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 Me, I'm Yours_ 백승준
Play Me, I'm Yours_ 백승준
2016.08.30 14:51 by 흥부자

아직 어리다. 피아노를 아주 정갈하게 치는 것도 아니고 흥이 넘치는 쇼맨십으로 좌중을 압도하는 것도 아니다. 약간 미숙한 면도 없지 않지만 그래도 감히 말하고 싶다. “그는 참 섹시하다”고 말이다.  

 

 

요새는 심심치 않게 거리 피아노를 찾아볼 수 있다. 피아니스트와 시민 모두에게 말랑한 일상 예술을 제공할 수 있는 좋은 캠페인이라고 생각한다. 영상 속 피아노는 신촌 홍익문고 앞에 항시 배치 되어 있다. 홍익문고 사장님이 직접 피아노 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마련했다.

사람 볼 때 나이 같은 틀을 벗어나려고 애쓰는 나로선, 어리석은 첫 질문.  

“실례지만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수줍은 듯이) “18살이요.” (예에?) “고등학생이에요.”

사실 적잖이 놀랐다. 나중에 ‘왜 놀랐지’하고 생각해봤다. 그의 실력 때문만이 아니라 ‘감성’ 때문이었으리라. 실력만으로는 군데군데 어린 티가 난다. ‘음이탈’도 꽤 있는 편이다. 그런데 장르를 떠나 그의 해석, 몰입도가 좋았다. 한마디로 ‘설렜다.’

(사진: 백승준)

피아노를 벗어난 그의 말투는 예상 밖이었다. 사실 겉 모습만 보면 어리고 여린 편. 만화나 영화에서 튀어나온 소년 같은 인상이다. 하지만 거리에서 대중을 신경 쓰지 않고 피아노와 교감하는 모습을 보곤, 못해도 20대 초반쯤일 거라고 생각했다.

다음 질문도 역시 어리석었다.

“전공이 피아노?… ”

‘전공과 나이, 재산, 지위 등으로 사람을 결정해선 안 된다’는 철학을 가졌다고 자부했는데. 왜 다들 그러지 않나. 뭐 좀 한다 그러면 ‘전공’이 뭐냐고 묻고, ‘전공은 아니다’라는 답을 들으면 ‘에이 뭐야’ 하거나 (잠깐 본 걸로) ‘우와 전공도 아닌데 어떻게 이렇게 잘해요?’라고 선입견을 보이는 행태 말이다. 그런걸 답답해 했으면서 같은 질문을 한 거다. 사실 나 역시 승준이가 당연히 금수저 ‘전공자’에 예중, 예고 다녔겠거니 생각했었다.

선입견은 선입견일 뿐, 진정어린 대화를 통하면 이는 금방 깨어진다. ‘저는 아직 어려서 쓰실 스토리가 없을 텐데’라며 머뭇머뭇 했을 때 느꼈던 겸손함과 어린 나이임에도 스스로에 대한 인식이 뛰어나다는 점이 인터뷰를 통해 알게 된 승준의 진짜 모습이다.

누가 봐도 피아노에 미친 승준이지만 한 동안 연주를 그만둬야 했단다. 다시 시작한지 얼마 안 되었다. 첫 번째는 예고 편입시험에 떨어져서. 두 번째는 고등학교에 들어와 공부를 해야 하니까. 그런데 아무래도 피아노를 놓을 수 없었던 거다. 입학사정관이신 어머님의 반대도 이를 막을 순 없었다.

몇 년 전 파리에 갔을 때 찍은 거리의 피아노. ‘Play Me I’m Yours’라고 적힌 구절이 승준과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승준이가 피아노를 시작한 건 7살 때였다. 처음엔 누르면 소리가 난다는 게 마냥 신기했을 뿐이었다. 근래엔 하루 연습량만 8-10시간 정도라고 한다. “전공을 도전하기엔 조금 늦게 시작했기 때문”이라면서. 그의 말을 빌면, 전공자들은 팔에 모래 주머니를 달고 한음, 한 음 느리게 100번씩 친단다. 무슨 태릉 선수촌인가 싶지만 그 만큼 정확히 치는 게 중요하단 얘기겠지. 모래 주머니를 달았을 때의 무게감으로 연습하면 떼고 나서는 저절로 그렇게 될 테니까.  

