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전 속엔 '비전'이 있었다.
텔레비전 속엔 '비전'이 있었다.
2016.07.15 16:59 by 시골교사

“비비테?”(Wie bitte?, 다시 한 번 말해줄래?)

독일 학생들과의 짧은 대화 중 반드시 듣게 되는 말이다. 인상까지 찌푸리고 다그치면, ‘내 문법이 어딘가 또 틀렸나?’, ‘관사를 잘못 썼나?’, ‘발음이 이상한가? 아니면 억양이?’라는 생각만 머릿속을 맴돈다. 자꾸 그런 식으로 당황하고 겁 먹다보니 하고 싶던 말은 목구멍 속으로 기어 들어갈 뿐이다.

벙어리 냉가슴 앓듯(사진:Chepko Danil Vitalevich/shutterstock.com)

 

| 유학 성패의 요인 ‘말, 말, 말’

유학생의 영원한 난제, 역시 말이다. 외국인이 현지의 말을 100% 이해한다? 100% 거짓말이다. 십 년을 넘게 살아도 이해와 표현력이 그들 같을 수는 없다. 그동안 살아온 문화와 정서도 다르기 때문에 그들을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애초에 무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학의 성패는 역시 외국어 실력에 달려있다.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전공 내용을 70% 이상 이해할 정도의 외국어 실력이 되어야 유학생활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지 않나 싶다.

여기에 한 가지 더. 모국어로 선수학습(先修學習)을 하여 내용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다면 훨씬 편하다. 만약 부족한 어학실력에 선수학습 내용조차 없다면 공부는 곱으로 어려워진다.

때문에 섣불리 대학을 마치지 않고 유학을 오거나, 아니면 유학을 와서 전공을 바꾸었다가는 유학기간이 길어지거나, 아예 공부를 끝내지 못하고 돌아갈 확률이 크다. 또한 공부를 마친다 해도 좋은 점수로 졸업하는 것을 기대하긴 힘들다.

do you speak german?(사진:nito/shutterstock.com)

 

| TV 시청은 무죄

“텔레비전 끼고 살면 가난해진다.”

어릴 때부터 유독 TV 연속극을 좋아했던 내게 아버지가 하신 말씀이다. 아버지께선 텔레비전에 시간을 뺏겨 해야 할 일을 못할까봐 걱정하신 나머지, 틈만 나면 TV에 빠져 있는 나를 나무라곤 하셨다.

하지만 이곳에서 TV시청은 무죄다. 가난하게 산다는 아버지의 나무람에서도, 시간을 죽인다는 자책에서도 자유롭다. 나는 텔레비전 앞에서 공부 중인 유학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것도 잠시다. 처음에는 ‘귀를 한번 트여보겠어!’라는 거창한 목표를 갖고 텔레비전 앞에 앉지만, 금세 조각처럼 잘생긴 남자 배우 혹은 예쁜 여배우에게 매료되거나, 이국적인 풍경에 빠져버린다. 말을 배워보고자 했지만, 드라마 하루 이틀 보는 것도 아니고, 극의 분위기로 대충 감을 잡기 때문에 굳이 대사를 듣지 않아도 이해에 어려움이 없다. 그러다 다시 ‘이러면 안 되지!’하며 자신을 추슬러 보지만 그 역시 오래 가지 못한다.

가끔 정말 알고 싶은 대사인데도, 이해가 안되면 함께 앉아있는 남편에게 물어본다.

"저 배우 지금 뭐라는 거야?" 하지만 돌아오는 건 남편의 의미심장한 웃음뿐. 생각해보니, 언어 때문에 애먹는 유학생인 건 그나, 나나 마찬가지이다.

열혈 공부 중입니다.(사진:threerocksimages/shutterstock.com)

 

| ‘니하오~’ 동지들

낯선 땅에서 같은 경험을 공유하는 친구들이 있다. 내 경우엔 어학원 시절에 만난 중국 친구들이다. 그들을 만나면 꼭 초등학교 동창생을 만나는 기분이 들 정도로 반갑고, 수업시간에는 그들이 있어 외롭지 않았다. 수업시간에 혼자 구석에 앉아 수업을 듣는 것보다는, 그나마 아는 중국 친구들과 어울려 있는 그림이 스스로도 훨씬 나았다. 게다가 독일어를 몇 마디라도 더 하기 위해서는 독일 학생들보다는 중국 친구들이 훨씬 편했다.

중국 학생들과 대화 할 땐 서로 숨기거나 꾸미는 게 없다. 왜냐면 우리의 짧은 독일어 실력으론 돌려 말할 수조차 없기 때문이다. 만나면 솔직 담백하게 서로의 속내를 털어놓게 되는 이유다. 그들과는 문법이니, 관사니, 억양이니, 발음이니 하는 것에 굳이 신경 쓰지 않고 말하고, 또 그걸 서로 알아듣는다. 그래서 대화 자체에 부담이 없다.

이곳 대학교의 유학생 비율은 전체 학생의 10%가량인데, 그 중 중국학생들이 거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그 중 절반은 경상계열을 공부하는 친구들이다.(중국 학생들의 경영·경제학 사랑은 대단하다.) 어학원 과정에서 사귄 중국 친구들 역시 대부분 경제학 내지 경영학도이다 보니, 그들과의 인연은 거의 졸업 때까지 이어졌다.

내 말을 알아듣다니, 대단한(?) 독일어 실력이다!(사진:Dragon Images/shutterstock.com)

실제로 학과 공부를 시작하면서 중국 친구들의 도움을 참 많이 받았다. 동병상련의 아픔을 겪으면서 서로 위로하고 위로받곤 했다. 내가 어려워하는 과목을 상대방도 어려워하고, 내가 떨어진 과목을 상대방도 떨어져주면 "그래, 나만 어려운 게 아니구나"하는 생각에 그들과의 동질감은 더욱 깊어졌다.

