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케나텐, 전통에 저항하다
아케나텐, 전통에 저항하다
2016.07.29 16:10 by 곽민수

아케나텐이라는 인물은 룩소르 신전을 폐쇄했던 역사상 유일한 인물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기나긴 이집트 역사에서도 비교할만한 대상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독특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물론 그가 고대 이집트 최고의 미녀로 알려진 네페르티티의 남편이라는 사실도 그의 유명세에 한 몫을 더합니다.

아케나텐 상. 길쭉한 얼굴과 비대하게 묘사한 둔부는 전통적인 파라오 상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카이로 이집트 박물관 소장.
네페르티티 상. 독일 베를린 신박물관 소장.
베를린 신박물관 앞에 걸려있는 현수막

박물관 내에서의 촬영은 허용하고 있지만, 이 네페르티티 상에 대한 촬영만큼은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이 유물의 입수 경로에 의심스러운 구석이 있어서 이집트 정부 측에서 계속해서 이 조상에 대한 반환을 요청하고 있기에 박물관 측에서 필요 이상으로 과민하게 반응하는 것 같습니다.

아케나텐은 원래 그의 아버지와 함께 아멘호테프, 즉 '아멘이 기뻐한다'라는 뜻을 갖고 있는 이름을 부여받았습니다. 18왕조의 파라오들은 파라오로서의 정당성을 항상 당시 이집트의 주신이었던 아멘 신과의 밀접한 관계에서 찾으려고 했고, 따라서 당시 파라오들이 아멘과 관련한 이름을 갖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아케나텐의 아버지인 아멘호테프 3세 이전에도 이미 두 명의 파라오가 아멘호테프라는 이름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충분히 영광스러웠던 아멘호테프라는 이름을 버리고 아케나텐이 스스로 '아텐의 종'이라는 뜻의 새로운 이름을 자신의 이름으로 선택한 것은 분명히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카르투쉬 안에 쓰여진 “아멘호테프 imn-Htp-nTr hqa wsr”
카르투쉬 안에 쓰여진 “아케나텐: Ax-n-itn”

고대 이집트의 종교는 처음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여러 신이 다양한 방법으로 숭배되는 다신교였습니다.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신은 프타, 라, 오시리스, 아멘 등으로 시간이 흐름에 따라서 조금씩 변하기도 하였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이집트 신화에 등장하는 모든 신들이 각자의 역할에 걸맞게 존중받고 자유롭게 숭배되는 다신교적인 전통은 결코 변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아케나텐은 이 견고한 전통에 유일무이한 흠집을 남겼습니다. 그는 모든 신을 부정하고 오로지 하나의 신만을 인정하는 세계 최초의 유일신교를 탄생시켰습니다. 그가 선택한 신은 ‘태양 원반의 신’인 아텐이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아텐을 찬미하였습니다.

 

‘레-헤라크티여, 수평선 위에서 슈의 이름을 찬양하는 당신의 이름은 ’아텐‘입니다.
아텐! 당신께서는 태양의 명백한 현신이시고, 하늘 위에서 눈부시게 빛나는 태양 빛이십니다.’

아텐은 이집트인들이 그때까지 숭배하였던 신들과는 분명히 달랐습니다. 태양은 매일같이 동쪽에서 떠올랐고 그 태양의 빛은 온 세상을 항상 축복했기 때문에 아텐은 굳이 의인화되어 상으로 만들어질 필요가 없었습니다. 이전까지는 파라오와 고위직 사제만이 신전 깊숙한 곳에서 신을 직접 대면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누구나 직접 신을 만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수천 년 동안 결코 변하지 않았던 그 어마어마한 전통의 무게를 딛고 일어나 아케나텐은 자기 자신의 목소리를 내려고 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케나텐은 ‘최초의 개인’이라 일컬어지기도 합니다. 그는 전통의 무게에 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자기 자신의 의지를 지켜나가는 무척이나 현대적이고 주체적인 인물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그의 이러한 개성은 고대 이집트 전통의 관점에서는 큰 골칫거리였습니다.

아텐의 축복을 받는 아케나텐과 네페르티티, 그리고 그들의 딸들. 독일 베를린 신박물관 소장.

