젬베로 만난 인연, 우든 샌드위치
젬베로 만난 인연, 우든 샌드위치
2016.07.27 15:54 by 흥부자

밤 11시가량. 덥지 모기는 앵앵대지, 더불어 늦게까지 잠 못 드는 습관 덕에 밤마실 나가는 길이었다.

홍대 놀이터 근처 ‘싸움의 고수’ 쯤에 도달했을 때, 심장이 쿵쿵대기 시작했다. 어디서 북이 산을 넘어오는 듯한 소리가 들리는 거다. 전사들의 행군소리 같기도 하고 파티 음악 같기도 하고. 공원 저 안쪽에선 몇 개의 공연들이 이어지며 여러 개의 소리가 혼재하는 가운데, 북소리는 한 블록 뒤에서도 또렷이 들렸다. 그런데 하나가 아니었다. 더 생각할 것도 없이 곧장 소리를 찾아 갔다.

 

 

홍대 거리 젬베클럽(드럼서클)과 흥 과다 거리 클러버들. 아는 대로 이름 불러보자면 오른쪽부터 모자 쓴 성학씨, 빨간 옷 고문님, 가운데 흑 오빠 아미두, 둔둔(두눈) 가민씨, 열정적 춤 대범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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젬베를 치면서 너도나도 즉흥적으로 들어와서 춤추고 노래하는 모습. 우리나라에선 이 정도 규모의 거리공연을 본 적이 없다. 때로는 버스커도 무대에서 노래 하는 사람인 것처럼, 사람들이 안전거리를 유지한 채 멀리서 서성이며 쳐다볼 때가 많은데 다 같이 어우러지는 게 신기했다.

촬영을 하면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른다. 마음은 당장 촬영이고 뭐고 다 던지고 뛰어들고 싶은데 영상기록은 남겨야겠고, 촬영이 끝나면 이 흥도 다 사라져 다들 끝내고 가버릴까봐 조마조마했다. 다행히 촬영을 마치고도 흥이 이어지기에 가방과 핸드폰 모두 한쪽에 내팽개치고 무아지경 춤을 줬다. 그런데 일 순간 목 뒤가 쭈뼛하고 머리까지 짜릿하게 만드는 소리…, 태평소다!

 

 

즉흥 젬베클럽에 끝판왕 태평소 등장. 다시 보이는 대로 이름 설명. 가운데 파란 옷에 모자 쓴 거제도 기성씨, 나시 입은 이상씨 , 안경 쓴 대범씨, 둔둔(두눈) 보섭씨, 태평소 성학씨, 젬베리더 아미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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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은 새벽 1시가량까지 이어졌고 흥 덕에 모인 사람들은 땀에 흠뻑 젖은 채 헤어졌다.

거리에서 만난 인연들과 술 한잔 같이 나누는 것도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그 만큼 열려 있고 경계벽이 낮은 사람들. 나 역시 초대받아 새벽 네 시가 다 되도록 뒷풀이 자리에 있었다. 드럼 서클*을 하던 이들은 네이버 카페 ‘젬베폴라’의 회원들이었다. 이들에게 젬베폴라는 단지 온라인 동호회만이 아니었다. 5년도 더 된 회원도 있고 드럼서클을 하러 거제나 울산에서부터 올라 온 분들도 있었다.

 

인원 수가 워낙 많아 한 사람 한 사람을 붙잡고 인터뷰 하기는 어려웠다. 더욱이 갑자기 만난 좋은 기회 앞에 젬베에 대한 지식기반이 없는 내 질문은 뜬 구름을 잡고 있었다.

젬베가 왜 좋아요?

기성 : (말과는 다르게 젬베의 흥이 가시지 않은 듯) 그런 게 어디 있어, 그냥 좋은 거지. 그냥 술 먹을라고.

이상 : (약간 시크하게) 그냥 술 먹긴 그렇고, 와서 뭐라도 하는 거 같잖아. 생산성 있는 활동을. 

나중에야 보통 사람들의 ‘젬베에 대한 오해*’들로 괜히 시큰둥하는 거라고 알게 됐지만 처음엔 정말 난감했다.

 

가민 : (초연한 듯) 모든 일의 인과를 따지면 삶이 피곤하지.

마지막 가민의 말은 허를 찔린 듯한 느낌이었다.

이 사람, 뭔가 더 들어 볼 것이 많을 듯했다.

며칠 뒤에 가민을 다시 만났다. 가민은 젬베폴라 말고도 ‘우든 샌드위치’라는 그룹을 하고 있었다. 우든 샌드위치는 젬베, 디저리두, 고니라는 악기로 이루어진 밴드다. 악기들이 다 나무로 만들어졌고 한 음식에 날 것의 재료들이 여럿 섞여있지만 조화로운 맛을 내는 샌드위치에서 따온 이름이다.

이들은 가끔 거리공연과 클럽 공연을 하기도 하는데, 최근에는 현대무용팀과의 콜라보 일정이 많아 당분간 자체 공연을 쉬고 있다고 했다.