당시만 해도 우리 과에는 한국인 선배나 동기가 별로 없었다. 처음에 입학했을 때는 네, 다섯 명 정도 함께 수업을 들었지만, 끝까지 남은 친구는 나를 제외한 한 명이 전부였다. 그나마 있던 친구는 경영학 전공이라, 대학원 과정에서 갈라서야 했다.

모르는 문제와 내용에 부딪치면 한국말로 속 시원히 설명해줄 사람이 너무 그리웠는데, 그런 답답한 마음을 중국인 친구들이 대신 채워준 것이다. 개중에는 머리 좋고, 의리 있고 친절한 친구들도 참 많았다. 그래서 나는 공부하다 모르는 부분이 있거나, 시험 정보나 학업 진행에 관해 궁금한 점이 있으면 그들을 자주 찾곤 했다. 그들은 내게 동료이자 선배였다.

 

germany

민들레 김치를 아시나요?

 

외국에서 그리운 향기가 있다면? 내 경우는 쑥, 깻잎, 그리고 쑥갓 향이다. 그 향을 대신할 것이 이곳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우연히 길가에 핀 쑥을 발견하곤, 신기한 나머지 얼른 뜯어 코에 대 보았지만 생김새만 비슷하지 향은 전혀 없었다. 한국에서 그리 좋아하던 것들도 아닌데, 그런 향기들이 왜 그리 그립던지… 

그러던 차에 초여름 들판에서 이런 욕구를 대체할 만한 것을 하나 찾았다. 바로 민들레다. 바람이 잦아서 그런지 이곳에는 민들레가 지천으로 깔려있다. 한국에 있었으면 쳐다보지도 않았을, 흔한 민들레. 그것으로 김치를 담기 시작했다. 

5월 쯤, 싹이 연한 이파리로 겉절이를 무치면 그 쌉싸름한 맛이 입맛을 돋운다. 또 한껏 많이 뜯어 소금물에 일주일 정도 담갔다가 순이 죽고 쓴 맛이 가시면, 젓국을 많이 넣고 김치를 담그기도 했다. 김치대용으로 먹기도 안성맞춤이다. 

민들레 김치를 담을 때 조심할 것이 하나 있으니, 바로 개똥이다. 개들이 아무데나 볼일을 보기 때문에 들판과 잔디밭은 온통 개똥 천지다. 가끔 애완견들의 용변 처리를 하지 않고 가는 사람들 때문이다. 

한번은 나무 밑, 그늘진 곳에 아주 연해 보이는 민들레 잎을 꺾으러 들어갔다가 그 거대한 결과물을 보고 구역질이 나서 뛰쳐나온 적이 있었다. 그 날, 그 사건 이후로 나는 들판과 잔디밭에서는 절대로 민들레를 뜯지 않는다. ‘개 출입금지’라고 쓰여진 학교 운동장에서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며 몰래 민들레를 뜯을 뿐.

(사진:nada54/shutterstock.com)

 


The First 추천 콘텐츠 더보기
  • ‘성장의 상징, 상장’…스타트업들의 도전사는 계속된다
    ‘성장의 상징, 상장’…스타트업들의 도전사는 계속된다

    자본과 인력, 인지도 부족으로 애를 먹는 스타트업에게 기업공개는 가장 확실한 대안이다. 단숨에 대규모 자본과 주목도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거래 파트너와 고객은 물론, 내부 이...

  • “24주 연속 1위 브랜드의 저력으로”…‘나르카’ 운영사 ‘언커먼홈’, 매쉬업벤처스 등으로부터 후속 투자 유치
    “24주 연속 1위 브랜드의 저력으로”…‘나르카’ 운영사 ‘언커먼홈’, 매쉬업벤처스 등으로부터 후속 투자 유치

    이제 헤어 케어도 브랜딩이다!

  • “최근 가장 눈에 띄는 창업팀은?”…유망 초기 스타트업 뽑는 ‘혁신의 숲 어워즈’ 막 올랐다
    “최근 가장 눈에 띄는 창업팀은?”…유망 초기 스타트업 뽑는 ‘혁신의 숲 어워즈’ 막 올랐다

    현시점에서 가장 기대되는 스타트업 30개 사는 어디일까?

  • “Only for you”…대세는 초개인화 서비스
    “Only for you”…대세는 초개인화 서비스

    초개인화의 기치를 내건 스타트업들이 존재감이 점점 커지고 있다.

  • 타 산업과 연계, 핵심 기술 접목…“관광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라”
    타 산업과 연계, 핵심 기술 접목…“관광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라”

    '관광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 틈새에 대한 혁신적인 시도 돋보였다!

  • “생산성, 효율성 쑥쑥 올리는 솔루션”…매쉬업벤처스, 스타트업 ‘마일 코퍼레이션’에 초기 투자
    “생산성, 효율성 쑥쑥 올리는 솔루션”…매쉬업벤처스, 스타트업 ‘마일 코퍼레이션’에 초기 투자

    기업의 공간, 자산 관리를 디지털 전환시킬 창업팀!

  • “당신에겐 더 큰 무대가 필요하다”…스타트업의 해외진출을 지원하는 스타트업
    “당신에겐 더 큰 무대가 필요하다”…스타트업의 해외진출을 지원하는 스타트업

    스타트업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는 스타트업의 등장!

  • “국내 기업의 글로벌 성장 발판 마련”…한국액셀러레이터협회, 뉴저지 진출 전략 웨비나 개최
    “국내 기업의 글로벌 성장 발판 마련”…한국액셀러레이터협회, 뉴저지 진출 전략 웨비나 개최

    국내 유망 스타트업의 미국 진출, 맞춤형으로 지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