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그리고 미국의 음식, 과카몰리
멕시코 그리고 미국의 음식, 과카몰리
2016.08.29 16:07 by 이민희

며칠 전 친구 집에 놀러갔다가 생각지 못한 음식을 받았다. 맥주 안주로 준비한 과카몰리와 또르띠야칩이었는데, 그걸 보는 순간 갑자기 머릿 속 전구에 불이 들어온 것만 같았다. 가까운 곳에서 무언가 대단한 걸 발견한 기분이기도 했다. 조리법도 간단하고 이제는 재료를 구하는 것도 어렵지 않으니 얼마든지 만들 수 있는 좋은 음식이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는 얘기다. 꽤 오랜 기간 동안 과카몰리란 그저 가끔 멕시칸 음식점에 가야만 먹을 수 있는 이색 메뉴로 단정해왔기 때문이다. 멕시코 사람도 미국 사람도 아닌 내게 과카몰리는 그렇게 아예 생활요리 바깥에 존재하는 음식이었다.

 

미국인에게 과카몰리란

함께 일하는 텍사스 출신의 미국 호스트 조안젤라 히메네즈는 어린 시절 집에서 가족과 함께 거의 매일 또르띠야 칩과 살사를 먹었다고 한다. 그런 그녀가 회사와 인연을 맺고 처음 소개한 음식은 그렇게 늘 집에서 만들어 먹어왔던 것, 이른바 텍스멕스(Tex-Mex)다. 국경지역 텍사스에 기원을 두고 있는 멕시코 요리로, 이제는 미국화된 멕시코 음식을 폭넓게 아우르는 표현이자 우리도 온더보더 같은 레스토랑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음식이다. 그녀가 소개한 텍스멕스 가운데에는 피코 데 가요가 있었고, 할라피뇨와 베이컨으로 만든 요리도 있었다. 그리고 당연히 과카몰리도 있었다.

과카몰리가 미국인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 음식인지는 지난 해 여름의 트위터 소동이 잘 말해준다. 2013년 뉴욕타임즈의 요리 섹션이 완두콩으로 만드는 실험적인 과카몰리 레시피를 소개했고, 2015년 7월 뉴욕타임즈의 트위터 계정이 해당 게시물을 끌어왔다. 그리고 어떤 파장이 닥칠지 모르는 위험한 소개문구를 붙였다. "완전 보장한다"("Trust us.")고 했다.

그러자 비난이라고 말하기엔 다소 장난스러운, 그러나 제법 확고한 반대의견이 일파만파로 쏟아졌다. 히스페닉계 배우자를 둔 한 트위터 이용자는 "이건 내 아내를, 그리고 내 아내의 가족과 전통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일갈했고, 누군가는 "참치에 깨진 유리조각을 넣는 것과 다름없다"고까지 말했다.

완두콩 과카몰리로 시작된 그 여름의 트위터 소동은 나아가 '과카몰리 게이트'라는 사건명이 붙었다. 뉴욕타임즈라는 공신력 있는 언론에서 시작해 무려 오바마 미 대통령이 여기에 명료하게 의견을 피력했기 때문이다. 그의 트위터를 인용하자면, "뉴욕타임즈를 존중하지만 과카몰리에 넣기 위해 완두콩을 살 일은 없음. 양파, 마늘, 고추, 이것이 클래식." 놀랍게도 조지 부시 전 대통령까지 과카몰리 트위터 토네이도에 동참했다. "과카몰리에 완두콩을 넣지 말 것." 언론이 과카몰리에 장난을 치자 진보와 보수가 손을 잡았다. 뉴욕타임즈가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선포한 셈이라는 의견도 따라왔다.

한편 오바마 대통령은 과카몰리 게이트가 있기 전, 지난해 2월 정치적 난제 앞에서 과카몰리를 상징적으로 언급한 바 있다. 두 명의 훌륭한 후보 가운데 적합한 부통령을 선택해야만 하는 과정을 두고 "수퍼볼 경기 전 과카몰리에 나초칩과 닭날개 중 어느 것을 먹을지 선택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문제"라 설명했다. 참고로 수퍼볼 경기가 열리는 연초의 수퍼선데이는 추수감사절 다음으로 미국에서 음식 소비량이 높은 시점으로 꼽힌다. 2015년의 통계에 따르면 그해 수퍼볼 경기가 있던 날 미국인은 감자칩(1위)만 천백만 파운드, 그리고 과카몰리(2위)만 800만 파운드를 먹어치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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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맨 위부터 뉴욕타임즈, 조지 부시, 오바마 대통령 트위터 캡처)

 

