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체면을 체념한 나라

 

‘층간소음’이 강력범죄로까지 이어지는 세상. 사생활 침해와 보호의 문제는 현대인이 풀어야 할 주요과제 중 하나죠. 사람 많기로, 그만큼 바람 잘 날 없기로 소문난 중국은 어떨까요? 내 것이 소중한 만큼, 남의 것도 소중하게 여겨지고 있을까요?

 

(사진:Blablo101/shutterstock.com)
(사진:Blablo101/shutterstoc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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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시선 

 

필자는 한국의 모 방송국 아침 프로그램에서 중국 소식을 소개하는 현지인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주로 베이징의 심각한 스모그 현상과 국경절, 춘절 등 주요 명절마다 수십만 명의 인파가 몰리는 장면을 촬영, 영상을 전송하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그런데, 이때 중국인들의 사소한 관심이 사(私)의 영역을 쉽게 넘어서는 경험을 합니다. 대부분의 영상 촬영이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탓에 약간의 긴장과 초조함을 가지고 있는데, 바로 이 순간 중국인들이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모여드는 겁니다.

 

그리고 그중 일부는 필자의 어깨너머 카메라를 바라보며, “너 지금 뭐 하고 있느냐”, “방송을 하는 것이냐”, “어디로 보내는 것이냐”, “찍고 있는 내용이 무엇이냐”고 묻는 행위에 주저함이 없습니다.

 

그럴 때면, 저뿐만 아니라, 한국에 있는 방송국에서도 큰 소란이 일어납니다. 이어폰 너머 들리는 다급한 담당 PD의 목소리를 통해, 현장의 상황이 쉽게 예측이 되곤 하죠.

 

도대체 왜 이러는 것일까요? 나와는 상관없는 ‘남의 일’이니 그저 한 번쯤은 무심코 지나쳐 갈 수도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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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시선

 

사생활 보호 문제와 관련, 또 다른 사연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필자의 지인이자, 오랜 친구인 최씨는 베이징에서도 으뜸으로 꼽히는 부촌 리두(丽都)의 한 아파트에서 4년째 거주 중입니다. 올해로 5세의 아들을 키우고 있는 그는 하루도 빠짐없이 들리는 옆집 아저씨의 음악 소리 때문에 이른 새벽에 잠을 깹니다.

 

물론 그의 5세 된 아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여서, 가족 모두가 겪는 생활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랍니다. 아들이 아프기라도 한 날엔 잠이라도 푹 재우고 싶지만, 하루도 어김없이 복도를 타고 들어오는 중국 전통 음악 소리 탓에 마음 편히 지나가는 날이 없다는 것이죠.

 

고민 끝에 “음악 소리를 줄여 줄 수 있느냐, 그게 싫으면 현관문이라도 닫아줄 수 없냐.”고 간청했지만, 오히려 어이없다는 듯 “남이 일에 참견하길 좋아하냐”는 말로 얼버무리며, 별다른 조치를 취해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최 씨 가족은 현재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 올 때 큰돈을 들여 인테리어 작업까지 했습니다. 중국에 머무는 동안만큼은 이사하지 않고 살 작정이었죠. 하지만 옆집 아저씨의 막무가내식 행동에 현재는 이사까지 고려하고 있답니다.

 

 중국 베이징 수도 공항 내부 화장실 문에 게재된 ‘나의 편의를 위해 문을 닫고 용변을 봅시다’라는 계몽 문구.

중국 베이징 수도 공항 내부 화장실 문에 게재된 ‘나의 편의를 위해 문을 닫고 용변을 봅시다’라는 계몽 문구.

 

또 다른 일화도 있습니다.

 

중국에 자리한 공용화장실에는 ‘나의 편의를 위해 문을 닫고 용변을 봅시다’라는 문구가 화장실 문짝에 붙어 있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화장실 칸칸마다 칸막이가 없는 경우도 허다하고, 칸막이가 있다 해도 용변을 보는 이들이 쪼그리고 앉아있는 높이만큼만 설치된 경우도 상당해서, 앞선 사람이 용변을 보는 것을 원하든 원치 않든 지켜보아야 하는 일이 잦은 것이죠.

 

비록 최근 건설된 공용 화장실의 경우 대부분 칸막이와 문이 설치돼 있지만, 문 없이 용변을 보는 것에 익숙한 이들이 문을 닫지 않고 볼 일을 보는 일이 상당해 정부에선 ‘편의를 위해 문을 닫자’는 ‘우습지만, 진지한’ 계몽 문구를 문 마다 부착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 같은 필자의 현지 상황 묘사에 대해 일부 지인들은 비문명적인 상황에 대해 혀를 차거나, 설마 그것이 사실이냐며 의문을 갖는 경우가 상당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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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하이디엔취 빠고우 인근에 자리한 맥도날드에서 상의를 탈의한 채 식사하는 이들의 모습이 보는 이들에게 이목이 집중됐다.

베이징 하이디엔취 빠고우 인근에 자리한 맥도날드에서 상의를 탈의한 채 식사하는 이들의 모습이 보는 이들에게 이목이 집중됐다.

 

더욱이 필자는 최근 이사한 새 거주지에서 이른 아침 출근길에 꿈에 나올까 두려운 장면을 보고 말았습니다.

 

한 중년 남성이 버스 정류장 앞에 조성된 잔디밭에서 쪼그리고 앉아 대변을 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정류장에 있던 수십여 명의 사람들은 그날 출근길에 원치 않는 광경(해당 남성의 용변을 보는 장면)을 적나라하게 봐야 했지요.

