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주말을 보내기 위해 약속 장소로 향하고 있었다. 지하철 계단을 오르던 중 맞은 편에서 무거운 짐을 들고 내려오는 할머니 한 분을 발견했다. 집에 계시는 할머니가 생각나 안쓰러운 마음에 달려갔다. 짐을 들어드리자 할머니는 연신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다. 계단을 내려오며 한 마디 말을 건네 보았다. "옆에 엘리베이터 있는데 왜 힘들게 계단으로 내려오세요?"
"엘리베이터 타는 법을 알아야지. 글을 몰라서..."
나에게 당연하고 일상적인 것이 누군가에게는 특별하고 불가능한 일이었다. 지하철에서 마주친 어르신 덕분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내가 가진 것이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것이 아니구나.' 지금도 어떤 이들은 남과 다르지 않으려 피나는 노력을 하고 있을 것이다. 특히 신체적으로 불편함이 있다면 그 노력은 배가 될 수밖에 없다.
주변을 둘러보던 중 시각 장애인의 삶을 생각해보게 되었다. 내가 그 분들의 상황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는 없지만, 보이지 않는 삶이란 굉장히 불편하지 않을까. 눈이 잘 보이는 사람들에 비해 위험에 노출 될 확률도 높고, 위험한 상황을 피하기 위해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글을 배우는 것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금 당신이 보고 있는 이 글자는 그들이 볼 수 없다. 그렇기에 점자가 발명된 것이다. 점자가 발명되기 전에는 맹인을 위해 일반문자 모양을 돋음새김하여 볼록 글자로 만들었다. 한번 생각해보자. 눈을 감고 볼록한 모양의 글자를 손으로 느낀다고. 굉장히 어려울 것 같지 않은가? 원활하게 글을 느끼게 하기 위해서는 크게 만들 필요가 있었고, 읽는 데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이런 단점들이 개선하여 탄생한 것이 바로 점자다.
맹인의 손끝에 세상을 전해준 점자를 발명한 사람이 맹인이란 사실을 알고 있는가?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다. 프랑스 파리의 '루이 브라이(louis braille)'라는 한 맹인 청년이 점자를 발명했다. 그는 어릴 적, 아버지의 공방에서 놀다가 날카로운 도구에 찔려 시력을 잃었다. 눈을 잃었지만 삶에 대한 의지를 포기하지 않고 버텼다. 그리고 10세에 파리맹인학교에 입학했다.
당시 맹인들은 수용소에 단체로 수용되어 바구니를 만들며 근근이 살아가고 있었다. 루이 브라이는 맹인들의 척박한 삶에 대해 원통함을 느꼈다. 그러던 중 그는 특이한 종이 하나를 접하게 된다. 작은 요철들이 튀어나와 있어, 형태를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 종이는 전쟁에서 쓰이는 종이였다. 밤에 전령을 보내기 위한 암호를 적은 종이였다. 밤에는 불을 키면 위치가 발각되기 때문에, 보지 않고 손으로 더듬어 알아볼 수 있게 만들어 놓은 것이다.
루이 브라이는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이 요철 형태로 맹인만의 글을 만들면, 이제 많은 책을 보고 공부할 수 있었다. 더 이상 바구니만 만드는 삶을 살지 않아도 된다. 초기 아이디어를 자신이 속해 있는 맹아학교에서 시험해보았다. 여러 문제점들이 도출되어 그것들을 개선하고 6개의 점철을 활용해 알파벳을 만들었다. 놀라운 점은, 그 당시 그의 나이가 겨우 15세였다는 것이다. (1824년)
항상 갑작스러운 변화는 받아들이기가 힘들듯이, 점자가 정식으로 인정받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만들어진 지 30년이 흐른 1854년에야 파리의 모든 맹아학교에서 공식 채택됐다. 루이가 1852년 사망하고 2년 후에야 빛을 발한 것이다. 점자는 급속도로 전세계로 퍼져나가게 되었고, 한국에는 1926년에 들어오게 되었다. 루이의 업적을 기리며 사망 100년 만인 1952년, 그의 유해는 프랑스 국립묘지 팡테옹으로 이장되었다.
우리는 텍스트가 범람하고 있는 시대에 살고있다. 아직도 부족하지만 점자 덕분에 우리가 보는 세상을 그들도 손가락 끝으로 느낄 수 있게 되었다. 그들과 우리가 차이나지 않는 세상에 한 걸음 다가갈 수 있게 해준 루이 브라이님께 감사를 표한다.