멕시코 이민자들의 음식

과카몰리는 아까 언급한 미국식 멕시코 음식 텍스멕스의 꽃과 같은 메뉴다. 그 기원은 약 1세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원래 텍스멕스란 텍사스와 멕시코를 연결하는 철길의 이름이었다. 엘 파소, 샌 안토니오 등 19세기 텍사스주 주요 도시에 정착한 멕시코 이민자들이 손에 잡히는 재료로 익숙한 음식을 만들어 먹다가 이를 사업화하면서 적합한 이름을 빌려오게 됐다. 중국의 짜장면이 한국의 짜장면과 다른 것처럼, 그렇게 미국에 정착한 멕시코 음식은 점차 미국화 과정을 밟았다. 더 많은 치즈, 소고기, 밀가루, 야채가 들어가면서 전통적인 멕시코 음식과 확연한 차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일례로 밀전병에 고기와 야채를 담아 먹는 화이타(fajitas)는 멕시코에 없는 음식이다. 멕시코식 재료를 바탕으로 개발해 1970년대부터 미국에서 대중화됐다. 콩과 다진고기로 만드는 스튜 칠리 콘 까르네(chile con carne)는 텍사스에 정착한 멕시코 사람들이 구할 수 있는 재료로 대강 만들어 먹다 자리를 잡은 국경의 음식이다. 밀전병에 쌀과 야채를 넣고 말아 먹는 부리또(burritos) 또한 기원이 비슷하다. 미국에 정착한 광부, 카우보이, 농부 등의 노동계급이 끼니를 떼우기 위해 만들어 먹기 시작해 점차 미국식으로 성장했다. 지금까지도 성장하고 있다. '신생아 사이즈'라는 표현이 나올 만큼 미국에선 계속해서 부리또의 사이즈를 키우며 경쟁하고 있다.

음식뿐 아니라 식재료도 미국으로 어마어마하게 넘어왔다. 과카몰리의 주재료인 아보카도는 기원 전부터 멕시코에서 뿌리를 내리고 자라왔던 유서 깊은 작물이다. 그러다 19세기 미국 캘리포니아로 넘어오면서 환금작물이 됐다. 현재 캘리포니아주의 공식 과일은 아보카도다. 거기서 나오는 아보카도가 미국 생산량의 90% 이상을 차지한다. 우리가 마트에서 접하는 아보카도도 미국산이 많다. 아보카도는 '숲 속의 버터'라 불릴 만큼 과일치고 드물게 지방이 굉장히 많은데 다 필수지방산이고 비타민도 많아 건강식품으로 통한다. 별 맛은 없지만 오히려 그래서 요리 재료로 폭넓게 쓰일 수 있으며 건강까지 보장한다. 게다가 가격까지 비싸지 않으니 미국이 거부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조안젤라 히메네즈의 과카몰리(사진: 원파인디너)
조안젤라 히메네즈의 텍스멕스(사진: 원파인디너)

 

그런데 여기선 비싸다

친구가 일깨워준 것처럼 과카몰리는 집에서 쉽게 만들 수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언급한 대로 양파, 고추, 그리고 토마토만 먹기 좋게 썰어서 라임즙을 낸 뒤 소금 약간 쳐서 아보카도랑 비비면 그야말로 클래식이 완성된다. 그런데 주재료인 라임과 아보카도가 한국에선 좀 비싸다. 이는 몇 해 전 서울살이를 시작한 미국인 동료 조안젤라의 고민이기도 한데, 둘 다 비싸서 좀 부담스럽긴 하지만 무조건 둘 다 써야 한다고 그녀는 말한다. 라임을 레몬으로 대체할 수 있느냐 물었을 때 그녀는 단호하게 안 된다고 답했다. 지난해 여름의 완두콩 과카몰리 트위터 호들갑이 말해주는 것처럼, 미국인들에겐 클래식 과카몰리에 대한 엄격한 고집이 있는 모양이다. 먹어왔던 세월이 기니까.

이래저래 찾아보니까 생각보다 아보카도 재배 지역이 많다. 품종이 저마다 좀 다르긴 하지만 하와이에서도 자라고, 인도차이나의 열대지방을 넘어 이제는 지중해에서도 아보카도를 제법 수확한다고 한다. 어쩌면 한국에서도 가능한 이야기일 것 같다. 키울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일이 어렵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나 사면 탁구공 만한 씨앗 하나를 얻으니 조금 더 일찍 생각해 이 미친 여름에 집에서 한 번 키워볼걸 그랬을까.

조안젤라 히메네즈가 선택한 과카몰리의 '클래식한' 재료들(사진: 원파인디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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