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넷, 이렇게도 사는구나
스물넷, 이렇게도 사는구나
2016.07.19 10:37 by 흥부자

고백하건데, ‘버스킹예술학과’ 시리즈를 시작한 데는 ‘저의’가 숨어있었다. ‘나의 연극 버스킹을 알릴 수 있는 데가 없을까?’하는. 참 좋은 건데 어떻게 설명할 방법이 없네. 그러니 스스로 나설 수 밖에.

‘보은’의 마음도 없지 않다. 흥부자의 ‘연극버스킹’은 마임이나 모노드라마가 아니라 극장에서 보던 연극을 그대로를 옮긴 것. 자연스레 참여하는 배우도 많았다. 그들에게 쩐이나 경력으로 갚을 수 없었던 마음. 이번 기회를 통해 응원하고 보시하려 한다.

거리는 당연히 연극하기에 불편하다. 도로 위의 차 소리, 여기저기 가게에서 들려오는 음악소리, 지나가는 사람들 소리. 마이크 없이 그 소음을 다 이기고 공연했다. 마이크를 쓰는 순간 이 세계와 저 세계가 분리되고 사람들의 참여도가 낮아질 걸 알았기에 고집을 부렸다. 등‧퇴장로 역시 없다. 바닥에 검은 선을 그어 놓고 그 안으로 들어오면 등장, 그 밖은 중립의 태도를 유지해서 인물의 등장과 퇴장을 알렸다.

지금 생각해 보면 미쳤었다. 2013년 29살, ‘아홉수’의 봄이었는데 거리에서 연극할 생각을 하다니.

두 가지에 꽂혔었다.

하나.   거리에서도 극장에서 하듯 연극이 가능할까? 

둘.   지나가는 사람을 참여시키면 어떨까?

쉽지 않았다. 결론은 매번 ‘부정적’ 혹은 ‘빡침’으로 끝났다. 내 참여연극은 결론이 마음에 안 들면 관객이 들어와 ‘바꿔야’ 한다. 관객이 배우가 되고 배우가 관객이 될 수 있는 요~오상한 극이다. 관객이 원하는 장면으로 되돌아간 다음, 원하는 역할을 설정하고 즉흥적으로 (새롭게) 전개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취업을 앞둔 딸과 엄마가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모녀의 대결 장면에 관객들은 ‘아빠’, ‘아들’, ‘이모’ 등으로 들어와서 바꿔 볼 수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잘 바뀌지는 않는다. 모든 관계에는 ‘관성’이라는 게 있다. 

무리도 아니다. 지금 당장 공개적인 장소에서, 모두가 보는 앞에서 프로포즈를 받는다고 상상해보라. 드라마 속에선 멋진 일이지만, 현실에선 아마 이렇게 외칠 게다.

“다가오지 마, 다가오지 마, 이게 뭐 하는 짓이야!  어 일로 오지 말라니깐! 쪽팔려!! 다 쳐다 보잖아!!!”

대중의 시선 받기를 꺼려하는 한국인들에게 이렇게 적극적 참여를 기대하다니. 거리에서 이뤄지는 참여형 연극이라는 전제 자체가 이상하게 혹은 이상적으로 들릴 수 있겠다. 암…

 

 

 

 

연극을 위한 트레이닝. 손바닥 가운데 한 점 보고 이동하는 훈련이다. 지위 훈련과 동시에 상대와 호흡하는 연습. 이 외에도 마리오네뜨 훈련, 사진 만들기 훈련 등 이때 약 두 달 정도 정말 고생들 많았다. 내 청춘에 영웅들 고마워용. 3년 전이라 화질은 별로.

어려운 건 이 뿐만이 아니었다. 거리에서 연극을 한다니. 전례를 본 적이 없으니 팀원들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개인적으론 ‘배우, 무대, 관객’만 있으면 연극이 가능하다고 믿었지만, 다른 이들의 생각은 달랐다. 연극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무대에는 무대장치가 있어야 하고 조명, 음향, 소품, 의상 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거다.

