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룩아, 고마워
벼룩아, 고마워
2016.08.19 11:02 by 시골교사

“독일엔 거지들을 위한 마트가 따로 있대요.”

유학을 준비하며 독일어를 배울 때 듣게 된 소식. 독일의 ‘알디(Aldi)’라는 식료품점에 대한 정보였다. ‘거지들만 다닌다니…’ 사실 첫 인상은 별로였다. 그 별로인 느낌을 지닌 채 독일로 떠나오게 되었다.

독일에 정착해서도 쉽게 발걸음이 닿지 않았다. ‘거지’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맴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직접 겪어보니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왜 이제 왔나’싶을 정도로 만족스러웠다. 알디에는 서민들이 기본적으로 먹고 사는데 꼭 필요한 것들이 다 있다. 식료품은 물론이고 옷가지, 이불, 주방용품 등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거의 판다고 보면 된다. 가격은 일반 상점가의 30~40% 정도 저렴하다. 착한 가격의 비밀은 그 회사 경영전략에 있다.

‘ALDI’ 브랜드의 로고(사진:360b/Shutterstock.com)

알디는 독일에서 아주 성공한 마트회사이다. 전국 체인망을 갖고 있는데, 취급하는 물건들은 거의 ‘무명’제품에 가깝다. 그만큼 광고료가 들지 않는다는 말이다. 가격이 싼 것에 비해 품질도 다른 회사제품에 크게 뒤지지 않기 때문에, 독일 서민들에게 인기 있는 회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실제 이용자가 되고 보니 ‘거지들만 다닌다’는 말은 좀 와전된 듯 싶다. 내가 아는 ‘좀 사는’ 독일 주부는 가격과 품질을 일반 다른 식료품점과 꼼꼼히 비교한 후, 더 나은 상품이 있으면 꼭 알디에 가서 산다. 예를 들어, 휴대용 포켓 화장지. 이건 알디 제품이 최고다.

 

| 알찬 유학생활을 위한 ‘쇼핑’의 지혜

알디 생각을 하니 유학시절의 쇼핑, 그 일련의 고민과 선택의 시간들이 떠오른다. 사실 말이 쇼핑이지, 대부분 생존과 직결되는 생필품이 대상이기 때문에 그만큼 생각도 많고, 재기도 많이 잰다.

일단 쌀, 우리에겐 필수적이지만 독일 쌀의 만족도는 매우 낮다. 독일 사람들은 물대신 우유를 넣어 밥을 짓는다. 쌀을 가지고 그렇게 장난을 친 뒤, 거기에 다시 잼을 넣어 비벼 먹는다. 일명 ‘밀히라이스(Milch-Rice)’다. 그들이 먹는 쌀에는 끈기가 없다. 그것으로 밥을 지으면 꼭 싸래기밥 같다.

아, 참을 수 없는 쌀의 가벼움이여(Aekkachai Boontawong/Shutterstock.com)

그래서 나는 쌀 만큼은 ‘술탄막(Sultanmarkt, 아랍식료품점)’을 이용했다. 술탄가게에서 파는 쌀이 좀 통통하고 끈기가 있어 밥을 해놓으면 그나마 ‘밥 같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김치 담글 때가 되면, 배추가격 정보를 유학생들에게 물어 싼 가게를 찾아간다. 생고등어를 먹고 싶으면 대형마트인 ‘플라자(Plaza)’에 가야한다. 물론 장이 서는 날 싱싱한 생고등어를 팔긴 하지만, 비싼데다 오전에 잠깐 서는 장이라 학생인 나로선 시간 맞추기가 어렵다. 아이들 학용품은 ‘클로푼벡(Kloppenberg)’이라는 전국단위의 문구체인점에 가야만 한다. 

시장은 주로 혼자 보러 간다. 수업이 끝난 후 아이들을 집에다 데려다 놓고 재빨리 장보기를 마친다. 하지만 1년에 한번 정도, 큰 맘 먹고 아이들을 데리고 가는 마트가 있다. 대형할인마트인 ‘레알(Real)’이다. 그곳까지는 버스로 족히 1시간 이상 가야한다. 사실 많은 것을 사려는 것이 아니라 그저 가족 나들이 겸 기분전환을 위해서다. 배낭에 많은 것을 채우지 않고 돌아오더라도, 아이들과 모처럼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음에 행복하기만 하다.