모든 백성이 직접 신을 대면할 수 있다는 발상은 무척이나 위험한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기득권을 위협하는 발상이었기 때문입니다. 소수만이 신과 대면할 수 있는 전통은 오래도록 이집트 사회에서 상류층의 기득권이 어려움 없이 유지되는 데에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결과적으로 아케나텐과 당시의 고위 신관계층은 도저히 공존을 모색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신관들과의 끊임없는 마찰 속에서 아케나텐은 결단을 내렸습니다. 룩소르 신전과 카르나크 신전을 포함해서 아멘을 숭배하는 모든 신전을 폐쇄하고 그 신전들의 수입을 몰수하는 조치를 내리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이 독특한 사내는 이정도로는 성에 차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는 재위 6년경 과거와의 완전한 단절을 위해서 엄청난 계획을 실행에 옮기게 됩니다. 그것은 완벽하게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여 그곳으로 천도하는 일이었습니다. 고대 이집트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로 여겨졌던 하이집트의 멤피스와 상이집트의 테베(룩소르)의 중간쯤에는 세워진 이 도시는 ‘아텐의 지평선’이라는 뜻의 ‘아케타텐(Akhetaten)'이라는 이름을 부여받게 되었습니다. 이곳은 오늘날의 알-아마르나 (al-Amarna) 지역입니다.

그는 그를 지지하는 귀족계층과 꽤 많은 숫자의 일반 대중들을 아카타텐으로 이주시키며 천도를 감행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의 새로운 신앙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던 것은 파라오와의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던 사회 상류층 일부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 역시도 파라오의 뜻에 거스르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 위하여 아텐신앙을 수용하는 행세를 하였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실제로 아마르나 지역에서 발굴은 일상생활에는 과거의 신앙이 그대로 유지되었다는 증거들을 세상에 드러내 주었습니다.

일부만 남은 아케나텐 상.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 소장.

아케나텐의 파격적인 행보는 종교개혁과 천도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치세동안 이집트 미술은 잠깐이기는 하지만 엄청난 변화를 경험하게 되는데, 그 변화가 참으로 놀랍습니다. 이집트 미술은 아주 오래된 전통을 엄격하게 준수하였습니다. 예술가나 장인들이 자신의 개성을 작품에 반영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고, 설령 파라오라고 할지라도 전통을 깨뜨릴 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아케나텐은 달랐습니다. 어찌 된 영문인지 그의 석상들은 이전의 파라오들이 무척이나 이상적인 근육남으로 묘사된 것과는 다르게 썩 멋지지는 않은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가늘고 기다란 상체 하며 민망할 정도로 축 쳐진 엉덩이, 길쭉하게 늘어난 얼굴은 현대인들이 상상하는 외계인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러한 특이한 양상들이 어떠한 이유로 나타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의견이 분분합니다. 그 가운데는 아케나텐이 희귀한 유전병을 앓고 있었고 (그 희귀병이 무엇이었는지에도 다양한 의견들이 있지만), 그는 과거와의 단절을 위해서 그 병으로 인해서 나타난 특이한 신체적인 모습을 있는 그대로 작품에 표현하게 하였다는 주장입니다. 아무튼, 이유야 어찌 되었건, 아케나텐 치세 동안에는 그동안의 형식주의에서 벗어나는 형식의 미술이 등장했는데 후대 학자들은 이를 ‘사실주의’ 혹은 ‘자연주의’로 칭하기도 합니다.

사실적으로 만들어진 아케나텐과 네페르티티. 독일 베를린 신박물관 소장.

아케나텐은 재위 16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제 그 이름도 유명한 투탕카멘이 등장할 차례입니다. 아케나텐의 아들이었던 투탕카멘은 10세 정도의 어린 나이에 파라오로 즉위하게 됩니다. 어린 소년이 파라오가 되었으니 자연스럽게 아케나텐 재위 시절부터 중신이었던 아이(Ay)와 호렘헵(Horemheb)이 정치적으로 큰 영향력을 갖게 됩니다. 실권을 장악한 그들은 가장 먼저 잠시 엇나갔던 고대 이집트의 오래된 전통을 다시금 회복시키는 사업을 시작하였습니다.

우선은 아케타텐으로 옮겨갔던 수도가 룩소르로 돌아오게 되었고, 아케나텐이 종교개혁을 시작한 이래에 굳게 닫혀 있었던 아멘 신을 최고신으로 모시는 이집트 전역의 신전들이 다시금 문을 열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이집트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지난 20여 년간 진행되었던 한 괴짜의 외도를 말끔히 역사에서 지워버리게 됩니다.

즐거운 한 때를 보내고 있는 아케나텐과 네페르티티. 채색 부조. 독일 베를린 신박물관 소장.

 

/사진: 곽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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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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