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권하지 않는 나라
술 권하지 않는 나라
2016.10.11 17:51 by 성서빈

인도에서 술 마시는 사람은 ‘행실이 바르지 못한 사람’으로 통한다. ‘우리도 비슷하지 않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정도가 좀 더 세다. 특히 여자에겐 더 엄격하다. 여자가 “술을 사러 간다”고 하면 뒤에서도 아니고, 면전에 대고 손가락질하며 쑥덕대는 게 인도 사회다.

와인 & 맥주 가게: 창고처럼 술을 쌓아 놓고 파는 곳. 인도에서 술을 사려면 반드시 ‘여기’로 가야 한다. 

인도에는 ‘Dry day’(금주하는 날, 이하 드라이데이)가 있는데, 술을 파는 것이 전면 금지된 날이다. 이날만큼은 예외가 없어, 종교와 관련된 축제나 기념일, 명절과 같은 휴일에도 어김없이 와인숍(Wine Shop: 델리에서는 술파는 가게를 와인숍으로 통칭한다)이 문을 닫는다.

드라이데이의 날짜는 주마다 다르고, 주정부가 바뀔 때마다 날짜도 달라진다. 그래서 매년 연초에는 올해의 드라이데이 일정이 SNS를 통해 퍼지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아예 주류가 완전히 금지된 주(州)(비하르, 구자라트, 락샤드윕 등)가 있는가 하면, 주류 판매는 가능하지만 제조만 금지된 주, 주류 제조는 가능하지만 판매만 금지된 주 등 주정부마다 정책이 다르고, 정권이 바뀌면 정책도 변한다.

마하트마 간디 탄생일(공휴일)에 문을 닫은 와인숍.
‘드라이데이’를 써 놓았다. 일반적으로 공휴일은 모두 ‘드라이데이’다.

인도는 술을 팔 때 면허가 필요하고, 그 면허가 아주 비싸서 술도 비싸다. 면허를 가진 사람들이 와인숍을 운영하며 창고처럼 술을 쌓아 놓고 팔기도 하고, 음식점에서 주류취급 면허를 받고 술을 팔기도 한다. 면허 없이 몰래 팔다가는 중산층 연봉의 몇 십 배나 되는 벌금을 내야 하지만, 그럼에도 그 수익이 상당해서 무면허 판매도 많다고 한다.

인도에서 술을 마실 수 있는 나이도 역시나 주마다 다른데, 보통은 21세 이상이고, 뉴델리는 만 25세 이상이 되어야만 음주가 가능하다. 인도 청년들이 ‘알콜’ 없는 대학생활을 마치고 졸업하면 22살 정도가 되는데, 사회생활을 시작하고도 3년 동안이나 술을 마시지 못한단 얘기다. 상상하기 정말 힘들지만… 인도니까 가능한 것 같다.

인도 문화에선 술을 마시거나 술을 사는 것, 술을 선물하는 것이 모두 예외적인 상황에서만 용인되는 행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가에 술집들이 꽤 있는 걸 보니 대학생의 음주에 대해선 살짝 눈 감아 주는 면도 있나보다.

IIT 공대 앞 SDA 마켓의 비어카페

뉴델리에 사는 한국인 아줌마의 행동반경을 보면 삼각형 안에 모든 것을 넣을 수 있다. 집-회사-쇼핑몰! 쇼핑몰로 가는 차 안에서 길거리를 보면 인도의 갖가지 삶의 모습을 접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인도 최고 명문인 ‘IIT’(Indian Institutes of Technology‧인도 공과대학) 정문 앞을 지나가면서 보는 ‘SDA 마켓’은 늘 시선을 사로잡는다.

일반적인 차창 밖 풍경
SDA 마켓: 차를 타고 다니다가 이 정도 규모의 마켓이 보이면 눈이 휘둥그레져서 ‘저긴 뭐지? 한번 가봐야겠다!’라고 꼭 다짐한다. 사진을 찍어 놓고 보면 항상 상상보다 뭔가 부족하기는 한데...

SDA 마켓은 한국으로 치면 대학로나 신촌 쯤 되는 셈. 형형색색의 간판과 독특한 외장, 초록색 나무로 살짝 가려진 외부 발코니는 시원한 맥주를 마시면서 생음악을 듣는 자유 시간을 망상케 한다. 남편이 한번 다녀온 후로는 ‘역시 생음악에 맥주!’라는 소리를 하도 해서 학당 동료들을 꾀어내 어느 날 갑자기 밤마실을 가게 되었다. 사실 인도에서 여성의 음주 시도를 단순히 ‘마실’로 여기기엔 상당히 무리가 있지만 말이다.

