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내가 태어나기 전에 무슨 생각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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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내가 태어나기 전에 무슨 생각했어?
2016.09.27 15:05 by 지혜

엄마와 아이 모두에게 <세상에 태어난 아이>, <딸기 밭의 꼬마 할머니>

‘초록’은 태명이다. 숲 속에 초록 나무처럼 건강하고 씩씩한, 싱그러운 사람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이 얘길 들은 초록이는,

“내가 엄마 뱃속에 있었을 때, 나는 엄마를 빨강이라고 불렀어. 빨간색처럼 예쁘게 살라고”

나는 나의 뱃속 작은 점을 초록이라 부르고 그 작은 점은 나를 빨강이라 부르던 그 때를 기억해보려고 한다. 서로의 존재를 위해 이름을 짓던, 그것으로도 충분했던 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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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이를 임신했을 때 썼던 글.

이게 남아 있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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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아이를 갖게 된 모든 부모가 그렇듯이

 

남편과 나 또한 ‘초록이가 어떤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나’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초록이의 외모와 체질, 성격과 성향, 직업과 가치관 등등 초록이가 사람이 되기 위해 갖춰야할 모든 요소에 대해 우리의 희망을 하나씩 말하는 것이다.

 

말하다보면 욕심이 점점 불어나서 정말 말도 안 되는 얘기들이 튀어나온다. 쌍꺼풀이 짙고 큰 눈은 시어머니를 닮고 깊고 그윽한 눈매는 친정엄마를 닮았으면 좋겠다, 마음껏 먹어도 살이 안찌는 체질은 나를 닮고 잔병치레 없고 튼튼한 체력은 남편을 닮았으면 좋겠다, 나의 문과적 기질과 남편의 이과적 기질이 적절하게 결합되어 발휘되었으면 좋겠다, 와 같은.

 

아무튼 뱃속에서 듣고 있을 초록이 입장에선 난감하기 짝이 없을 주문들이 난무한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하고 어려운 것은 초록이가 차차 갖게 될 삶에 대한 태도이다. 초록이가 ‘어떻게’ 살았으면 하는가에 대한 것인데 그것은 이미 결정된 다른 유전적 요소들과 다르게, 얼마든지 우리의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와 남편은 초록이가 여유 있게 삶을 즐기길 바란다.

 

우리의 공통된 생각은 학교 다닐 때 공부 잘 했다고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또 돈을 많이 번다고 해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초록이가 공부나 일, 돈에 치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만 자유롭게 삶을 느낄 수 있었으면.

 

내 생각에 여유 있는 삶은, 삶의 조각조각에 관심을 두고 그들을 자유롭게 즐길 때 생겨난다. 나는 우리의 초록이가 음악을 즐기고 문학을 사랑했으면 좋겠다. 작곡을 해보기도 하고 시를 써보기도 하며 그것을 나에게 자랑스럽게 내밀 줄 아는 아이였으면 좋겠다. 산에 올라 계절의 변화를 온 몸으로 알아채는 법을 알았으면 좋겠다. 갑자기 바다가 보고 싶다고 몰래 학교를 빠져나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고, 스무 살이 되는 해 배낭여행을 훌쩍 떠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그리고 스스로의 감정에 책임질 수 있는 한에서 연애도 실컷 했으면 좋겠다.

 

오늘 아침에도 초록이 생각을 하다가 나는 어제보다 더 통통해진 배를 만지며 초록이가 자유로운 사람이길 바란다고 말해줬다. 그런데 나에게 남편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어쩌면 그런 바람을 갖는 것 자체가 초록이의 자유로운 인생을 침범할 수도 있는 거라고.

 

맞다. 자식에게 나의 욕망을 투영시키지 말자고 다짐했지만 어쩌면 이것은 내 욕망들을, 그렇게 살고자 했으나 그렇게 살지 못한 것들을, 초록이가 대신 이루어주길 바라고 있는 것은 아닌가.

 

참 어렵다. 갑작스럽게 임신을 하면서 내가 크게 배운 것 중 하나가 내 인생에 대해 확신하지 말자는 것이었다. 아무리 내가 살아내는 것이라고 해도 마음대로 안 될 수도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초록이에 대한 나의 희망들도 똑같겠지. 장담하지 말자.

 

초록아, 엄마는 그냥 초록이가 걸음걸음 내딛을 수 있게 뒤에서 지켜볼게. 

뱃속 작은 점이었던 초록이가 세상에 태어나 다섯 살이다. 그 동안 많은 것이 달라졌다. 육아는 ‘나’를 포기해야 하는 일이었지만, 대신 아이의 삶 전체를 내 품에 안을 수 있었다. 그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은 생각보다 더 힘들었다. 그 때의 다짐과 기록이 무색하게, 아이를 향한 바람이 늘어가고 실망도 잦아진다. 아이는 이제 겨우 다섯 살인데.