 

이 같은 중국인들이 가진 ‘나의 일’과 ‘남의 일’이라는 분류를 지켜보고 있자니 ‘내가 즐겁기만 하다면, 나의 즐거움을 위해 타인의 고통은 사뿐히 무시되어도 좋은 것’으로 여겨지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곤 합니다.

 

그래서인지, 그들이 ‘상식’은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방향으로만 발전하는 모양새입니다. 내 것이 중하다면, 남의 것 역시 중하게 여겨줄 것이라는 배려는 무엇 때문인지 찾아보기 힘들죠.

 

베이징 차오양구 거리를 걷는 한 남성. 무더운 날씨를 견디기 위한 방법으로 상의를 올리고 걷고 있지만, 이 같은 모습은 종종 보는 이들에게 불편함을 느끼게 하곤 한다.

베이징 차오양구 거리를 걷는 한 남성. 무더운 날씨를 견디기 위한 방법으로 상의를 올리고 걷고 있지만, 이 같은 모습은 종종 보는 이들에게 불편함을 느끼게 하곤 한다.

 

반면, 그들은 ‘자신의 것’을 보호하는 측면은 남달리 유별난 측면이 존재합니다. ‘내 것이니, 남으로부터 보호하겠다’는 주장이죠.

 

실례로 중국 내에서는 그곳이 어느 지역이든 구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의 해외 사이트의 접속이 불가능하도록 조치해오고 있습니다.

 

‘자국 정보 보호 정책’으로, 중국 정부는 자신들이 활용하는 정보 내역과 출처에 대해 해당 외국 사이트 운영 업체에서의 정보 수집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죠.

 

자국민들의 정보가 해외로 세어나가는 것을 막고, 자국 내 포털 사이트 운영의 활성화를 동시에 추구한다는 정책이 지금껏 지켜지고 있는 탓입니다.

 

때문에 중국에 거주하는 상당수 이들은 중국의 대표적 포털 사이트 바이두(百度)와 SNS 웨이보(微博), 웨이신(微信)을 통해 정보를 검색, 연락을 주고받고 있으며 앞서 열거된 해외 사이트와 SNS는 접속조차 불가능한 상태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들 중 일부는 VPN으로 불리는 접속 차단 해제 프로그램을 통해 해외 인터넷망을 통한 우회 서비스를 활용, 접속이 차단된 일부 사이트에 접속하고 있지만 사실상 이 역시 불법적인 경로로 구분되어 암암리에 행해지는 형국이죠.

 

더 놀라운 것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중국 내 대부분 공공기관과 교육 기관 내에서는 한국의 대표적인 포털 사이트 네이버를 접속 차단 사이트로 지정, 다음 카카오톡 역시 접속이 불가능합니다.

 

(사진:BeeBright/shutterstock.com)
(사진:BeeBright/shutterstock.com)

 

이 역시 자국민의 정보를 보호하겠다는 취지로 운영되고 있는 정책이지만, 그런 발상에 실소가 나오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앞서 중국인들이 ‘사(私)’의 영역을 얼마나 고민 없이 자유롭게 넘나드는지 확인했기 때문이죠.

 

필자는 가끔 그들의 이 같은 행위가 ‘사생활’에 대한 사소한 인식의 차이 탓에 비롯된 것인지, 혹은 혹자들의 지적처럼 ‘중국의 갈 길이 아직 멀었다’는 말의 증명인지 혼란을 겪습니다.

 

“그들이 가진 생각과 말과 행동은 세계 제1의 경제력을 뒷받침할 만큼 성숙하지 못했다”는 비난의 목소리에 동조하고 싶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년 째 중국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건 언젠가는 좋아질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필자는 늦은 밤 응급실에 실려 간 적이 있었습니다. 돌봐줄 가족도, 친구도 없이 병원 행렬의 긴 줄 속에서 막막했을 무렵, 복도 한 쪽 끝에 쓰러져 있는 필자를 발견한 일부 무리들이 ‘외국인이냐’, ‘급하게 치료를 받아야 할 사람이 있다’, ‘도와줘야 한다’며 나섰죠. 그들은 앞줄에 기다리고 있는 또 다른 환자보다 우선해서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빠른 조치를 취해 주었습니다.

 

그때 경험은 늘 지나친 관심과 사(私)의 영역을 쉽사리 넘는 그들에 대해 비문명화된 국민이라고 여겼던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들이 가야할 길이 아직 멀었다고 비난하는 가운데에서도, 적지 않은 시간 그들의 지나친 관심 덕에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경험을 돌아보면, 어느새 또 한번 작은 믿음을 가져보게 됩니다.

 

 

중국에 대한 101가지 오해 언론에 의해 비춰지는 중국은 여전히 낡고, 누추하며, 일면 더럽다. 하지만 낡고 더러운 이면에 존재하고 있는 중국은 그 역사만큼 깊고, 땅 덩어리만큼 넓으며, 사람 수 만큼 다양하다. 꿈을 찾아 베이징의 정착한 전직 기자가 전하는 3년여의 기록을 통해, 진짜 중국을 조명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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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소개

중국에 대한 101가지 오해

언론에 의해 비춰지는 중국은 여전히 낡고, 누추하며, 일면 더럽다. 하지만 낡고 더러운 이면에 존재하고 있는 중국은 그 역사만큼 깊고, 땅 덩어리만큼 넓으며, 사람 수 만큼 다양하다. 꿈을 찾아 베이징의 정착한 전직 기자가 전하는 3년여의 기록을 통해, 진짜 중국을 조명해본다.

필자 소개

서울에서 중앙일간지 정치부 국회출입기자로 4년 여간 활동, 서른을 한 해 앞둔 무렵, 아무 연고도 없는 베이징으로 무작정 건너와 현재는 프리랜서 통·번역, 여행 칼럼을 쓰며 자유로운 삶을 만끽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