거리에서 연주할 때는 자유로워서 좋다고 또 천진해진다. 사실 클래식의 영역이라면 지켜야 할 악상이 참 많다. 스타카토, 크레센도, 디크레센도… 곡 해석 보단 입시 위주로 공부를 하다 보니 더 그렇다. 보수적 클래식의 세계에선 당시의 작곡자나 연주자를 ‘현신’ 시키는 게 가장 중요하다.

“라흐마니호프의 곡을 친다면 연주자 역시 라흐마니호프로 빙의가 되어야 해요. 그런데 같은 곡을 거리로 들고 나오면 나 자신, ‘백승준’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좋았어요. 첨부터 그런 생각을 가지고 나온 건 아닌데 거리에서 연주하다 보니 저절로 그렇게 됐죠. 교수님들이나 전공자들이 봤을 때는 ‘여기 틀렸어, 저기 틀렸어’ 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거리에선 오히려 내가 하고 싶은 것에만 집중할 수 있더라고요.”

이러니 내가 나이를 착각 할 수 밖에. 지나다니는 차의 소음, 주변 상점에서 빵빵거리는 노래들, ‘뭐야, 뭐야’ 하고 몰려들었다 사라지는 사람들 사이에서 연주를 하는데 ‘내가 하고 싶은 것’에만 집중할 수 있다니.

 

 

미국에 교환학생을 갔을 때 빈 음악강의실에서 피아노를 치고 있는데 지휘자 Dan Scott이 피아노 하고 싶냐고 물어왔단다. 그래서 갖게 된 오케스트라 협연의 기회. 일반고였는데 문화예술 프로그램 지원이 많았다고 했다. 우연히 얻은 기회라 말했지만 연주하는 승준을 보면 필연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연주스타일도 참 독특하다. 중학교 이전에는 클래식이 전부 인줄 알았는데 유튜브를 보다 신세계를 발견 했단다. 특히 영감을 많이 받은 건 일본 연주자 ‘마라시’. ‘마라시’ 주법의 특징은 왼손은 드럼을 치듯 비트를 넣고 오른 손으로 멜로디를 전개하는 것이다.

'거리의 악사' 데뷔도 유튜브를 계기로 이뤄졌다. 유튜브에서 우연히 루프 스테이션(loop station·일정한 구간 소리를 녹음하여 실시간으로 반복시키는 기계 장치) 연주하는 걸 보고, 때마침 학교에서 주어진 과제에 써먹기로 한 거다. 당시 학교의 과제는 단 돈 만원으로 가장 많은 돈을 벌어보는 미션!

어떤 팀은 과자를 양껏 사서 팔아보기도 하고 또 어떤 팀은 음료를 만들어 팔기도 했는데, 승준 팀은 버스킹을 택했다. 거리에서 승준이 키보드와 루프스테이션을 들고 나와 연주하는 걸 필두로 친구들이 안무를 짜서 춤을 췄다고. 전혀 예상 못한 결과지만 승준의 팀이 1등을 했다. 들어간 비용은 교통비뿐, 만원이 채 들지도 않았다.

 

 

그때 그 미션, 14세의 승준. 작,편곡을 승준이 직접 했다. 곡과 루프스테이션 활용뿐 아니라 음악을 타고 있는 승준의 그루브도 훌륭하다. 학교과제지만 충분히 즐기고 있는 그가 꽤 귀엽다. 이런 과제라면 얼마든지 환영하지 않을까? 

