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아프리카 노예무역의 흔적을 찾아서
서아프리카 노예무역의 흔적을 찾아서
서아프리카 노예무역의 흔적을 찾아서
2016.09.14 06:49 by 김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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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 배움이 함께하면 그 의미는 더욱 커집니다. 휴식과 관광을 위해 떠났던 서아프리카 여행에서 저는 아프리카의 비극적인 노예무역에 대해 배우게 되었습니다. 짧은 여행이었지만 그 안에서 전문가에 받은 정보들, 현지인들과 나누었던 이야기와 노예무역의 흔적을 간직한 유적지에 방문하여 배우고 느낀 점을 이번 글에 담았습니다.

본격적인 여행지 이야기로 들어가기 전에, 먼저 역사적 배경부터 살펴볼까요? 중세시대부터 유럽과 중동에 설탕 생산을 위한 대농장이 등장하였고, 노동집약적인 특성 때문에 많은 노예들이 필요했습니다. 14~15세기부터 중동지역의 설탕 농장주는 사하라 이남 지역의 노예를 고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후 포르투갈 등의 유럽 국가들이 경제적, 종교적, 그리고 정치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전 세계로 세력을 뻗고자 하였습니다. 그들은 서아프리카 해안지역을 정복하였으며, 요새와 노예를 감금하기 위한 지하 감옥을 건설하였고, 이후 남미까지 세력을 확장하게 되면서 대서양을 건너 행해지는 노예무역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아프리카의 노예들은 다양한 수단과 방법으로 모집되고 감금되었습니다. 유럽의 장군들은 강제로 원주민들을 납치하고 협박하여 노예로 삼았습니다. 농장과 마을에 불을 내고 부녀자들을 납치하였으며, 아프리카의 지도자들을 뇌물로 매수하여 원주민들을 노예로 팔도록 하였습니다. 외국에서 더 좋은 삶을 약속하며 원주민을 속여 승선하게 하거나, 원주민들을 선상 파티에 초대하여 술에 취하게 한 후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배를 출발시키기도 하였습니다.

노예들은 남녀 모두 상반신에 어떤 옷도 걸치지 않은 채 열악한 지하 감옥에 감금되어 대서양을 건너며 미대륙에 팔려갈 순서를 기다렸습니다. 반항과 폭동을 방지하기 위해 지하 감옥은 엄격하게 감시되었으며 감옥의 생활환경은 매우 비인간적으로, 열악하고 비위생적이었습니다.