셋 다 젬베를 인연으로 만났지만 지금은 다 다른 악기를 다룬다. 워낙 독특한 악기들이다 보니 사연들도 독특하다. (이날 젬베연주자는 회사일로 아쉽게도 만나지를 못했다)

멤버 중 막내인 성연은 낮에는 카운터 포스기기 엔지니어로 일한다. 성연이 다루는 악기는 디저리두. 디저리두는 원래 호주 북부 원주민의 전통악기다. 그는 젬베폴라 중고장터에서 발견한 이 희한한 악기에 꽂혔다. 5개월 동안이나 도전해볼까 말까에 대해 고민했다고도 한다. 망설임에 비해 한 번 발을 디딘 후에는 꽤 공격적이었다. 가민에게 “형 저 수련 다녀올게요”하고 회사에다 사표를 내고는 인도로 떠났다. 달랑 악기 하나랑 배낭 하나 매고. 그런데 왜 갑자기 인도일까, 호주가 아니라.

성연 : 전세계 배낭여행족들이 찾는 나라가 인도에요. 전 세계에서 모인 수 많은 사람들이 수 많은 악기를 들고 모이는 나라죠. 악기공방도 많아요. 지금 디저리두 세 종류를 가지고 있는데 그 중에 하나는 인도의 악기공방에서 만든 거죠.

 

 

 이 디저리두 연주를 처음 들었을 때의 충격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디저리두는 원래 호주 북부원주민 어보리진이 전쟁났을 때 불었던 악기라고 한다. 세월이 흘러 주법이 독특해지고 나무뿐 아니라 유리섬유, 파이프, 플라스틱으로 제작하기도 한다.

인도 현지인들과 여행자들은 매체를 통해서 배우기보다 다른 여행자들에게 배운다. 느린 문화인 만큼 하나 가지고 아주 오랜 시간과 공을 들여 노력을 많이 한다고. 그러면서도 자신이 장인인지도 모른다. 할 것이 다양하지 못하다는 것이 오히려 장인을 키울 수 있는 생태계였던 게 아닐까.

디저리두도 그렇고 고니도 악보가 따로 없다. 커버도 거의 없고 영상도 보기 힘들다. 다시 말해 구전이나 1:1 전수로 전달 된 거다. ‘포켓몬 고’의 세상에서 구전이라니. 그러려면 얼마나 완벽히 마스터해야 하는 걸까. 암기가 아니라 몸에 익어 있었던 게 아닐까. 상상만으로도 스승의 스승, 그 스승의 스승에 의해 내려온 정통성 같은 게 느껴졌다.

가민 : (태연하게) 스승님에 대한 확신이 있으니까 배우는 거죠.

요즘처럼 믿음이 불완전한 세상에서 이토록 쉽게 ‘확신’에 대해 말하는 이들이 더욱 궁금해졌다.

가민이 연주하는 고니(Ngoni)는 서아프리카의 세습음악가 집안 사람들이 대대로 연주해온 현악기다. 그들은 왕 옆에서 서사시를 노래하며 연주하기도 했고 마을에 기쁜 일, 슬픈 일, 나쁜 일이 있어도 연주하러 갔다고 한다. 세습음악가라니… 뭔가 ‘주술’ 냄새가 나기도 하고 영화 같은 얘기다.

원래 가민은 현악기에는 관심도 없고 드럼을 했었다. 친구와 후배들과 같이 팀을 만들어 전주에서 버스킹을 했는데, 젬베가 슬슬 알려질 때라 먹힐 거 같기도 하고 ‘드럼을 했으니까’ 하는 가벼운 생각으로 젬베를 샀다. 공연 단 하루 만에 손에 멍이 들고 아프더라. 뭔가 ‘내가 잘못하고 있는 거 같아’ 하고 인터넷에서 젬베 워크샵을 찾아 서울로 올라 온 것이 ‘젬베폴라’와의 첫 인연이었다. ‘가볍게’ 참가하려고 했으나 1박 2일만에 ‘이거 더 하고 싶다’는 마음에 내려오자마자 팀도 그만 두고 젬베에 빠졌다.

서울로 올라온 이후, 둔둔의 매력에 빠져 둔둔도 열심히 했다. 둔둔, 이름처럼 묵직하고 가민의 외양이나 성격만큼 든든한 악기였다. 계속해서 타악에만 관심 가졌던 그가 현악기는 어떻게 하게 된 걸까?

가민: (회상하며) 아프리카 말리에서 온 친구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공연하는 걸 우연히 봤어요. 항상 ‘뭔가 부족한데…’, ‘뭐가 부족할까…’ 하고 있던 참에 고니연주를 듣게 된 거죠.  .

가민은 ‘아 저거다’ 싶어서 부산의 아는 형에게서 악기부터 샀다. 어디서 배워야 할지도 모르지만 상관없었다. 그 형도 신기해서 샀지만 어떻게 연주해야 하는지는 모르고 현악기다 보니 튜닝도 해야 하는데 A/S 받을 곳이 없어 고민하던 찰나였다. 그걸 헐값에 사서 다 뜯어가지고 혼자 궁리하면서 고쳤다고 한다.