그 시설이 다 갖춰진 ‘극장’을 내버려 두고 ‘거리’로 나간다니. 설득에 설득을 거쳐(연극은 기본적으로 설득 게임이다!) 거리로 데리고 나온 작품은 다. 제목처럼 대한민국 24살들의 처지를 담으려고 했다.

 

줄거리

종민(당시 배우이름)은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고 만화가가 되고 싶지만 엄마의 완곡한 반대에 부딪혀 대기업 면접을 본다. 면접은 번번이 실패하고 엄마친구들 앞에서는 왠지 작아진다. 답답한 마음에 엄마는 종민을 끌고 용하다는 ‘점집’에 가는데 점쟁이는 ‘마’가 끼었다고 할 뿐이고 이를 맹신하는 엄마 앞에 종민은 더 작아진다. 이어 아르바이트 채용마저도 실패하자 인생 낙오자가 된 기분으로 차도에 뛰어든다.

 

별거 없다. 들어 봄직한, 있을 법한 이야기다. 당신의 관심도와 참여도는 연출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혹자는 ‘니 얘기 아니냐’하는 말도 했지만 (마지막 정리만 내가 했을 뿐) 극본은 공동창작의 결과물이다.

준비물: 책상 1+ 의자 4개 + 상황에 맞는 의상 소품

 자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 참여를 뺀 공연시간은 약 15분이다.

 

 

'스물넷, 24, 이렇게 사는 구나'

 —

① 썰풀기

사회자가 나와 인사를 하고 썰을 푼다.

사회자: 요새 애들은 수학도 가고 영어도 가고 피아노도 가야 해서 ‘우주’에는 못 간답디다. 고딩들은 심지어 소풍을 ‘취업박람회’로 가요. 자, 여기 종민이가 있습니다. 똬악.

사람들은 뭘 좀 나눠주면 마음을 문을 열기 쉽다. 거리에선 더욱 그렇다. 퀴즈내고 선물 주기.

② 몸풀기: 조각상과 사진 만들기

관절의 움직임을 사용하여 일종의 조각상을 만든다. 완성된 작품에 사회자가 손을 대면 그 상황에 맞는 한마디 대사를 한다.

종민(사진 속의 女이)이 가운데 앉는다. 배우들은 마치 실 없는 마리오네트를 조정하듯 관절 움직임을 통해 하나의 ‘스탑모션’을 만든다. 첫 번째 조각상은 종민이의 유아기 때 꿈, 두 번째는 종민의 청소년 시절 꿈, 마지막 세 번째는 종민의 엄마가 바라는 꿈. 이렇게 만들어 놓고 관객들에게 퀴즈를 낸다.

이후에는 한 사람씩 차례로 들어와 한 장의 사진이 되게 한다. ‘어린 종민’이 들어와 그림을 그리며 논다. 이런 종민을 바라보는 엄마의 시선이 곱지 않다. Stop! ‘스탑모션’으로 한 장면 안에 메시지를 담는다.

9살 종민이 그림을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 본 엄마의 모습을 가정한 사진만들기다. 별을 자신의 모습으로 가정한 종민. 종민의 머리 속엔 하트가 가득한데 엄마의 표정에는 불만이 가득하다.

③ 극 전개 하기

자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전개해보자. 종민이는 무럭무럭 자라 24살이 된다. 그리고 상황전개가 시작된다. 이 후로는 일반적 연극의 흐름과 비슷하다. 앞서 줄거리에서 소개한 대로 엄마는 채근하고, 종민이는 작아진다. 대사가 다소 ‘생어’(살아있는 구어체)다. 덕분에 우리네 어머니들은 순간 아침드라마를 보고 있는 듯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공연 중간 ‘아이고 저 못된 년’ 등의 추임새는 이 공연의 묘미다.

여기저기서 (관객들의)반응이 일기 시작한다.

“세상에! 어쩜 저래?” “와 진짜 썩었다!” “맞아 맞아 울 엄마 친구도 저래”…

공감하지 못하면 이런 추임새는 나오지 않는다. 공연을 하던 당시에는 일명 ‘엄친아’ 논쟁이 꽤 세게 일고 있을 때였다.