거의 7시가 다 되어 도착한 SDA 마켓은 어둡지만 주차하려는 택시와 ‘오토릭샤(인도의 삼륜 택시)’로 아주 붐볐다. 마켓 입구에는 호객하는 아저씨들과 와인숍 앞을 서성거리는 사람들이 진을 치고 있는데, 모두 남자! 살짝 움츠려든다. 정말 여자는 없는 것일까?

원래 가고자 했던 외부 발코니형 주점을 ‘비추’하는 일행이 있어, 조금 더 깨끗해 보이는 ‘비어카페’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반가운 에어컨 바람과 함께 멋쟁이 점원이 자리로 안내해 준다.

비어카페: 세련된 체인형 주점 중 하나.
Cutting Slider@599: 이 가게의 추천 메뉴, 100cc 짜이 잔에 담긴 호가든2, 스텔라1, 비라 블론드2, 잔당 1300원 꼴, 종류는 고를 수 있다.
모두 남자. 조금 이따가 보니 커플, 가족 단위도 있어서 한국의 동네 호프와 다를 바 없어 보였다. 오히려 조명이 밝아서 커피전문점이나 식당에 와 있는 기분이랄까.
안주들. 보통 5천원 내외, 양이 적어서 한국과 가성비가 비슷하니 꽤 비싼 편이라고 할 수 있다. 매콤짭짤한 요리를 시키면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편.

자리에 앉아서 이것저것 시키고 둘러보니 현지인들과 외국인들이 군데군데 앉아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아무래도 외국인들도 자주 찾는 동네 술집 분위기. 10월 ‘옥토버 페스트’를 맞아 내부 장식과 메뉴 디자인이 화려했고, 전체적으로 조명이 밝아서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안주로 시킨 매콤한 닭고기 요리와 함께 3시간을 수다를 떨자니 주변의 사람들이 여러 번 바뀌었고 그들 대부분은 (25살은 확실히 넘어 보이는) 외국인, 또는 남성이었다. 그래도 가족단위나 커플, 회식자리 등으로 젊은 여성들도 간간히 보여서 남자들만 있다는 위화감은 의외로 없었다. 10시가 다 되어 밖에 나가니 와인숍 앞에 인산인해를 이룬 사람들을 해산시키려는 경찰이 호루라기를 불었다. 어서 집에 가라는 모양이다.

아무리 혼자가 아니라지만 밤 10시에 밖에서, 무려 델리에서(!) 술을 마신 채로 있는 것은 처음이라 조금 발걸음이 빨라진다. 다행히 으레 그 시간에 귀가하는 사람이 많아서인지 주변에 우버가 아주 많이 대기하고 있었다.

워낙 술에 대해 예민한 곳이라, ‘날’을 잡으려면 꼼꼼한 사전 조사가 필요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술집에 대해서 물어봤을 때 ‘하우즈 카스 빌리지’(hauz khas village: 상점이 있는 마을을 지칭한다.)와 GK1(Great Kailash 1) M-Block Market, 그리고 Ambience 쇼핑몰의 유명한 주점 등을 추천받았다.

그런데 추천받은 곳들은 저마다 장벽이 있었다. 하우스 카스 빌리지는 한국의 홍대와 비슷한 클럽들이 모여 있어서 이 나이, 이런 복장으론 입장이 어려웠고, GK1는 자주 안 가본 위치라 너무 생소했으며, Ambience 쇼핑몰은 가격이 어마무시하단 소문이 자자했다. 여기에 ‘델리에서 밤에 돌아다닌다니 이 무슨 위험천만한 소리야’라는 자중의 목소리도 있었다. 사실 델리는 외국인에게 너무나도 위험하다고 소문난 데가 아닌가.

하지만 막상 술집에 가서, 그곳에 앉아 있는 현대적인 옷차림의 여성들을 보고 나니 ‘음주≠인도 여성’이라는 고정관념은 사라져버렸다. 이곳도 변화의 물결 위에 있는 것이었다. 인도는 큰 땅덩어리만큼 인종, 문화, 종교 등 뭐든지 다양하고, 도시와 지방의 개발 차이가 큰 만큼 지역별 문화의 변화 속도도 다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인도나 델리에 대한 사실들은 금세 변하는 것들이었다. 아, 과연 붓다가 말씀하신 무상(無常)의 본고장이로고.

 

/사진: 성서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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