살 것도 볼 것도 ‘레알’ 많은 ‘레알’ 마트(사진:Lukassek/Shutterstock.com)

대형마트들은 대부분 교외에 위치하고 있다. 그래서 도심에는 교통 혼잡이 없다. 또 어느 가게를 가든 소란함이 없다. 고객은 고객대로 집에서 미리 적어온 품목표를 보고 조용히, 아주 조용히 쇼핑을 즐기고, 점원은 점원대로 고객들이 차분하게 원하는 것을 구매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매장 안에서 소란스러운 외침이나 확성기로 하는 광고는 전혀 없다. 매장 종료시간을 알리는 방송이 고작이다. 일상의 연속처럼, 쇼핑장에서도 독일 특유의 조용한 분위기는 계속 이어진다.

 

| 구경 한 번 가보세요~ 없는 거 없는 ‘벼룩시장’

사실 유학생활 쇼핑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건 벼룩시장이다. 벼룩시장은 4월 첫 주를 시작으로 10월까지 매월 첫 주 일요일에 시청광장에서 열린다. 시청광장을 중심으로 그 주변을 따라 골목골목마다 장이 서는데, 장이 워낙 커서 한바퀴를 다 돌려면 반나절 이상은 족히 걸린다.

시청에서 열리는 날을 제외한 일요일은 큰 마트의 주차장 같이 도시 곳곳에서 열리기도 한다. 규모면에서는 시청에서 열리는 것에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작지만 인근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나름 도움이 되고 재미가 있는 장이기도 하다.

벼룩시장에는 말 그대로 없는 게 없다. 가방, 신발, 옷가지, 주방용품, 전자제품, 장난감, 책, 문구류, 침구류까지…

벼룩시장은 힘든 유학생활에 숨통을 트여 주고, 살림살이에 쏠쏠한 재미를 주기에 넉넉하다. 그래서 해마다 봄이 오기 전부터 내 가슴은 뛰기 시작한다. 겨우내 필요한 물품들의 목록을 꼼꼼히 적어 두기도 한다. 주로 사는 것은 아이들 옷가지와 신발, 책, 주방용품, 문구류 등이지만, 그때그때 생활에 필요한 것들 모두 구매 대상이 된다.

한 여름 벼룩시장의 풍경(사진: 시골교사)

벼룩시장에 나오는 물건은 품질 면에서도 우수하다. 시중의 저가 상표부터 시작해서 휘슬러 압력솥, 지멘스·브라운마크의 전자제품, H&M과 베네통 상표가 붙은 옷과 신발까지.

이렇게 나온 옷가지와 신발은 깨끗이 세탁되어 있는데다 깔끔한 집은 다림질까지 해오기 때문에 헌 것이라고 해도 기분이 전혀 나쁘지 않다. 가격은 그 어디서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싸다. 지금은 유학 초기보다 벼룩시장 가격이 많이 올랐지만, 처음에는 천원 정도면 아이들 티셔츠나 바지 한 장, 아주 좋은 코끼리표(Elefant) 가죽 신발까지 너끈히 살 수 있었다.

보통 벼룩시장 제품은 천원 안팎에서 흥정이 시작된다. 정말 친절한 주인을 만나면 공짜로도 얻는다. 그러나 벼룩시장엔 한 몫 잡으려는 사람이나 장사꾼도 많다. 이들을 만나면 흥정도 안 되고, 벼룩시장의 깎는 재미도 사라진다. 벼룩시장을 5~6년 정도 다니다보니 주인 얼굴과 물건만 보면 안다. 이 사람이 그냥 재미로 나온 사람인지, 아님 진짜 한 몫 챙기려고 나온 사람인지. 한 몫 챙기려고 나온 집의 물건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는다.

이 벼룩시장의 재미가 얼마나 쏠쏠한 지, 장이 열리는 날이면 새벽부터 눈이 떠져 더 이상 잠을 이루지 못한다. 알람 없이는 절대 못 일어나는 내가 말이다. 사실은 전날부터 마음이 설레 잠을 설친다. ‘내일은 어떤 물건들이 나올까? 누가 나보다 좋은 물건을 더 싸게 사가면 어쩌나!하는 호기심 반, 걱정 반으로 말이다. 어떤 분은 벼룩시장이 서는 전날에는 목욕재개를 하고 기다린다고 말할 정도로,  유학생활에서 벼룩시장의 존재 가치는 신성할 정도로 어마무지하다.

