄의 황폐화를 막는 적정기술들
우즈베키스탄의 황폐화를 막는 적정기술들
2016.07.06 18:25 by 김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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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직장으로의 출근. 그 떨리는 순간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타슈켄트 UNDP(UN개발계획) 건물의 3층에 위치한 GEF SGP(Global Environment Facility Small Grants Programme, 우리말로 하면 '지구환경기금의 소액 보조금 프로그램' 정도입니다) 사무실에 들어가자 싱그러운 공기가 저를 맞았습니다. 스무 개가 넘는 크고 작은 화분들, 그리고 수조 안에는 화려한 빛깔의 물고기들이 유유히 헤엄을 치고 있었습니다. 그 사이로 보이는 동료들이 벌떡 일어나 환한 모습으로 악수를 청해왔습니다. 마치 오랜 시간 기다려 왔던 사람을 만나는 것처럼 연신 “Good to see you”, “Nice to meet you”, “Welcome!”을 외쳤습니다. 봉사단을 향한 이런 성대한 환영이라니, 굉장히 놀랍고도 기분이 좋았습니다.

GEF SGP 사무실의 풍경

모두가 부러워하는 GEF SGP

“출근 시간은 몇시에요?”

“눈을 뜨면 나오세요.”

“그럼, 퇴근은 언제 하나요?”

“일이 끝나면 집에 가도 돼요.”

이 짧은 대화로 저는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여긴 직장인의 천국이라는 것을.

UNDP 사무실의 모두가 이런 시간표대로 일하는 것은 아닙니다. 대부분은 9시부터 6시까지, 혹은 그보다 늦게까지 일을 합니다. 또한 점심시간도 정해놓고 움직이는 경우가 다반사이지요. 하지만 제가 속한 팀은 달랐습니다. 그리고 UNDP 사무실의 모두가 그 자유로움을 부러워했지요. 자유로운 분위기뿐만 아니라 동료들의 유머감각과 센스, 그리고 배려심에 대한 칭찬 역시 자자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저는 그 혜택을 누리고 있지요.

우연히도 저와 함께 일하는 Alexey, Jamshid, Max 세 명 모두 아이를 둔 아빠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어려움에 처할 때 마다 아빠처럼 든든하게 저를 도와주었습니다. 첫 달에는 기존에 예약했던 호텔이 너무 비싸 옮기게 되었는데 러시아어와 우즈벡어를 잘 못하는 저 대신 호텔 방을 알아봐 주고, 할인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었습니다. 그 이후에도 은행 업무를 보아야 할 때, 집 계약과 관련하여 자문이 필요할 때, 여행 계획을 세울 때, 생필품을 사야하는데 말을 못해 살 수가 없을 때마다 저와 함께 차근차근 문제를 해결해 주었습니다. 너무나 많은 도움을 받아 때때로 맛있는 ‘김’을 대접하거나 편지로 마음을 전했지요.

환경 보호와 개발, 공존할 수 있는가

GEF SGP를 간단히 소개하자면, 개발과 환경 보호가 함께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실현하는 곳입니다. 굉장히 아름답고 낭만적인 이상 같지만 실제로 GEF SGP는 이러한 일들을 위해 고민하고 노력합니다. 저는 이 곳에서 우리의 프로그램들이 농부들, 마을들, 그리고 NGO와 정부 부서들에 잘 전달 될 수 있도록 홍보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홍보 만화의 한 장면. GEF SGP 페이스북 페이지(https://www.facebook.com/sgp.uz/) 에서는 제가 만든 만화, 카드뉴스를 보실 수 있습니다.

구체적인 사례로 말씀을 드릴게요. 자, 그 전에 잠시 눈을 뜨고(감으면 글을 못 읽으니) 상상을 해볼까요? 우리는 원시시대를 방문했습니다. 배가 고파 주변을 둘러봅니다. 땅을 갈고 농사를 짓지 않았는데도 과일 나무들이 저절로 자라 있습니다.