노예 감금과 노예무역의 흔적이 남아있는 서아프리카의 주요 관광지들

① 가나의 Elmina Castle

수도 아크라에서 4~5시간가량 차로 달리다보면 가나의 남서쪽에 위치한 Elmina Castle에 도착합니다. 서양의 침략과 식민지화, 그리고 노예무역의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Elmina Castle은 1482년에 포르투갈인들에 의해 건축되었습니다. 이 성은 기니만에서 최초로 만들어진 무역 장소이며, 사하라 이남지역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오래된 유럽의 건축물로서 역사적 가치가 인정되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습니다. 가나와 코트디브아르 해안가를 지칭하는 Gold Coast 지역의 여러 포르투갈의 요새는 훗날 네덜란드(1642년)와 영국(1872년)에 의해 차례로 정복되었습니다. Elmina Castle 역시 1637년에 네덜란드, 1872년에는 영국의 정복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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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mina Castle의 지하 감옥에서도 수많은 노예들이 사망하거나 유럽 및 미대륙에 팔려갔습니다. 남성 노예의 경우 건강하고 신체조건이 좋은 사람들이 잡혀갔으며, 여자 아이를 포함한 여성 노예는 유럽의 장군들을 위한 성노예로 이용되었습니다. 성의 구조상 장군들이 2층 테라스에서 아리따운 여성 노예를 쉽게 찾을 수 있었고, 마음에 드는 여성을 불러내 본인의 방으로 불러 성폭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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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의 이름은 ‘Door of no return’. 노예들이 바다건너로 팔려가는 배를 탈 때 지났던 문입니다. 노예들을 실은 배는 유럽과 북미·남미로 떠났으며, 그들은 선상 혹은 타지에서 사망하거나 다시는 돌아올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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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들이 갇혀 살았던 작은 방안에 들어가 보았습니다. 이 좁은 방에 30명까지 감금되었다고 합니다. 저는 이 방안이 어둡고 습하며 악취가 심해서 3분여간 안에 있는 것도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이 방은 조금이나마 햇빛이 들어오고 환기가 가능하였지만, 문제의 노예로 낙인찍힌 이들은 단 하나의 틈도 없는 작은 방에 수백 명이 함께 갇혔고, 그 안의 배설물로 생긴 전염병으로 죽거나 굶어 죽어갔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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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대학생들이 노예무역의 아픈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 매년 Elmina Castle을 방문하여 발에 쇠사슬을 감고 노예 생활을 체험한다고 합니다. 제가 성을 방문하기 일주일전 학생들이 다녀간 흔적을 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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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mina castle에서 바라본 해변의 풍경입니다. 이 아름다운 바다를 눈앞에 두고도 감옥에 갇혀 핍박 받은 가나의 노예들의 기분은 어땠을까요.

② 가나의 Cape Coast Castle

아크라에서 차로 3~4시간 정도 달리다보면 Cape Coast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이곳에 있는 Cape Coast Castle은 1555년 포르투갈에 의해 건설되어 여행자를 위한 숙소로 이용되었다가 차례대로 스웨덴, 네덜란드, 그리고 영국에 의해 정복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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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유럽 국가들에 의해 정복되었던 Cape Coast의 요새에는 붕괴와 복원의 흔적이 남아있으며, 대포 등의 전쟁 도구들이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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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의 지하 감옥에서도 약 1000명의 남성 노예와 500명의 여성 노예가 감금되어 생활하였습니다. 반면 성 2층의 고급스러운 방에는 노예무역을 주도하였던 유럽의 장군들 및 성직자가 거주하였습니다. 지하에서 남녀노소 노예들이 고통 받고 있을 동안 그들은 널찍한 테라스에서 아름다운 해변의 풍광을 즐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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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pe Coast Castle 내부의 박물관에도 들려보았습니다. 배를 타고 팔려 나가는 노예들의 모습은 어떠하였을까요? 가장 효율적이고 경제적으로 대서양을 횡단하기 위해 노예선의 주인들은 최대한 많은 수의 노예들을 배에 실었습니다. 식량도 제대로 공급받지 못한 상태에서 잔인한 대우를 받았으며,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많은 이들은 도착지에 도달하기 이전에 배에서 사망하였습니다. 배안의 노예들은 어떤 옷도 걸치지 않은 상태에서 손과 발, 목이 쇠사슬로 묶여졌습니다. 그들은 짐짝처럼 선반에 쌓였으며 항해도중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렇게 두 달에서 넉 달간의 긴 항해에서 생존한 노예들은 북미, 남미, 그리고 유럽의 농장과 개인 가정으로 팔려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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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오바마 대통령과 그의 가족들은 노예들의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미 대륙을 대표하여 노예제도에 대해 사과하고자 Cape Coast Castle에 방문하였습니다. 짧은 연설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지하 감옥 바로 위에 교회가 위치했다는 사실을 듣고 매우 놀랐다”고 했습니다. 이어 “나의 자녀들이 이와 같은 중요한 역사를 배울 수 있어 축복받았다”면서 “이를 통해 자녀들이 사회의 억압과 잔인함을 싸우고 이겨내야 한다는 의무감을 배웠기를 바란다”고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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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kum National Park

Cape Coast에서 한 시간 정도 차로 달리다보면 Kakum National Park에 도착합니다. Cape Coast로 여행 온 여행객이라면 들려야할 필수코스 Kakum은 가나의 울창한 숲과 동식물을 온전히 보존해온 국립공원입니다.

