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나크 신전의 제5 탑문은 투트모스 1세가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곳은 훼손 정도가 꽤 심합니다. 제5 탑문 바로 뒤에도 열주실이 하나 있었지만 역시 거의 폐허로 변해 있습니다. 이곳을 열주실로 상상하는 것조차 어려울 정도로요.
폐허가 된 열주실 뒤로 이어지는 것은 투트모스 3세가 세운 제6 탑문입니다. 이 탑문을 넘어서자마자 우리는 두 개의 인상적인 대리석 기둥을 만날 수 있습니다. 붉은색 대리석으로 정성스럽게 만들어진 이 두 기둥은 백합 세 줄기와 파피루스 세 줄기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백합이 상(上) 이집트의 상징이고, 파피루스가 하(下) 이집트를 나타낸다는 사실, 기억하시나요?
이 기둥 근처에는 투탕카멘 시대에 만들어진 아멘 신과 그의 부인 아메네트(Amenet) 여신의 커다란 조각상이 있습니다. 아멘의 부인으로 유명한 것은 카르낙 인근에 신전을 갖고 있는 몬투이지만, 몬투가 아멘의 부인으로 부상하기 시작한 건 중왕국 11왕조 이후의 일입니다. 그 이전까지,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피라미드가 유행하던 시절에는 아메네트가 아멘 신의 대표적인 부인으로 여겨졌습니다.
다음 공간은 카르나크 신전의 핵심부라고 할 수 있는 ‘성스러운 배를 위한 지성소’입니다. 이곳은 카르나크 신전에서 모시던 아멘 신상과 그 신상이 신전 외부로 이동할 때에 사용되던 배 모양의 가마를 모시던 장소입니다.
이곳은 원래에는 투트모스 3세가 지었던 것으로 알려져있지만, 투트모스 3세로부터 1000년가량이 지난 이후 기원전 4세기경 한 그리스인에 의해서 재건되었습니다. 이 그리스인은 여러분들 모두가 다 잘 아시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배다른 동생이자 기원전 323년부터 317년까지 알렉산드로스 대신 이집트를 통치했던 필립 아르히데우스(Philip Arrhidaeus)입니다. 투트모스 3세가 지었던 기존의 성소는 이집트 문명이 종말로 치닫는 과정에서 자주 경험했던 외세의 침략으로 인하여 큰 손상을 입었는데, 그것을 필립이 무척이나 공을 들여서 분홍색 화강암으로 다시 만들었습니다. 당연히 이곳에는 알렉산드로스와 필립 아르히데우스의 이름이 이집트 신성문자로 새겨져 있습니다. 길이 18m, 너비 6m의 이 공간은 두 개의 방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첫 번째 방은 봉헌물을 위한 곳이었고, 두 번째 방이 신상을 모시던 곳이었습니다.
이 신성한 장소를 넘어서면 이번에는 신전에서 가장 오래된 장소에 다다르게 됩니다. 중왕국 시대의 신전이 있었던 자리라, 오늘날에는 ‘중왕국 마당’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이 ‘중왕국 마당’은 12왕조의 세누스레트 1세가 건설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근래의 발굴작업을 통해서 기원전 4, 5세기경에 몇 차례 복원이 이뤄졌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다음으로 우리가 둘러볼 곳은 '아크-메누(Akh-Menou)', 즉 '기념물들의 눈부심'이라는 굉장한 이름을 갖고 있는 건물입니다. 오늘날에는 이곳의 건축에 관여한 투트모스 3세의 이름을 붙여서 ‘투트모스 3세의 축제신전’이라고도 불립니다. 이곳에서는 병사들이 사용하는 야외용 천막의 기둥을 본떠서 만든 돌 기둥이 주목할 만합니다. 투트모스 3세는 전장을 오래도록 누빈 ‘전사 파라오’였고, 이 돌기둥은 자신의 군사적 업적을 강조하기 위한 목적도 갖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 ‘축제신전’ 안에는 이집트학자들이 ‘식물원’이라고 부르는 방도 있습니다. 정말로 식물을 키우던 공간은 아니었지만 이곳에 새겨진 섬세한 식물 부조들이 그 이름의 이유를 알게 해줍니다.
투트모스 3세는 그와 그의 병사들이 시리아-팔레스타인 등지로 향했던 원정길에 보았음직한 여러 이국적인 식물들을 이곳에 그려놓았습니다. 이것은 아마도 아멘 신에게 그 귀한 식물들을 바치고 싶은 투트모스 3세의 경건한 신앙심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신전의 남-북축의 끝자락에서 이 축을 벗어나 밖으로 나가보면 시원한 호수를 볼 수 있습니다.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투스에 따르면 신전의 사제들은 하루에 두 번씩 이 호수에서 목욕을 하며 자기 자신을 정화하였다고 하는데, 실제로 그랬다는 확실한 증거는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길이가 200m, 너비가 117m에 이르는 이 호수는 신전에 부속으로 지어지는 종류의 호수들 가운데에 규모가 가장 큰 것입니다. 물론 카르낙 신전의 규모를 감안하면 이 정도 규모의 호수는 전혀 어색하지 않았습니다. 신전 내부에 만들어진 신성호수들은 태초의 바다인 ‘눈(Nun)'을 상징합니다. 호수 근처에는 파괴된 하트셉수트의 또 다른 오벨리스크의 상단부가 놓여져있습니다. 하트셉수트는 이 오벨리스크에서도 아멘에게 직접 왕관을 받아쓰는 자신의 모습을 묘사하며 다시 한 번 자신과 아멘 신과의 깊은 관계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자 이제 신전의 가장 중심이 되는 동-서축과 그 끝자락에 놓인 신성호수까지 다 둘러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신전의 또 다른 축인 남-북축을 둘러볼 차례입니다. 남-북축은 제3 탑문과 제4 탑문 사이에서 시작되는 만큼 우리는 다시금 우리가 왔던 길을 거슬러 돌아가야 합니다.
/사진: 곽민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