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최고의 여성 파라오 ‘하트셉수트’
이집트 최고의 여성 파라오 ‘하트셉수트’
2016.07.07 14:34 by 곽민수

룩소르에서 가장 인기있는 유적지는 단연 투탕카멘의 무덤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나 세 번째 정도의 인기를 차지하는 게 바로 ‘데이르 엘-바흐리(Deir el-Bahri)’에 위치한 하트셉수트의 장례 신전이죠. 신전을 둘러싸고 있는 기암절벽도 참 멋지지만, 이 신전을 세운 하트셉수트라는 인물이 이집트 역사에서 그리 흔치 않았던 ‘여성 파라오’라는 사실은 고대 이집트 문명에 큰 관심이 없는 분들의 눈길도 분명히 사로잡게 될 것입니다.

데이르 엘-바흐리 하트셉수트 장례 신전

데이르 엘 바흐리에 갈 수 있는 방법에는 몇 가지가 있습니다. 여행자들을 위한 숙소가 대부분 자리잡고 있는 룩소르 동안에서부터 시작되는 당일치기 투어에 참여하면 냉방이 되는 버스를 타고 아주 쉽게 이곳의 매표소까지 이르실 수 있습니다. 이 코스는 서안의 여러 유적지를 짧은 시간 내에 효율적으로 둘러볼 수 있다는 장점도 있죠.

하지만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하지만 그리 고되지는 않게 개인적으로 여행하기를 원하는 분들에게는 배를 타고 서안으로 건너와 택시나 자전거 등의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또 한 가지 방법은 ‘데이르 엘-메디나’ 혹은 ‘왕들의 계곡’에서부터 두발로 걸어 직접 산을 넘는 것입니다. 물론 이 방법은 약간의 근육통과 이마 위로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땀을 닦아 내야 하는 수고가 필요로 하긴 합니다. 하지만 신전을 둘러싸고 있는 그 절벽 위에 직접 올라서서 사진으로 밖에 볼 수 없었던 절경을 직접 두 눈으로 본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 수고는 충분히 값어치가 있습니다.

절벽 위에서 바라본 데이르 엘-바흐리 전경

오늘 만나볼 곳은 3000년이 훨씬 넘는 고대 이집트의 기나긴 역사 속에서도 그 예가 흔치 않습니다. 절벽으로 둘러싸인 특별한 경관을 갖고 있는데다, 신전의 주인공 하트셉수트 본인 역시도 이집트 역사에  몇 없던 여성 파라오였습니다.

종종 하트셉수트는 ‘최초의’ 혹은 ‘유일한’ 여성 파라오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사실과는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이미 초기왕조 시대에 '메르네이트'라는 여성 파라오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고, 이후 고왕국 6왕조 시대의 '니토크리스', 중왕국 12왕조의 '소베크네페루' 등의 여성 파라오가 하트셉수트 이전에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트셉수트가 ‘최초의 여성 파라오’로 자주 오해받는 것은 이전 시대의 여성 파라오들이 대체로 위기의 시기에 이집트를 통치했던데 반해서(그래서 여성 파라오의 등장은 왕조 몰락의 징후 혹은 몰락의 원인으로 이해되기도 합니다.) 하트셉수트는 신왕국 이집트가 추후 수 백 년 동안 국가의 부와 지역 내에서의 패권을 성공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탄탄한 반석을 마련한 성공적인 지도자였기 때문입니다.

하트셉수트의 화강암 상. 이 석상에서 하트셉수트는 파라오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아직은 여성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네덜란드 라이덴 국립 고고학 박물관 소장 .
하트셉수트의 석회암 상. 여기에서 하트셉수트는 수염까지 난 완전한 남성으로 그려집니다. 베를린 신박물관 소장.

유명세만큼이나 하트셉수트의 인생사는 아주 극적입니다. 파라오 투트모스 1세의 딸이었던 하트셉수트는 신왕국 시대의 왕족들이 가끔 그랬던 것처럼 이복동생인 투트모스 2세와 결혼하였습니다. 어쩌면 이들의 근친결혼에 대해서 묘한 불쾌감을 느끼시는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고대 이집트인들에게 근친결혼은 태고부터 존재하던 크게 특별할 것이 없는 관습이었습니다. 심지어는 신들도 근친결혼을 했는데, 하늘의 여신 누트와 대지의 신 게브 그리고 이집트의 신들 가운데 가장 유명한 오시리스와 이시스, 또 오시리스의 동생이자 라이벌이었던 세트와 네프티스도 부부이기 이전에 남매였습니다.

그렇다고 이집트에서 언제 어디서나 근친결혼이 유행했던 것은 아닙니다. 근친결혼이 이루어진 것은 대체로 왕실 내에서였고, 그것도 주로 신왕국 시대에 나타나는데 그 빈도도 아주 흔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초창기 학자들이 근친결혼을 이집트의 보편적인 관습으로 여겼던 이유는, 고대 이집트인들이 자신의 남편과 부인을 ‘나의 형제’, ‘나의 자매’로 부르는 습관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고대 이집트의 전 시대에 걸쳐서 왕위는 대체로 파라오의 장남이 계승하였습니다. 하지만 장남이 본부인의 아들이 아니라 후실의 아들이었던 경우에는 왕위 계승의 정당성이 조금은 부족하다고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물론 그들이 왕위에 오르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지만 본부인의 딸, 즉 이복 누이와 결혼을 하게 되면 왕위 계승의 정당성이 조금 더 확고해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복 남매인 투트모스 2세와 하트셉수트의 결혼은 이런 맥락 속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고대 이집트의 관점에서 볼 때에는 그다지 특별할 것이 없었던 하트셉수트의 결혼은 이복형제이자 남편이었던 투트모스 2세의 이른 사망으로 인하여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합니다.