벼룩시장의 중심에서 ‘득템’을 외치다.(사진:Matyas Rehak/Shutterstock.com)

 

| 벼룩시장 내 경쟁자들

벼룩시장의 단골 고객 중 하나는 터키 아줌마들이다. 그들은 벼룩시장에서 나의 치열한 경쟁자이기도 하다. 이것은 그들의 독일 삶이 녹녹치 않음을 말해준다. 독일에서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은데다, 그들이 하는 일이래야 허드렛일 아니면 케밥 장사와 같은 자영업 정도뿐이다. 자연히 수입 또한 넉넉하지 않을 수 밖에. 그런 수입 속에 살림을 알뜰하게 꾸려가자면 그들에게도 벼룩시장이 나만큼 긴요할 게다.

그들은 이른 아침부터 벼룩시장을 돌며 좋은 물건을 내가 치를 수 있는 가격보다 훨씬 웃돈에 흥정하기 때문에, 쓸 만하다 싶은 건 죄다 이들 손에 넘어간다. 그래서 그들보다 서두르지 않으면 벼룩시장에서 싸고 좋은 물건을 놓치는 일이 많다.

이런 경쟁자들로 나의 벼룩시장 출근 시간은 나날이 빨라져 새벽 5시 반이 되었다. 공식적인 벼룩시장 개장시간은 아침 8시지만, 아침 6시만 되어도 부지런한 주인은 손님 맞을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 벼룩시장 인생

벼룩시장 이용의 꿀팁 중 하나는 당장 필요치 않아도 미리미리 큰 사이즈의 옷가지며 신발을 사두어야 한다는 것. 정작 필요할 때 사려면 원하는 사이즈를 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나는 신장으로 치면 이곳의 중학생 정도에 해당하는데, 그 신장에 맞춰 중학생 사이즈를 사도 입을 수가 없었다. 엉덩이와 허벅지통이 아이들과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의보다 바지를 고를 때 더 고민스럽다. 대안은 대충 허리와 통이 맞는 것을 골라 바지 길이를 잘라 입던지, 아니면 몇 번 접어 입는 것이었다.

옷은 이렇게 줄여서든, 걷어서든 입을 수 있지만 전자제품의 경우는 다르다. 사실 전자제품을 벼룩시장에서 사는 것은 리스크가 조금 있다. 바로 전원을 꽂고 확인할 수도 없고, 벼룩시장 특성상 하자가 있을 때 도로 물리기도 어렵다. 실제로 테이프가 씹히는 플레이어를 구입해 낭패를 본 적도 있다. 하지만 가격을 감안하면, 그 정도 위험은 충분히 감수할 만 하다.

좋은 물건을 많이, 그리고 싸게 산 날은 돌아오는 기분이, 좀 과장해서 어부들의 만선 때와 같다. ‘어디서 이런 좋은 물건을 이 가격에 살 수 있으랴!’싶고, 그 물건을 보고 좋아할 아이들을 생각하면 자전거로 언덕배기를 오르면서도 힘 하나 들지 않는다.

벼룩시장에서 돌아올 시간이면 아이들은 귀를 쫑긋 세우고 있다가 엄마의 초인종 소리에 맞춰 맨발로 뛰어 내려온다. 엄마 배낭 속에 뭐가 들었을까?궁금해 하면서 말이다. 남편 역시도 이 시간을 은근히 궁금해 하며 기다린다. 그래서 우리 집 물건은 전부 벼룩 시장제이다.

만선의 기쁨을 누려라~(사진:debasige/Shutterstock.com)

벼룩시장… 독일인들에겐 그저 하나의 재미겠지만, 유학생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생활의 필수공간이다. 혹자의 말처럼 벼룩시장 인생이라고나 할까? 내 유학생활에서 벼룩시장이 없었다면 살림을 꾸려가기가 버거웠을 것이다. 남들은 2~3만원 줘야하는 옷과 신발을, 중고지만 중고 같지 않은 물건을 1000~2000원 안팎에 사서 아이들을 입히고 신길 수 있으니 말이다.

유학생활을 버티게 해준 고마운 벼룩시장을 나는 사랑한다. 한국에 와서도 독일 유학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이 벼룩시장이고, 봄이 오면 제일 생각나는 것도 바로 그것이다. 벼룩시장과 함께 한 7년간의 독일생활을 많이, 그리고 오랫동안 그리워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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