이제 다시 현대로 돌아와 볼까요? 밭을 가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땅 속과 표면의 흙을 섞어주고 있지요. 촉촉했던 땅은 겉으로 나와 다시 말라가고, 이미 말라 있던 표면의 땅은 그제야 습기를 얻기 시작했네요. 예전에는 굳이 이렇게 하지 않아도 작물들이 자라났는데…. 그렇다면, 노동력과 비용을 줄이기 위해 옛날로 돌아가도 되지 않을까요?

네, 이것이 저희가 올해 주력하고 있는 ‘보전 농업(Conservation Agriculture)’, 특히 ‘No-till planting’이라고 불리는 무경간(無耕墾) 농법입니다. 밭을 갈아 땅을 뒤집고 섞어주는 경작 방식과 다르게 있는 그대로의 땅에 농작물을 심는 기술인데요. 먼저 땅 위에 뿌리 덮개(mulching)를 덮는 작업을 합니다. 뿌리 덮개로는 천, 자갈, 나무껍질 등 다양한 재료가 사용되는데, 현재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주로 볏짚을 많이 사용합니다. 이는 땅의 수분과 영양이 나가는 것을 막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잡초가 자라나는 것을 방지함으로써 작물을 보호합니다.

뿌리 덮개가 깔린 땅 위를 지나가는 트랙터 (사진: Alexey Volkov)

트랙터에 연결한 No-till planter(씨앗을 심는 기계)로 그 땅 위를 지나가면 날카로운 톱니가 땅을 갈라 그 사이로 씨앗을 뿌립니다. 마치 자연적으로 땅에 씨앗이 스며들듯이 심는 방법이지요. 토양이 뒤집어지지 않으므로 황폐화를 막을 수 있습니다. 땅의 황폐화를 막으면 사막화 현상을 예방할 수 있기 때문에 실크로드 사막과 아랄해의 고갈로 대표되는 우즈벡의 땅을 조금이라도 풍요롭게 만들 수 있지요.

무경간 농법으로 심은 농작물 (사진: Alexey Volkov)

이 뿐만이 아닙니다. 우즈베키스탄 동쪽의 산간 지방인 페르가나 벨리에 갔을 때는 우리나라의 물레방아와 유사한 ‘micro-hydro(초소형 수력발전)’를 볼 수 있었습니다. 전기가 충분히 공급되지 않는 깊은 산 속 시골마을에서는 초소형 수력발전 기술이 유용한데요. 강의 물길을 끌어와 돌림으로써 전기를 생산하게 되지요. 페르가나의 시골에서는 이 전기로 마을의 학교, 유치원, 병원의 불을 밝히고 있습니다. GEF SGP는 이렇게 현지 사정에 맞는 적정기술도 보급하고 있는데요. 이런 좋은 일에 함께할 수 있다는 자체로 굉장한 자부심이 느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강의 유속을 이용하여 에너지를 생산하는 micro hydro

GEF SGP는 이 외에도 다른 농작물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물을 적게 필요로 하는 피스타치오 나무를 심도록 장려하거나, ‘부하라’라는 도시의 에코 센터에서 동물 보호를 위해 힘쓰는 등 다양한 일을 하는데요. 부하라 에코 센터는 다음 편에서 깊이 다루겠습니다. 예쁜 동물이 가득한 풍경을 생생히 전해드릴게요. 다 같이 힐링하자구요!

UN 희망원정대 네팔, 우즈베키스탄, 몽골, 가나, 피지, 스리랑카. 이 여섯 나라에서 활동하는 UN 봉사단 청년들이 현지에서의 활동과 생활을 고스란히 글과 사진에 담았습니다. 각자가 속한 UN 기구에서의 이야기와 함께 그곳의 사회와 문화, 여행정보 등 6개월 동안 보고 겪은 생생한 이야기를 전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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