내 안에 작은 존재를 향해 초록이라 이름 짓던 그 마음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기로 한다. 여전히 나의 아이가 ‘초록’ 답게 자라길 바라고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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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외치며, <세상에 태어난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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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태어나지 않은 아이가 있다. 이 아이는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우주 한가운데에서 별들 사이를 마음대로 돌아다닌다. 춥지도 않고 덥지도 않다. 사자를 봐도 무섭지 않고 넘어져도 아프지 않다.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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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이 아이는 마침내 태어나기로 결심한다. 다쳤을 때 꼭 안고 괜찮다고 말해주는 엄마와 엄마가 부드럽게 붙여주는 반창고가 갖고 싶었기 때문이다. 태어나지 않은 아이는 마침내 태어난다. 크게 ‘엄마’를 외치며.

태어났기 때문에 이제 세상 모든 것은 아이와 상관이 있다. 팔과 발이 아파 울기도 하고 배가 고프기도 하고 모기에 물려 가려워하기도 한다. 무서운 것도 생길 것이다. 태어난 아이의 말대로 “태어난다는 건, 참 피곤한 일”이다. 그럼에도 아이는 태어나기로 결심했고 태어났다. 오직 엄마를 만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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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팔과 발이 아파 우는 아이를 꼭 안아주고 깨끗이 씻기고 약을 바른 다음, 반창고를 붙여 준다. 그 안에서 엄마의 부드럽고 좋은 냄새는 세상에 태어난 충분한 이유가 될 것이다.

그래서 엄마의 일은 더 어렵다. 육아의 고달픔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한 존재의 이유가 된다는 것은, 아주 무거운 일이다. 지금 내가 잘하고 있는지 계속 이렇게 해도 되는 것인지 매번 고민하고 걱정한다. <딸기 밭의 꼬마 할머니>는 그런 우리를 위로한다.

 

엄마의 일이라는 것 <딸기 밭의 꼬마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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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 밭 아래 살고 있는 할머니는 딸기가 열리면 빨간색을 칠해야 한다. 간단해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것처럼 힘들고 복잡한 일이 없다. 햇빛을 잔뜩 빨아들인 물을 만들기 위해 백 개의 계단을 몇 번씩 오르내리고, 땅 속에 있는 돌을 파서 잘게 부수는 일을 밤낮없이 하다 보니 손은 물집 투성이가 된다. 그렇게 딸기물이 완성되면 붓을 잡고, 차례차례 딸기를 물들여 나간다. 사소하지만 공들여야 하는 일, 아이를 씻고 먹이고 재우는 엄마들의 매일을 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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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딸기는 완성되었지만 갑자기 눈이 내린다. 힘들게 빨간 딸기를 만들었는데 모두 하얀 눈 아래로 없어지고 말았다. 갑자기 변덕을 부리는 날씨가 꼭 전혀 예상할 수가 없는 아이의 내일처럼 보인다. 아무리 노력을 한다고 해도 뜻대로 안 되는 것이 할머니의 딸기, 그리고 우리의 아이일 것이다. 뜻대로 안된다고 실망하거나 비난할 필요는 없다. 할머니의 딸기가 겨울 추위에 굶주린 동물들의 배를 채워준 것처럼, 아이는 스스로 존재의 방식을 결정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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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책은 초록이가 어른이 되어서도 곁에 두었으면 좋겠다. 눈 속에서 언 딸기를 안고 “그래, 조금도 잘못되지 않았어. 정말 다행이야” 다독이듯 말하는 할머니 때문이다. 할머니는 초록이가 힘들어 할 때면, 특별하거나 뛰어나지 않아도 된다고 보통의 사람들만큼 해내지 못해도 괜찮다고 ‘나’ 만큼만 살아내어도 충분하다고 다독여 줄 것이다.

이쯤에서 <그림 같은 육아>를 마무리하려고 한다. ‘엄마의 일’은 힘들고 어렵지만 분명 아름답다는 것을, 그림책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나를 비롯한 세상의 엄마들에게 건네는 위로의 말들이었다. 부족한 글이지만 이런 마음이 조금이라도 전해졌길 바란다.

초록이와 나는 지금처럼 오래오래 그림책을 나눠 읽을 것이다. 서로의 존재를 향해 이름을 짓던 순간들은 끝났지만 대신 기억을 짓기로 한다. 그림 같은 기억이 되었으면 좋겠다.

  Information

<세상에 태어난 아이> 글‧그림: 사노 요코 | 역자: 임은정 | 출판사: 프로메테우스 | 발행일 2004년 10월19일 | 가격: 9000원

<딸기 밭의 꼬마 할머니> 저자: 와타리 무츠코 | 역자: 이영준 | 출판사: 한림출판사 | 발행일: 1991년9월1일 | 가격: 9000원

/사진: 지혜

그림 같은 육아 아이들이 좋아하는 그림책을 통해 아이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고민과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보는 신 개념 육아일기. 이를 통해 ‘엄마의 일’과 ‘아이의 하루’가 함께 빛나는 순간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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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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