하트셉수트와 투트모스 2세 사이에는 딸은 한 명 있었던 것 같지만 아들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투트모스 2세와 두 번째 부인 혹은 첩 가운데 한 명으로 추측되는 이세트 사이에는 아들이 한 명 있었는데, 그가 바로 미래에 투트모스 3세가 되는 인물입니다. 하지만 투트모스 2세가 사망했을 당시 투트모스 3세는 겨우 아홉 살에 불과했습니다. 당연히 왕실의 가장 큰 어른이었던 하트셉수트가 섭정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실제로 투트모스 3세가 왕위에 오르는 상황에 관한 기록들을 보면 하트셉수트가 그 과정에서 맡았던 역할을 분명히 섭정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18왕조 시대의 유명한 건축가이자 고위 관리였던 이네니의 무덤 기록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쓰여 있습니다.

그(투트모스 2세)의 아들(투트모스 3)이 그(투트모스 2세)의 장소에서 두 땅의 주인으로 우뚝 섰다. 그(투트모스 3세)는 그(투트모스3세)를 낳은 이(투트모스 2세)의 왕좌에 올라 통치자가 되었다. 그(투트모스 2세)의 누이이자 신성한 배우자인 하트셉수트는 두 땅에 관한 업무를 맡게 되었다.

하지만 하트셉수트가 스스로 갖고 있었던 파라오의 장녀라는 자부심과 자신의 뛰어난 역량에 대한 긍지는 그녀를 단순히 섭정으로 머물게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하트셉수트는 파라오 투트모스 1세를 아버지로 두고 있었고, 또 다음 파라오였던 투트모스 2세가 그녀의 남편이었습니다. 반면에 투트모스 3세는 투트모스 2세의 아들이기는 했지만 어머니는 출신이 명확하지 않은 여성이었고, 선왕이 사망했던 그 시점에는 아직 철없는 소년에 불과했기 때문에 자부심이 강한 하트셉수트에게는 무척이나 보잘 것 없이 보였을 것입니다. 그녀가 여성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이집트 왕좌에 오를 자격이 누구보다 충분하다고 믿었던 것은 어쩌면 무척이나 자연스러운 일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하트셉수트는 투트모스 3세가 왕위에 오른 지 몇 년이 지나지 않아서 갑자기 공동 파라오로 등장하게 됩니다. 하트셉수트가 파라오 자리를 차지했다고 하여 투트모스 3세가 폐위된 것은 아니었지만, 제 1 파라오로의 역할은 전적으로 하트셉수트가 담당하게 됩니다. 투트모스 3세가 독립되고 주체적인 파라오로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은 이후로 약 20년 후에 하트셉수트가 세상을 떠난 다음의 일입니다.

카르낙에 있는 ‘붉은 예배실’의 부조. 두 명의 파라오가 축제 행렬을 주관하고 있는데, 앞쪽에 서 있는 파라오가 ‘제 1 파라오’ 하트셉수트이고, 뒤에 서 있는 인물이 ‘제 2 파라오’인 투트모스 3세입니다.
하트셉수트의 ‘붉은 예배실’. 카르낙 신전의 ‘신성한 배’를 위한 지성소로 지어졌지만, 이후 분해되어서 다른 건축물을 짓는 재료로 사용되었던 것을 현대 학자들이 다시 복원한 의미 있는 구조물입니다.

전례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고대 이집트에서 여성이 파라오가 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하트셉수트는 스스로를 조금씩 변화시켜 나갔습니다. 자신의 여성성을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하나둘 지워나가기 시작한 것이죠. 그녀는 공식 석상에서는 꼭 남장을 했으며 자신의 석상에는 인조 수염을 붙이거나 자신의 이름과 칭호에서는 고대 이집트어의 여성형 어미를 모두 뺐습니다. 파라오로서의 정당성을 획득하기 위한 노력을 끊임없이 했던 것이죠. 더불어 자신의 혈통이 당시 이집트의 주신이었던 아멘과 직접 닿아있다는, 즉 자신의 아버지가 아멘 신이라는 선전용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내기도 했습니다. 그녀가 처음 만들어낸 이 이데올로기는 이후 신왕국 시대 파라오들이 자신의 신성한 권위를 주장할 때에 그대로 답습하는 인기 있는 레퍼토리가 됩니다.

하트셉수트의 이름. 오른쪽의 카르투쉬 안에 있는 글자들은 ‘케누메트-아멘 하트-쉐페수트’라고 읽는데, 이것은 ‘아멘과 함께하는 자. 귀부인들 가운데 최고인 자’라는 뜻입니다. 왼쪽의 동그라미는 태양 혹은 태양 신은 뜻하는 ‘라’라는 글자이고, 오리는 아들을 뜻하는 글자인데 ‘사’라고 읽습니다. ‘사’ 밑에 있는 하얀 상자 속의 작은 반원은 ‘t’ 음가를 갖는 글자인데, 이것은 여성형 어미입니다. 그래서 이 부분은 ‘태양신의 딸’이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하트셉수트는 분명히 여성으로 묘사되는 경우도 있지만, 또 다른 경우에는 여성형 어미가 제거된 채 완전한 남성으로 그려지기도 합니다.

 

/사진: 곽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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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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