아직 어떻게 다루는지 모르는데 뜯어서 고쳤단 말이야?

가민 : (별거 아니라는 듯) 한 일주일 정도 틀어박혀서 일단은 보이는 거 다 풀어서 이렇게 해보고 저렇게 해보고 이렇게 껴봤다가 반대로 껴봤다가 줄을 이렇게 걸었다가 저렇게 걸었다가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됐어요. 그냥 노는 거니까요.

혼자 이것 저것 튕겨보다 작년 가을부터 부르키나파소 세습음악가 ‘아미두’를 알아내 레슨을 받고 있다. 남는 게 시간이니 배우고 익히는 데 별로 힘들지 않았다 말하지만 그 역시 생업이 있다. 인터넷쇼핑몰 직원. 아침잠이 없는 스타일이라 6시면 일어난다고 한다. 나를 비롯해 내가 아는 버스커들은 이 때 많이들 잠드는데…. 아침에 눈 뜨면 연주해보고 퇴근하고서도 하고, 합주가 없는 날 역시 노는 겸 익혔다.

 

 

소리가 따뜻하면서도 오묘하다. 가민은 만족할만하다 했지만 흥부자의 귀에는 사제작 악기인데 유사한 것 이상으로 완벽했다.

내친 김에 휴대용 고니도 만들었다. 고니는 소리 울림통이 크다 보니 지하철 타고 다닐 때 늘 여기저기 치여서 불편했다고 한다. 유럽 쪽 애들이 악기를 만들었다며 자랑삼아 SNS에 올린 걸 보니 가지고 다니기 편해 보였다고. 직접 도면을 그리고 재료를 모아 포터블 스타일로 만들었다. 엠프를 연결할 수 있게 픽업을 달은 것도 잊지 않았다. 사실상 냄비로 만든 거지만 울림통을 탈부착식으로 만들어 편의를 꾀했다. 결과는? 생각보다 소리가 좋아서 만족했단다. 아프리카 음악을 할 거라고 생각도 못했다는데 직접 제작까지 했으니 이제 전문가 다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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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프처럼 소리가 온화하고 따뜻하다. 가민씨는 설명하기 힘든 특유의 뉘앙스, 그루브, 느낌적인 느낌이 좋다고 한다. 악기뿐 아니라 서아프리카* 음악이 굉장히 독특하기도 하단다. 음악에 대한 이해가 우리가 알던 서양음악세계와 다르다. 메트로놈부터 켜고 보는 우리의 음악 교육 체계는 박자를 맞추고, 마디를 맞추고, 음계를 맞춰야 하는 것이 음악이라고 가르친다.

아미두는 달랐다. 가민이 “첫박이 어디야?”하고 물었는데, “너 지금 시작한 데서 살짝만 밀어서 연주하면 돼” 라고 대답했단다.

 

가민 : (자신도 신기하다는 듯) 그냥 자연스럽게 연주하는 데, 그 안에 있는 사람들끼리는 다 같은 박자를 타고 있어요. 참여자들은 누구도 헷갈려 하지 않는데 서양음악에 익숙해진 사람들만 헤매는 거죠. 악보문화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여기서 시작해서 저기서 끝내야 하니까요.

공감의 문화가 아닐까. 그냥 내가 지금 옆의 사람과 공감해서 얘랑 맞춰가고 얘가 또 나를 맞춰가고 또 내가 쟤랑 맞춰가고 쟤가 다시 나에게 맞춰서 서로 어우러지는 문화 말이다.

우든 샌드위치도 공연할 때 기본적인 약속만 정하고 간다. 뭘 하든 현장에서 맞춰서 가는 것. 눈빛보고. ‘아 이 사람이 이런 느낌이구나, 그럼 나는 이렇게 해줘야겠다.’ 이런 식으로 공연이 이뤄지는 거다.

듣는 내내 상당히 재미있었지만 객관적으로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이게 시장성이 있겠어?’ 라는 생각도 들었다. 혹여나 ‘신기한데? 이거 좀 먹히겠는데?’ 하고 달려드는 사람들에게 잠깐 대상화되어 버리고 이내 관심에서 벗어날까 우려되기도 했다. 그런데 의외의 대답을 들었다.

가민 :  (자못 진지하게) 마이너 마인드도 있어요. 누가 하지 않으니 하는 거고 재미있으니 하는 거고. 그래도 내가 정말 잘해서 단지가 폭발하면, 백 명 천명 앞에서 연주할 기회가 생긴다면 ‘저게 뭘까?’ 하고 궁금해하지 않을까요? 찾아와서 ‘이거 어떻게 하는 거에요?’ 까지만 물어봐도 성공인 거죠. 굳이 누가 또 여기 뛰어들지 않더라도.

쟤네 되게 신기한 음악 해. 악기가 생긴 건 희한한데 들어보니까 재밌더라. 그 평가면 족하다는 우든 샌드위치. 악기가 멋있는 만큼 이들의 마인드도 참 멋나다. 실력과 애정에 반해 겸손한 말이지만, 누가 알아줘서 하는 것보다 좋아서 하는 만큼 더 오래오래 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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