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
청계천
2016.09.28 14:34 by 오휘명
(일러스트:TheBlackRhino/shutterstock.com)

뻐끔. 뜰채가 만들어낸 섬뜩한 물살이 나의 등을 스쳐 간다. 뻐끔. 나는 이렇게 또 한 번 살았다. 뻐끔. 인간들의 목소리가 가까워져 오거나, 어항의 뚜껑이 흔들리기 시작하면, 나는 얇고 기다란 몸을 조금 기울이고 몸의 움직임을 최소화한다. 뻐어어끔. 그러면 수족관의 주인은 ‘에이, 이놈은 다 죽어가네.’라고 말하곤 어항 속의 다른 친구들을 떠가곤 했다.

나는 어쩌면 다른 친구들보다는 조금 더 똑똑해서, 스스로 생존하는 법을 배운 걸 수도… 물론, 저 커다란 뜰채에 걸러져, 투명한 비닐에 담긴 채로 어딘가로 떠나가는 이들이 전부 다 죽어버리는 건 아닐 것이었다. 그렇지만 어떤 경로들을 통해 들려오는 소식들은, ‘튀겨져서 인간에게 먹혔다더라’, ‘고양이가 채어갔다더라’, ‘어딘가로 옮겨지는 중에 질식했다더라.’와 같이 무시무시한 것들뿐이었다.

무엇보다도 내가 원하는 건 인간이나 다른 존재에 의한 탈출이 아니라 ‘나 자신의 힘에 의한’ 탈출이었다. 어쨌건, 나는 방금 이곳을 떠나간 친구를 걱정하는 마음과, 이별하게 된 슬픔으로 눈물을 찔끔 흘렸다. 우리들의 눈물은 곧바로 물속으로 녹아들어, 겉으로 보기에는 티가 나지 않는 법이다.

기본적으로 나는 인간이라는 자들의 말을 믿지 않았다. 사실, 좁아터진 이곳에서 하루에 몇 번씩 떨어지는 밥을 먹기만 하며 가만히 지낸다는 것은 제법 고역이라서, 가게로 들어오는 여러 사람이 하는 말이라도 듣는 것이 우리들의 거의 유일한 낙이긴 했다. 그렇지만 재미와는 별개로 그들의 말은 확실히 믿을만한 것이 못 되었다. 두어 달쯤 전에 어떤 꼬맹이가 했었던 말을 기억한다.

“엄마! 얘들은 기억력이 5초래요, 5초. 내가 괴롭혀도 5초만 지나면 까먹는다는 건가?”

꼬맹이에겐 미안하지만, 우리 종족은 오초보다 몇십 배, 아니, 몇천 배는 더 오래 기억할 수 있어서, 석 달이 지나도 무언가를 기억하는 데에는 무리가 없었다. 석 달이 지나 무언가를 잊었다 해도, 그것이 ‘가물가물’할 뿐, 기억하고 있었다는 것마저 잊을 정도로 멍청하진 않았다. 나는 그 녀석을 추억하며 묘한 쾌감을 느낀다. 꼬맹아, 너는 두 달쯤 전에 그런 말을 했던 것을 잊었겠지만, 나는 네가 그런 말을 했던 것을 기억한단다.

해가 뜨고 나면 매일같이 여러 사람이 드나들었다. 구부정한 자세로 걷는 노인들, 자식과 함께 나들이하는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 젊은 여자, 우리가 먹을 밥을 짊어지고 들어오는 남자. 그들은 거의 하나같이 똑같은 행동을 하곤 했다. 멍해져서는, 수조 곳곳을 돌아보며 누구에게 건네는 건지도 모를 말을 하곤 하는 것이다. 너 참 예쁘구나. 밥은 먹었니. 오빠 집에 갈래. 그럴 때마다 우리는 뻐끔거리며 순진무구한 표정을 지었다, 뻐끔. 그리고 밤이 되어 수족관의 사장마저 보이지 않게 되면, 그제야 우리는 그날 본 사람들에 관하여 수다를 떨곤 했다.