사실 버스킹을 제대로 해 본건 몇 번 안된다. 각 장르마다 운지법이 달라 손 모양과 근육도 달라진다는 걸 알게 된 지금은 입시 전까지 버스킹을 자제 하려고 노력 중이라고 했다. 클래식은 달걀 쥔 듯 정교하게 쳐야 하는 반면, 팝은 손가락을 부채 펴듯이 하고 치기 때문이란다.

연습해야 하는 것과 거리에서 사람들이 원하는 것의 차이 때문도 있다. 중학교 때는 과제였으니 그냥 저냥 지나갔는데 좀 화려하고 막 내리치듯 하는, 임팩트있는 곡 일수록 사람들이 더 몰린단다. 사실 어렵고 집중력이 더 소요되는 곡은 오히려 잔잔한 곡 일 때가 많은데 말이다. 테크닉은 쾅쾅 때리기만 하면 되지만 견고하고 조용한 곡은 한음 한음 정확한 여리기와 정확한 박자로 집어내야 하는 섬세함을 요구한다.

이런 이유로, 현재는 버스킹 자체 금지령을 내린 상태다. 승준이 안에 있는 ‘마음껏 치고 싶어!’라는 욕망이 얼마다 더 버틸지 모르겠다만.

(사진: 백승준)

승준이 나이 이제 열여덟. 아직 꿈 많은 소년이다. 독일로 유학도 가고 싶다고 했다. 우리나라 클래식 생태계가 어떤지 잘 알고 하는 말이었다. 일단 깊이 있게 음악을 공부하려면 대학을 가긴 가야 하는데 졸업 후 수익이 마땅치 않을 게 걱정인 듯 보였다.

그래 사실 좀 안다. 동생이 ‘성악’을 전공하고 있고 주변에 예술계에 아는 사람들도 좀 된다. 유학 이후에 행보도 꽃길은 아니다. 클래식계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오면 보통 리사이틀을 여는데 대부분의 관객은 품앗이로 이뤄진다. 전공자나 인맥 위주로 ‘지난 번엔 네가 왔으니 이번엔 내가 가고, 이번에 내가 왔으니 다음에 네가 나를 찾아오는’ 수순. 순수관객 비율은 상당히 적은 편이다.

입시 연극계에도 웃지 못할 이야기는 많다. 입시를 도와 준 스승이 제자의 합격 후 하는 말은 대체로 ‘입학을 축하한다. 앞으로 네가 성공하거든 이 선생을 좀 끌어 다오.’ 연극 쪽에 있었던 탓에 이런 에피소드를 심심치 않게 들어왔다. 

“알아요. 연주자로만 성공하기는 힘든 게 사실이에요. 그래서 뉴에이지 음악하려고요. 화성학 공부도 하고 있고. 곡 쓰는 것도 배우고 있어요.”

기우였구나 싶다. 이제 한 우물만 파는 시대에서 다양한 감각을 익혀야 하는 시대로 성장하고 있다. 영화 OST에도 관심이 많다고 하여, "나중에 내가 영화 시나리오를 쓰거든 곡을 써달라"는 ‘김치국’ 계약을 끝으로 인터뷰를 마쳤다.

승준을 보내고, 현재 무럭무럭 성장 중인 청년 버스커들에 대해 생각해봤다. 나는 왜 그들에게  꽂혔을까? 왜 늘 거리를 꿈꾸는 걸까? 꿈꾸는 내일은 늘 불안하다. 실제로 그 미래가 올지 안 올지 누구도 명확히 해답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겠지.

무대에 오르는 건 늘 성패가 갈린다. 학교나 오디션에 떨어지기도 하고 대중의 질타를 받기도 한다. 그 불안한 성장통을 사람들과 함께 즐기려고 나오는 버스커들에게 정이 들은 걸까? 어쨌든 난 그 맛이 좋았다. 이미 견고하게 성장해버린 사람들에게서는 느낄 수 없는 눈빛과 몸짓. 거리에 꿈꾸는 버스커가 아직 남아있는 한 이 글은 계속 될 것이다.

(사진:XiXinXing/shutterstoc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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