Canopy Walk
Canopy Walk위에서 바라본 공원의 모습

Kakum National Park의 웅장함과 좋은 공기를 빠른 시간 안에 느끼기 위해 많은 관광객들이 Canopy Walk 체험을 하고 있습니다. 흔들거리는 밧줄 다리를 걸으며 장관을 감상하고 재미까지 챙길 수 있습니다.

국립공원을 보다 자세히 들여다보기 위해 가이드 투어를 할 수 있습니다. 국립공원의 신기한 식물과 이를 활용하며 살았던 원주민의 생활에 대해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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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세네갈의 고레섬과 노예들의 집

노예들의 집(Maison des Esclaves)이 위치한 고레섬(Île de Gorée)은 세네갈의 수도 다카르에서 배를 타고 방문할 수 있습니다. 다카르 옆의 작은 섬인 고레섬에는 유럽 세력의 정착과 노예 감금 및 무역의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배에서 바라본 고레섬
노예들이 승선하였던 Door of no return
노예들의 팔과 다리, 목에 매어졌던 쇠사슬과 노예들을 위협하여 복종하도록 하기 위해 이용하였던 무기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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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들의 집 밖에 있는 동상입니다. 자유를 이룬 모습을 보여줍니다. 우연히 이야기를 나누게 된 고레섬의 주민들은 다시는 노예제도의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이 동상을 보며 자유와 주권의 중요성을 되새긴다고 합니다.

고레섬은 노예무역의 흔적 외에도 아름다운 섬의 모습으로 많은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골목골목 정겹고 평화로운 분위기 가운데 살아가는 섬 주민들의 모습을 볼 수 있으며, 섬에서 본 다카르 앞바다의 장관은 눈부시게 아름답습니다. 깨끗한 바닷물 속에서 광활한 대서양의 수평선을 보며 수영하면 시간가는 줄 모를 정도입니다.

고레섬의 골목 풍경
역사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는 고레섬의 모습
고레섬 정상에서 바라본 바다

관광지이기 이전에...

노예무역은 아프리카 대륙에 크나큰 상처를 남겼습니다. 우선 거대한 아프리카의 인구가 유출되었습니다. 1978년 아이티에서 개최된 국제회의에서 논의된 바로는 1450년부터 1850년 사이에 2억1000만명의 아프리카 인구가 해외로 보내졌다고 합니다. 선별된 노예들은 대부분 가장 에너지 넘치고 건강하며 기술력이 있고 똑똑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아프리카의 사회경제적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인적자원들이었던 셈이지요. 이렇게 감금되고 타지로 이송되면서 사망한 아프리카인의 수는 어마어마하며, 이 과정에서 많은 가족이 해체되었습니다. 가족의 연대와 동지애가 약화된 아프리카 사회는 훗날 계속된 서양의 침략에 대응할 힘을 잃어갔습니다.

뿐만 아니라 계속된 습격, 납치, 전쟁으로 사회적 불안정이 지속되어 원주민들은 유럽의 생산품에 지나치게 의존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아프리카의 경제가 자생적으로 뿌리내리지 못하는 결과를 불러왔습니다. 또한 유럽의 계속된 간섭으로 인해 아프리카 사람들은 자긍심을 잃어 서양세력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습관이 생겼으며, 유럽인들은 아프리카인들이 본인들 보다 하등하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훗날 아프리카 국가들은 뼈저린 식민지 시대를 겪게 되고 이러한 역사 속 상처는 21세기 현재까지 아프리카 대륙을 병들게 하고 있습니다.

고레섬의 노예들의 집에서 누군가 벽에 적어 놓고 간 문구를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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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할 수 있지만 잊을 수 없다.”