종민과 엄마 외의 배우들은 면접관, 엄마친구, 점쟁이, 아르바이트생까지 1인 다역을 소화했다.

④ 관객 참여하기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켜 준 관객들은 공연의 결론을 보고 입맛이 좋지 않았나보다. 어딘가 낯설지 않은 이야기지만 영화나 드라마같은 환상적 반전은 일어나지 않았다.

사회자는 관객들에게 참여의 기회, 즉 결과를 바꿀 기회를 준다.

사회자: 어쩌면 문제는 종민이에게 있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어머님께 있을 수도 있죠. 하지만 적어도 한 사람의 생명이 이렇게 끝나면 안 되지 않을까요? 이 이야기는 이렇게 끝나도 될까요? 여러분의 귀한 의견을 구합니다.

다행히 관객은 서슴지 않고 먼저 말을 걸어줬다. 공개적으로.

관객 A. 오른쪽에서 두 번째. 빨간 조끼를 입고 나오신 어머님 관객이다. ‘아침 드라마’ 꽤나 즐겨보시는 모양. 세상에! 엄마가 잘못했네! 어머어머 저러면 안되지! 등 거침없이 추임새를 넣어주셨다.

관객 A(50대 여성) : (주저없이) 엄마가 이러면 안 되죠! 딸이 뭘 원하는지 다 알면서 어쩜 그렇게 모른 척을 해요? 저도 24살 딸아이를 길러요. 물론 이해 안 될 때 많죠. 하지만 더 들어보려고 해야 되지 않아요? 내 딸인데? 그걸 왜 자꾸 비교해요? 진짜 너무하세요.

엄청 흥분하면서 연달아 엄마를 책망하셨다. 엄마 역을 많은 친구의 실제 나이는 21살이었는데…

관객 B. 가운데 회색티를 입은 청년 관객. 지각 있는 취준생이다. 조용히 극을 보고 있다가 조용히 손을 들었다.

관객 B(20대 취준생): 사실 지금 종민씨는 자기가 뭘 원하는지 제대로 알지 못하는 거 같아요. 그래서 하고 싶은 건 있지만 뭘 해야 할지 제대로 모르는 거죠. 어머님이 그러시는 이유가 있을 거에요. 여행을 떠나서 정리를 좀 하고 돌아오시는 건 어떨까요? 내가 정말 이걸 좋아하는지, 이걸 해서 먹고 살 수 있는지,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엄마가 고집하는 이유는 뭘까 혼자 생각하고 정리할 시간. 떠나서 생각해보면 좀 달리 보이는 것들도 있을 거 같아요. 

두 관객의 솔직한 의견에 당시 주변의 정서, 분위기가 다 녹아있으리라. 이 연극은 열린 결말이다. 정답은 없다. 앞서 말했듯 쉽게 바뀌지는 않는다. 반드시 짧은 시간 내에 변화를 이뤄내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건 시도. 그리고 각자의 삶과 태도를 환기시켜 보는 것.

3년이나 지났다. 10여 년의 연극공부 중 가장 잘 한 선택은 거리로 연극을 들고 나간 것이라고. 나는 여전히 믿는다.

 

 

거리의 연극 커튼콜 장면. 왼쪽부터 흥부자, 이종민, 성지수, 김민하, 이지수. 낯설어 그런지 직접 참여하기보단 의견만 주신 관객들이 많았지만 이후엔 놀라울 정도로 많은 분들이 참여하는 공연도 있었다. 다 이런 시도가 밑거름이 됐으리라.

* 본 연극은 브라질의 연출가 아우구스트 보알의 ‘억압받는 사람들의 연극’에서 영감을 약간 받았습니다.

* 이 공연 팀은 ‘연세극예술연구회’를 기반으로 했습니다. 도와주신 분들 너무 감사드립니다.

* 당시 사진 촬영 도와주셨던 유솔범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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