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과 익숙한’ 그 중간 어디쯤 ‘Via de Giubbonari’
‘낯선과 익숙한’ 그 중간 어디쯤 ‘Via de Giubbonari’
‘낯선과 익숙한’ 그 중간 어디쯤 ‘Via de Giubbonari’
2016.08.19 16:17 by 김보연

신발이나 옷가지 같은 소품이 필요할 때, 습관적으로 향하는 거리가 있다. 바로 얼마 전에도 새 신발을 사러 들렀었다. 로마엔 스페인 광장 같이 쇼핑으로 이름난 명소들이 많지만, 난 왠지 자잘한 상점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이곳이 더 맘에 든다. 나보나 광장 옆에 또 다른 광장 ‘캄포 데 피오리(Campo de Fiori)’에 붙어있는 거리 ‘Via de Giubbonari’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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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ia de Giubbonari

Campo de fiori

캄포 데 피오리는 낮에는 재래시장, 저녁엔 꽃시장이 열리는 곳이다. 밤이 되면 이 작은 광장의 식당들은 모조리 술집이 된다. 이렇게 오전, 오후, 밤의 모습이 각기 다른 참 부지런한 광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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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포 데 피오리, 낮 시장의 모습

캄포 데 피오리, 밤 꽃시장의 모습

밤의 광장은 꽤나 정겹다. 커다란 음악을 틀어 놓고 술을 마시기도 하고, 배가 출출해지면 근처 파니니(panini⋅이탈리아식 샌드위치) 집에서 모짜렐라 치즈와 토마토를 넣은 간단한 파니니 한입을 베어 문다. 이런 밤이면, 광장 바닥에 꽃잎도 예사로 보이지 않는다. 달까지 밝게 떠준다면 더 고맙고.

광장의 한 가운데는 ‘조르다노 브루노’의 청동조각상이 서 있다. 1600년경 자신의 사상적⋅학문적 의지를 고집하다 로마 교황청에 의해 화형 당했던 학자다. “브루노에게. 그대가 불 태워짐으로써, 그 시대가 성스러워졌노라”라는 글귀가 적혀있다. 로마의 대학생들은 광장에서 맥주 들고 갈지자로 걷다가도, 이 동상의 주인공 얘기를 하면 눈이 반짝인다.

이태리판 전태일, 브루노의 청동조각상

이 광장 한 켠에 붙은 Via de Giubbonari는 조그만 상점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정겨운 거리다. ‘Giubbonari’를 영어로 하면 ‘tailors’(재단사). 옷을 만들고 파는 곳이 많단 얘기다. 그 이름처럼 거리 곳곳엔 옷, 신발 가게들이 즐비하다. 8월 한 달은 이탈리아의 휴가철이기 때문에 최근 방문했을 땐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한달 동안 문을 닫아 놓은 가게들이 많았다.

폐업 아니에요. 휴가에요.

예년과 비교하면 올해 로마의 여름은 무척 시원하다. 심지어 한국에서 방문한 이들도 ‘로마가 이렇게 시원한 곳이냐’는 얘기를 종종 한다. 하지만 무덥지 않은 여름이라고 해도, 로마사람들은 바캉스를 포기하지 않는다. 로마노(Romano)들에게 바캉스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기에.

7월 초부터 시작되었던 여름 세일이 이제 막바지다. 아직 빠지지 않은 상품들의 가격을 낮추고 재고정리에 들어간 듯 하다. 그에 비해 도도하게 이미 가을의 디스플레이로 바꿔 놓은 가게들도 있다. 로마 여느 관광지 골목과도 다를 것 없이 잡상인들도 가득하다. 함께 자전거를 타던 네 가족이 나란히 자전거를 쌓고 엄마의 발가락 반지 고르는 데 집중이다. 이 집 아들내미는 혼자 자전거에서 내리지 않고 빨리 가자고 재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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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이 울퉁 불퉁하고 자전거 도로가 잘 되어있진 않지만, 시내가 완만한 평지여서 그런지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참 많다. 또 자전거로 유명한 나라가 이탈리아 아닌가. 내 옆으로 예쁜 깜장 자전거를 탄 예쁜 청년이 이 동네 유명한 식당으로 후다닥 들어간다. 오후 시간 파트 타이머인가 보다. 식당의 전면에 푸짐하게 전시 된 이탈리아 식료품들을 하나 하나 뜯어 보다 보면 아직 먹어볼게 참 많다는 사실에 놀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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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민주당인 ‘Partito Democratico’에서 운영하는 작은 사무소 같은 곳이 눈에 띈다. 안 쪽에선 잡다한 물품들을 모아 놓고 판다.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외치는 판매 기술은 어디나 같은가 보다. 안에 전시된 물품들, 옷가지들도 동묘 앞의 어느 가게와 크게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여긴 라파엘로가 있다. 라파엘로의 그녀들이 책 커버에서 날 가만히 쳐다본다. 이탈리아의 붓을 든 영웅, 라파엘로를 잠시 또 만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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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인들은 방금 막 사랑을 나눈 것 같이 보인다.’

이런 표현을 들은 적이 있다. 마이클 무어 감독의 <다음 침공은 어디?>라는 2015년 작품에 나온 말이다. 많이 걷고, 자전거를 타고, 태양을 무서워하지 않고 음식을 즐긴다. 가족과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며 아이와 노약자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사는 이 나라. 낮엔 시장, 저녁엔 꽃시장, 그리고 밤엔 클럽으로 변하는 캄포 데 피오리처럼 참 부지런하다. 사랑을 하기 위해선 부지런해야겠지. Via de Giubbonari는 이렇듯 이탈리아스럽고 로마스러운 이면을 내게 보여주는 뻔하고 뻔하지 않은 거리다.

/사진: 김보연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죠'걷고 또 걷는다.' 걸작이라 불리는 도시 ‘로마’를 백 배 만끽하는 비법이다. 한때 전 유럽의 정치‧경제‧사회‧문화가 드나들었던 로마의 길은 그 자체로 하나의 보물. 작은 골목길이든, 큰 광장길이든 흥미로운 이야기와 사연이 즐비하다. 로마살이 1년 차 에디터가 전하는 ‘로마의 길’ 이야기를 통해, 콜로세움과 바티칸 너머의 진짜 로마를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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