누군가는 말합니다. 몇 백 년 전 이야기를 들춰서 무엇 하겠냐고. 지금 서양의 국가들이 아프리카 국가들에게 많은 원조금을 쏟아가며 과거의 일을 보상하고 있지 않느냐고. 실제로 오바마 대통령이 미국을 대표하여 Cape Coast Castle에서 사과를 하였을 때 많은 논란이 있었습니다. 미국의 일부 주에서만 노예를 수입하고 노예제도를 가지고 있었는데 왜 50개의 주 전체를 대표하는 대통령이 사과를 해야 하느냐는 것이 반대 여론이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묻고 싶습니다. 노예제도와 노예무역은 과거의 악습에 불과하기에 우리가 잊어도 되는 걸까요? 오늘날의 서양국가의 대통령들은 과거 선조들이 행한 악습에 대해 사과할 필요가 없는 것일까요? 일부 지역에서는 노예제도를 행하지 않았다고 한들, 이러한 악습으로부터 비롯된 아프리카인들에 대한 편견과 무시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일까요?

저는 두 가지의 큰 이유로 이 역사가 잊혀지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몇 백 년 전의 이야기이지만 아직까지 아프리카 사회는 이로부터 고통 받고 있습니다. 우리가 진정 아프리카 사회의 발전과 선진화를 도모한다면, 그들의 역사를 분석하고 그들의 성장에 걸림돌이 되는 요소를 공부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둘째, 얼마든지 앞으로도 노예제도 및 무역이 등장할 수 있습니다. 물론 오늘날에는 인권에 대한 인식이 발달하여 백 년 전처럼 눈에 보이는 인권침해는 나타나지 않을 것입니다. 강대국의 제국주의와 저개발국을 이용하여 발전하려는 이기주의는 이전보다 침투적이고 불투명하며 언론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형태로 나타날 것입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말처럼, 아프리카의 오랜 슬픈 역사를 아프리카의 젊은이들은 물론 국제사회가 기억하여야만 그 역사는 반복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역사는 용서될 수 있으나 결코 잊혀지면 안 될 것입니다.

서아프리카 추천 여행지

서아프리카는 동·남아프리카에 비하여 관광지가 적고 다양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서아프리카에서도 독특하고 아름다운 관광지가 있습니다.

- 가나의 Lake Bosumtwi (보솜취 호수)

보솜취 호수는 병균 및 전염병 걱정 없이 수영할 수 있는 안전한 호수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유성에 의해 생성된 호수이며, 호수의 바닥에는 부드럽고 고운 검정색 진흙이 있어 편안하게 수영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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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트디브아르 Abidjan (아비장)

코트디브아르의 수도 아비장은 서아프리카에서 상당히 발전된 도시 중 하나입니다. St. Paul‘s Cathedral 건물 밖의 구조물과 아름다운 건물 내부의 스테인글라스는 아비장의 명소입니다. 개인적으로 Plateau에 위치한 Grande Mosquée d'Abidjan(아비장 모스크)이 인상 깊었습니다. 이슬람 신자만 입장이 가능하여 들어갈 수 없었지만, 아름답고 우아한 모스크 외관으로도 충분히 매력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비장의 명소, St. Paul‘s Cathedral

- 토고 Lomé (로메)

토고의 수도 로메의 아름다운 해변에는 일광욕과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하였습니다. 로메의 해변과 바닷물은 비교적 깨끗하여 즐겁게 수영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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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김미진

UN 희망원정대 네팔, 우즈베키스탄, 몽골, 가나, 피지, 스리랑카. 이 여섯 나라에서 활동하는 UN 봉사단 청년들이 현지에서의 활동과 생활을 고스란히 글과 사진에 담았습니다. 각자가 속한 UN 기구에서의 이야기와 함께 그곳의 사회와 문화, 여행정보 등 6개월 동안 보고 겪은 생생한 이야기를 전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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