“오늘 온 꼬마는 비교적 순했던 것 같아요.”

바닥 쪽에 위치한 탓에 매번 어린아이들의 장난 대상이 되곤 했던 자라가 그리 말했고, 수족관 안은 한동안 웃음바다가 됐다. 짐짓 심각한 태도로 말했던 자라는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오늘 드나들었던 여러 사람의 생김새에 관한 시시콜콜한 대화가 오갔다. 그러던 중에 세모 모양에 검고 흰 줄을 가진 열대어가 입을 열었다.

“나의 애인은 대체 어디로 떠나간 걸까.”

결국은 그랬다. 매일의 마무리는 그날 떠나간 물고기들을 향한 걱정과 그리움과 함께였다. 분위기는 일순 무거워졌고. 대형 수조 하나를 홀로 차지한 금빛 용(노랗고 큰 잉어였지만, 사람들은 그를 그렇게 불렀다)님께서 입을 열었다.

“그만하고 오늘은 이만 자도록 하지.”

과연, 200만원 짜리의 카리스마였다. 사실, ‘200만 원’이라는 수치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인간들은 그 수치를 듣고 나면 하나같이 소스라치는 표정을 짓곤 했다. 그래서 금빛 용님은 자연스레 우리 수족관의 왕 또는 신으로 군림하게 됐다.

모든 물고기가 헤엄을 멈추고 잠든 시간, 나는 뜰채를 피할 때처럼 겉으로만 무기력한 모습을 띠어본다. 아직은 잘 마음이 없으므로.

어떻게 하면 나갈 수 있을까. 인간들의 말은 도무지 믿을만한 것이 되지 못했지만, 각양각색의 여러 손님이 입을 모아 말하는 ‘청계천’이라는 장소에는 썩 믿음이 갈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청계천은 저 바깥의 거리 주변에 위치한 ‘큰 물가’로, 그 물길의 주변에는 요즘 들어 푸른 풀과 나무들도 많이 생겨났다고 한다. 나는 그 청계천에 관한 이야기들을 들으면 들을수록 마음속에서 이상한 것이 꿈틀거리는 것을 느꼈다. 나는 이곳을 나가야 한다. 그리곤 무슨 방법을 써서든, 나 스스로만의 힘으로 자유를 얻어야만 한다. 뻐끔.

뻐끔,

뻐어끔…….

*

해는 어김없이 떠오르고, 가게 바깥의 철문이 올라가는 소리와 함께 우리는 잠에서 깬다. 그리곤 각자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한 멍청한 표정을 짓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우리의 그런 표정을 보며 안심한다.

사건은 가게 바깥이 가장 밝아질 때쯤에 일어났다. 우리의 먹이들을 납품하는 남자가 오늘은 커다란 바위 하나를 들고 가게에 들어올 때였다. 사장님, 이게, 보기 드물게 예쁜 돌인데요. 어항 장식할 때 쓰시라-어어.

그의 발이 수족관 문턱에 걸리고, 그가 들고 있던 바위는 곧바로 내 집으로 날아왔다. 들어본 적도 없었던 날카로운 소리, 큰 흔들림, 그것들이 지나가고 정신을 차렸을 땐, 나는 자라의 집이 나란히 보이는 땅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뻐끔. 뻐끔.

사장은 놀라서 소리를 지르고, 납품업자는 놀라서 허둥거린다. 이렇게 큰 소동이 없었다. 타일로 이루어진 바닥에는 물이 흥건해서, 누운 채로 헤엄을 치려고 마음을 먹으면 꼭 앞으로 나아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나의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은 밝은 바깥이었다.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청계천의 소리일까. 소리는 바로 앞에 있는 듯 가깝게 들렸다.

 

길 건너 그분들의 사연  세상의 모든 존재들, 나와 나의 주변 ‘것’들이 각자 간직한 마음과 사연. 그 사연들을 손 편지처럼 꾹꾹 눌러 담아 쓴 초단편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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